[행복하고 싶어요]

단지 뻔하지 않으려고

Just Not To Be Ordinary.

여행으로 떠난 필리핀 호텔에서 호텔 직원과 잠시 이야기를 하게 됐다. 호텔 로비에서 일행을 기다리는 동안 가만히 있기에 뻘쭘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고맙게도 상대방은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본다는 그에게 나는 한국 드라마는 너무 뻔한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때는 넷플릭스가 널리 퍼지기 전이었는데, 당시 해외에서 방영하는 한국 드라마는 진부한 소재들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무슨 얘기인지는 알겠지만 한국 드라마는 자기네 나라 드라마에 비하면 아주 다채로운 편이라며 자기 나라의 몇몇 드라마 이야기를 해줬다. 그가 늘어놓는 줄거리는 출생의 비밀을 소재로 하는 것으로, 그의 국적과는 상관없이 익숙한 스토리였다.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만을 기다리며 몇 달간 같은 시간에 텔레비전 앞을 지키게 만드는 그런 종류의 드라마였다. 그런 드라마가 매번 반복해서 나온다고 했다. 나도 어릴 때 드라마 좀 봐서 그게 어떤 건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어느 날 모든 비밀이 밝혀지며 주인공이 드디어 정말 주인공이 되는 그 순간, 주인공은 백마 탄 왕자가 되고, 주인공을 핍박하던 주변 사람들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 그 순간을 기대하며 보는 것 아니냐며, 뻔한 영화가 짧은 시간 공감대를 만들어 주었다.

최근 집에서 영화를 몇 편 보았다. 집중력이 십 분도 넘기기 힘든 요즘 한자리에 앉아서 영화를 본 나 자신이 대견했다. 유튜브에 ‘한국 고전영화’를 검색하면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오래전 영화를 좋은 화질로 볼 수 있도록 만든 페이지가 나온다. 오래된 영화들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이 말한 것과 비슷한 종류의 영화였다. 전화위복, 출생의 비밀 등 모두가 이해할 만한 스토리로 이루어진, 지금 영화에 비하자면 뻔해 보이는 영화들이었다. 

영화를 보다가 문뜩 빠져들었고, 이 영화가 재밌다고 생각했고, 이게 바로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특별한 줄거리를 가진 영화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좋았다. 무언가를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집중하려 정신줄을 부둥켜 잡지 않아도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 위에서 바들바들 떨며 팔과 다리를 휘젓지 않아도 물 위에 뜨는 편안한 기분이었다. 영화가 뻔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누군가 죽겠지 싶으면 누군가 죽고, 저 사람이 죽겠지 싶으면 그 사람이 죽는… 그런 편한 영화들이었다. 뻔하다는 건 편하다는 것인가?

문뜩 그동안 영화를 너무 공부하듯이 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영화나 게임이나 독서나 원래는 시간 때우려고 하는 일인데, 영화나 독서는 언젠가부터 마음먹지 않으면 시작하기 어려운 공부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요즘 영화는 저마다 세계관이 있고, 그래서 영화 초반부에는 영화가 제공하는 정보를 모두 익혀두어야 할 의무가 있다. 길고 긴 자막으로 이 극의 배경을 모두 설명하는 건 너무나 지루하니까 등장인물이 서로 주고받는 사소한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정보가 제공된다. 등장인물의 관계, 사건의 본질, 그 속에 숨겨진 함정….

한마디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중압감에 졸린 눈을 억지로 부릅뜨고 등장인물이 쉴 새 없이 흘리는 정보를 주워서 짜맞춘다. 너무 이해하기 쉬운 영화는 재미가 없는 영화다. 꼬이고 꼬인 관계를 힘겹게 이해하고, ‘그래 이제야 좀 이해가 되네….’라고 느끼면 그때부터 영화 감상이 시작된다. 이런 종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엔 영화에 대한 나의 충성심이 작용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 걸린 노력과 시간을 보상받고 싶어 하는 것이다.

뻔한 영화는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 어딘가 뻔한 구석이 있어야 힘을 빼고 다른 곳을 보게 되는 것인데 요즘 영화는 수능 듣기평가 하듯이, 지문 읽듯이 자막에 온 정신을 집중하게 된다. 그런데 오랜만에 뻔한 영화를 보니 마음이 편했다. 영화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도 해보게 된다. 가끔 힘을 빼고 사는 건 이런 느낌일까?

나는 단지 뻔한 드라마가 싫어서 어려운 영화처럼 살려고 한다. 다르게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뼛속까지 다르기 위해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뻔한 짓을 하기는 너무나 싫어서 뻔한 것보다 더 별로인 짓을 하기도 한다. 뻔한 것이 싫다며 굳이 복잡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사람이다.

가족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처음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일화가 있다. 뻔한 한 가족의 저녁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매일 밤 아버지가 퇴근길에 아파트 계단에서 불던 휘파람 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미솔 미솔 미솔 미솔 레- 나는 음치니까 물론 이 음은 맞지 않겠지만, 어쨌든 이것이 내가 복원한 가장 비슷한 멜로디다. 매일 저녁 일곱 시 아빠는 이런 멜로디를 노래하며 집으로 빠르게 걸어 올라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나랑 누나는 매일 휘파람 소리를 가장 먼저 듣는 사람이 되려고 경쟁했고, 그래서 휘파람 소리가 들리면 가장 먼저 뛰어나와 현관문 앞에 섰다. 차가운 공기를 맞은 아빠의 볼이 식기 전에 내 볼에 찬 바람을 비벼주길 기다렸다. 

당시엔 그것이 행복이었고, 그 순간 어느 불행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행복이 이와 같을 것으로 생각했다. 행복은 그 시간 아버지가 올라오는 계단이었다. 그러나 행복한 가정에 깃드는 행복한 이야기는 너무나 뻔한 것이라서 나는 그것에 대해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행복을 발명해 모두에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럴 때 휘파람을 분다고 말해서 모두의 부러움을 사고 싶었다. 그러나 나에겐 욕심만 있을 뿐 그런 휘파람이 없다.

있지 않은 것을 보여주려는 욕심에 이야기는 복잡해지고 감상하기에 불편해진다. 드러나 보이지 않을 뿐 뻔한 드라마나 복잡한 영화나 모든 이야기는 한 줄기 희망을 담고 있다. 그것이 사람이 무언가를 만드는 이유니까. 뻔한 것은 희망과 행복의 메시지를 어딘가에 심어 놓는 일이다. 누군가 아버지의 계단에 행복을 심어 놓지 않았듯이, 굳이 이야기에 행복을 심어 놓지 않아도 희망은 발견될 수 있다고 믿으며, 무언가 발견되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나씩 늘어놓는 일이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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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한승재―푸하하하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