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싶어요]

콘셉트에 충실한 사람

“이거이거이거!! 누가 그랬어!!”

가구를 덮은 비닐을 조심스럽게 걷어내자 비닐 위에 쌓인 먼지가 부서져 흘러내린다. ‘으악!’ 공기를 내뱉은 채로 잠시 숨을 참고 한쪽 구석에 조심스럽게 비닐을 접어 둔다. 먼지 쌓인 바닥을 공업용 청소기로 빨아들이면 드러나는 붉은색 마루바닥이 마치 크레파스로 칠한 것처럼 선명하다. 이것은 내 집에서 몇 달째 계속되고 있는 처절한 광경이다. 더러워졌다 깨끗해지는 바닥을 만나는 건 순간의 즐거움이기도 하지만 매일 그 짓을 반복하는 건 끔찍한 멍청이 짓에 부과되는 지긋지긋한 형벌이다. 콘셉트에 충실하다보니 나는 먼지와 걸레질의 반복되는 굴레 속에서 살게 되었다.

지난여름 집을 이사한 후 몇 달이 되도록 가구가 자리를 잡지 못했다. 거실에 놓인 가구를 이리 옮기고 저리 옮겨봐도 계속해서 텅 빈 구석이 발견되었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보기 전에 나는 또다시 가구 위치를 옮겼다. 가구를 어느 자리에 두어도 필요 이상으로 낭비되는 공간이 발견되었다. 이를테면 소파에 앉아 벽을 바라볼 때 저 벽이 필요 이상으로 멀었고, 그래서 배치를 바꿔보면 어딘가에 식탁을 하나 더 둬도 될 것 같은 헐렁한 공간이 나타났다. 넓지도 않은 이 집에 남는 공간이 생긴다는 게 큰 낭비처럼 느껴졌고 조금만 잘하면 남는 공간 없이 아주 유용하게 공간을 사용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조각을 잃어버린 퍼즐처럼 아무리 채워보아도 빈 곳을 메울 수 없었다. 여러 번 가구를 배치해 봐도 결과는 매번 같았다. 애매한 공간은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가며 나타났지만 어찌해 봐도 잘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 문뜩 깨닫게 된 것이다. 나한테는 거실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보통 집에서는 거실 면적이 가장 넓다. 가족이 모두 함께 쓰는 물건이 거실에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둘러앉아 식사하는 커다란 식탁과 가족이 함께 앉아 텔레비전를 보는 커다란 소파 그리고 벽에는 큰 텔레비전. 텔레비전은 큰 공간을 차지하진 않지만 텔레비전에서부터 소파까지의 거리가 거실 크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 큰 텔레비전을 놓으려면 텔레비전에서 소파까지 거리가 무척 멀어야 하고, 그 사이는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채로 비워져 있어야 한다. 텔레비전으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 소파가 있는 건 조금도 어색한 풍경이 아니지만, 하얀 벽에서부터 조금 떨어져 있는 소파는 허전하기만 하다. 무언가 있었다가 없어진 자리처럼 허전하다. 벽과 소파 사이에 놓였던 무언가 부서져 버려 잠시 비워 둔 공간처럼 보인다. 

현대 주거의 계산식으로 만들어진 거실의 크기는 나한테는 참 애매하다. 가족과 모여서 무엇을 할 일도 없는 이 집에서, 소파에 기대어 앉아 커다란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이 집에서 거실은 필요 이상으로 넓어서 낭비되는 안타까운 공간이었다. 거실 크기를 조금 줄여서 창고를 넓히고, 거실 크기를 조금 줄여서 주방을 키우고, 그런 식으로 거실 면적을 조금씩 떼어서 다른 공간에 나눠 주면 더 살기 좋은 집, 살림하기 좋은 집이 만들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에 굳어버린 콘크리트를 어찌할 수는 없으니…. 나는 이제 가구 옮기기를 그만두고 어딘가 허전하게 비워진 이 공간을 차라리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만들 수 있는 넓은 공간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작업실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나는 스스로를 조련할 줄 아는 사람으로,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법을 안다.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법은 나에게 빈 곳을 보여주는 것으로, 빈 액자나 빈 상자 등 비워져 있는 무언가를 보면 설레는 마음이 들어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거길 무엇으로 채울지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속이 가득 차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가끔 나는 참 쉽다. 빈 액자가 있다면 그것을 채울 만한 그림을 찾아다니고, 빈 상자가 있다면 그 안에 들어갈 만한 사물들을 찾아다닌다. 나에게 빈 공간은 활력소가 되어준다. 멀쩡한 거실에 작업실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좀 말장난 같기는 했으나 그 말장난에서부터 나는 설레기 시작했다. 작업실은 비워져 있는 공간이고, 작업실이라는 이름은 무언가가 만들어지기 위한 장소의 이름이니까.

누군가는 작업실이라고 하면 노란색 불빛 아래 창작에 몰두하는 소박한 공간을 떠올리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작업실이란 공사 현장이랑 다를 바가 없는 곳이다. 작업실은 마음 놓고 소음과 먼지를 발생시키는 곳이어야 한다. 그래야 무언가 해보려는 시도에 제한을 두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음과 진동이 수시로 발생하고 먼지로 뒤덮이는 일이 아니라면 굳이 작업실에서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차고나 지하실이 아닌, 집 안에 작업실을 만들려는 사람이라면 소음과 먼지에 대한 대책을 먼저 마련해 두어야 한다. 문을 만들어 작업실과 생활 공간을 분리해야 하고, 소음과 진동이 이웃에까지 미치지 않도록 벽과 바닥을 보강해야 한다. 가구 옮기기를 그만두고 곧바로 시작한 일이 작업실을 조성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거실처럼 생긴 작업실에서 벌인 첫 작업이었다.

쓸데없이 큰 4인용 식탁은 작업 테이블이 되었다. 거실 한가운데에 작업 테이블을 놓고 다양한 공구를 사용하기 좋게 펼쳐 놓았다. 그리고 집 여기저기를 뜯어보기 시작했다. 평소 눈에 거슬리던 플라스틱 몰딩을 뜯고 반짝거리는 황금색 재질의 붙박이장을 모두 뜯어버렸다. 내친김에 쓸데없는 곳에 서 있는 석고보드 벽에 구멍도 뚫어보고, 집에 비해 지나치게 고급스러운 대리석 세면대도 뜯어버리고…. 간단하게 적었지만 체력적으로 무척 힘든 시간이었다. 안타깝게도 지난한 공사 과정은 지난여름부터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그저 작업실을 만들려고 한 것뿐인데, 나는 공사장 한편에 누워 지내는 특이한 사람이 되었다.

일로 지친 어느 날 집에 들어와 보니 집 꼴이 말이 아니었다. 폐기물 봉지가 한가득 쌓여 있었고 여기저기 나무 조각이 널브러져 있었다. 주인이 없는 사이 너무나도 심심했던 말썽쟁이 강아지가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집 안의 꼴 같았다. 강아지 녀석을 앉혀 놓고 “누가 그랬어!!”라고 혼내줘야 하는데 이 집의 주인도,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강아지도 나다. 어쩌다 집이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되돌아보다가 너무나도 순진한 콘셉트 때문에 이렇게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거실의 빈 공간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거실이 조금 허전하군.’ 혼잣말한 후 텔레비전을 들여놨더라면 집은 이렇게 난리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밖에서도 안 쓰는 마스크를 집 안에서 쓰지 않았을 것이며 가려운 곳을 긁지 않고 참는 기분으로 지냈을지도 모른다. 마스크를 쓰고 숨을 참아가며 이웃집이 듣지 못하도록 조용하게 집안 곳곳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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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한승재―푸하하하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