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싶어요]

건강에 대한 거짓말들

건강에 대한 이야기는 어째서 모두 거짓뿐인가?

나는 말이나 글에서 나이가 드러나는 것을 경계하는 편인데, 이야기에서 나이가 드러나는 순간, 이야기는 이미 지난 세계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예전엔 어땠는데 요즘은 어떻게 변했다는 식의 이야기. 그런 이야기는 언제라도 술술 할 수 있으며, 더 많은 이야기를 불러오기에도 좋다. 하지만 그런 식의 지난 이야기를 하자면 시대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한발 물러나 있는 태도가 늘 싫었다. 나이가 들어서 몸이 쑤시네, 이제는 관리해야 할 나이네 하는 이야기들. 특히 건강 이야기를 하며 이제는 예전 같지 않다며 자신을 내리막길에 들어선 사람처럼 말하면 나는 ʻ나도 곧 저렇게 되는 거 아니야?’ 생각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니까 덩달아 내리막길로 끌려 내려가는 기분이 되었다. 그런 이야기는 놀랍게도 아주 어릴 때부터 주변에서 들려왔다. 스무 살 무렵에 클럽에 놀러 갔다가 알게 된 누나는 자긴 이제 스물다섯 살이라서 클럽에 다녀오면 삭신이 쑤신다고 했다. ʻ우왓, 이 누나가 스물다섯 살이라니!!’ 나는 속으로 놀라면서 스물다섯 살은 클럽에서 새벽을 넘기지 하는구나 생각했다. 나하고 종종 농구하던 친구는 서른 무렵이 되어 이제 우리 나이엔 무릎을 조심해야 한다며 설렁설렁 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도 중요한 순간에는 공을 잡고 팔딱팔딱 뛰어다녔기에 그런 모습이 그에게는 몇 번 남지 않은 필살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보였고, 설렁설렁 뛰다가 빠르게 뛰는 건 어쩐지 더 빨라 보였다.

젊은이들의 나이 엄살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거짓으로 밝혀졌는데, 아까운 것은 그것이 거짓임을 알기까지의 보석 같은 시간들이었다. 그때 클럽에서 만난 그 누나, 반팔 털 스웨터를 입고 주변 사람들에게 털을 잔뜩 묻혔던 그 누나 때문에 나는 젊음의 유통기한을 스물다섯 살로 설정해 두었다. 스물다섯에 클럽에 가면서 ʻ이제 곧이구나….’ 생각했고, 서른 무렵에 클럽에 가면서는 ʻ이 나이에 클럽을….’이라는 반성이 섞인 대화를 친구와 주고받았다. 그러나 가장 최근 춤추러 간 건, 그때로부터 십 년 더 지난 올해 여름이었다. 친구 전시 뒤풀이 파티에서 새벽까지 춤을 추고 새근새근 오랫동안 잔 후에 개운하게 일어났다. 이제 무릎을 조심해야 한다는 친구의 말은 어느 정도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었지만 굳이 농구 하면서까지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그 친구의 조언 때문에 나는 스스로를 은퇴를 앞둔 농구 선수처럼 여기게 되었고 조금씩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전성기를 누리던 미국 프로 농구 스타 르브론 제임스가 마흔을 앞둔 지금 나이까지도 뛰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티브이에서 보게 되었고, ʻ아니 그렇게 걱정할 일은 아니었잖아?’ 하며 속은 기분이 들었다. 난 그가 진즉에 은퇴한 줄 알았는데, 은퇴는커녕 아직도 전성기에 가까운 기량을 뽐내고 있었다. 그가 뛰고 있는 그곳은 동네 농구 코트도 아니고 NBA인데…. 

그리고 언젠가부터 나이와 건강에 대한 새로운 거짓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말로 나이 많은 사람들이 펼치는 건강에 대한 이야기인데, ʻ에구 에구, 나 죽네.’라고 엄살 부리던 어린 사람들과는 반대로 진짜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건강을 과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머리가 새하얗지만 아직 이렇게 정정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건강 비결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 사무실과 집 이전으로 부동산 찾을 일이 많았는데, 그곳에서 만나는 건물주들이 모두 비슷한 말을 한 게 신기했다. 그들은 실제로 나이보다 젊고 건강해 보였다. 나이는 많지만 눈이 흐리멍덩하지 않고 힘이 있었다. 허리가 곧아서 위축되어 보이지 않고 자신감이 가득 차 보였다. 그들이 건강 관리를 잘한 것인지, 건물이 그들의 허리를 곧게 세우게 해준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그들은 대체로 월의 풍파를 잘 견뎌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들이 묻지도 않은 건강 이야기를 하는 순간, 매끈한 허물이 벗어지고 늙은 사람이 드러나 보였다. 그들의 거짓말은 나이 먹지 않는 척하는 것이었다. 에구 에구 힘들다 말하지 않고 나는 건강하다 자부하는데도 세계로부터 한발 물러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건강을 걱정하거나 건강을 과신하거나, 어쨌든 흐르는 시간에 대해 지나치게 의식하는 태도는 사람을 슬퍼 보이게 한다. 이 세계에서 한발 물러나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누나가 결혼하고 떠난 후, 부모님과 함께 남겨진 집에는 노년의 기운이 차오르고 있었다. 부모님의 대화가 모두 건강에 대한 것으로 바뀌어 버린 시기가 있었다. 나는 그 원인이 아마도 티브이 프로그램일 것으로 추정하나 정확한 근거는 없다. 부모님은 이제는 관리가 중요한 나이라거나, 이제는 먹는 걸 가려 먹어야 한다는 둥의 이야기를 매일 나누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해야 하는 움직임과 먹어야 할 것 등 이른 아침의 패턴을 매일 발명했고, 별것 아닌 효능을 가진 음식을 신중하게 섭취하며, 먹을 때마다 다시 한번 그 효능에 대해 일러주곤 했다. 명절날 오랜만에 모인 친척 어른들이 줄곧 건강 이야기만 나누는 모습을 보며, 난 그것이 티브이 프로그램의 영향일 것이라고 다시 한번 확신했다.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주제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난 기본적으로 거의 모든 문제를 대중문화의 탓으로 돌리는 편이니까, 어쩌면 그것은 노년을 앞둔 사람들의 공통적인 두려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괴로웠다. 우리 집은 명절마다 차례를 지내는 첫째 아들의 집이었다. 어릴 때는 누나도 친척 동생들도 바글거렸지만 더 이상 젊거나 어린 사람은 그곳에 없었다. 각자 직업을 갖고 각자 가정을 꾸리면서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실을 착실히 만들었지만, 변함없이 그 집에 살고 있는 나는 그 시간을 피할 구실이 없었다.

명절엔 어차피 놀 친구도 없었고, 명절에 할 일이 있다고 핑계를 대며 자리를 피하려 해봤지만, 부모님은 아침 일찍 차례 지내고 볼일을 보라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때는 겨우 부모님 60세 무렵 되던 때의 일로, 요즘의 60세를 생각해 보면 다들 너무 큰 걱정에 시달렸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의 60살은 철근도 씹어 먹을 나이라고 하던데….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 걱정에 대한 걱정이었다. 바짝 마른 조기구이 앞에서 건강에 대한 걱정을 듣는 건 흡사 가라앉은 배에 함께 올라타 있는 기분이었고, 나 혼자라도 이곳을 당장 떠나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 자리는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이 세계로부터 한발 물러선 자리였다. 당시엔 어른들의 삶이 정말 끝나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노년에 접어든 사람들은 이제 남은 평생을 걱정과 푸념으로 가득 채울 것으로 생각하고 답답했던 것이다. 그러나 부모님의 건강 걱정도 한때였다는 것을 요즘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요즘의 부모님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젊은 삶을 사는 것 같다. 별로 걱정도 하지 않고 매일 놀러 다니기에 바쁘다. 실제로 노년에 접어들어서 노년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 걸까? 아니면 익숙해진 걸까?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 하루하루를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두 분이 여행하며 노는 것이 재밌어 보인다. 만나서도 건강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다. 자식들에게 그렇게 보여야 자식들이 걱정하지 않는다는 지혜가 생겨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보지만. 그렇다면 이것은 건강에 대한 또 다른 거짓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해도 나는 멍청하게 속고 싶다. 나뿐 아니라 부모님 스스로도, 즐거움이라는 연극에 속아 모두가 나이를 잊고 살았으면 좋겠다.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글·그림 한승재―푸하하하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