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싶어요]

겁 없는 덩어리들

잠을 그렇게까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지금보다는 더 쉽게 잠들었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침대를 집에서 치워 버렸다. 함께 일하는 친구가 내가 사는 집의 바로 아래층으로 이사 오게 되었는데 마침 침대가 필요하다고 해서 그의 방으로 옮겨다 주었다. 순간의 기분으로 저지른 일이었지만, 사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침대라는 물건을 거북하게 느끼고 있었다. 방이 좁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침대라는 너무나도 커다란 물건이 방을 모두 차지하고 있는 것이 내내 불만이었다. 내 침대는 퀸 사이즈였으니까 평수로 환산하면 내가 침대에게 내어준 면적은 무려 한 평 가까이 되었던 것이다. 방이 아주 컸다면 침대는 책상과 장롱과 책장 등 여러 가구 사이에 섞여 있어 그리 이상할 것 없었겠지만, 침대 하나만으로 가득 차버리는 방은 어쩐지 부조리해 보이기까지 했다. 고작 침대 하나 넣어 놓으려고 이토록 단단하게 벽을 치고 문을 달아 놨다는 사실이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가끔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를 마주한 뒤 ‘음… 여기 왜 왔더라?’ 생각한 다음에 다시 문을 닫고 거실로 나가곤 했다.

나는 매일 아침 부지런히 일어나 이 방을 비워줘야 하는데, 게으른 침대는 하루 종일 내 방에 누워서 잠을 잔다. 이건 과연 나의 방인가? 누구의 방인가? 뽀얀 침대 하나만으로 꽉 찬 내 방을 보면 배변 패드 하나만으로 꽉 차는 강아지 케이지가 떠오르기도 하고, 아주 덩치가 크고 엄살이 심한 사람이 하루 종일 골골대며 내 방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잠을 잘 때는 물론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근데 아침에 일어나지 않고 방에 혼자 누워 있는 침대를 보고 있자면 얘는 왜 이렇게 게을러서 일어나지도 않는 건지 불만을 품게 된다. 예전에 커다란 브라운관 티브이가 거실 한가운데에 놓여 있을 때도 볼 때마다 비슷한 생각을 했다. 정규 방송이 송출되지 않는 한가한 오후 시간, 켜져 있지 않은 텔레비전은 모두가 잘 보는 곳에 놓인 쓰레기봉투 같아 보였다. 한동안 자주 놀러 가던 친구네 집 구석에 놓인 안마 의자도 그랬다. 쟤는 누가 대체 부른 손님이길래 저쪽에 힘주고 앉아 있는 것인가 생각했다.

어릴 때는 침대에서 잠을 자지 않았다. 매일 밤 하루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바닥에 이불을 까는 시간이 있었고, 하루는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었다. 아침엔 게으름을 뒤로하고 이불을 개는 시간이 있었다. 매일 아침 아버지는 창문을 열어 환기부터 시켰고,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쓸며 비질을 하면 나는 이불을 끌어당겨 온몸을 덮었다. 그러나 이불 속으로 새어 들어오는 찬 공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고, 결국은 억지로 잠이 깨어버려 늘 아쉬웠지만, 어쨌든 몸을 일으켜 이불을 개고는 했다. 덮고 자던 이불을 갠 뒤에 바닥에 깔고 자던 매트리스를 갰다.

덮고 자던 이불도 무거웠지만 바닥에 깔고 자는 매트리스는 훨씬 더 무겁고 두꺼워서 나는 매번 매트리스를 들어 올릴 때마다 레슬링 선수의 ‘빠떼루’ 자세를 따라 하곤 했다. 양팔로 이불을 껴안고 왼쪽으로 구를 듯이 아니면 오른쪽으로 구를 듯이 몸을 갸우뚱하다가 이불이 예상하지 못할 타이밍에 그것을 힘껏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장롱에 내던지듯이 올려놓았다. 아무튼 매일 아침 이토록 다사다난한 난리를 치르고 나면 방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나에겐 깨끗하게 비워진 그 모습이 아침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많이 흘러버렸고, 요즘은 예전처럼 쉽게 잠이 오는 시대가 아니다. 매일 밤 수많은 사람이 분주하게 잠을 쫓는다. 마치 늦은 밤 마지막 열차를 잡는 것처럼 잠에 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다. 편안한 침대와 편안한 베개와 숙면을 위한 ASMR, 심지어 약물 치료까지도, 수면을 위한 모든 것이 예전보다 훨씬 중요해졌다. 그리고 수면에 대한 것이라면 아주 작은 차이에도 민감해지게 되었다. 처음 침대를 고를 때 침대는 매트리스와 토퍼라는 생소한 단어들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알고 난 이후에는 침대 속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까지 알아야 했다. 푹신한 침대가 맞는 사람과 딱딱한 침대가 맞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봐야 했다. ‘잠깐,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니야?’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그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알아야 하는데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아 서둘러 침대를 주문했다. 나와 함께 일하는 팀원은 나와는 다르게 꼼꼼한 사람이라서 자신에게 맞는 베개를 찾기 위해 족히 열 개는 되는 베개를 구입했다고 했다. 그리고 아직도 맞는 베개를 찾지 못했다며 여러 베개의 종류와 특징에 대해 길게 이야기했다. 기술은 점차 발전하고 우리 몸은 그것에 맞게 점점 예민해진다. 그리고 점점 예민해질수록 점점 잠들기 어려워질 것이다. 잠을 그렇게까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지금보다는 더 쉽게 잠들었을지도 모른다. 집에 놓인 커다란 침대가 보기에 부담스러웠던 건 크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용되지 않고 자리를 차지하는 비경제적인 공간의 쓰임도 미움의 본체는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거실에는 세탁기가, 화장실에는 변기가, 청소기가 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것들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으니까. 커다란 침대나 꺼져 있는 텔레비전 그리고 커다란 안마 의자는 다른 큰 가구들과는 다르다. 좀더 작을 수도 있었지만 커져버린 것들이다. 좀더 가벼울 수 있었지만 마음껏 무거워진 것들이다. 그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믿는 것들이고, 실제 중요하기도 하지만 중요성보다는 중요하다고 믿는 마음이 더 큰 사물들이었다. 침대가 제공하는 숙면도, 티브이가 제공하는 몰입의 경험도, 안마 의자가 제공하는 휴식도 물론 모두 중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 사물들 사이엔 스스로 중요성을 마음껏 이용한 것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잠들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하는 사람들의 불안을 등에 업고, 맹신에 가까운 사람들의 믿음을 등에 업고 겁 없이 덩치를 키운 것들이 공간을 좁게 만든다. 내가 거북하게 느꼈던 것은 사물의 크기가 아닌 그것들의 야망이었다. 겁 없이 떵떵거리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물들의 그 당당함이 언짢은 것이었다. 어딜 감히!

난 겁 없는 덩어리들에게 너희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가만히 누워 있는 침대, 잠자고 있는 텔레비전, 혼자서 힘주고 있는 안마 의자를 보면 흔들고 발로 차서 깨운 다음에 어서 일어나서 일이라도 좀 하든지 뭐라도 하라고 재촉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척을 내도 스스로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나는 침대 아랫부분에 두꺼운 천을 깔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아래층 친구 집까지 질질 끌고 갔던 것이다. 친구 집은 평소에 비워져 있는 곳이다. 해외에 거주하는 그가 한국에 올 때만 잠시 숙소로 사용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없어 휑한 공간이 큰 덩어리 하나로 가득 채워진 것을 보고, 그래 너는 차라리 이곳에 잘 어울리는구나 생각했다. 그래 너 여기서 주인 행세해라. 그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 내 방을 되찾게 되었다. 침대가 놓여 있던 자리엔 빈 공간이 남았다. 그리고 아기 손가락처럼 두툼한 먼지들이 남아 뒹굴고 있었다. 이제 나에겐 아침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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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한승재―푸하하하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