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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규 — 백산필방
붓 파는 이들이 모여든 인사동 필방 골목. 이곳에 자리한 필방만 해도 삼십여 개다. 이중에서도 백산필방은 붓 만드는 공방을 갖춘 유일한 필방이다. 공간의 주인, 서울시 무형문화재 전상규 필장을 만났다. 붓을 처음 배운 열여섯 살 때부터 지금까지, 60년 긴 세월을 신나게 이야기하는 그에겐 붓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다. 즐거움을 동력 삼아 달려온 그에게서 떠나지 않는 단어는 ‘행복’이다.
주변에 필방이 정말 많아요. 여기가 인사동 필방 거리라면서요?
맞아요. 제가 인사동과 인연을 맺은 지는 올해로 55년째예요. 처음에 인사동에 올 때는 하얀 신발을 신고 다녔어요.
하얀 신발이라면… 고무신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맞아요. 하얀 고무신이요(웃음). 전 시골 사람이었어요. 제가 열여섯 때, 붓으로 유명한 전라도 광주 백운동(물통골)에서 아버지 친구분이자 그 당시 최고였던 박순 선생님이 기술을 전수해주셨어요. 다른 사람은 제자로 안 받으셨는데, 상규라면 한번 가르쳐보겠다고 하셨죠. 처음엔 선생님 작업 준비만 해드렸어요. 붓 공방에서 키우던 개랑 저 뒤에 앉아 있다가, 선생님과 함께 밥을 먹고 선생님께서 산책하러 나가시면 붓을 한번 만져보곤 했죠. 그때는 월급이라는 것도 없었어요.
오로지 붓 매기만 배우면서 스승님 댁에서 지내셨던 거군요.
네. 그렇게 배우다 선생님이 “너 이 정도면 이제 밥 벌어먹겠다.”며 나가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쯤 일본에서 사람들이 박순 선생님 소문을 듣고 붓을 사러 왔는데, 제가 만든 붓을 사 가더라고요. 그 일로 독립하는 데 큰 용기를 얻었어요.
우연히 찾아온 기회였네요. 독립해 붓을 만드시면서 어려움은 없으셨어요?
나와보니 붓 거래처를 몰라서 붓을 팔 수가 없었어요. 실수도 있었고요. 붓털 가장자리를 호라고 하는데, 이 부분이 매끈해야 해요. 그런데 호가 삐뚤삐뚤했던 거야.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알겠나 싶어 가위로 끝을 싹둑 잘라버렸어요.
어머, 원래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죠?
아이, 절대 안 되지(웃음). 인내심을 갖고 붓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나중엔 지인들이 서울에 붓도 대신 팔아주기도 하고, 붓 공장에서 직원으로 일하기도 했어요. 그 붓 공장 큰딸이 지금 제 아내를 소개해 줬죠.
아내분과 처음 만나셨을 때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더 들려주세요(웃음).
흰 고무신에 검은 가죽 잠바를 입고 선을 보러 갔어요. 붓을 만들다 보니 옷에 먼지가 굉장히 많이 붙어 있었고, 염소 털을 다루니 노린내도 나서 아내가 ‘이 사람은 아니다.’ 싶었나 봐요. 그런데 선이 잘 안 되니 지인들이 저녁마다 나를 놀리네. ‘그래, 그럼 내가 한 번만 더 본다.’는 마음에 다방에서 다시 만나서 대화를 했어요.
그때 아내분 마음이 바뀌었나요?
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했어요. 저는 형제가 일곱이고 붓의 전망은 어떠한지… 그런 이야기요. 그때 아내가 살짝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다음 날 저를 찾아와서는 부모님이 결혼 승낙을 안 해주시는데, 자기 혼자 결정하겠다는 거예요.
우와, 선생님과 결혼해야겠다고 결심이 서셨나 봐요.
내가 좀 야무졌나 봐(웃음). 얼마 뒤에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뵈러 갔고, 두 달 후에 결혼식을 올렸어요. 붓을 만드는 동시에 아내와 함께 농사지은 배추도 시장에 내다 팔면서 생계를 꾸려갔죠.
정말 고생하며 살아오셨군요…. 지금 공방이 있는 서울은 어떻게 오셨는지도 듣고 싶어요.
제 붓을 산 사람들이 누가 이 붓을 만들었나 하고 수소문을 했나 봐요. 서울에 있는 한 유명 필방에서 저를 찾아와 선금을 주고 붓을 만들게 했어요. 나중엔 서울로 올라오라고 해서 일을 시켰죠. 그렇게 붓을 열심히 만들며 자식들도 키우고, 우여곡절도 겪었어요. 결국 필방도 차리고, 서울시 무형문화재 백모필장도 됐고요. 호 ‘백산白山’도 그때쯤 지었죠.
‘백산’은 무슨 뜻인가요?
제가 자라고 붓을 배운 ‘백운동’에서 ‘백’을, 광주 무등산에서 ‘산’을 땄어요. 무등산은 퍽 복스럽거든요.
호를 딴 백산필방은 어떤 공간인지 소개해 주세요.
백산필방에는 다양한 붓과 재료, 공구를 전시하는 소규모 박물관이 있어요. 여기서는 붓 매기, 붓글씨를 체험할 수 있어요. 질 좋은 전통 붓도 판매하고 있죠. 필방 한쪽에는 제가 일하는 붓 공방도 있고요.
선생님께서 소개하시는 붓도 궁금해요.
예전에는 국민학교에서 서예 수업을 할 정도로 붓을 친밀하게 여겼어요. 지금은 컴퓨터로 글을 쓰고 볼펜과 샤프를 쓰는 시대이기 때문에 붓을 접할 기회가 적어요. 붓은 장인의 정성이 들어간 표현의 도구예요. 서예붓, 한글붓, 한문붓, 민화붓, 사군자붓, 민화붓, 선붓 등 다양한 전통 붓이 있어요.
누구나 인정하는 무형문화재가 되셨는데 여전히 바삐 활동하시는 것 같아요.
전통 붓을 알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일반인들에게 수업도 하고, 학교나 지방도 찾아가서 강의해요. 너무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저도 선생님처럼 오랫동안 즐겁게 일하고 싶어요. 60년 동안 어떤 마음으로 일하셨어요?
욕심을 갖지 않고 일했어요. 붓 매기는 백 번 넘게 손이 가는 작업이에요.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좋은 붓이 되지 못해요. 마음을 비우고 꾸준히 만들었죠. 그리고 제 붓을 쓰는 분들을 완벽히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있겠죠. 부족한 부분은 반드시 보완해야겠다는 자세로 늘 연구하며 지내고 있어요.
평생 한 가지 일만 해오시다가 이 분야 최고가 되셨어요. 꾸준히 일하고 싶거나, 전문가가 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으신 것이 있나요?
예전과 달리 전문가가 되는 것이 시간적으로나 방법적으로 쉬운 시대예요. 하지만 진정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투자되어야 하죠. 시간은 배신하지 않아요. 무언가에 마음이 있다면 다른 것과 병행해서라도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은 붓에 온 힘을 쏟으셨죠. 한계를 느끼셨던 적도 있었을 것 같아요.
사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요.
와, 정말요?
제자들이 저를 보고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우리 선생님은 늘 즐겁다는 거예요. 저는 항상 즐거워요. 어쩌다 몸이 안 좋아서 일을 쉬면 건강이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아요(웃음).
늘 즐겁게 일하시는 비결이 궁금해요. 제게도 알려주세요.
전상규 네. 잠깐 커피 한번 마실게요.
막내딸 (조심스레 입을 열며) 아빠의 인터뷰지만 제가 여기서 잠시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그럼요!
막내딸 아빠는 공방에 나와만 계셔도 행복하다는 말씀을 진짜 많이 하시거든요. 한 분이라도 만나서 대화하는 게 너무 행복하시대요. 제가 보기에는 붓에 대한 열정이 일을 지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항상 존경하는 사람으로 아빠를 말해요. 한 가지 일에 열정을 갖고 끝까지 그 길을 위해 노력하고 계시고, 전수 교육도 힘드실 것 같은데 늘 즐겁게 하세요.
열정이 대단하세요. 공방에서는 손님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나 봐요.
손님이 들어오시면 붓을 충분히 구경하시게 하고, 궁금한 거 있으면 뭐든 상담하시라고 말씀드리죠. 그리고 우리 전통 붓이 얼마나 좋은지 보여드려요. 그럼 손님들 얼굴이 확 펴져요(웃음). 여기서 손님들을 만날 때 제일 행복해요.
삶에 즐거움이 넘치셔요. 작업실 밖에서는 어떻게 지내시나요?
제자들과 종종 차를 마셔요. 제 붓을 쓰는 선생님들을 만나 깊은 이야기도 나누고요. 식사를 안 하고 왔다고 하시면 같이 밥도 먹으러 가요. 그런데 우리 에디터 선생님이 식사를 안 했다고 하니 자꾸 걱정이 되네요(웃음).
제 걱정은 마세요(웃음). 가족들과 시간도 자주 보내신다고요.
일요일마다 손자들, 사위들까지 전부 모여서 외식을 해요.
우와! 대가족 모임이에요.
사람은 그렇게 십 분이고 열 시간이고 행복하게 사는 거예요. 행복을 가꾸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항상 즐거워요.
붓 말고 다른 취미도 있으세요?
야구요. 퇴근하자마자 야구 보러 빨리 집에 가요. 이기면 잠이 빨리 오는데, 지면 잠이 덜 와요(웃음).
선생님이 마음을 크게 두고 계시는 전승 교육 이야기를 해볼게요. 어떤 마음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계세요?
요즘 인사동에 해외에서 저렴하게 만든 붓이 대량으로 들어오고 있어서 너무 안타까워요. 우리 전통 방식으로는 고급 재료로 완벽한 작품이 나올 때까지 정성을 다하는데 말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계속 전통 붓을 가르쳐야 하는지 회의감도 들었어요.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제가 아니면 이걸 전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술에 사명감을 갖고 교육을 하고 있어요. ‘우리 것’의 소중함을 최선을 다해 알리려고 해요.
제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도 들어보고 싶어요.
기술에 전념하면서 경제적으로 힘들었지만, 우리 것을 책임감 있게 지켜왔어요. 제자들이 우리 것을 계속 이어간다면 저는 더 바랄 것이 없어요.
여러 곳에서 강의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도 궁금해요.
제일 행복했던 시간은 중국, 일본 학생들이랑 함께 붓도 만들고 붓글씨도 썼던 일이에요. 그때 학생들에게 붓을 기증했는데, 나중에 저를 찾아와 너무 고맙다고 했죠. 행복했던 일이 너무 많아요. 오늘 찾아와 준 것도 행복했어요.
제가 만나 뵐 수 있어 행복했는걸요.
그럼 이제 저랑 같이 식사하러 가시죠. 지금 영업하는 곳이 어디더라(웃음)….
에디터 차의진
포토그래퍼 김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