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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리타 — 작가
말 없는 존재를 믿는 사람. 하늘을 보기 위해 바닥에 발을 딛는 사람. 리타는 마음의 중심에, 고독의 축대를 세워 자기 믿음으로 튼튼한 주변을 쌓아간다. 그래서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고 외롭지만 외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산책을 좋아하는 그는 스스로 찾은 행복의 한가운데에서 느긋이 걷고 있었다.
리타라는 이름이 참 예뻐요. 본명인가요?
리타는 오래전 인도 여행에서 얻은 이름이에요. 인도를 장기 여행하다가 우연히 북부 보드가야Bodhgayā라는 곳에 오래 머물게 되었어요. 애초에 염두에 둔 장소는 아니었지만, 특유의 분위기에 이끌려 떠나지 못하고 거기서 한동안 수행하며 지내기도 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마하보디 절이 있는 지역이었어요. 우연히 사찰과 사찰을 돌아다니며 머물다가 거기서 만난 스님이 불러주신 이름이죠.
여행을 오래 다니셨나봐요.
시작은 독일 유학이었어요. 제가 회화를 전공했거든요. 미술 공부를 하러 떠난 거였는데, 독일 유학 시절은 저의 방황기였어요. 혼란스러운 마음에 답을 찾고 싶어서 계속 여행을 다닌 것 같아요. 함께 공부하던 다른 학생들은 이미 유명한 작가들이 많았고 굉장히 치열하게 경쟁하는 환경이었거든요. 제가 그림을 왜 그리는지에 대한 고민을 처음 하기 시작했고요. 저 자신에게 되물어도 답이 없고 전혀 행복하지가 않았어요. 성공을 위해 유학을 온 건 맞지만 그 성공이 제가 바라던 행복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 행복은 뭘까, 찾고 싶은 마음으로 계속 떠돌아다녔어요.
그래서 찾았나요?
네. 살아가면서 행복의 의미는 계속 바뀌어 왔지만 그때 제 기준에서 행복이라고 믿는 가치를 찾았어요. 여행 중에 불우한 환경의 지역에 갈 때도 있었는데, 거기엔 비교 대상 없이 온전히 하루하루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사는 환경이 좋지 않아도 그 사람들은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었죠. 그 모습들이 당시 제가 원하는 행복의 삶이었어요. 인생의 방향을 그쪽으로 잡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곧바로 모든 걸 내려놓고 귀촌 생활을 시작했어요.
귀촌이요?
네(웃음). 지리산 아래 구례에 자리를 잡았어요. 거기서 4-5년 전도 감 농사를 짓고 살았어요. 당시에 주변에서 반발이 심했어요. 그동안 쌓아 올린 이력이 있는데 돌연 감 농사를 지으며 살겠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죠. 그래도 저는 그렇게 살았어야 했어요. 살면서 늘 인간보다는 광활한 자연에 위로를 더 많이 받았고, 그땐 사람과 가까워지기보다는 항상 저를 지켜주던 자연 곁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여행 중에 조금 더 확신했었고요. 큰 고민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살아보니 현실은 많이 다르더라고요.
어땠나요?
생각해보니 저는 그간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이상만으로 살았어요. 농사만 짓고 살았으니 당연히 가난이 따라왔죠. 그때 여긴 인도가 아니고 한국이라는 걸 실감했던 거예요. 생계를 유지해야 하니까, 마을의 울력을 나가기도 하고, 품앗이도 했어요. 봄에는 양봉장에 가서 일하고, 초여름에는 매실 밭에 가서 매실 수확하여 일당을 받고, 가을에는 감을 따서 겨울을 버틸 월동 준비를 하고요. 그런 식으로 살다 보니 몸이 많이 상했고, 아파도 병원비가 없다 보니 그때 깨달았어요. 이상만으로 살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한 거죠. 그래서 서울에 오게 된 거예요. 현실에서 다시 시작하자 하는 마음이었어요. 언젠가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겠지만 당장은 서울로 가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서울로 와서 정말 열심히 배우고 이것저것 일하기 시작했죠.
고민이 많았겠어요. 그때 독립 출판을 시작한 건가요?
맞아요. 진로에 관한 고민이 깊어지다가 산책 중에 어느 독립 서점에 들르게 됐는데 거기서 좋은 책을 많이 만났어요. 재미있는 책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기존에 제가 알던 책들과는 다른, 날것의 무엇이었어요. 쿵 하고 마음속에 뭔가가 남았죠. 나만의 색깔이 분명한 이런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글은 계속 쓰고 있던 거였고, 디자인 관련 일도 했으니 혼자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리고 출간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어요.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 확신해서 고민 없이 바로 진행했어요.
여행도 독립 출판도, 원하는 게 있으면 바로 실행하는 힘이 있네요.
일단은 저지르고 보는 성격인가 봐요(웃음). 그런 방향성을 믿는 편이기도 하고요. 주변 눈치도 잘 안 보고 제가 하고 싶은 걸 따라가요.
작가님이 쓰신 글에는 ‘혼자’라는 단어가 유독 많더라고요. 외국에서도 오랫동안 혼자 살았으니 외로웠던 시간이 길었을 것 같아요.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길었죠. 학창 시절부터 독립했고, 유학하면서도 혼자 지냈고요. 귀촌했을 땐 부모님 반대를 뒤로하고 떠나야 했으니 의지할 곳 없이 정말 완전한 혼자가 되었어요. 유학 시절에는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이 깊어서 혼자 술을 마시면서 시간을 낭비하기도 했고요. 내가 나를 챙기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오랫동안 나도 모르는 생존 본능이 생겼어요. 그런데 외로움은 너무 당연한 감정이잖아요. 사람이 극한의 외로움에 빠지면 두 가지 결과를 맞이 한대요. 못 견뎌서 삶을 포기하거나 그게 아니면 초인이 된다고 해요. 저는 이제 외로움이라는 감정만큼은 극복한 것 같아요. 너무나 익숙하기도 하고 인간은 원래 외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마음 깊이에서부터 받아들인 것 같아요.
작가님은 후자였군요.
그렇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혼자 잘 살아 있으니까요. 홀로 오래 지내면서 절대 고독이라는 걸 느꼈어요. 독일에서는 작은 방에 혼자 누워 내가 여기서 못 일어난다고 해도 아무도 나를 발견하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래서 방 안에 있지 않고 계속 여행을 떠났던 것 같아요. 혼자 있는 게 너무 익숙해진 저 자신이 서럽게 느껴져서 울기도 많이 울었고요. 지금은 그런 생각 자체가 저를 외롭게 만들었다는 걸 알아요. 외롭다는 감정이 다른 곳에서 오는 게 아니라, 그 외롭다는 생각 자체가 외로운 감정을 만드는 거죠. 그 원리를 깨달아서 그런지 많은 감정에서 해방되었어요. 요즘은 혼자 있는 게 좋아요. 외롭다는 생각이 없다는 게, 사는 걸 행복에 가깝게 만들죠. 본격적으로 독립 출판을 시작하고 글을 쓰면서부터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다는 걸 알았고요.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책을 기록하듯 출판했어요. 계속 글을 쓰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오나요?
인간에게는 다양한 면모가 함께 하는데 저는 어두운 마음이요. 이제 많이 극복했다고 해도 모두가 그렇듯 어둠은 늘 가지고 있잖아요. 저는 그 힘을 동력으로 쓰는 것 같아요. 저에게 글은 그 어둠을 풀어내는 기록 같은 거예요. 만약 인생이 즐겁기만 하면 글을 왜 쓰겠어요. 그저 맑은 현실에 살겠죠. 이런 면에서 창작의 모순이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제 삶의 목표가 행복이라고 말했잖아요. 저는 행복하기 위해서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글 쓰는 창작 활동은 내면의 어둠과 마음의 근원까지도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 작업이에요. 어떨 때는 작업을 하며 이렇게까지 내면을 파고 들어가 고통을 마주해야 하나 싶은 마음도 들죠. 책 한 권을 낼 때마다 4-5년은 늙는 것 같고요. 안 그런 작가들도 있지만 저는 글에 마음을 많이 쏟는 편이라서요.
산책하면서 글을 많이 쓰신다고 들었어요.
《사라지는 모든 계절》, 《쓸 수 없는 문장들》은 다 산책하면서 쓴 책이었어요. 《리타의 정원》도 시골 생활에서 느낀 것들을 기반으로 쓴 책이고요. 자연 속에 모든 글의 재료가 있어요. 원래 글을 쓰려고 산책한 건 아니었는데 반려견 밤을 만나면서 산책을 매일 서너 시간씩 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 시간에 글을 쓰게 되더라고요. 마음먹고 집에서 글을 쓰다 보면 오히려 더 안 써질 때가 많은데 모든 걸 내려놓고 산책하면 자연스레 글감이 찾아져요. 곳곳에 글의 소재가 널려있어요. 배우는 것이 많고요. 그리고 자연을 사람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가 어떤 상태에 있더라도 늘 제자리에 그대로 있어 주는 자연의 면모를 닮고 싶어요. 자연을 의지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이제는 사람보다 더 친구 같은 느낌이 들어요. 사회 속에서 애써 아등바등하기보다 편안하게, 이제는 이 평온함 속에서 보고 싶은 거 보고, 좋아하는 거 하고 그렇게 살고 싶다고 바라고 있어요.
《리타의 정원》에서의 문장이 떠올라요. ‘나는 단 한 번도 혼자인 적 없으며, 세상을 향해 하루도 망각하며 안부를 나누지 않은 적이 없다. 다만 나의 관심이 인간을 향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단락을 읽으면서 작가님이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어요(웃음).
아니요(웃음). 사람들을 싫어하지는 않아요. 다만 좋아하는 사람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요즘에는 동네 분들하고 많이 친해져서 저희 집 비밀번호도 공유하고 지내요(웃음). 다행이네요(웃음). 요즘 사람이 싫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아서, 작가님께도 묻고 싶었어요. 편견 때문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서로 상처도 많이 주고 그러면서 고통받잖아요. 그게 인간과 자연의 차이이기도 한데, 저는 그 모든 고통이 다 편견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편견이 없다면 사람이 사람을 공격할 일도 없겠죠. 자신이 본 세상이 전부라 생각해서 타인을 바라봤을 때 이해가 안 되고 ‘왜 저럴까.’, ‘이건 이렇게 해야 돼. 이게 맞아.’라고 말하면서 자기 기준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리타의 정원》에 자연에게 받은 것들에 감사하며, 비슷한 맥락의 메시지를 담기도 했어요.
책마다 주제가 다 다른데, 스스로 어떤 글을 쓰는 작가라고 생각하실까요?
계속 행복에 관해 이야기하게 되는데, 제가 글을 쓰는 모든 이유는 제 행복을 위해서예요. 저한테 글은 행복과 삶의 깨달음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 있는 도구예요. 그 과정에서 제가 찾은 걸 글을 통해 기록으로 남기고 있고요. 결국엔 삶과 글이 같이 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삶이란 건 말 그대로 여기, 삶 속에 있거든요. 글 속에 없어요. 이런 맥락에서 저 자신을 작가보다 수행자에 가까운 사람으로 여기기도 해요. 대단히 유명한 책을 내는 작가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거든요. 제가 사는 만큼, 제가 극복한 만큼 그걸 써서 내보이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글을 엄청 멋지게 잘 쓰진 않지만, 독자들이 봤을 때 자기 삶과 같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조금 더 크게 작용해서 공감해 주시는 거라 생각해요. 오래 곰곰 생각해 볼 수 있는 순간이 글에 있지 않을까요. 현실 속에서 답을 찾으려 무수히 노력했고 그렇게 어렵게 찾은 가치가 제 글 속에 있을 테니까요.
글에 진심이 담기는 거네요. 가장 기본이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작가님 글 속에 어두운 면이 더 과감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저 스스로 정말 힘들고 외로운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한편으론 그걸 자랑스럽게 느낄 때가 있어요. 삶을 살아가는 힘이 거기에 있으니까요. 바닥에요. 심지어 제 글을 봐주시는 분들이 저를 되게 연약하고 매일 우는, 그런 사람으로 보실 수도 있는데요(웃음). 실제로 저는 괜찮아요. 바닥에서 하늘을 보는 삶을 살고 있어요. 위에서 바라보면 바닥만 보이잖아요. 오히려 바닥에 있으니 괜찮은 거예요. 사실 아무것도 없거든요. 아무것도 아니란 걸 알아서 오히려 살 만해져요. 그래서 항상 넘어지는 글을 쓰고 싶어요. 같이 넘어지는 글이요. 누군가를 위로하려고 글을 쓰는 건 아니지만 함께 슬퍼하기만 해도 위로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힘들다고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면 ‘이렇게 하면 되잖아.’라고 해결책을 던져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무것도 위로가 되지 않아요. 그건 공감도, 위로의 방식도 아니기 때문이죠. 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힘들어서 제 글을 찾는 순간이 오면, 그 앞에서 조용히 넘어지고 싶어요. 그렇게 글로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면 좋겠어요.
누군가에게 건네듯 글을 쓰고 있네요. 곧 편지 형식의 책을 낼 계획이 있다고 들었어요.
지금 하고 있는 책 작업 끝나면 독자들과 함께 책을 만들고 싶어요. 그동안 많은 북 토크를 진행하면서 받은 질문이 많고 제가 답해드린 것도 참 많은데, 그런 내용을 묶어서 독자분들께 건네는 편지글이 담긴 책을 쓰고 싶어요. 북 토크에서 만나서 책 얘기보다 거의 사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데, 평소에 저는 말을 잘 안 하는 편인데도 그날만큼은 마음을 다 내려놓아요. 늘 감사함을 마음에 담고 있어요. 가장 큰 힘이 되어주신 분들이 첫 책부터 지금까지 만나주시고 있죠. 언젠가 보답하는 책을 한 권 쓰고 싶어요. 대화의 방식도 좋고, 함께 글을 엮어도 좋고, 편지 형식으로도 좋고요.
벌써 마지막 질문이에요. 요즘 새롭게 생긴 고민이 있나요?
새로 생긴 관심사가 있어요. 경제적인 부분을 늘 고민해요. 어떻게 삶을 지속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누구나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는 현실적인 고민을 하지 않고 너무 이상만을 추구하며 살았는데, 그러다 보니 아프고, 나이가 들어가며 노후 걱정도 되고, 안정적인 삶을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게 되죠. 이런 과정에서 지금까지 염두에 둔 적 없는 것, 모르는 영역인 경제에 대한 기사도 챙겨보고 책도 관심을 갖고 보게 되고요. 이것 또한 어쩌면 그동안 제가 가지고 있던 협소한 사고이고 편견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제적인 이야기나 삶, 그러니까 돈을 버는 사람들의 마인드는 저와 거리가 멀다고 느꼈거든요. 그런데 실상, 그들은 남들보다 더 착실하게, 열심히 살고 있었어요. 그러기까지 누구보다도 엄청난 목표와 정신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죠. 저도 이상만을 가지고 행복을 위해 살던 시절이 있었지만, 한쪽으로 치우친 삶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행복은 결코 현실을 등지며 얻어낼 수 없어요. 행복을 만들어 가기 위한 현실의 토대를 쌓아야 하는 거예요. 그 토대는 피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닌, 이곳 현실의 중심에서 만들어가야 해요. 늘 자연 가까이 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순간을 위해 스스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좋아하는 것을 계속 지속하기 위해 어떻게 그것을 유지할 수 있을까 떠올려요. 이상과 현실을 균형 있게 동시에 살아내는 삶을 바라요.
에디터 김지수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