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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책과 영화는 모두 프랑스에서 왔다. 그리고 제목에 둘 다 ‘아침’이 들어간다.
4월과 5월 그리고 6월은 한 해 중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하늘은 공들여 닦은 듯 깨끗하게 푸르고, 날마다 다른 모양의 구름이 눈을 즐겁게 한다. 싱그러운 연둣빛이 도는 올해의 새 잎사귀들이 따뜻한 바람에 부드럽게 흩날린다. 추위는 완전히 끝났으니 안심해도 좋다. 한낮의 햇살은 따끔거리지만 괴로울 정도로 덥지는 않다. 아직 성가신 모기가 출몰하기 전이다. 옷차림만큼이나 마음도 가볍다. 목적지를 향해 종종걸음을 치던 사람들의 걷는 속도가 느려지고, 벤치에 앉은 이들의 모습도 자주 보인다.
이 좋은 계절이 다 가기 전에 한 점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실컷 즐겨야 한다. 이때의 호사 중의 호사는 휴일에 공원의 나무 아래 앉거나 누워서 책을 읽는 일이다. 바람은 목덜미를 시원하게 쓰다듬으며 지나가고, 코로 들이쉬는 공기는 막 포장을 뜯은 듯 신선하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적절한 배경음처럼 멀찍이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나뭇가지가 흔들릴 때마다 햇살은 드러난 피부 위에 잎 모양으로 내렸다가 떠나기를 반복한다. 남편은 옆자리에 앉아서 (늘 그렇듯) 꾸벅꾸벅 졸고 있다. 나는 행복이라는 모호한 감정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체감한다.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내 인생, 아무래도 복이 터진 것 같다. 그럴 때, 봄날의 나무 아래에서 읽기 좋은 책은 어떤 책일까? 너무 무거워서 가지고 나가거나 들고 읽기 힘들지 않은 책, 사락사락 책장 넘기기가 편한 책, 읽다가 살짝 졸아도 괜찮은 책(괜찮다고 말해주는 책), 봄의 기분을 해치지 않는 책이 좋을 것이다. 그리하여 《사피엔스》나 《코스모스》(우리 집에 있는 가장 두꺼운 책들)는 안 된다. 그럴 때는 이런 책이 좋을 것이다. 필리프 들레름의 에세이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 같은.
이 얼마나… 에세이스러운 제목인가. 왠지 심통이 난다. 두께는 시집처럼 얇고, 표지에는 귀여운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인생의 껍질을 핥는,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무책임한 낙관주의를 강요하는 낭만적이기 짝이 없는 책이 아닐까 걱정스럽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상 알맹이가 없는 예쁜 단어들로 가득한 책은 아닐지 의심스럽다. 나는 그런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다른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한참 생각하다가 다시 읽어본다. 알 것 같은데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저자 필리프 들레름은 여러 가지 일에 대해 쓴다.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 완두콩 깍지를 까는 일, 첫 맥주 한 모금, 호주머니 속 작은 칼, 스노글로브, 일요일 저녁, 아침 식사 때 읽는 조간신문……. 그는 이렇게 시시콜콜한 것들에 대해서 쓴다. 그리고 행복은 시시콜콜하기 짝이 없는 것들과 아무래도 좋은 것들에 있다. 애써 구하지 않은 행복, 작은 것들에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다 보니 느닷없이 나타나 수줍게 등을 두드리는 어린 시절의 친구처럼 찾아오는 행복이 거기에 있다.
사실 인생이란 그런 것들이 전부 아닌가? 아, 물론 아니지. 괴로운 것들은 그 아래에서 넘실거리지. 이를테면 아침 일찍 화창한 공기 속을 산책하는 도중에 문득 마음을 어지럽히는 질문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지금 걱정해 봤자 소용도 없고 내가 걱정한다고 해서 달라질 일도 없는 일들이. 나는 내 마음이 어두운 얼룩으로 천천히 물드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만 있다. 세상은 이렇게 아름답고 나는 이 아침에 이 아름다운 세상을 걸을 정도로 운이 좋은 사람인데도 말이다. 이 무슨 바보 같은 짓일까. 그러나 다행히도 너무 많은 것들이 나를 손짓해 부르고 있다. 세상은 내 시선을 잡아끌고, 생각을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하며, 귀를 기울이고, 냄새를 맡게 한다. 때로는 손으로 쓸어보고, 발로 디뎌보게 한다. 생각은 좀처럼 이어지지 않는다. 산만하다. 집중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분이 상쾌하다. 왜지?
나는 집중이라는 것에 대해 달리 생각해 본다. 사실상 집중이란 현재와 관계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주위에 있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아닐까? 그래, 그렇기 때문에 상쾌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바깥에서 책을 읽을 땐 책에 오래 집중할 수 없다. 자꾸만 책장에서 고개를 들게 된다. 그 느낌이 좋다. 필리프 들레름이 쓴 것처럼 자세를 이렇게 바꿨다가 저렇게 바꿨다가 한다. 이런 것이 ‘눈이 아닌 몸으로 책을 읽는’ 것이다.
프랑스의 여성 감독인 미아 한센러브의 영화를 좋아한다. 지금껏 그는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을 소재로 조용하고 야심 없는 영화를 고집스럽게 만들어 왔다. 마치 이 세상의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 같은 사람들과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그의 최신작 〈어느 멋진 아침〉(2022)의 주인공은 산드라다. 산드라는 통역사로 일하며 홀로 어린 딸을 키우고 있다. 어느 날 아이의 학교 앞에서 옛 친구 클레망을 만나고, 둘은 곧 사랑에 빠진다. 문제는 클레망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이다. 산드라는 클레망을 사랑하면서도 불륜이라는 관계에 불안을 느끼고 괴로워한다. 동시에 산드라의 아버지는 희귀병에 걸려 기억과 시력을 잃고 혼자서는 생활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 온 집 안이 책으로 가득할 정도로 지적이던 아버지의 병든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 산드라는 괴로워하면서도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기로 결심한다.
사랑의 열병에 들떠 힘들어하는 동시에 아버지를 돌보고 딸을 키우고 일을 하고 중요한 결정들을 내리느라 쉴 새 없이 바쁜 산드라. 미아 한센러브의 영화 속 여자들이 다들 그러하듯이 산드라의 인생도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매일이다. 끝내 요양원에 모신 아버지를 면회하던 산드라는 울음을 터뜨리며 그 자리를 피한다.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인생은 왜 이렇게 잔인한가? 눈물을 그치지 못하던 그는 클레망 그리고 딸과 함께 언덕 위로 올라가 멋진 경치를 감상하며 휴일의 좋은 날씨를 만끽한다. 언제 그렇게 슬퍼했냐는 듯 산드라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번지며 영화는 끝난다.
미아 한센러브의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의 변화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쉽게 변하지도 않고, 맞서 싸우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달아나지도 않는다. 대신 그들은 일어나는 일들을 그저 받아들인다. 어쩔 수 없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에 받아들인다. 그런 그들의 곁에 아름다운 세상이 수줍게, 그리고 당당하게 서 있다. 언제나 그렇다. 행복하지만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고 불행하지만 불행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젊음과 늙음이 함께 있고, 불안과 희망이 함께 있고, 사랑과 미움이 함께 있다. 인생은 잔인하지만 세상은 아름답고, 세상은 잔인하지만 인생은 아름답다.
아침 일찍 숲길을 따라 걷는다. 걷다 보면 생각은 자꾸 끊어진다. 어제는 없던 새로운 싹과 더 크게 벌린 꽃봉오리에 시선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까마귀 소리를 들으면서 지난 교토 여행을 떠올리다가,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앉은 까치의 윤기 흐르는 깃털 색에 감탄한다. 그 자리에 서서 까치의 부리를 가만히 지켜본다. 까치는 빠르게 자리를 뜬다.
좀 전까지 고민하던 문제를 다시 떠올리려 해본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머그잔 바닥에 남은 커피의 앙금처럼 어쩐지 마음의 무게를 늘리는 문제들. 그런 문제들은 어디로 가지 않는다. 다만 그런 문제들이 있어도 나는 지금 이 아침의 파란 하늘과 연두색의 싱싱한 잎들과 제 할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새들에 눈과 귀와 마음을 빼앗길 수 있다. 그것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 현재에 머문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을 뜻하는 게 아닐까?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이란 이런 게 아닐까?
글 한수희
일러스트 점선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