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이곳 제주에서

이곳 제주에서

제주에 산 지 삼 개월이 되었다. 산과 바다 가까이에서 살고 싶어서, 제주만이 가지고 있는 자연환경을 느끼고 싶어서 어느 날 불쑥 마음을 먹고 제주에 내려왔다. 서울에서만 자란 나름 ‘도시여자’였던 내게 제주, 제주에서도 제법 시골에서의 삶이 어떤지 외롭지는 않은지 불편하지는 않은지 그 삶이 좋은지에 대한 질문을 가끔 받았다. 관광지로서는 유명하지만 일상은 흘러가야기에 매일이 단조롭게 반복되고, 도시에서의 삶보다는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확실히 불편하지만, 나는 ‘대체로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가족이 함께하는 순간들이 있다. 지금 우리 가족은 아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이곳 제주에서.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5년 전 즈음일거다. 우리가 제주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을 한 것이. 맞벌이 부부로, 북적이는 홍대 주변에 신혼 살림을 차리고 시간이 날 때면 캠핑을 가거나 여행을 갔다. 도시에서만 자랐지만 언젠가는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은 채 그렇게 지냈다. 매월 나오는 일정한 수입에 매여 지내다 보니 어느덧 아이가 생겼고,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 있었다.
로망처럼 품어온 그 생각을 진지하게 고민한 건 아이가 두 살이던 늦여름, 제주로 여행갔을 때였다. 우리가 아무리 아이에게 자연을 접하게 해주고 싶다 한들, 도시에서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공원에 데리고 가거나, 날이 좋은 주말엔 숲으로 캠핑을 갔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백화점이나 키즈카페에 가서 시간을 때웠고, 다녀오면 지치곤 했다. 제주에서 지내는 일주일 동안, 아이는 어느 때보다 밝고 즐거워했다. 모래 위를 총총 거닐던 아이의 맨발, 조개와 돌멩이를 주워 만지작거리던 아이의 손, 햇빛을 받고 그을린 얼굴로 밝게 웃는 얼굴들이 나의 생각을 두드렸다.아마 이런 생각을 한 것 같다. 내가, 그리고 우리 가족이 언제 제일 행복한지에 대해.돈이 많고 풍요로운 삶도 가끔은 부러웠다. 젊을 때 고생해서 나이 들어서 편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은 수도 없이 들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지금’이 중요했다. 지금 함께 있는 순간들,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어릴 때 엄마,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하는 지금, 어쩌면 젊고 건강한 시절의 나와 남편 그리고 우리 아이 시호가 하하호호 바보같이 웃으면서 놀 수 있는 지금 말이다.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니, 5년 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것들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게 됐다. 일단 집을 연세로구했다. 일 년을 살아보고 아니면 다시 올라오면 된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가고 싶었다. IT업계에서 오랫동안 디자이너로 일했던 남편은 제주에 내려가서 하고 싶던 그림을 그리고, 동화책도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동안 몇 번의 이사를 경험했는데도 섬으로의 이사는 많은 감정이 포개졌다. 설레고 불안했다. 두렵고 기대됐다.남편은 차와 짐을 가지고 배를 타고 내려오기로 하고, 나는 아이와 반려견 러스티를 데리고 제주행에 올랐다. 버스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마침내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나는 시호에게 말했다.“우리는 잘 지낼거야. 행복할거야”라고.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시호가 똑같이 말을 한다. 우리는 택시 창문을 열고 창밖으로 다시 크게 합창했다. 그건 우리의 주문이기도 했고, 나와의 다짐이기도
했다.

이사 오던 날, 담벼락 사이로 이웃집 할머니와 남편이 나눈 첫 대화였다. 제주도 사투리가 영어처럼 반쯤 알아들을 듯 말 듯 들렸다. 사실 섬으로 올 때 걱정하던 것 중 하나는 섬사람들의 텃세였다. 섬사람들은 마음을 잘 열지 않는다는 것. 인사하는 데만 일 년이 걸렸다는 말들. 할아버지 할머니들만 사시는 골목에, 서울에서 온 가족이 이사 오니 한 분 두 분 구경을 오셨다. 앞집 할머니는 시호를 보시더니, 마당에 있는 귤을 까서주신다. 

뒷집 할아버지는 감나무에서 감을 따 우리집 돌담에 올려 놓으신다. 옆집 할머니는 몇 주는 두고두고 먹을 양의 귤을 한가득 가지고 오셔서 우리집 거실에 놓고 가신다. 이사를 하고 며칠 후, 시루떡을 돌릴 때도 이웃분들은 반갑게 맞아주시며 시호 손에 용돈도, 귤도 쥐어주셨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이웃들을 만나도 인사도 잘 하지 않는 요즘인데, 골목길에서 마주치면 “어디 가? 몇 살?”, 말이라도 한 번 더 걸어주시니, 낯선 시작을 하는 데 큰 힘이 돼 감사했고, 하르방 할망들이 이웃이라 든든했다.

낡고 오래된 주택을 깨끗이 닦고, 짐을 풀고 정리를 했다. 난생 처음 주택에 살아보는 나한테는 거실에 있는 화목난로와 마당이 그렇게 신선할 수가 없었다. 춥고 적당히 불편하면서도 밤에는 나무를 때는 생활이라니. 가끔은 캠핑하던 때의 기분이 들었다. 숲에서 캠핑을 하는 것처럼 다양한 벌레가 집에서 나왔고, 바깥 바람이 집 안으로 솔솔 불어왔다. 마당에는 유난히 잡초와 식물이 많아 새들의 소리를 쉽사리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해가 쨍할 때면 부지런히 빨래를 돌려 탁탁 털어 햇빛에 말렸다. 바삭하게 마른 옷가지들을 개키며 어느덧 주택생활을 좋아하게 됐다.

우리의 일상은 매일 비슷하게 흘러간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난로부터 틀고 난로 옆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는다. 시호는 어린이집에 가고, 그 시간 동안 나와 남편은 고객 응대도 하고, 택배 포장도 하고, 상품 기획도 한다. 남편은 그림을 그리고, 나는 글을 쓰기도 한다. 늦은 오후, 아이가 하원을 하면 날씨가 허락하는 한 바다에 간다. 어느새 시호는 바다에 가면 스스로 양말을 벗고 맨발로 모래 위를 걸었다. 모래를 주워 몰려오는 파도에 ‘꺅’ 소리를 내며 뿌려 보기도 한다. 시호와 모래놀이를 하고, 러스티와 뛰놀다 보면 해가 지는데, 그 모습을 다 같이 바라보곤 했다. 

아이는 더 놀고 싶은데 해님이 자러 간다고 조금 속상해하면서도, 우리가 하는 말을 따라서 “와, 되게 예쁘다.”라고 말한다.
“엄마, 저 구름은 어떤 모양이게?” 시호가 묻는다.
“글쎄, 뭘까? 고래 같기도 하고, 수염 같기도 한데?”
“저거는 아빠 토끼고, 저거는 엄마 토끼고, 조기는 시호 토끼고,
그리고 옆에는 러띠 토끼야.”
발갛게 물든 하늘을 보면서 시호와 나눈 말들을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었다. 우리에겐 아직은 집도, 그리고 도시에서처럼 보장받는 수입도 없지만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행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이것 때문에 무작정 제주에 내려왔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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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백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