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는 길, 혼자 걷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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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트립 투 이탈리아>, <다가오는 것들>

Walk Together, Walk Alone

함께 걷는 길, 혼자 걷는 길

한때 나는 여행은 혼자 해야 제맛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혼자서 길을 떠나볼 필요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싫다. 혼자 하는 여행은 맥 빠지고 지치고 쓸쓸한 일의 연속이다. 이제는 마음이 잘 맞는 동행과 수다를 떨고 함께 감탄하고 함께 화를 내고 함께 당황하고 함께 즐거워하는 그런 여행이 좋다. 그런데 내가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때로 두려울 때가 있다.

영국 배우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은 친구다. 중년의 두 남자는 함께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옵저버>지에서 그들에게 6일 동안 영국 시인 바이런과 셸리가 여행했던 오래 전의 코스대로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여섯 군데의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내용의 기사를 청탁했기 때문이다. 마이클 윈터바텀의 영화 <트립 투 이탈리아>의 줄거리다. 

조건은 심플하다. 이탈리아에서의 여섯 끼. 비용은 모두 회사에서 부담하고, 어디에 가서 뭘 하든 자유. 오픈카를 몰고 구불구불한 언덕길과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달리면서 이탈리아산 와인을 마시고 끝내주는 파스타를 먹고 요트를 탄다. 한껏 게으름을 피우며 시시껄렁한 잡담을 한다. 

내 인생에도 이런 행운이 찾아와준다면 좋겠다. 굳이 이탈리아일 필요도 없이 강원도나 전라도라도 감사할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 인생에 한 번쯤은 내 돈 들이지 않는 여행을 해보는 것도 근사한 일이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간사해서, 내 돈이 들어가지 않으면 모든 것을 낭비해도 좋을 것처럼 여겨진다. 돈뿐만 아니라 이 시간과 이 기회마저도. 주머니 사정에 연연하며 매일 밤 가계부를 쓰고, 일정에 쫓기고, 조금이라도 긴장의 끈을 놓을라치면 ‘얼마나 힘들게 떠난 여행인데!’ 같은 내면의 목소리가 철퇴처럼 내리치는 가난한 여행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유로운 기분이다. 

생각해보면 지금껏 나는 내 돈 한 푼 안 들인 여행을 세 번쯤 해보았다.(사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세 번 모두 일과 관련된 여행이었고 혼자는 아니었다. 이게 나에게 주어진 단 한 번뿐인 기회라고 생각하면 그런 식으로 낭비할 수는 없었을 텐데, 나는 파리에서 에펠탑 근처도 가보지 않았다. 루브르도, 노트르담도 그냥 지나쳤다. 내가 한 일은 그저 숙소의 공짜 조식을 뿌리치고 동네 빵집과 카페에서 에스프레소와 크루아상을 먹은 것, 아무 술집에나 들어가 술을 마시며 노닥거린 것, 파리의 거리에 담배꽁초를 흩뿌리고 온 것뿐이었다. 뉴욕의 타임스퀘어에서 하룻밤을 체류할 때는 초밥을 먹고 옷 가게에서 쇼핑이나 하며 보냈다. 도미니카공화국의 리조트에서는 거의 며칠을 침대에 누워 빈둥대기만 했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는 전시는 보지 않고 잔디밭 위에 누워 낮잠을 자고 맥주를 마셨다. 홋카이도의 눈 내리는 밤에는 친구들과 숙소에서 인간 탑 쌓기 놀이나 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때 내게 가장 짜릿했던 건 이 모든 것이 ‘타의’라는 점이었다. 나는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이곳에 왔다. 그러므로 정해진 일정만 완수하면 선택해야 할 것, 책임져야 할 것, 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 인생에서는 타의라는 부분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지금 내가 수습해야 하는 일들은 모두 내가 벌인 일들이다. 어느 누구도 내게 이러라고 등 떠밀지 않았다. 모든 게 내 ‘자의’였다. 그래서 가끔씩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아도 될 때면, 내 선택이 불러올 결과들을 예상하며 머리를 쥐어짜야 되지 않아도 될 때면, 마음이 너무 편해진다. 하라는 대로 하고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싶다. 

아무튼 같은 이유 때문인지, 나보다 가진 게 많아서인지, 스티브와 롭은 이 시간을 뽑아 쓰는 휴지처럼 마구 낭비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떠오르는 것은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시골길에 오버랩되는 두 아저씨의 성대모사뿐이다. 두 사람은 쉴 새 없이 성대모사 퍼레이드를 펼친다. 멋진 레스토랑의 환상적인 요리 앞에서도 누가 흉내를 잘 내나 뽐내기에 여념이 없다. 마이클 케인부터 휴 그랜트, 알 파치노, 클린트 이스트우드, 앤서니 홉킨스까지. 가끔은 도가 지나쳐 주접으로 보이기도 한다. 두 아저씨가 주접 떠는 걸 언제까지 봐주고 있어야 하나 한숨이 나올 때도 있다. 그런데 이 아저씨들은 왜 이렇게 주접을 떠는 거지? 

주접을 떨다가 아주 가끔 그들은 바이런과 셸리의 시와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그들의 본심을 이야기한다. 어린아이를 키우느라 바쁜 롭의 아내는 남편의 전화를 귀찮아한다. 롭은 곧 미국 영화에 출연하느라 영국을 떠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여행 도중에 영국 여자와 충동적인 하룻밤을 보냈고, 그 사실에 죄책감을 느낀다. 오래전 이혼한 스티브는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느낀다. 여행 도중에도 아들과 계속해서 통화를 시도하던 그는 결국 아들을 이탈리아로 불러오고, 아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 곧 아들 집 근처로 이사할 거라고 말한다.

많은 영화에 출연하고 많은 쇼를 진행하며 안정적인 연예인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은 실은, 이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와서 그럴 기회가 올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다. 박수받는 것이 욕먹는 것보다 더 지겹기도 하다. 어쩌면 그들은 남들을 속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며 그들이 이룬 것들 역시 다 사기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이 중년 남자들은 자신들에게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도 조금씩 깨닫고 있다. 화산 폭발로 그대로 화석이 되어버린 폼페이 유적지의 시체 앞에서 그들은 젊은이들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비애를 느낀다. 요즘은 어딜 가도 여자들이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들은 권태의 언저리에 있으며, 그것은 아주 오래 산 남자라면 누구나 겪는 단계다. 어쩌면 그들은 지금껏 이룬 모든 것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그들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지도 모르고 얼마 후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것이다. 아니, 그들 존재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그런 본능적이고 근원적인 불안감을 어떻게 해소하겠는가. 농담과 주접 말고는. 그것 말고 이 거대한 무의미를 견딜 방법이 딱히 뭐가 있겠는가. 이 나이 들어 진지해지는 건, 눈물이라도 질질 짜는 건 꼴사나우니까 그저 우스갯소리에 실어 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주접은 혼자서는 떨 수가 없다. 내 주접에 맞장구를 쳐줄, 혹은 도전장을 내밀어줄 동행이 필요하다. 혼자 침대 앞 벽이나 테이블 너머의 텅 빈 의자를 바라보며 주접을 떠는 것은 정신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니까.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수록 나는 혼자서는 여행을 못 하는 사람이 돼버렸고 혼자서는 못 사는 사람이 돼버렸다. 내 주접을 받아줄 사람이 없는 시간을 내가 견딜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점점 나약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나를 떠나가고 혼자가 될 순간이 두렵다. 나는 혼자 여행하는 법을, 혼자 사는 법을, 혼자 걷는 법을 잊었다.

미아 한센 러브의 <다가오는 것들>은 내게 2016년의 최고의 영화였다. 나는 원래 예술영화를 즐겨 보는 사람도 아니었고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이유도 <빽투더퓨쳐>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이것도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까.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탈리라는 중년의 여성이다. 그녀는 고등학교에서 철학교사로 일한다. 그녀에게는 같은 직업을 가진 남편이 있고, 이제 성인이 된 두 자녀가 있다. 좋아하는 철학책들을 책장 가득 꽂아둔 아늑하고 아름다운 아파트도 있고, 휴가철이면 놀러 가는 해변의 별장도 있다. 그녀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책을 읽고 쓰며 늙어가는 삶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런 인생에도 고통은 있다. 정서불안에 시달리는 나탈리의 노모는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심하게 의존한다. 새벽에도 죽을 것 같다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깨어나서는 결국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탈리는 어둠 속에서 가족들을 깨울까 불도 켜지 못하고 더듬거리며 아침을 먹고는 출근한다. 평생 자신만 사랑할 줄 알았던 남편은 어느 날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다고 고백하더니 집을 나가버린다.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어 요양원에 모신 어머니는 곧 돌아가시고 장례식을 치른 나탈리는 버스에 앉아 펑펑 운다. 그러다가 창 너머로 젊은 여자와 손을 잡고 걷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발견한 그녀는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다. 

어쩌면 상실은 자유의 이면일 수도 있다. 나탈리는 남편도 잃고 엄마도 잃었다. 아이들은 품을 떠났다. 이제 그녀는 혼자다. 슬프고 황망하고 허탈한 일이지만, 동시에 나탈리는 단 한 순간도 멍하니 앉아 있을 틈 없이 종종걸음 치며 지키려 노력했던 그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되찾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해. 애들은 독립했고 남편도, 엄마도 떠났어. 나는 자유를 되찾은 거야.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온전한 자유. 놀라운 일이야. 이건 낙원이잖아!” 

나탈리는 자신의 수업 덕분에 철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제자 파비엥이 산골의 허름한 시골집에 꾸린 작은 공동체에 초대받는다. 여기에는 파비엥과 함께 책을 쓰며 살아가는 독일인 친구들이 있다. 세상은 점점 나빠지고 우리에게는 혁명이 필요하다는 이 젊은이들 앞에서 나탈리는 쓴웃음을 짓는다. 그녀는 급진적이기에는 너무 나이를 먹었다. 그녀도 한때는 공산당 유인물을 뿌리던 열혈 학생이었지만 그녀가 하루하루 감당해야 할 것은 결국 그녀의 생활뿐이다. 혁명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그녀의 평범한 생활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감당하기에도 벅차다. 

“남편하고 이혼할 거야. 25년을 함께했는데 새 애인을 만났대. 실은 나도 각오하고 있었어. 괜찮아. 잘 받아들이고 있어. 지적으로 충만하게 살잖아. 그거면 족히 행복해.” 

앞으로 그녀는 이 삶을 혼자서 걷게 될 것이다. 사실 누구의 삶이건 혼자서 걷는 길이다. 그것을 모르거나, 또는 잊어버릴 때 우리는 함께 걷고 있던 (혹은 그랬으리라 착각했던) 이를 원망하거나 그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그러나 또 우리는 완전히 혼자는 아니다. 크리스마스 저녁, 방에서는 나탈리가 손자를 안고 다정히 노래를 불러주고 그녀의 아이들은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아파트의 따뜻한 풍경이 오랫동안 보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님을, 이 삶이 무채색이 아님을, 아무 의미 없는 것이 아님을,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따뜻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나탈리가 자신의 삶에 다가오는 것들에서 피하거나 달아나려 하지 않은 덕분에, 모든 것을 담담히 받아들인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 잘 상상이 되지 않을 때면, 나는 24살의 어느 순간을 떠올린다. 그때 나는 인도에서 한 달간 함께하던 동행을 집으로 보내고 혼자가 되어 한 달간의 남은 여정을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나를 태운 기차는 남인도의 끝에서 동인도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울적하고 쓸쓸하고 두려웠다. 도시를 떠난 기차가 시골로 접어들었다. 창밖으로 붉고 너른 땅과 그 위로 점점이 늘어선 푸른 나무들이 보였다. 해야 할 일도 없고 이야기를 나눌 상대도 없었다. 창밖을 계속 쳐다보고 있으려니 풍경이 낯설고도 편안하게 느껴져서 나 자신이 조금씩 그 풍경 속으로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뭔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랐다. 슬프고도 행복한, 이상한 느낌이었다. 나는 익숙한 모든 것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완벽하게 혼자였지만, 반대로 나 자신에게는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영원히 혼자라도 괜찮을 것 같은, 어쩌면 영원히 혼자일 것을 알아차린 느낌이었다. 그게 우리 모두의 운명임을 비로소 받아들인 사람이 느낄 만한 홀가분한 감정이었다. 버스 안에서 울다가 웃었던 나탈리가 느낀 것도 바로 그런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건 암흑뿐이다.
자연은 내게 회의와 불안의 씨만 제공한다.
내가 놓여있는 상태에서 내가 뭔지,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나는
나의 신분도 의무도 모른다.
내 마음은 진정한 선을…
그것을 따르기를 온전히 바란다.
영원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비싸지 않다. 

– 블레즈 파스칼, 《팡세》, <다가오는 것들> 나탈리의 대사 중에서

트립 투 이탈리아 The Trip to Italy
마이클 윈터바텀ㅣ드라마ㅣ영국ㅣ108분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은 한 매거진의 제안으로 6일간의 만찬을 위해 이탈리아 여행을 함께 떠나게 된다. 피에몬테에서 로마, 카프리까지. 여행길을 지나며 그들이 지금까지 지나쳐버린 순간과 날들을 되돌아보는 이야기는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다가오는 것들 Things to Come
미아 한센 러브ㅣ드라마ㅣ프랑스ㅣ102분

나탈리는 두 아이를 키우고 남편을 지지하는 평범한 여자다. 파리의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며 평범하지만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갑작스러운 고백과 함께 생활에 작은 균열이 나기 시작한다. 그녀에게 다가오는 것들, 그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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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수희

일러스트 이영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