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모든 것

김규림·서원 — 뉴믹스커피

믹스 커피 한 잔에 무엇이 섞여 있는지 아시는가. 곱게 갈린 원두 가루와 설탕, 프림, 생각보다 적은 물은 물론이고 컵을 비울 잠깐의 여유가 들어 있다. ‘뉴믹스커피Newmixcoffee’는 잔을 가볍게 들더니 몇 가지를 더 넣어 티스푼으로 두어 번 젓는다. 이를테면 재미있게 일하는 법, 한국적인 것의 새로운 정의, 역동적이고 에너제틱한 일상과 아주 약간의 헛소리까지. 그 모든 것들을 섞어 만든 한 잔은 유쾌하고도 달콤하다. 김규림과 서원, 뉴믹스커피의 두 사람을 따라 몇 잔의 이야기를 연거푸 음미한다.

뉴믹스커피의 새로운 공간에서 만나게 되었어요. 오늘은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까만 옷을 입었네요.

규림 그러게요. ‘블랙’은 뉴믹스커피의 브랜드 컬러예요. 성수점과 북촌점에서 손님을 직접 대면하는 동료들도 검은색 유니폼을 입어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뉴믹스커피의 김규림입니다.

안녕하세요. 뉴믹스커피의 서원입니다.

 

점장님께서 두 가지 맛의 믹스 커피를 시음해 보라고 주셨어요. 오리지널 맛과 시나몬약과 맛인데, 달큰하니 좋았어요.

맛있죠? 오리지널 맛은 일하면서 에너지가 필요할 때 딱 마시기 좋아요. 시나몬약과 맛은 여기 북촌점에서만 맛볼 수 있는데 시나몬 향미와 약과의 달달함이 한 모금에 느껴지죠. 초기에는 뉴믹스커피의 첫 공간인 성수점을 테이크아웃 커피숍으로 운영했어요. 현재는 두 곳을 모두 ‘기념품숍’이라 부르면서, 자유로이 시음하고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서른 가지에서 마흔 가지 이상의 맛이 출시될 예정이라, 다양하게 시도해 보고 취향껏 골라 가는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어요.

 

저도 커피를 조금씩 즐기면서 대화를 시작해 볼게요. 이야기를 나누는 오늘은 북촌점 영업 시작 이튿날이에요. 어제는 어떤 하루를 보냈어요?

규림 마지막 주말에 지인들을 먼저 초대해서 테스트 운영을 해보며 마음의 준비를 했어요. 북촌은 관광객이 많은 거리니까 자연히 고객 연령대와 국적이 다양할 거라 예상했는데 역시나 그렇더라고요. 오픈 후 첫 손님은 조지아에서 온 분이었는데 그냥 지나가다가 궁금해서 들어왔대요(웃음). 뉴믹스커피가 북촌으로 사무실까지 이전하게 되면서, 주변에 이웃한 카페나 식당 사장님들에게 떡을 돌렸거든요. 그걸 컵에 담아 첫 손님께 ‘럭키 떡’이라며 건넸더니 좋아하시더라고요. 뉴믹스커피가 싹을 틔운 ‘그란데클립’ 구성원들이 와서 축하도 해주고, 북적북적 줄 서는 모습도 보여줬어요. 처음엔 그런 게 중요한 거 아시죠.

 

그럼요! 두 번째 공간을 여는 거니까 뭐든 처음보다는 능숙하게 해냈을 것 같은데요.

무언가 편하게 해낸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때를 거듭하면서 어려움에 대응하는 법을 체득하고 있지만, 형태만 달라질 뿐 처음이나 그다음이나 어려움은 비슷한 크기로 존재해서요. 다만 두 번째 오픈이니까 저도 동료들도 덜 긴장하고 즐겨보려고 했어요. 무엇보다 북촌에 머무는 사람들은 기분이 다 좋아 보여요. 출근할 때 그 에너지를 한껏 받는 기분이죠.

규림 여기서 일한 지 2주 되었는데 벌써 네 번이나 간 단골 음식점도 생겼어요. ‘신라제면’이라는 곳인데, 저는 일단 마음에 들면 그 한 놈을 가만두지 않거든요(웃음).

 

그러고 보니 3월에는 뉴믹스커피가 1주년을 맞이했죠. 기쁜 일들 사이에서 초봄을 맞이하고 있네요.

규림 …눈물이 흐릅니다.
(모두 웃음을 터뜨린다.)

규림 지난 1년을 떠올리면 엄청 농축된 밀도로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치 5년 같은 1년이었죠. 처음에 계획한 대로 흘러간 것보다 이것저것 시도해 보면서 씨를 뿌려둔 것들이 많거든요. 그중에서 몇 개가 꿈틀꿈틀 움직이면서 일로 이어지니까 브랜드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도 선명해지는 것 같아요. 이직이나 작은 회사의 초기 멤버로 들어가 일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직접 사무실을 짓고 내가 앉을 의자를 고르고 회의실에 텔레비전을 다는 등의 일은 처음이에요. 그렇게 보낸 1년… 되게 재밌었어요.

저도 비슷해요. ‘벌써 1년이야?’와 ‘아직도 1년이야?’의 마음이 공존하죠. 처음에는 저와 규림 님, 마케터 은지 님이 함께 머리를 맞댔는데 이제는 사무실에만 여덟 명의 동료가 있고 매장 점장님들과 파트타임 친구들까지 모이면 서른 명 가까이 돼요. 요즘은 어떤 일이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오늘은 뉴믹스커피의 이야기를 저와 규림 님이 말하게 되었지만, 이렇게 자리 잡기까지 뒤에 많은 동료들이 힘을 모으고 있죠. 저는 그런 분들이 더 많이 인식되길 바라요.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죠. 일이란 게 다 그렇잖아요.

맞아요. 사람과 사람이 안팎으로 엮여 이루는 게 일일 테고요. 늦기 전에 두 분의 역할에 대해 들어볼까요? 먼저 원 씨는 명함에 ‘비즈니스 리드’라고 적혀 있어요.

이 질문을 받고 제가 하는 일을 무어라 설명할까 고민해 봤어요. 이전에 ‘신세계 인터내셔날’이라는 패션 회사에서 브랜드 매니저로 근무했는데 그때는 일의 경계가 아주 명확했어요. 온라인 MD, 총무, 인사처럼 구분되어 있고 각 팀의 협업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저는 맡은 일에만 힘쓰면 됐어요. 반면 뉴믹스커피에서는 지하를 파서 기둥을 만들고 지붕까지 얹는 모든 일을 다 하고 있죠. 이를테면 매물을 찾으려고 부동산을 다니며 발품 팔거나 동사무소와 구청에 가고, 한국전력공사에 전화도 해보고요. 네이버에 검색하면 볼 수 있도록 ‘플레이스’ 등록도 했죠. 눈에 당연하게 보이는 게 실은 누군가가 직접 하는 일이었다는 걸 해보면서 깨달았어요. 비즈니스 리드라는 말이 팬시한 타이틀처럼 느껴지는데 좀더 분명하게는 사업을 개발하고 키우는 행위, 즉 일을 벌이는 사람이 제 역할이에요.

 

일을 벌이는 사람. 직관적이면서 끊기지 않는 동력이 느껴지는 역할이네요.

맞아요. 저는 일하면서 정체되는 게 가장 두려워요. 느려지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도 동력을 잃어버릴 테니까 앞장서서 새로운 일을 만들어 내고, 그걸로 동료들이 재미와 흥미를 느끼도록 하고 싶어요. 몸에 피가 새로 돌 듯이요.

 

규림 씨는 지난 《AROUND》 인터뷰에서 ‘제품 기획자, 마케터, 문구인’이라고 본인을 소개했어요. 오늘은요?

규림 음, 그건 여전히 좋아하고 잘하는 거지만 뉴믹스커피에서 제게 주어진 타이틀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예요. ‘과연 그것은 무엇인가!’ 혼자 생각해 봤는데(웃음), 브랜드를 바깥에서 보는 사람들이 좋아하기 전에 안에서 만드는 동료들이 애정을 갖고 자신감 있게 나아갈 수 있는 기획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뉴믹스커피의 처음에는 ‘배달의민족’ 창업자로 알려진 김봉진 디자이너가 이끄는 ‘그란데클립’이 있죠. “클립처럼 사소해 보이는 것들을 발견해서 위대하게” 만드는 팀인데, 두 분은 어떤 계기로 합류했어요?

규림 싱가포르에서 일하고 있을 때인데, 봉진 님이 새로운 걸 함께 만들어 보자고 하셨어요. 그 ‘새로운 것’이 무엇인지 여러 번 물어볼 때마다 “이제부터 생각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오더라고요(웃음). 분명한 아이템은 없어도 봉진 님뿐 아니라 함께 새로운 일을 도모할 동료들을 보니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 소재가 오갔지만 결국 세상에 첫발을 디딘 건 ‘믹스 커피’였죠. 뉴믹스커피는 그란데클립에서 인큐베이팅 되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분리된 회사예요.

저는 규림 님 제안을 받았어요. 다니던 패션 회사를 퇴사하고 싱가포르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았는데, 본래 ‘F&BFood And Beverage’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와인바를 운영해 본 적도 있고 커피를 탐구하는 것도 좋아했어요.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고객에게 전달하는 비즈니스 모델 ‘푸드 테크’에도 관심이 있다 보니 자연스레 마케터로서의 규림 님에 대해서도 알게 됐죠. 싱가포르에서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이후에 제가 파리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규림 님한테서 파리 출장 중이라며 연락이 왔어요. 뭐 하냐고 묻길래 맛있는 거 먹자는 줄 알았는데 만나자마자 물어보더라고요. “혹시… 사업할 생각 있나요?”

 

다짜고짜 너무나 의심스러운 질문을(웃음)…. 그때는 사업을 전개하기 위한 방향성이 잡혔던 건가요?

규림 그때도 분명한 아이템은 없었어요. 당시에 논의가 오가던 건 ‘박물관’과 ‘불고기’였는데… 그 두 개를 함께 잘해볼 사람을 찾는 건 쉽지 않죠(웃음). 그래서 만능인을 데려오면 되겠다 싶었어요. 이런저런 일에 거침없이 뛰어들 사람이 저를 포함해 두세 명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원 님에게선 냉철함이나 이성적인 생각이 돋보였고 평소에 관심사가 많은 사람이라 꼭 섭외하고 싶었어요.

 합류를 결정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규림 님의 한마디가 떠올라요. “저랑 정말 다른 사람이라, 제가 갖고 있지 않은 걸 갖고 있어서 같이 하면 좋겠어요.” 그간 일할 때는 저도 모르게 관성적으로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하려 했거든요. 서로 다른 개성이 모여 일한다면 새로운 무언가가 나올 것만 같았죠.

규림 (원을 바라보며) 어쨌든 지금은 행복하시죠?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다음 질문으로… 갈까요?

 

얼른 넘어갈게요. 그렇다면 뉴믹스커피 이전에는 어떤 기준으로 일을 선택했어요?

좋아하는 일을 할지 또는 잘하는 일을 할지, 이 질문이 언제나 저를 따라다니던 꼬리표였어요. 그동안은 잘하는 일을 해왔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좋은 길이라고 만들어 둔 기준들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잘 따라왔거든요. 그런데 그런 선택만 쌓이다 보니까 스스로 신물이 나고 지겹더라고요. 그란데클립에 합류할 때는 이 생각뿐이었어요. ‘좋아하는 거 딱 한 번만 해보자!’ 내 마음이 스스로 타오를 수 있는 일을, 잘되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잘하는 게 있으니까 후회 없이 해보자고요.

규림 저는 백수 생활을 할 때 직업을 구하는 기준을 세워뒀어요. 첫째는 ‘멋’이에요.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간지’가 안 나는 건 절대 하고 싶지 않아요. 제 존재가 떳떳하지 못할 것 같거든요. 그다음 기준은 ‘주고받는 곳’이냐는 거예요. 적어도 중간 관리자로서 누군가한테 배우면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르쳐 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뉴믹스커피에서 하고 있는 일이 제가 일찍이 세워둔 기준에 잘 맞아떨어졌어요.

저마다 하는 일이 다르듯, 일을 선택하는 기준이 다르네요. 다시 뉴믹스커피로 돌아와서, 결국 믹스 커피로 브랜드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어요?

좀더 가벼운 아이템으로 ‘한국적인 음료’를 찾아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호박즙, 식혜, 미숫가루나 수정과… 다양하게 나왔지만 만장일치로 믹스 커피가 뽑혔죠. 사실 비즈니스 컨설팅의 시점으로는 절대 해선 안 되는 아이템이에요. 무척 크던 시장 규모가 현재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그마저도 동서식품이 90퍼센트 이상의 파이를 갖고 있거든요.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만들게 될 건 동서식품과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 커피와 경쟁하는 것도 아닌 완전히 새로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규림 이게 원 님의 아이디어였는데, 실은 원 님이 ‘스페셜티 커피’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런 사람이 믹스 커피를 사업 아이템으로 가져오니까 되려 재밌더라고요. 그리고 누구나 친근하게 대할 만한 음료잖아요. 요즘 사람들이 자주 먹진 않더라도요. 싱가포르에 살 때 마시던 커피도 믹스 커피와 비슷해서 해외 시장을 겨냥하기도 좋을 것 같았어요.

물론 스페셜티 커피 좋아하지만(웃음), 군대에서 먹는 믹스 커피 맛은 아직도 떠올라요. 힘들 때마다 한 봉지 타 먹으면 복잡한 맛 해석 필요 없이 직관적으로 행복이 느껴지잖아요. 스페셜티 커피가 이렇게까지 자리 잡은 나라는 우리나라뿐인데, 그 마중물을 믹스 커피가 하지 않았나 싶어요. 커피라는 음료에 대한 문턱을 확 낮춰주었으니까요.

 

브랜드 타깃으로 “도심에서 역동적이고 에너제틱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꼽았죠. “뉴 코리안”이라고도 명명했고요. 소재는 친근하지만 브랜드를 구현하는 방식에서는 낯선 느낌이 들어요.

규림 처음 믹스 커피를 만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다방 준비 잘 돼가?” 이 말을 가장 많이 했어요. ‘레트로’나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간식을 떠올린 거겠죠. 그걸 답습하는 건 브랜드를 새로 만드는 의미가 없잖아요. 지금은 소비하지 않아도 잠재적인 소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타깃으로 삼고 싶었고, ‘한국의 브루클린’이라 불리는 성수동에 모인 젊은 친구들을 떠올렸어요. 자신을 표현하거나 창작 활동에 거침없는 예술인이나 댄서, 서퍼, 에너지를 많이 쓰고 빠른 충전이 필요한 사람들로 페르소나를 덧붙여갔죠.

그때 본 기사가 하나 떠올라요. 《월페이퍼Wallpaper》매거진에서 피오나 배 님이 쓴 기사에 서울이라는 도시의 이미지를 어떻게 정의할 건지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모든 걸 다 섞어버린다’는 내용이었어요. 옛것과 새것을 섞고, 산업적인 방향성과 장인 정신을 섞고, 스트리트 패션과 하이엔드 패션이 섞여서 우리만의 독특하고 다이내믹한 무언가가 탄생한다고요. 그 말은 ‘한국적인 것’을 우리만의 언어로 정의하는 데 영감이 되어줬고, 그걸 바탕으로 뉴믹스커피의 키 컬러인 블랙이나 공간의 주요 소재로 쓰인 스테인리스, 미디어 아트 등을 결정해 나갔어요. 세련되고 정제된 느낌의 디자인으로요.

규림 가만 생각하면 안에서 보는 ‘코리안’과 바깥에서 보는 ‘코리안’이 다른 것 같아요. 안에 있는 우리는 인사동, 전통적인 것들이 한국답다고 느끼지만 해외 친구들은 이제 성수동이나 세련된 편집숍, 카페 등에 ‘별표’ 찍고 찾아오잖아요.

 

그 다름을 영원히 모를 수도 있는데, 변화를 만들기 위해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뉴믹스커피이기에 가능한 정의일지도 몰라요. 한편, 직접 타 먹는 ‘포’ 형태 제품으로 모두에게 동일한 미각 경험을 주려면 안내가 세심해야 할 것 같은데 어때요?

규림 맞아요. 한번은 미국 아마존에 너무 연해서 맛이 없다는 후기가 올라온 적 있어요. 그래서 사진을 보니까 엄청 큰 머그에 한 봉지 타서 드신 거예요…. 마음이 찢어지더라고요(웃음). 근데 충분히 그럴 수 있잖아요. 해외는 ‘스위스미스 핫초코’ 한 봉지도 무지 크니까요. 그래서 좀더 명확하고 자연스레 따라올 수 있는 장치들을 만들려고 했어요. 믹스 커피 전용 저울이나 컵라면처럼 안쪽에 금이 그어진 머그컵 같은 것들을요. 믹스 커피는 물이 핵심이니까.

저는 정보를 덜어내는 방법도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소비자들이 마주하는 정보가 너무 많아 오히려 제대로 읽히지 않을 때가 있거든요. 제품을 구매할 때 ‘믹스 커피 가이드’를 같이 드리는데 처음에는 길고 말도 많았다면 이제는 손바닥만 한 종이에 적정한 물의 양과 온도 등 필수 정보를 가볍게 담았어요.

이외에도 규림 씨의 블로그 ‘뀰로그’에서 뉴믹스커피의 일하는 모습을 슬쩍 엿볼 수 있어요. 아이템을 정하자마자 가장 먼저 부동산으로 달려간 것, 로고를 선정하려고 한지 위에 붓글씨를 쓰던 것, 컵 디자인을 위해 옥상에 올라가 종이컵 수십 개에 스프레이로 시안을 만든 것…. 여느 회사라면 잔소리를 마구 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웃음). 뉴믹스커피다운 일의 방식이 있는 거겠죠?

규림 보통의 업무 진행 방식하고는 꽤 다를지도 모르지만, 저는 예전부터 그렇게 일을 해왔어요.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각자 모니터 보고 시안을 만드는 것보다 전지 펼쳐두고 마음껏 그려보고, 그중에서 고르는 게 더 즐겁고 수월한 방식이잖아요.

우리답게 일하는 방식은 여전히 찾아나가는 중인데요. 인원이 늘다 보니 의견을 모으고 좋은 선택지를 고르는 데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더라고요. ‘뉴믹스다운 것’이라고 할 때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생각하는 게 비슷할 줄 알았는데 저마다 조금씩 방향성이 다른 거예요. 아이디어를 꺼내놓을 때 손톱만큼 달랐던 방향이 나중에 결과물에 이르렀을 때는 완전히 다른 각도의 것이 되어 있을 때도 있고요. 의사 결정 과정이나 브랜드의 가치를 만들 때는 그 격차를 좁히는 작업이 필수적이라 느껴졌어요.

 

다른 인터뷰에서 일할 때 ‘헛소리를 많이 하는 분위기’라고 하던데, 흐르는 생각을 편하게 주고받는 게 격차를 좁히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요?

규림 그럼요. 원래는 일하는 도중에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오갔다면, 지금은 의도적으로 다 같이 모여 일주일에 한 번씩 ‘뉴믹스커피 챗’을 해요. 별 안건 없이 우리 커피 마시면서 흐르는 대로 이야기를 나누는 거예요. 주말에 뭐 했는지, 요즘의 신변잡기는 뭔지… 그러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나오더라고요. 각 잡고 아무것도 없는 회의실에 앉아서 끙끙 머리를 싸매는 것보다 쉽게 물꼬가 트이는 것 같아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흐를 맥락도 생길 테고요.

 

문득 궁금한 게 있는데 때로는… ‘적당히’ 하고 끝내고 싶을 때도 있나요?

규림 아… 그런 적은 없어요. 완벽하게 납득 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과물을 내보인다면 아쉬움이 남을 거고 그럼 분명히 나중에 다시 해야 하니까요. 일은 하는 사람의 자존심을 걸고 하는 거 아닌가요. 자존심이 지켜지는 선까지는 힘을 쓰고 싶어요. 물론 가끔은 ‘일이 뭐길래!’ 이런 생각도 들죠. 얼마 전에 동료가 저한테 “이렇게까지 해서 도대체 무얼 이루고 싶어요?”라고 묻더라고요. 사람마다 동기부여나 일의 이유가 다르니까 궁금할 수 있잖아요. 질문을 받은 김에 저도 답을 고민해 봤는데, 뉴믹스커피는 어딘가 존재하던 브랜드를 가져온 게 아니라 세상에 없는 걸 만들었기 때문에 세상에 없는 케이스까지 만들고 싶어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같은 데 실리는 것도 목표고요. 그러려면 모든 걸 우리만의 방식으로 소화해서 ‘뭔가’ 다르게 해야 하거든요. 그렇게까지 해내기 위해선 그 일에 임하는 사람의 자존심이 필요한 거죠.

 

원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저도 적당히 하고 그만두는 법은 잘 모르겠어요. 일을 하는 의미는 저 자신의 동기부여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내가 속한 곳에 나의 힘이 닿는다는 ‘공헌감’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해외에서 오신 분들이 내가 만든 뉴믹스커피를 사 갔을 때 느끼는 뿌듯함도 있고, 작은 부분이라도 내 아이디어가 실현된다면 보람도 느낄 수 있죠. 그 공헌감이야말로 일에 진심을 다하게 만드는 큰 동력이에요.

개성이 뚜렷한 존재들이 팀을 이뤄 일하고 있으니, 함께 일하는 것의 가치에 대해 알 것 같아요.

규림 저는 제가 가진 기본 에너지가 낮기 때문에 개인 플레이어로서의 삶을 편안해해요. 그런데 왜 항상 조직 생활을 하게 될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떠올린 적이 있거든요. 혼자로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것, 다룰 수 없는 스케일의 일이 있더라고요. 또 혼자 하는 생각에는 한계가 있는데 여러 사람의 생각이 붙고 또 붙으면 다면적이고 입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잖아요. 그게 함께하는 작업의 매력이에요.

 

그렇다면 ‘일 잘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생각이 내 범위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우리 범위까지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요. ‘나만 잘돼야지.’ 이런 마음보다 우리가 지금 결정해야 하는 게 뭐지, 생각하고 나아갈 방향은 어떤 거지, 지금 내 곁의 동료는 무얼 고민하고 있지…. 시선이 나를 벗어나 우리에 머무는 사람들이 모일수록 서로 큰 힘이 되어준다고 생각해요. 감정 지수 ‘EQ’가 높은 사람이겠네요. 

규림 잠깐만, 지금 저 겨냥하신 거 아니죠?

아, 아직 여기 계셨어요(웃음)? 

규림 (웃음) 제 마음속에 항상 담아두는 말이 있는데, 일본 그래픽 디자이너 ‘나가오카 겐메이長岡賢明’ 선생님이 “우리는 끓어올라야 하는 주전자”이기 때문에 “스스로 끓어오를 수 있는 자연 발화성 존재”가 되어야 한대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든가, 새로 맡은 바를 탁월하게 해내고 싶다든가, 자신을 조금이라도 북돋을 수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자연 발화의 기회라고 생각해요. 뜨겁거나 미지근한 물이라면 금방 끓어오를 테지만, 거기에 찬물이 들어오면 끓는 일이 요원해지잖아요. 내가 지금 이곳에 있는 이유를 명확하게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일을 잘한다고 생각해요. 

 

일 잘하는 사람과 좋은 동료는 같은 말일까요? 

규림 그럼요! 일터에서는 일을 못하면 나쁜 사람이랍니다? 

저는 그 질문을 신입 사원 면접 때 받았어요. 일을 잘하는데 인성이 엉망인 상사와 성격은 좋지만 일을 못해서 항상 윗사람에게 혼나는 상사 중 누구와 일하고 싶냐고요. 그런 질문을 어떻게 신입 사원 면접 때 할 수가 있어요(웃음)? 그렇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제 답은 똑같이, 일 잘하는 상사랑 함께하고 싶다는 거예요. 낮은 직급일 때는 잘하는 사람들에게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제 자리에선 자연 발화할 수 있는 환경을 함께 고민하는 좋은 동료가 되어주고 싶어요. 

 

이제 오늘 대화의 마지막 질문이에요. 뉴믹스커피 인스타그램에는 나다운 삶의 방식을 사는 이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콘텐츠가 있죠. “Mix Makes New [ ]”의 괄호에는 어떤 단어를 넣고 싶어요? 

규림 제가 먼저 채워보자면… ‘History’라고 할래요. 우리가 하는 일은 역사를 쓰는 일 같거든요. 꼭 브랜드의 것만이 아니라 여기에 한데 섞인 사람들 개개인의 역사도 쓰이고 있을 텐데, 그 수많은 페이지 중 제일 재미있는 파트를 써 내려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어요.

멋있는 답변이네요. 제 답은 다음에 들려드리는 걸로….
(모두 웃음을 터뜨린다.)

저는 ‘Things’을 넣을게요. 이 단어엔 어떠한 것도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들어 있잖아요. 새로운 것들을 계속 섞다 보면 무엇이든 만들어진다는 게 우리를 한마디로 보여주는 거예요.

뉴믹스커피 북촌점
A. 서울 종로구 창덕궁1길 40 1층

뉴믹스커피가 던지는 질문은 한 가지가 더 있다. ‘가장 좋아하는 믹스’는 무엇이냐는 것. 그 답을 고민하는 원 씨에게 “혹시 짬짜면 아냐?” 하며 농담을 던지던 규림 씨를 떠올리며 새벽녘, 나는 어떤 답을 할지 생각해 봤다. 연일 이어지는 마감 탓에 잠을 잘 못 자서인지 또렷이 떠오르는 것 없이 뉴믹스커피 한 잔만 들이켜는데, 진하고 달콤한 커피가 마치 온몸에서 끌어당기듯 퍼진다. 이거지, 눈이 번쩍 뜨이는 바로 이 맛. 질문에 대한 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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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