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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멜멜 — 사진가
정멜멜의 사진에는 언제나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 그 빛이 밝은 곳만 비추는 법은, 그림자가 어둠만 말하는 법은 없이 둥근 어깨를 마주 대고 공존한다. 한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면 그가 사랑하는 것들이 보이기 마련. 그는 사이드 프로젝트 ‘올루 올루Olu Olu’를 통해 사람과 동물의 반려를 응시한다. 만남과 이별도, 삶과 죽음도, 평범한 일상의 나날과 가끔은 아옹다옹하다 토라지는 날들까지 경계 없는 빛과 그림자 아래 사랑으로 쓰인다. 한 시절의 찬란함을 영원으로 기록하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시작에 앞서, 이 이야기는 나와 함께 세상을 사는 존재들에 대한 긴 사랑 고백임을 밝혀둔다.
스튜디오 ‘텍스처 온 텍스처Texture On Texture’의 마스코트 ‘택수’가 있으리라 예상했는데 고요하네요. 사이드 프로젝트 ‘올루 올루’ 홈페이지에서 택수 소개를 미리 읽고 왔거든요!
정말요? 아쉽지만 오늘 작업실에는 저 혼자예요. 택수는 스튜디오 동료인 신해수 씨가 2016년부터 키우는 시바견이자 가족인데요. 사람이 먼저 손 뻗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택수가 있는 날엔 스튜디오에 오는 분들께 미리 안내하고 있어요.
저기 밥그릇이 보이는데 택수가 작업실에 자주 오나요?
해수 씨와 함께 출근하는 날이 대부분이라 작업실 곳곳에 머무는 자리가 있어요. 특히 여기 긴 소파에 앉아 있는 걸 가장 좋아하고, 해수 씨가 자리를 비우면 저와 또 다른 동료인 수호 씨가 산책을 하거나 돌봐주죠. 일종의 공동육아처럼요. 택수라는 이름을 궁금해하시던데, 우리 스튜디오와 ‘해수’라는 이름에서 한 글자씩 모아 지은 거예요. 반려동물 이름을 사람처럼 친근하게, 조금은 구수하게 지으면 오래 산다고들 하잖아요. 텍스처 온 텍스처 제4의 멤버이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료예요.
(웃음) 올루 올루 인터뷰를 보니 ‘택수 사용 설명서’도 있다고 하던데요.
택수는 사람 손을 싫어하니까 만지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비슷하게는 박수나 가위바위보도 그렇고요. 기분이 좋은가 싶다가도 그릇에 밥이 남아 있을 땐 경계가 심해요. 시바견이 친화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라서 싫어하는 건 최대한 이해하며 함께 지내려고 해요. 남에게 피해를 끼친다면 바로잡아야 하지만, 기질 자체는 존중하자는 게 해수 씨의 양육 방식이거든요. 저와 수호 씨는 그걸 따르는 거고요.
그렇군요. 택수와의 만남은 다음을 기약하고 늦지 않게 멜멜 씨 소개를 들어보고 싶어요. 보통 자기소개를 부탁하면 뭐라고 답하세요?
서울을 기반으로 동료들과 사진을 찍고 다양한 프로젝트에 스스로를 던져보려 노력한다고 짧게 설명해요. 그 한 문장에 제 모든 것이 들어 있거든요. 서울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살고 있는 도시고, 함께 작업하는 동료들과 사진이란 매개체는 저한테 굉장히 중요한 존재예요. 빈티지 숍을 운영해 보기도 했고, 최근엔 반려인과 반려동물을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요.
하는 일을 제외한다면 어떤 사람인가요? ‘멜멜 사용 설명서’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아, 제 설명서요(웃음)? 저한테는 워낙 일이 큰 의미라 빼놓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매일매일 뭔가를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 같아요. 그리고 대체로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사진은 본래 취미로 시작했던 거라서 혼자 여기저기 찍으러 다녔거든요. 그래서 일로 삼았을 때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을 대면하는 일이라곤 예상하지 못했어요. 사진 작업을 매개로 다른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그렇게 쌓는 경험이 즐겁다는 걸 알게 되었죠. 개인적으로 가깝지 않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건 어렵지만, 많은 동료를 만나고 또 격려하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은 사랑하는 사람이라 말하고 싶어요. 한편으론 양면적일 수 있겠네요.
양면적인 모습을 가진 본인을 어떻게 다루려고 해요?
제 에너지의 총량을 알고 조절해요. 사람을 많이 만났다면 혼자 쉬는 시간도 꼭 필요하죠. 친구들을 만나더라도 일에 쏟아야 할 에너지까지 끌어다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이런 건 이전에는 잘 몰랐는데, 삼십 대 중반이 넘어가니까 느껴지더라고요. 내가 조절을 하지 않으면 친구들에게도 실례가 되고, 일할 때도 불편이 될 수 있겠다는 걸요.
이름에 대해서도 묻고 싶었어요. 본명과 달리 활동명은 불리고 싶은 대로 직접 짓는 거잖아요.
본명이 정유진인데 어릴 때부터 흔하고 동명이인도 많았어요. 일을 시작한 뒤 새로 이름을 짓고 싶은데 거창하거나 느끼한 이름은 싫어서 계속 고민했죠. 성별이나 국적을 가늠하기 어려운, 기억이 잘되면서도 이상한 이름을 찾았거든요. 꽤 오랫동안 제가 ‘멜팅프레임’이라는 아이디를 써서 친구들이 편하게 “멜멜아!” 이렇게 부르곤 했는데요. 어느 날은 그게 딱 원하던 이름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절 모르는 사람들은 듣자마자 ‘뭐지?’ 싶잖아요. 크레디트에 정유진이 열 번 나오는 것보다 정멜멜이 한 번 나오는 게 임팩트가 더 강할 것 같고요. 그때부터 멜멜이라 불러달라고 했어요.
가끔 ‘점멜멜’로 불린다는 인스타그램 기록을 봤어요. 명리학을 공부하는 거예요?
동양 철학의 이론이 흥미로워서 사주나 명리학을 취미로 공부해요. 나를 알고 싶은 마음, 나아가 타인과 현실 세계 너머의 것에 대해 알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명리학은 절기를 기준으로 삼는 계절학이라 사람 역시 자연과 계절의 일부라고 보죠. 어떤 시기에는 감내해야 할 것만 많다가도 다른 시기가 오면 쓰임이 많아지고 그 또한 영원하지 않으며 순환한다고 여겨요. 그에 따라 체념과 희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전제가 저에겐 재미있어요. 가끔 친구들에게 사주 해석을 해줬더니 저런 별명으로 부르더라고요.
친구들은 그냥 부르는 법이 없잖아요(웃음). 텍스처 온 텍스처의 작업실이 있는 곳은 홍은동이에요. 근처에 홍제천이 흐르고 작은 사랑방 같은 카페들이 많은 곳인데요. 이사 온 지는 얼마나 됐어요?
4개월 정도 됐어요. 스튜디오를 시작한 지 10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종로에만 있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의 상황이 바뀌고 원하는 공간의 조건도 바뀌더라고요. 예를 들면 어리던 고양이가 노묘가 되어서 간병을 해야 하고, 나이가 들어 장비가 무겁게 느껴지니까 계단을 오르내리고 싶진 않았어요. 촬영 작업 방향도 바뀌다 보니 교통이 편리한 곳만 찾지 않아도 되었고요. 홍은동은 지금처럼 낙엽이 떨어지던 이맘때에 처음 와봤는데, 길 양쪽으로 노란 은행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무척 강렬하게 느껴졌어요. 천이 흐르니 어딜 가지 않아도 계절 변화가 자연스레 보일 테고, 주변엔 반려동물을 환영하는 공간도 많아서 기꺼이 오게 됐죠.
앞서 잠시 이름이 불린, 공간을 함께 쓰는 동료들이 있죠.
텍스처 온 텍스처에는 저를 포함해 세 명이 함께하는데요. 먼저 해수 씨는 저와 스튜디오를 함께 만든 사람이자 건축 전공 이후 건축물 사진을 위주로 찍는 작가예요. 제가 서촌에서 직장에 다닐 때 해수 씨가 운영하는 펍의 단골손님이었어요. 겹치는 지인도 있고 시각적인 걸 다루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졌죠. 해수 씨는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편이라면 저는 변화를 좋아하지만 시도하기까지 추진력이 부족한 편이라 함께 일한다면 서로의 장단점을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윽고 저는 퇴사를, 해수 씨는 자영업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은 후에 얼떨결에 시작한 사진 스튜디오가 자리를 잡으면서 멤버가 필요했고, 그때 떠오른 게 제 동생 정수호였어요. 수호 씨는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고 자체 프로젝트의 메인으로 기획과 매니징을 담당하는데요. 셋 중에 나이는 가장 어린데 해수 씨와 저 사이에서 중립 지점을 잘 찾아내는 동료라 무슨 일이든 의견을 묻고 의지해요. 가끔은 가족인데 서운할 정도로 제 편을 안 들어줘요(웃음).
그러고 보니 멜멜과 수호 자매가 돌보는 노랑 고양이 ‘호진’의 안부를 묻고 싶네요. 두 분의 일상 기록에서 호진의 흔적을 많이 발견했거든요. 오늘도 기분 좋게 인사 나누고 왔어요?
그럼요. 호진은 열일곱 살 된 고양이인데 나이가 많으니까 기력은 떨어졌지만 여전히 집 안에서 좋아하는 창가나 소파에 누워 하루를 보내요. 누나들 배 위에 올라오는 것도 좋아하고요. 집이 1층이라 창밖으로 작은 공원 겸 놀이터가 보이거든요. 고양이는 창밖을 텔레비전이나 영화관처럼 생각한다는데 틈만 나면 거기 앉아 바깥 구경을 해요.
호진이는 우연히 만나 가족이 되었다고 들었어요.
호진이뿐 아니라 지금은 고양이별로 떠난 ‘권이’도 구조해서 같이 살게 되었어요. 그때는 제가 학원 강사였는데 호진이를 먼저 구조한 다음 날, 학원 아이들이 우연히 권이를 구조했다며 데려왔어요. 이틀 만에 갑자기 고양이 두 마리가 생긴 거죠.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나 정보가 보편적이지 않았고 반려동물을 키우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는데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야말로 얼떨결에 키우게 되었는데, 그즈음엔 삶의 변화가 잦았고 갑작스럽게 가족 구성원의 부재도 경험했어요. 빈자리를 새로운 존재가 채우면서 그 시기를 버티는 데 도움이 되어줬죠.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에 대해 몰랐기에 샅샅이 찾아보고 도움도 받으면서 지금까지 왔어요. 이제는 함께하지 않던 삶을 떠올리는 게 더 어려울 정도예요.
반려의 존재가 멜멜 씨의 시야를 바꾼 부분도 있겠어요.
다른 생명에도 관심을 갖게 됐어요. 전에는 사람 말고는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는 세상을 이루는 게 사람만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나의 고양이를 보면서 다른 고양이도 보게 되고 강아지도 보고, 가까운 동물부터 뉴스에 나오는 고래나 저 멀리 사는 야생 동물까지도 예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었죠. 의식이 바뀌니 행동도 달라져요. 아마 생명이 있는 존재와 함께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경험을 필연적으로 하지 않을까 싶어요. 어쩌면 나와 전혀 다른 존재가 내가 사는 곳, 나의 방식대로 머무는 것에 대한 책임감일 수도 있겠네요. 맞네요. 그동안 분명히 정의하진 않았지만 그 말이 정확해요.
그렇게 넓어진 시야가 세 분을 자연히 올루 올루로 이끌었을 텐데요. 이외에도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가 있다면요?
오랫동안 커머셜을 비롯해 의뢰를 받는 형식으로 작업하다 보니까 우리만의 사진을 생산하고 싶어졌어요. 단순히 여행 가서 개인적인 기록을 남길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좀더 긴 호흡으로 다른 사람들과 만남의 계기도 되어주는 프로젝트를 통해서요. 세 명이 함께 관심을 갖고 있고 여러 해가 지나도 꾸준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주제는 반려동물과의 삶이겠더라고요. 그래서 반려동물을 중심에 두고 반려인과의 삶을 사진과 인터뷰로 웹 사이트에 기록하는 방식을 기획한 거예요. 지금은 우리 주변 가까운 이들부터 찾아가고 있지만, 나중에는 공간을 공유하는 반려의 의미를 넘어서 사람과 동물이 고유한 관계를 이루고 유대감을 나누는 모습을 소개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아파트 단지에 둥지를 지은 새를 돌봐주는 경비원 아저씨, 학교나 절에서 머무는 동물들의 이야기처럼요.
관계를 정의하기보단 그 안에서 오가는 유대감을 조명하고 싶은 거네요. 올루 올루라는 이름은 마치 동물들을 어르는 것처럼 귀엽게 들렸어요.
하와이어로 귀엽다는 의미인데 알파벳 조합이 직관적이고 부르기도 쉽고, 말씀하신 것처럼 ‘어이구 어이구’ 이렇게 반려동물을 어르는 말의 느낌을 의도해서 골랐어요. 15년 넘게 반려동물을 키워보니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귀엽다는 거예요. 물론 비인간 동물의 지나친 의인화나 대상화를 지양해야 되는 건 알고 있지만 나랑 살 붙이면서 살고 있는 가족한테 하는 말은 근엄한 것보단 반사적인 귀여워라, 예뻐라 이런 거거든요. 그건 너무나 사랑스럽고 순수한 호감이에요. 들려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고요. 귀엽다는 어감이 누군가에겐 가벼워 보일지 몰라도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게 됐고 마음속에 받아들이게 됐고, 나아가 서로의 세계가 넓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택수와 호진을 비롯해서 임진아와 김홍구의 키키, 이슬아와 이훤의 숙희와 남희, 이랑의 준이치 등 현재까지 열여섯 가족의 이야기를 소개했어요. 동물을 카메라에 담을 때 신경 쓰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주로 저와 수호 씨가 방문하는데 A컷을 위한 욕심 때문에 진행 시간이 늘어지는 건 피해요. 이 친구들에게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 와서 이상하게 생긴 도구로 자길 바라보는 영문도 모르는 상황이잖아요. 낯선 상황에 놓이는 게 동물들에게 완전히 편할 것 같진 않아서 좋아하는 자리에 있는 모습이나 산책하는 와중에 편안한 순간을 찍어요. 억지로 포즈를 요청하지 않고요. 사실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면 모르지만, 저희는 동시에 해내야 하기 때문에 대화 전에 곁에 카메라를 딱 올려둬요. 그러곤 양해를 구하죠. “죄송한데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갑자기 튀어 나가서 촬영할 수도 있어요.” 동물들이 똑같은 포즈를 다시 취해준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웃음), 순간적인 장면을 주저 없이 포착해야 해요.
“아무리 반려인이 유명해도 인터뷰 주인공은 반려동물”이라던 멜멜 씨의 말처럼 인상적인 질문이 많았어요.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을 싫어하는지, 자신의 심신 건강을 위해 무얼 하는지, 사람과 공유하는 은밀한 언어나 약속이 있는지 물었죠. 그게 사람이든 동물이든 똑같이 물을 수 있는 질문이란 걸 잊었어요.
가끔 반려동물을 동반한 반려인의 인터뷰를 보면 그들에 대한 언급이 너무 짧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동물들이 주인공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제가 만나본 반려인들은 내가 사랑하는 존재에 대해 오히려 내 이야기보다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았거든요. 현재의 제가 좀더 궁금해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근처에 자주 가는 카페에 ‘로뎀’이라는 강아지가 오는데 자주 마주치는 그 친구에게 이 시간에 산책을 하는 게 좋은지, 이 카페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는지 궁금하거든요. 로뎀이만의 생각이 있을 테니까요. 사람의 입을 빌리긴 하지만 그 시절에만 가질 수 있는 기록을 해주고 싶었어요.
왜 한 시절에만 가능한 기록이라 생각해요?
살아 있는 존재의 생애 주기에 관해 생각해 본다면 모든 기록은 그 시절에만 남길 수 있는 거예요. 어렴풋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때를 남겨두지 않으면 추억할 수 없어요. 제가 그걸 강하게 느낀 적이 있는데, 친구가 키우던 강아지가 많이 아파서 걸을 수 있을 때 함께 산책하는 사진을 남기고 싶다고 부탁하더라고요.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찍어줬는데 강아지가 떠난 후 두고두고 고마워하는 거예요. 매일을 같이 보내며 소중해하던 존재를 찍은 사진은 많은데 그 존재와 내가 같이 나온 사진은 생각보다 없다면서요. 우리 휴대폰에 엄마나 아빠 사진이 많이 없잖아요. 게다가 반려동물의 시간은 사람보다 훨씬 빠르게 흐르고요.
카메라 렌즈 너머로 눈을 맞춰주는 택수
스스로 기록하고 싶은 게 뭔지 생각을 거듭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음… 무얼 기록할 때 행복한지 계속 찾아나가고 있어요. 어떤 사진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가치가 커져요. 예를 들어 세상에 엄청나게 멋있는 화보가 나와요. 유명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붙고 모델이 등장하고 섭외하기 어려운 장소에서 찍은 사진이 나온다면 당연히 대단하겠죠. 그런데 나한테는 집처럼 편안한 장소에서 사랑하는 존재와 찍은 한 장이 더 가치 있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사진에는 기록이라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요. 제가 담고 싶은 장면은 후자에 가까워요.
섭외와 인터뷰 진행은 지금껏 해보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요. 나름의 고충도 있어요?
섭외가 정말 쉽지 않아요…(웃음). 사실 저도 인터뷰 제의가 오면 덥석 하진 않았어요. 시간적인 여유도 부족하고 나한테서 기록할 만한 이야기가 충분히 나올지도 의문인 데다가 카메라 앞에 서는 것도 어색했죠. 그런데 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내가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싶은 이유가 있는 것처럼, 누군가 나에게 제안한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는 걸요. 가능한 한 다 해보려고 마음을 바꿨어요.
그렇지 않아도 흔쾌히 이번 호에 함께해 주셔서 정말 기뻤답니다(웃음).
마침 이번 호가 기록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모은다길래 더 반가웠어요. 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 같아요. 이야기라는 형태를 좋아하고, 사진과 질문으로 한 사람을 설명하는 작업이 흥미로워요. 인터뷰 촬영할 때는 그 대화를 재미있게 듣기만 했는데 직접 해보니까 간단하진 않더라고요. 이외에도 단순하게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운 게 많았어요. 상품 제작할 땐 제작자의 마음을, 같이 자주 일하는 에디터의 마음을, 카메라 앞에 서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죠. 생각해 보니까 예전에 배우 황정민이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었을 뿐”이라던 수상 소감이 딱 맞는 말인 거예요. 나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잘하기 위해 판을 만들어준 사람들이 있다는 걸 깊게 생각해 보곤 해요
모든 가족이 특별하겠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반려 관계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제가 노묘를 키우다 보니까 그와 같은 관계를 볼 때 애틋함이 커요. 생애 주기에 따라 일상에 여러 과정이 추가될 수밖에 없거든요. 예를 들면 열 살이 넘은 세 고양이와 함께 사는 김하나, 황선우 작가님을 만나러 갔을 때는 스스로 그루밍을 못 하니까 사람이 빗질해 주는 모습, 수액 맞는 모습을 양해를 구해 전부 찍었어요. 나중에 분명히 그리워질 순간이라는 걸 알거든요. 그리고 사람처럼 동물도 나이가 들면 삶이 변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학술적으로 어렵게 말할 필요 없이 아주 자연스러운 거라고요.
다른 존재의 기록에 성실히 임할 수 있는 건 자신도 꾸준히 기록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라 생각했어요. 선호하는 기록 방식이 있어요?
정해진 방식을 추구하면 진지하게 해야 할 것 같은 긴장감이 생겨요. 부담도 되고요. 그래서 곁에 휴대폰이 있으면 폰으로, 카메라가 있으면 카메라로 대충 기록해요. 아, 손으로 노트에 쓰는 기록은 잘 안 하고요. 나중에 다시 보고 정리를 하더라도 부담 없이 빠르게, 무겁지 않게 습관적으로 기록하는 데 초점을 둬요.
카메라라는 기록 도구에 관해 말하고 싶은데, 처음 내 카메라가 생겼던 때를 기억해요?
그럼요. 대학교를 휴학하고 별 이유 없이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르바이트한 돈을 모아 풀 프레임 카메라를 샀거든요. 그 전에도 휴대폰이나 작은 디지털카메라를 쓰긴 했지만 제대로 된 카메라는 그게 처음이었어요.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런 큰 도구를 사는 건 쉬운 게 아니었는데 그래서 더욱 많이 써보려고 산책도 가고, 사진을 항상 누군가가 볼 수 있는 블로그에 올렸어요. 구경 와주시는 분들과 댓글로 소통하고요. 그런 재미로 사진이란 취미를 오랫동안 즐겼던 것 같아요. 이제는 꽤 다른 의미로 닿는 일이 되었지만요.
에세이 《다만 빛과 그림자가 그곳에 있었고》에는 그보다 더 어릴 적, 사진에 대한 기억을 심어준 외삼촌 이야기가 있었어요. 삼촌은 어떤 분이셨어요?
어릴 때부터 삼촌이 사진관을 하셨어요. 앨범을 보면 엄마나 아빠가 찍어준 사진보다 삼촌이 찍어준 사진이 압도적으로 많거든요. 산이나 바다, 놀이공원, 미술관, 당시 살던 동네까지… 항상 조카들을 우르르 데리고 사진 찍으러 다니던 게 떠올라요. 이제야 누군가 내 어린 시절을 기록해 준 게 무척 고맙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걸 느끼죠. 다섯 살 때 사진을 열 살 때, 스무 살 때 나아가 지금처럼 마흔이 다 되어서 다시 보는 기분은 완전히 다르니까요. 이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붙는 기록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다만 그 기억 때문에 사진을 일로 삼은 건 아니라서, 나중에 제가 사진가가 되었을 때 삼촌이 신기하게 바라보셨어요. 저는 저보다 앞서 오랫동안 카메라를 든 삼촌이 궁금해서 그 시절의 사진 촬영 방식이나, 돈을 버는 직업인으로서의 태도에 관해 여러 번 물었어요. 삼촌은 사진으로 돈이 잘 벌릴 때, 그래서 성취감이 있을 때 이 일이 재미있었대요. 사진을 찍는 건 다양한 이들을 접하는 일이라 사람 보는 눈도 생긴다고요. 삼촌과의 모든 순간이 기억나진 않지만 사진을 사이에 두던 장면들은 아직도 떠올라요.
어떤 순간에 셔터를 누르고 싶은지 궁금해져요.
내 시선에 아름답고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찍는 것. 카메라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그건 크게 변함이 없어요.
그러고 보니 사진 찍을 때 상대의 장점을 잘 찾는다고 하던데요.
그 사람이 어디가 예쁜지 바로 보여요. 근데 저는 다들 그런 줄 알았어요.
아니에요. 단점보다 장점을 먼저 알아보는 건 특별한 재능이죠!
그런 사람들이 다 사진을 하긴 하더라고요(웃음). 일로서는 큰 장점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뼈가 두껍거든요. 손목을 봐도 엄청 튼튼해요. 내가 생각할 때 나의 이런 부분이 추구하는 모습과는 어긋날지라도 사진 찍을 땐 무지 도움이 돼요. 무거운 카메라도 오랫동안 잘 들 수 있거든요. 내가 장점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게 직업적인 면에서 좋은 윤곽을 드러낼 때가 있나 봐요.
나에겐 어떤 부분이 그럴까 생각해 보게 되네요. 혹시 꾸준히 지켜보는 누군가의 기록이 있어요?
‘샘 유킬리스Sam Youkilis’라는 사진가의 인스타그램이 인상 깊었어요. 그 사람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좋은 장비 없이 아이폰으로 툭툭 찍어 올려요. 오렌지 깎는 할머니, 도로를 건너는 사람들, 설탕 먹는 할아버지…. 근데 그 자체로도 정말 아름답거든요. 숨 쉬듯 기록물을 올리는 걸 보면서 ‘그래, 기록은 이렇게 하는 거야.’ 생각하기도 하고요. 찍는 사람의 시선이 특별하니까 평범한 일상 속 장면도 보는 이들에게 영감으로 남더라고요.
몇 권의 책을 썼으니 글쓰기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때요?
맞아요. 그런데 《다만 빛과 그림자가 그곳에 있었고》라는 에세이집을 쓴 이후 확실히 느낀 건, 글만큼은 즐길 수 있는 나만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싶다는 거예요. 이미 사진이 그럴 수 없는 영역으로 넘어가 버렸거든요. 부담이 적고 재미있게 할 만한 선에서만 글을 써 내보이고 싶어요.
에세이 속 “글을 쓰는 것이 내게 사진을 찍는 일만큼 익숙하고 즐거운 일은 아니었지만, 사진을 찍는 일보다 나의 윤곽선이 뚜렷해지는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라는 문장이 떠오르는데요. 글과 사진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어떻게 다른가요?
둘 다 저한테 익숙한 기록 도구지만 대하는 마음가짐은 좀 달라요. 글을 쓰는 수단인 언어는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태어났잖아요. 오독을 하지 않도록 분명하게 말할 필요가 있죠. 원체 어렵게 쓰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쉽게 읽히기 위해, 쉽게 쓰려고 노력하고요. 반면에 사진은 꼭 정확할 이유가 없어요. 특별한 목적이 없다면 문을 활짝 열어두고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불러일으켜도 좋잖아요. 그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기록을 보이도록 결정한 건 나지만, 해석하는 건 이름 모를 불특정 다수예요. 그 관계에서 오는 주저함이나 긴장감을 느끼나요?
없어요. 의식을 안 한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부담스럽게 느끼거나 과하게 신경을 기울이진 않는 편이에요. 다른 이들의 기록도 하나하나 눈여겨보면서 파헤치려고 하진 않아요. 오늘 하루 5분이 주어진다면 제 작업물에 관해서만 쓰고 싶지 주변에 할애하고 싶지 않거든요. 다른 기록물을 가볍게 보니까 저도 가볍게 올리고. 남들이 어떻게 봐주길 바라는 마음도 없어요. 어쨌든 기록은 저를 위한 거잖아요. 남에게 보이더라도 그 시작은 저예요. 삶의 모든 것을 나를 위해 할 순 없지만, 적어도 기록은 남이 아닌 나를 위해 하는 일이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쓰는 행위의 중심에는 내가 있는 거네요. 어쩌면 오늘 가장 먼저 물어봐야 했을지도 모르는, 멜멜 씨만의 ‘기록’의 정의인 것 같아요.
그렇네요. 저한테 블로그가 하나 있는데 옛날만큼은 아니지만 일 년에 한두 번씩 사진을 모아 올리고, 연말 결산 게시글도 남기고 있어요. 누굴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저를 위해 서버비를 지불하면서 유지하는 거거든요. 인스타그램 스토리도 일부러 하루에 하나라도 올리는데, 몇 년 뒤에 다시 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으로 하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봐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럽지만 중심에는 나를 위한다는 목적을 잊지 않으려 해요. 오늘의 인터뷰도 마찬가지로 지금의 저를 나중에 다시 읽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지 않을까요?
만약 내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그간의 기록들이 어떻게 되길 바란 적 있어요?
음… 사진이나 기록이 세상에 나온 뒤에는 제가 통제할 수 없는 거라 생각해요. 억지로 지우려 안간힘 쓰고 결국엔 사라졌다고 해도 누군가의 기억 안에는 남아 있을지도 모르고요. 그것 때문에 좀 수치스러워도 어쩔 수 없네요.
그럼 사적인 기록도 괜찮아요?
아, 그래도 일기는 지워야 할까요(웃음)?
저라면 일기만은 꼭 지울 거예요(웃음). 내가 사라져도 나의 기록은 어딘가에 남아 여전히 존재를 증명할 텐데, ‘정멜멜이 남긴 기록’은 ‘정멜멜’을 어떤 사람이라 말하길 바라요?
이건 좀 고민되는데요.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 잘 찍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으니까 좋아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바라요. 그렇게 기억되길 바라서 올루 올루를 하고 사진 에세이를 쓰고, 여전히 관련 책을 사서 공부하는 거거든요. 사진을 티 나게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