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 — 작가
햇빛 찬란한 한낮 우리는 공원을 걸으며 아이스크림 가방에서 갓 꺼낸 몇 개의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하현은 봉투를 길게 찢어 아이스크림 바를 꺼내 들고 아삭아삭 무심하면서도 다정하게 씹는다. 강렬한 태양에 금세 녹아 뚝뚝 떨어지는 아이스크림을 능숙하게 어르는 한 손과 야무지게 먹는 그 모습을 넋 놓고 보다가, 나도 모르게 “행복해 보인다.” 자그맣게 읊조렸다. 작열하던 해가 저물어 갈 때쯤 옆에 쌓인 아이스크림 봉투는 벌써 여섯 개. 스크류바, 수박바, 메로나, 따옴바, 폴라포, 탱크보이…. 아, 이 끈적하고 귀여운 행복이여.
온라인 서점에서 이런 소개를 읽었어요. 하현 씨의 글은 “따스하고도 섬세한” 글이라고, “늘 세상에 대한 다정한 관심으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섬세하게 관찰하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작가”라고요.
참 감사하고 좋은 소개인데, 솔직하게 그건 하현이라기보단 하현이 되고 싶은 사람인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저 말고 다른 거엔 별로 관심이 없거든요(웃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자꾸 이런 생각이 들어요. ‘관심사가 내 안쪽으로만 향해 있는 사람은 별로 멋있지 못한 것 같다.’고요. 그래서 자꾸 다른 쪽을 보려고, 바깥을 보려고 노력하게 돼요. 그런 척이라도 하다 보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정리해 보면, 저는 따뜻하고 섬세한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그 노력은 잘 되어가고 있어요?
아니요. 너무 어려워요. 저는 왜 이렇게 저만 재밌는지 모르겠어요. 다른 게 통 재미있질 않아서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돼요.
왜 바깥을 봐야 더 재밌을 거라고 생각해요?
에세이로 먼저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저는 소설을 쓰고 싶거든요. 소설은 결국 내가 아닌, 세상에 없는 사람 얘기잖아요. 근데 나만 아는 사람이 그런 얘기를 잘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좀더 나 말고 다른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저는 하현 씨 글이 잘 읽히고 재미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이런 이야기가 무척 의외예요.
그럼 제 노력이 성공적으로 되어가고 있나 봐요(웃음).
소설도 기대되는데요(웃음). 이름 이야기부터 해볼게요. 개명한 걸로 아는데 새 이름으로 사는 기분은 어때요?
좋아요. 이름은 인생의 기본값인데 제가 결정할 순 없는 거잖아요. SNS에서 개명 이야기를 할 땐 제 이름 ‘하정아’에 들어가는 단정할 정姃 자가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조신함, 순종적인 언행과 연결되는 것이 스트레스라고 했는데요. 이름 뜻에 집중한 건 나중 일이고, 어려서부터 제 이름을 안 좋아했어요. 어떤 느낌이냐면 다들 “이거 네 거야.” 하는데 제 것이 아닌 듯한 느낌? 그러다 개명하고 나니까 인생의 한 부분 정도는 제가 선택한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게 참 좋았어요. 어릴 땐 친한 친구인데도 제 이름을 2년 동안 ‘하정’으로 알고 있는 친구도 있었어요. 편지 첫머리에 “하정이에게.”라고 쓴 걸 보고서야 알았죠.
이럴 수가. 내 것 같지 않단 의미를 알겠어요. 하현은 ‘하현달’에서 따온 거라고 들었어요.
어릴 때 멀미가 굉장히 심해서 아빠 차 타고 할머니 댁에 다녀올 때마다 힘들어했어요. 그럴 때 창밖에 있는 달을 집중해서 보고 있으면 좀 괜찮은 느낌이 들었죠. 어린 맘에 ‘저 달이 어떻게 나를 계속 따라올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계속 생각하다 보니 달이 친근하고 좋아지더라고요. 또 매일 변한다는 점도 좋아요. 특히 예측 가능하게 변한다는 게 다정하게 느껴져요. 상상하게 되는 존재라는 것도요. 옛날 사람들은 달을 보면서 그 안에 토끼가 살고, 방아를 찧어 떡을 만든다는 상상을 했잖아요. 그런 이야기까지 마음에 들어서 계속 달을 좋아하게 돼요.
띵 시리즈 여름 삼부작 중 하나로 《아이스크림: 좋았던 것들이 하나씩 시시해져도》를 출간했죠. SNS에서도 자주 눈에 띄고, 출퇴근길 전철에서 읽는 사람을 종종 만나기도 했는데요. 일명 ‘아이스크림 책’을 낸 소감이 어때요?
크게 변한 건 없는데… 제 주위에서만 그런 거지만 뭐랄까, 아이스크림의 권위자 같은 게 돼서 “요새 무슨 아이스크림 맛있어?”, “아이스크림 좀 추천해 줘.” 그런 얘길 많이 들어요. “너는 아이스크림 갖고 책 한 권 쓴 사람이잖아.” 하면서요(웃음). 그게 너무 귀엽고 재미있어요.
카페에서 파는 고급 디저트가 아니라 동네 슈퍼마켓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종류를 이야기해서 더 귀엽단 느낌이 있어요. 요샌 어떤 거 많이 추천하세요?
빙그레에서 나온 따옴바 패션후르츠맛이랑 책에서도 적극적으로 추천한 건데 해태에서 나온 아이스팜 자두맛이요. 정말 맛있어요. 맛없는 자두보다 훨씬 자두 같아요. 아, 하나 더 추천할게요. 어제 먹은 것도 맛있었거든요. 피코크에서 나온 요거트 아이스크림인데, 너무 맛있어서 한 통을 다 먹었지 뭐예요(웃음).
지금 추천해 주신 게 다 ‘수채화’ 종류네요. 아이스크림 이야기할 때 꾸덕꾸덕하고 밀키한 아이스크림을 ‘유화’, 맑고 가벼운 베리류를 수채화라고 말씀하시잖아요.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어떤 파예요?
아… 저한테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같은 질문인데요. 자주 먹는 건 수채화 쪽인데, 제 안에서 아이스크림이란 단어를 딱 꺼낸다면 그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유화예요. 투게더나 소프트아이스크림 같은 거요. 자주 먹는 건 수채화지만 좀더 애정 있는 건 유화.
띵 시리즈를 처음엔 ‘쌀국수’로 제안받았다고 들었어요.
음식 에세이를 참 좋아해서 이전부터 띵 시리즈를 쓴다면 뭘 쓸 수 있을까 생각을 많이 해봤어요. 그래서 제안이 정말 반가웠고 꼭 하고 싶었죠. 근데 쌀국수로는 항상 같은 가게만 가고, 같이 가는 사람도 비슷해서 다채롭게 쓸 이야기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새 소재를 찾아 꼭 합류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아이스크림을 골랐어요.
그 전에 소재가 하나 더 있다고 들었어요. 과자!
(활짝 웃으며) 과자는 저한테 기쁨이에요. ‘얘가 날 기쁘게 하지 않을 리 없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음식이죠. 저는 어릴 때부터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면 항상 과자를 먹으면서 했어요. 과자가 너무 좋으니까 그 싫음이 좀 상쇄되더라고요. 실은 아직도 그래요(웃음).
그래서 SNS에 작업하는 사진 옆에 꼭 과자나 과일이 끼어 있던 거군요.
맞아요. 장을 볼 때 항상 ‘작업 과자’를 사요. 그게 뭐냐면, 똑같은 새우깡이어도 평소엔 아무 때나 먹을 수 있지만, 작업 과자라 이름 붙이면 작업할 때만 먹어야 하는 거예요. 저와의 약속이죠. 그래서 요새는 일부러 좀더 특이한 과자나 신기한 과자를 작업 과자로 사두곤 해요. 그걸 먹으려면 작업을 해야 하니까 과자를 먹기 위해서라도 마감하게 되거든요. 요새는 올리브 영에서 파는 수입 과자에 꽂혀 있어요. 폴트에서 나오는 살구 타르트. 우리나라 과자는 짜거나 달거나 둘 중 하나인데 프랑스 과자는 새콤달콤한 맛이 많거든요. 이 살구 타르트 과자도 필링이 새콤달콤한데 전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꼭 드셔 보세요. 강력 추천(웃음).
얘기만 들어도 벌써 맛있는데요(웃음). 과자는 누구나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먹고 사는 음식일 것 같아요. 꾸준히 좋아하는 과자 있어요?
꼬깔콘이요. 아이스크림에 비해 과자는 취향이 왔다 갔다 하는 편인데 꼬깔콘만큼은 변함없이 계속 좋아하는 과자예요. 고소한맛은 안 돼요. 무조건 군옥수수맛.
이번에 디저트를 주제로 여러 사람과 대화하면서 ‘디저트가 뭐라고 생각하는지’를 자주 물었거든요. 근데 대부분이 ‘달콤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꼬깔콘은 짠 과자잖아요. 디저트라고 생각하세요?
아니요. 저도 디저트는 달콤한 거란 인식이 있어서 봉지 과자는 디저트보단 간식 같아요.
간식이랑 디저트랑 뭐가 달라요?
어, 그러게요. 밥 먹고 나서 먹고 싶은 건 디저트고, 밥 먹기 싫을 때 먹고 싶은 건 간식? 저한텐 그래요. 근데 봉지 과자는 간식이지만 상자 과자는 디저트예요. 초코송이 같은 거.
그럼 꿀꽈배기는요?
와…, 애매하네요. 아닌 쪽에 가까워요. 디저트보단 간식 같아요. 제 기준으로 정리를 해보자면, 식사하고 먹는 달콤한 게 디저트니까 너무 배부르지 않은 거여야 해요. 반면, 간식은 식사하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거고요. 그러니까 간식은 좀 묵직하거나 짭짤해도 괜찮은 거죠.
그럼 아이스크림은 디저트네요?
둘 다 돼요. 디저트에 가까운 것 같지만 저는 밥 대신 한 끼 정도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도 있으니까 저한테는 디저트자 간식이자 식사예요(웃음).
<헤어질 결심>(2022) 보셨어요? 극중에서 탕웨이가 식사 대신 홈 아이스크림을 먹잖아요.
그 장면 너무 좋아해요. 탕웨이는 한 가지 아이스크림으로 식사를 대신하는데 저는 식사 대신 먹을 땐 여러 종류를 먹어요. 빵또아를 먹고, 월드콘을 먹고, 스크류바로 끝낸다든지, 나름의 흐름이 있죠. 아이스크림을 먹는데도 순서가 중요하거든요. 물론 한 종류만 연달아 먹을 수도 있지만 유화만 계속 먹으면 너무 묵직하고 무겁거든요.
아이스크림으로 배가 불러요?
네. 엄청 부르다기보다는 뭐를 더 먹고 싶지 않은 상태가 돼요. ‘이거면 됐다.’ 상태.
“아이스크림을 안 먹을 수는 있어도 하나만 먹을 수는 없다.”라는 얘기 자주 하시잖아요. 아이스크림을 한 번에 최대 몇 개까지 먹어 봤어요?
어… 우리가 하루에 물을 몇 잔 마시는지 굳이 세진 않잖아요. 저한텐 아이스크림이 그래요. 너무 자연스럽게 먹는 거라 세보지는 않았는데, 최근에 기억나는 건 다섯 개? 작년에 자다 말고 너무 아파서 깬 적이 있어요. 온몸을 적실 정도로 땀이 나서 눈을 떴는데 너무 아프니까 못 움직이겠더라고요. 어떻게든 진료를 받아야 살겠다 싶어서 아침까지 견디려고 냉동실에 엉금엉금 기어가선 아이스크림을 다섯 개 연달아 먹었어요.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구구콘은 먹은 기억이 나요. 무슨 일이 있어도 침대에선 음식을 안 먹는데 그날은 너무 아파서 구구콘 가루를 침대에 떨어뜨리면서까지 먹었거든요.
아이스크림을 삶의 일부라고 말씀하시는 게 이런 의미였군요.
네. 시도 때도 없이 먹는 음식이어서요. 디저트는 친구랑 밥을 먹고 “케이크 먹으러 갈까?” 하고 목적을 띠고 가는 거라면 저한테 아이스크림은 정말 삶처럼 이어지는 거거든요. “너는 휴지를 하루에 몇 번 써?” 이런 질문과 다르지 않아요.
아이스크림이 생필품이군요(웃음). 그럼 아이스케키는 어떻게 달라요? 깐도리 얘기를 하면서 우유 함량이 적어 딱딱하기 때문에 아이스크림보단 아이스케키에 가까운 것 같다고 했죠.
사실 저는 아이스케키 세대가 아니에요.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죠. 저희 아빠가 아이스크림을 정말 좋아하시는데 아빠한테 외울 수 있을 만큼 자주 들은 게 아이스케키 얘기거든요. 옛날에는 학생들이 옆으로 메는 아이스박스를 들고 다니면서 아이스케키를 팔았다는데 ‘이 부러지는 거 아니야?’ 싶을 만큼 딱딱했대요. 제 생각인데, 아이스크림에 우유를 넣으면 부드러워지는 대신 빨리 녹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스케키는 우유 함량이 적은 아이스크림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아빠의 추억 필터가 어느 정도 입혀진 거겠지만 아빤 그 딱딱한 아이스케키가 너무 맛있었대요. 그래서 항상 맛이 궁금했는데, 제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아이스케키 이미지는 깐도리인 것 같아요.
하현 씨의 아이스크림 사랑은 아버지로부터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아요.
살면서 아직까지도 저희 아빠만큼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고 많이 먹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저는 아빠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모두가 아이스크림을 다 그만큼 먹고 아빠만큼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저는 스무 살이 되고 첫 아르바이트를 배스킨라빈스에서 했는데요. 점장님이 “우리 가족은 아이스크림을 안 좋아해서 가져가도 잘 안 먹어.” 하시는 거예요. 충격이었죠. 아이스크림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처음 알았거든요. 저희 아버지는 어느 정도로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시냐면… 코로나19 백신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때 나이 때문에 1순위 접종 대상자였거든요. 그 당시엔 백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던 때라 아버지도 걱정이 좀 있으셨는데, 그때 아빠가 신신당부하신 게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서 냉동실에 넣어 놓으라는 거였어요. 아빠는 건강을 걱정해야 하는 시기에도 아이스크림이 우선인 분이시죠. 백신 맞고 열이 펄펄 나는데도 아이스크림은 꼭 챙겨드시고(웃음). 저희 아빠는 지금도 한 번 먹는다 하면 네 개는 기본으로 드시는 것 같아요.
아이스크림을 한 번에 이렇게까지 많이 먹는 사람은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저는 사람들이 다 저희처럼 먹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살 때도 조합을 고려하면서 사거든요. 과자 살 때 단짠 고려하듯, 아이스크림도 유화부터 수채화까지 그날 먹을 흐름을 생각하며 사는 거죠. 근데 남들은 하나씩만 먹는다니….
하현 씨 부녀만 있어도 우리나라 빙과 산업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아요(웃음).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곳곳에서 아이스크림 할인점이 보이잖아요. 그게 언제부터였죠?
글쎄요. 10년까진 안 된 것 같고, 먼저 세계과자점이 유행했던 것 같아요. 제가 20대 초반일 때만 해도 세계과자점이 메인이었고, 거기서 서브로 아이스크림을 팔았거든요. 요새는 회사원들이 아이스크림 할인점을 투잡으로 많이 운영한대요. 한 번에 채우기도 쉽고, 아이스크림엔 유통기한이 없어서 재고 부담도 없어서요. 권장하는 유통 기한은 제조일로부터 1년이지만 권고일 뿐이어서 판매에 제약이 없거든요. 그래서 비싼 아이스크림일수록 제조 일자를 눈 여겨 보셔야 해요. 하겐다즈 같은 경우엔 다른 아이스크림에 비해 좀 비싸니까 비교적 많이 팔리지 않아서 어떤 분은 제조한 지 5년 된 걸 샀다는 이야기도 있더라고요.
5년이요? 으악. 이런 정보는 공부해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은 아닌 것 같아요.
많이 먹고 접해 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죠. 여기저기서 아이스크림을 사다 보니까 동네별로 취급하는 아이스크림도 좀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저는 종종 아이스크림 원정도 가요. 우리 동네에서는 못 보던 아이스크림이 저 동네엔 있고, 우리 동네에선 한 칸만 차지하던 제품이 저 동네엔 메인처럼 있고…. 동네마다 아이스크림 취향이 다른가 싶기도 한데, 그 기준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디저트는 사람마다 정의가 다른 것 같아요. ‘디저트’ 하면 어떤 이미지가 제일 먼저 떠올라요?
밥이나 식사가 지인이라면 디저트는 친구예요. 그래서 반듯하지 않아도 되고, 흐트러진 채로 대할 수 있고, 편하고, 즐겁고, 재밌죠. 반면 밥은 좀더 어려운 존재예요. 일단 준비 과정이 어렵고 치우는데도 품이 많이 드니까요. 근데 디저트는, 예를 들어 빵이라면 슈퍼에서 사고, 포장지를 까고, 그대로 먹으면 끝이니까 좀더 편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존재죠.
하현 씨 머릿속 디저트는 슈퍼에서 살 수 있는 간단한 것이군요. 많은 사람이 카페에서 먹는 예쁘고 좋은 것들을 떠올리던데요(웃음).
디저트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디저트를 ‘먹는 것’으로 생각하면 맛있으면 되니까 분위기가 중요하지 않은데, 디저트를 ‘행위’로 생각하면 맛 외에 많은 게 중요해져요. 공간 분위기나 디저트의 생김새, 함께 먹는 사람 같은 거요.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마음이 편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어요. 제가 공간이나 분위기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슈퍼마켓에서 사 먹는 아이스크림이 편하게 와닿았나 봐요.
뭐든 줄 서서 먹는 거 너무 싫어요. 힘들어요. 디저트는 손님을 대접하거나 누군가와 함께 찾아 먹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저한테는 스스로 사서 먹는 거에 더 가까워요.
책 프롤로그에도 적혀 있죠. 긴 시간 줄을 서서 다녀온 유명한 젤라토 가게 이야기! 근사하고 맛있는 디저트였지만 “아무리 아이스크림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그저 고급 디저트쯤으로 기억될 뿐”이라고 쓰셨어요. 같은 아이스크림인데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요?
이건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어요. 바코드 찍고 먹으면 아이스크림, 아니면 디저트.
명쾌한데요(웃음). 《아이스크림: 좋았던 것들이 하나씩 시시해져도》를 소개할 때 “이 책은 아이스크림과 나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시더라고요. 보통은 친구 사이에 쓰는 단어여서 그런지 우정이 뭘까 묻고 싶었어요.
우정은 가장 순정한 형태의 사랑이에요. 가족은 혈연관계라서 사랑하는 거고 연인은 그 사람이 좋은 것과 더불어 무척 많은 게 끼어 있는 관계잖아요. 성인이 되고부터는 그런 조건 없이 사람이 좋아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우정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가족도, 동료도 보고 싶지 않아도 봐야만 하는 관계인데 친구는 싫으면 안 보면 그만이거든요. 아무 일도 생기지 않고요. 그러니까 아무 조건 없이도 계속 보고 싶은 상태, 계속 관계하고 싶은 상태니까 저한텐 제일 순정한 사랑이에요.
그럼 아이스크림을 향한 가장 순정한 사랑을 담은 책인거네요.
그렇게 말하니까 너무 굉장해져 버리는데요….
그 무게감을 없애 주는 문장이 “나는 아이스크림을 사랑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세상 모든 아이스크림이 사라져도 변함없이 잘 지낼 것이다.”였어요. 미련마저 없을 수 있는 진짜 순정한 사랑이구나 싶었죠.
맞아요. 그런데도 마음을 다해 좋아하는 거기 때문에 말씀하신 것처럼 “진짜 순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나눈 대화에 전부 고개를 끄덕였는데 책을 읽으며 딱 한 대목에서만 갸웃하게 됐어요. “냉동 블루베리를 섞은 요거트도 아이스크림으로 치는 관대한 입맛”이라니, 요거트가 어떻게 아이스크림이에요?
아, 이건 부연 설명이 필요한데요. 제가 얼마 전 건강검진을 받고 공복혈당장애 위험 진단을 받았어요. 그 이후 한동안 건강 챙긴다고 아이스크림 대용으로 먹곤 했던 건데, 냉동 블루베리를 컵에 잔뜩 붓고요, 요거트를 한 팩 뜯어서 넣고 섞은 다음 3분 정도 기다리는 거예요. 그럼 그게 완전한 고체가 돼요. 땡땡 얼어서 컵을 뒤집어도 떨어지지 않는 상태가 되죠. 그걸 숟가락으로 떠먹으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단 욕구가 100퍼센트 충족돼요.
(끄덕이며) 인정, 그건 아이스크림이죠. 블루베리 토핑을 얹은 요거트 아이스크림(웃음). 그럼 이참에 아이스크림의 범위를 한번 설정해 볼까요? 이를테면… 얼린 바나나는?
저한테 아이스크림은 ‘달콤한 고체 상태의 우유 얼음’이에요. 얼린 바나나는 아이스크림이라고 할 순 없지만 아이스크림 카테고리이긴 하죠. 근데 빙수는 아니에요. 엄연한 디저트예요. 왜냐하면 집에서 밥 먹고 “빙수나 하나 만들어 먹어야지.” 이게 안 되거든요. 친구를 만나서 “저기 빙수가 맛있대. 먹으러 가자.” 하는 먹거리니까요. 다만 슈퍼마켓에서 파는, 우유 부어 먹는 빙수는 아이스크림이에요(웃음). 그건 밥 먹고 “하나 먹어야지!” 하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으니까요.
기준이 명쾌해서 속이 다 시원하네요. 특별히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브랜드 있어요?
옛날엔 콜드스톤 정말 좋아했는데 이젠 다 철수한 것 같고, 나뚜루 좋아해요. 특히 녹차 아이스크림. 하겐다즈가 우유가 많이 섞인 꾸덕꾸덕한 녹차 아이스크림이라면 나뚜루는 좀더 천연 녹차의 맛이 많이 나요. 바코드류 아이스크림 중에는 빙그레 제품을 많이 먹고 있어요. 평소에 어디서 만들었는지 따지면서 먹진 않는데 이번에 책 쓰면서 먹는 아이스크림마다 어디 제품인지 하나하나 찾아봤거든요. 근데 빙그레에서 나온 사람처럼 제가 먹는 것 중에 빙그레 제품이 정말 많더라고요. 비비빅, 메로나, 따옴바, 붕어싸만코, 투게더….
아이스크림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녹는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빨리 먹어야 한단 인식이 있는데, 디저트 하면 많은 사람이 ‘여유’를 떠올리는 것 같아요.
저는 그게 아이스크림의 매력 같아요. 사람을 좋아할 때도 그 사람 자체가 괜찮아서 좋아할 수도 있지만 매력적이어서 좋아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문보영 시인이 어느 에세이에 ‘장 볼 때 아이스크림을 사면 마음이 급해진다.’라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어요. 그게 저한테는 즐거움이거든요. 빨리 가서 먹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니까 그저 예뻐할 수밖에 없게 돼요.
아이스크림이 녹는 것에 대해 “아무도 봐주지 않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멋대로 구는 것.”이라고 했죠. 이 대목뿐 아니라 하현 씨 글을 읽으며 평등이란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인상을 종종 받았어요.
저한테 제일 멋있는 사람은 ‘강강 약약’인 사람이에요. 강자한테 강하고 약자한테 약한 사람이요. 그런 사람이 되려면 권력이나 권위에 쫄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려면 이미 권위를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그걸 갖고 싶어 하지 않아야 해요. 근데 저는 권력과 권위가 너무 갖고 싶은 사람이거든요. 전 아직 그런 사람이 못 되고, 앞으로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멋있다고 생각하는 거고요. 아이스크림이 누구에게나 멋대로 녹을 수 있는 건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아서예요. 근데 전 두려운 게 너무 많은 사람이어서 아이스크림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나눈 대화에 전부 고개를 끄덕였는데 책을 읽으며 딱 한 대목에서만 갸웃하게 됐어요. “냉동 블루베리를 섞은 요거트도 아이스크림으로 치는 관대한 입맛”이라니, 요거트가 어떻게 아이스크림이에요?
아, 이건 부연 설명이 필요한데요. 제가 얼마 전 건강검진을 받고 공복혈당장애 위험 진단을 받았어요. 그 이후 한동안 건강 챙긴다고 아이스크림 대용으로 먹곤 했던 건데, 냉동 블루베리를 컵에 잔뜩 붓고요, 요거트를 한 팩 뜯어서 넣고 섞은 다음 3분 정도 기다리는 거예요. 그럼 그게 완전한 고체가 돼요. 땡땡 얼어서 컵을 뒤집어도 떨어지지 않는 상태가 되죠. 그걸 숟가락으로 떠먹으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단 욕구가 100퍼센트 충족돼요.
(끄덕이며) 인정, 그건 아이스크림이죠. 블루베리 토핑을 얹은 요거트 아이스크림(웃음). 그럼 이참에 아이스크림의 범위를 한번 설정해 볼까요? 이를테면… 얼린 바나나는?
저한테 아이스크림은 ‘달콤한 고체 상태의 우유 얼음’이에요. 얼린 바나나는 아이스크림이라고 할 순 없지만 아이스크림 카테고리이긴 하죠. 근데 빙수는 아니에요. 엄연한 디저트예요. 왜냐하면 집에서 밥 먹고 “빙수나 하나 만들어 먹어야지.” 이게 안 되거든요. 친구를 만나서 “저기 빙수가 맛있대. 먹으러 가자.” 하는 먹거리니까요. 다만 슈퍼마켓에서 파는, 우유 부어 먹는 빙수는 아이스크림이에요(웃음). 그건 밥 먹고 “하나 먹어야지!” 하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으니까요.
어떤 게 두려워요?
인생이 피곤해지는 거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생기는 걸 두려워해요.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면 힘들거나 어려울지언정 두렵지는 않은데, 그게 아닐 때는 좀 패닉에 빠지더라고요. 그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지금 당장 갖고 싶은 권력은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권력이에요. 저는 돈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럼 싫은 걸 안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싫은 걸 좋아하는 척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요.
그런 경험이 있어요?
그럼요. 길지 않지만 사회생활할 때 사람 좋아하는 척을 참 많이 했어요. 저는 MBTI로 따지면 I(내향형) 99퍼센트인 사람이거든요. 회식이 정말 피곤하고 술자리도 힘들어하는데, 어차피 가야 하는 거라면 싫은 티를 내서 저한테 좋은 게 없다는 걸 아니까… 자꾸 좋아하는 척하는 일이 많았어요. 제가 외향적인 척도 잘하고, 인싸인 척도 잘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그런 시간을 보낸 후엔 집에 와서 영혼까지 빨려 나간 느낌이 들더라고요. “저는 회식 빠지겠습니다!” 자신 있게 말하는 상상을 많이 했는데 뜻대로 안 됐어요.
요새는 그런 일 거의 없죠?
오해를 살 수 있어서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건데, 제가 행사나 인터뷰 같은 걸 순수하게 좋아하진 않아요. 할 땐 정말 즐겁고 행복해요. 음… 아뇨, 정정할게요. 제가 어려워하는 건 그런 자리보다도 ‘말’인 것 같아요. 글은 쓰고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지만 말은 그렇지 않잖아요. 저는 서비스센터에 전화할 때도 할 말을 메모해두고 전화하거든요.
저도요. 스크립트 써놓고 그대로 읽어요.
정말요? 와, 반갑네요. 이런 일들이 저한테 되게 스트레스예요. 글은 계속 고칠 수 있는데 말은 하고 나면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게요. 그래서 저는 배달 앱 생긴 게 너무 좋아요. 전화로 뭘 주문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솔직히 친구들도 메시지로 먼저 전화해도 되는지 물어보고서 전화해 주면 좋겠어요.
동감! 모르는 번호로 전화 오면?
안 받아요(웃음).
하이파이브라도 하고 싶네요(웃음). 책에서’소포모어 징크스’ 이야기를 하시는데요. 우수한 성적을 내던 신입생이 2학년이 되어 부진을 겪는 현상을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많은 작가가 ‘가장 최근의 작업이 가장 좋아하는 작업이다.’라는 류의 이야기를 종종 하는데, 그걸 생각하면 조금 의외였어요.
그렇다고 첫 작업이 가장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사실 저는 제 첫 책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거든요. 거기엔 지금의 제가 동의할 수 없는 생각과 말이 너무 많아요. 그 책엔 열아홉 살 때 쓴 글도 들어가 있으니까요. 저한테 책이 성공했다는 기준은 딱 두 개예요. 많이 팔렸거나 이 정도면 잘 썼다고 스스로 생각하거나. 첫 책은 제 기준에서 많이 팔렸기 때문에 질책에서 피해 갈 수 있었는데요. 둘째, 셋째 책은 많이 팔지도 못했는데 제가 좋아하지도 못하는 책이어서 좀처럼 예뻐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오히려 김이슬 작가랑 함께 쓴 《우리 세계의 모든 말》은 많이 팔리진 않았지만 저한텐 성공한 책이에요. 왜냐하면 제가 그 책을 많이 좋아하니까요. 어쩔 수 없이 저한테 가장 영향력 있는 독자는 저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일단 제가 좋아야 성공한 거고요.
그럼 이번 책은 어때요?
지금까지 쓴 책들 중에선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 책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아쉬운 부분은 있죠. 아이스크림 책이다 보니까 여름에 출간해야 시기적으로 잘 맞아서 일정이 많이 빡빡했어요. 책을 내고 가질 수 있는 마음은 두 가지인 것 같아요. ‘이 책은 1년을 더 줬어도 이렇게밖에 쓸 수 없었을 거야.’ 하는 것과 ‘시간이 더 있었다면 이보다 더 잘 쓸 수 있었을 거야.’ 싶은 마음이요. 아이스크림 책은 후자였어요. 시간이 있었다면 더 많은 아이스크림을 더 잘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죠. 그 아쉬움만 뺀다면, 역시 좋아할 수 있는 책이에요.
못다한 아이스크림 얘기나 에피소드가 있어요?
책에 아이스크림이랑 이야기를 하나씩 페어링 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정말 좋아하는데 에피소드를 못 찾아서 못 쓴 아이스크림이 있어요. 폴라포랑 찰떡아이스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고 자주 찾아 먹는데 마땅히 페어링 할 에피소드가 없더라고요. 그렇다고 쥐어짠 에피소드는 안 쓰느니만 못한 것 같아서 이야기가 쌓인 뒤에 쓰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있어요. 또 꼭 싣고 싶었는데 취재가 필요할 것 같아서 못 실은 게 아이스크림 가격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아이스크림이 한때 정가제를 시행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그게 폐지돼서 부르는 게 값이에요. 편의점에서는 메로나가 1,200원인데, 아이스크림 할인점에서는 500원, 600원이면 사고 동네 마트에선 가끔 300원에도 살 수 있거든요. 그게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분명히 원가가 있고, 계산법이 따로 있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천차만별인지. 만약 백설탕을 이렇게 판매했다면 사람들이 받아들였을까요? 근데 아이스크림은 다들 자연스럽게 천 원에도 사고, 300원에도 사고 있으니까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더라고요.
지난 《AROUND》 인터뷰에서 “책을 몇 권 냈으니 뭔가를 이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라고 이야기했죠. 작가라는 타이틀에 대해 지금 생각은 어때요?
그 인터뷰가 작년 이맘때였을 텐데, 그사이 책은 딱 한 권 더 냈는데 저한테 확실히 달라진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작년만 해도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 책을 낸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지금은 책을 냈으면 뭐라도 이룬 게 아닌가 싶어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대단한 걸 이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옛날에는 마음속에 이상적인 내 모습을 만들어두고 좋은 책을 쓰면 제가 그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지금은 꼭 책이 아니더라도 이상적인 제가 되는 방법은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오히려 책을 내는 그 행위 자체는 저한테 그렇게까지 대단한 일이 아니게 된 거죠. 그래서 책을 대하는 마음이, 지금은 너무 편하고 좋아요.
이상적인 모습은 어떤 거예요?
음, 이상은 인간적인 면도 그렇지만 조건적인 부분에서 더 큰 것 같아요. 30대 평균만큼 벌어서 내 삶을 책임질 수 있고, 노후가 불안하지 않고, 나 하나 스스로 먹여 살릴 수 있는…. 옛날엔 이걸 책으로 이루고 싶었거든요. 사실 우리나라에선 말도 안 되는 꿈이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책을 내고도 전업이 되지 못해서 ‘아직 못 이뤘어. 아직 멀었어.’ 한 건데, 지금은 제 생계를 책임지는 건 다른 일로도 충분히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요. 그러고 나니 마음이 많이 편해지더라고요. 옛날에는 책을 내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매달리듯 좋아하다 보니 힘든 지점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좀더 산뜻하게 좋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소포모어 징크스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이 의심일 거라고 이야기했잖아요. 어쩌면 책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그런 의심을 떨쳐버리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요즘 제가 에세이를 쓰고 싶어서 쓰는 건지, 에세이를 쓸 수 있어서 쓰는 건지를 의심하며 지내는데요. 혹시 ‘롤러코스터 타이쿤’이라는 게임 아시나요? 제가 아이스크림 책 마감한 이후부터 그 게임을 다시 시작했는데 지금은 ‘플래닛 코스터’라고, 이전 롤러코스터 타이쿤이 업그레이드 돼서 새로 출시됐거든요. 제가 지어놓은 놀이공원에서 사람들이 놀러 오는 수준이던 게임이 지금은 건축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처럼 발전해서 되게 어려워졌어요. 기술을 습득하는 시간이 필요한 게임이라 매번 하나씩 기술을 배워가면서 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할 때마다 제 기술이 느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지금까지 다섯 개 정도 공원을 만들었는데, 신기한 게 후에 만든 거라고 더 잘 만들거나 더 마음이 가지는 않아요. 다섯째 만든 공원보다 셋째 공원이 마음에 들고, 게임 속 사람들도 거기서 더 큰 만족도를 느끼더라고요. 이 게임을 하면서 창작의 영역은 내가 들인 시간이나 노력에 꼭 비례하는 결과물을 주지는 않는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사실 머리로는 아는데 글 쓰면서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거든요. 근데 이걸 게임으로 익히니까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더라고요.
꼭 최신작이 좋을 거란 장담도 없고, 오히려 전보다 초기 작업이 좋아질 수도 있다는 걸 몸소 느낀 거네요. 다시 디저트 이야기를 해볼게요. 우리나라 디저트 문화가 언젠가부터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카페가 신기할 정도로 빨리 생기고, 없어지고, 해외의 디저트도 쉽게 들어오는 것 같고요.
사명감이 드는 질문인데 제 생각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같은 시각적인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런 분야에선 더 빨리, 더 화려한 걸 보여줘야 살아남을 수 있잖아요. 패션 분야에서 스파 브랜드가 나오듯, 디저트도 그런 식으로 패션화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게 좋은지 나쁜지는 잘 모르겠고, 제가 판단할 일도 아닌 것 같은데요. 소비자로서는 가끔 당황스러울 때가 있어요. 유행이 벅찰 때가 있거든요. 한때 유행하던 스콘을 인제 좀 먹어보려는데 이제는 꽈배기라데요(웃음). 꽈배기를 먹어 보려 하니까 갑자기 런던 베이글이 유행한다고 하고요.
소비자 취향을 고려하기보다는 유행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가 유행에 맞춰가는 거죠.
저는 유행에 피로감을 느끼는 편이어서 늘 곁에 있는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더 자주 찾는 것 같기도 해요.
맞아요. 꾸준하니까 마음이 편해요. 마음먹고 찾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요. 앞서 말한 유행하는 디저트들은 먹기 위해 줄도 서야 하고, 멀리 나가야 접할 수 있는 음식이거든요. 큰맘 먹고 ‘그래, 오늘은 기필코 한번 먹어보자!’ 하고 가는 거죠. 근데 제가 말하는 아이스크림은 아무 데나 가서 아무렇지 않게 사 먹을 수 있으니까, 전 그게 좀더 편하고 마음이 가요. 멋있는 친구도 좋지만 아무래도 편한 친구가 좋잖아요. 메로나 먹을 때 특히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요새 따옴바에 빠져 있지만, 따옴바는 ‘앞으로 몇 년이나 더 먹을 수 있을까.’ 싶어서 더 많이 찾게 되는 심리도 있거든요. 근데 메로나는 한 번도 이걸 앞으로 못 먹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믿음직스럽달까요.
인생 슬로건이자 장래 희망이 부유하고 명랑한 독거노인이라고 했어요. 얼마 전에 로또에 당첨되면 아이스크림 백화점을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하시던데, 그 백화점 한 번 건설해 볼까요?
좀 설레는데요(웃음). 일단은 아이스크림 할인점보다 규모가 클 것 같고요. 규모가 크니까 코너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콘 아이스크림 코너, 바 아이스크림 코너, 비건 아이스크림 코너…. 우선 국내에 유통되는 아이스크림을 다 입고해 놓은 다음에 월별로 테마를 정해서 아이스크림 큐레이션을 하고 싶어요. ‘가을에 먹기 좋은 아이스크림’이나 ‘운동하고 먹기 좋은 아이스크림’ 같은 거요. 사실 요즘 상상하는 건 작품과 연결 짓는 건데요. 두 달에 한 번 정도 작품을 하나 정하는 거예요. 영화라든가 소설이라든가…. 그 작품 주인공이 먹었던 디저트를 모아서 판매하는 거죠. 제가 만든 백화점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찰리와 초콜릿 공장 같아요. 환상적인 느낌! 직원도 여럿 있겠죠?
여럿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상황과 여유가 되면 그렇게 할 것 같아요. 사실 로또 1등에 당첨된다고 해도 제가 감히 만들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상상만으로도 좋아요.
이렇게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데 공복혈당장애 위험 상태라니. 건강이 자꾸 마음에 걸리네요.
그래도 살 날이 많으니까 지금부터 관리하면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조금씩 신경은 쓰고 있는 단계죠. 그래서 이 가방 이상은 사지 않아요. (노란 보냉백을 손에 쥔다.)
아, 이게 그 ‘아이스크림 가방’!
맞아요. 클라우드 맥주를 사면 사은품으로 주던 보냉백이라는데, 작은 캔맥주가 딱 아홉 개 들어간대요. 아르바이트할 때 같이 일하던 언니가 준 건데 굉장히 잘 쓰고 있어요. 아이스팩 넣고 아이스크림 담으면 20분 정도는 거뜬히 옮길 수 있더라고요. 이 가방에 아이스크림이 생각만큼 많이 안 들어가거든요. 그래서 혈당에 유의하는 저한테 굉장히 유용한 아이템이에요. 제 원칙은 하나예요. ‘이 가방에 못 담을 만큼 사지 않을 것.’
그 약속 꼭 지켰으면 좋겠어요. 그럼 이 가방 들고 아이스크림 쇼핑 함께 나가 볼까요?
좋아요. 아이스크림 먹기 좋은 장소도 보여 드릴게요!
유화 01 | 비비빅 흑임자맛
“여름보다 가을이나 겨울에 어울리는 아이스크림이에요. 오리지널 비비빅 안 좋아하는 사람들도 이건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포근하고 다정한 맛이에요.”
유화 02 | 쑥이랑 떡이랑
“쑥 아이스크림에 쫀득쫀득한 떡이 들어간 샌드 아이스크림이에요. 자주 볼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오늘 대접하려고 아이스크림 할인점을 옆 동네까지 뒤졌는데 결국 못 찾았어요. 아, 지난주엔 분명히 있었는데….”
수채화 01 | 따옴바 패션후르츠맛
“따옴바 시리즈가 전체적으로 훌륭한데 그중에서도 저는 패션후르츠맛이 제일 맛있더라고요. 상큼하고 달콤해서 디저트 아이스크림으로 딱이에요.”
수채화 02 | 아이스팜 자두맛
“자꾸 드셔 보시라고 권하는 건 많이 팔려야 저도 계속 먹을 수가 있어서예요. 보이면 자주 먹어주세요. 계속 나올 수 있게요!”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