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향한 여행

알바 알토 ― 건축가

헬싱키에서 보낸 얼마간의 여름날들은 모두 한 사람, 핀란드 건축가 알바 알토Alvar Aalto를 향했다. 그가 가족과 오랜 시간을 살았던 집을 엿보는 것으로 시작한 여행은 그가 설계했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거나 그의 궤적을 훑는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그가 설립한 가구 회사에서 가구와 소품 몇 점을 사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에게 건축 실무를 익힌 빌리오 레벨Viljo Revell이 설계한 갤러리를 찾아가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언제부턴가 건축만을 좇는 여행은 부러 피해왔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무척이나 의외인 이 여정이 이 도시에서만큼은 자연스러웠다. 그만큼 이곳에는 그가 남긴 아름다움이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빌라 알토

Villa Aalto

알바 알토와 그의 아내, 아이노 알토Aino Aalto 가 함께 설계하고 두 아이와 살던 주거 공간이자 오랜 시간 부부의 사무실로도 사용되었던 빌라 알토의 입구를 지나자 가장 먼저 거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거실의 한 면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깊게 들어온 햇빛이 흰색 벽면과 목제가구의 결에 부드럽게 반사되어 거실의 공기를 따뜻하게 데우고 있었다. 거실과 연결된 사무실에 몇 줄의 제도대가 가지런히 줄지어져 놓여있었다. 

빌라 알토에서 약 450미터 정도 떨어진 스튜디오 알토Studio Aalto를 짓기 전까지 약 20여 년간 그와 그의 아내가 몇 명의 직원들과 함께 사용한 곳이었다. 모더니스트 건축가가 고집하는 조형미, 시대 정신의 구호 아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인위적인 차가움, 얼마간의 불편함이 그의 빌라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친밀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공간을 메웠다. 물론 그의 건축에서도 벽 하나 혹은 벽돌 한 장조차 그저 단순히 세워지거나 얹혀지지 않은 것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집은 그러한 건축가의 치밀한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그의 건축 언어보다도 이 집에서 이루어졌을 한 가족의 잔잔한 삶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단순히 보면 집은 두 개의 층으로 나뉜 이층집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사실 그 안에는 훨씬 더 많은 높낮이가 존재했다. 사무실은 거실보다 계단 두 단 정도가 높았고 다시 사무실 한쪽 끝에 있는 네다섯 단 정도의 계단을 오르면 작은 서재가 나타났다.

방문객에는 허락되지 않았던 그 좁은 계단과 작은 문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호기심을 애써 눌렀다. 우리는 그들의 집 안과 밖을 몇 번이고 걷고 오르내리며 허락된 시간이 끝날 때까지 머물렀다. 한눈에 읽히지 않던 평면과 공간을 발과 몸으로 익힐 수 있었다. 알바 알토가 만든 공간들은 다채롭고 생생했다. 그 풍성한 감흥은 표면적인 화려한 장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다층적으로 분할되고 재결합 된 다양한 구성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의 집을 나서며 2014년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Vitra Design Museum에서 알바 알토에 관한 전시를 디렉팅했던 마테오 크리스Mateo Kries의 평을 떠올렸다. 그는 알토가 건축을 그 시대 특정한 이념의 산물로 여기기보다는 빛, 면, 소리, 기후적 조건이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자연의 생태계로써 이해했다고 언급했다. 그의 평처럼 알토의 모더니즘은 바우하우스Bauhaus의 기능적, 조형적 엄격성을 넘어서 자연을 닮고자 하는 핀란드의 가치와 일상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의 미감이 이 땅에서 이토록 오래도록 공감되고 전해지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아르텍

Artek

알바 알토가 세상을 떠난 지 4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의 건축과 디자인이 남긴 유산은 묵직하다. 건축뿐 아니라 조명, 가구, 작은 소품 등을 직접 디자인하고 대량 생산하기 위해 그가 공동으로 설립한 가구회사 아르텍은 설립된 지 80여 년이 지나도록 변함없이 핀란드 디자인을 대표하고 있다. 예술과 기술이라는 두 단어를 조합해 만들어진 ‘Artek’이라는 이름처럼 알바 알토는 재료와 생산기법에 대해 끊임없이 실험하고 연구했다.

가구 제조업자와 함께 나무를 구부리는 새로운 기법을 고안하기도 했는데 부드러운 곡선의 L자형 다리로 너무도 잘 알려진 의자인 스툴 ‘60 Stool 60’이 바로 자작나무 조각으로 합판Laminated wood 여러 장을 접착하여 구부리는 새로운 기법으로 제작된 것이다. 헬싱키에서 세시간 정도 떨어진 도시 이위베스퀼레Jyväskylä 에 있는 알바 알토 뮤지엄에는 그가 나무 의자의 부드러운 곡선을 성형하기 위해 고안한 도구가 전시되어 있었다. 도구는 그 자체로도 이미 아름다웠다.

디트리첸 미술관

Didrichsen Art Museum

헬싱키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아침, 알바 알토에게 몇 년간 건축 실무를 익힌 빌리오 레벨이 설계한 디트리첸 미술관을 찾았다. 사업가 군나르 디트리첸Gunnar Didrichsen의 집이자 그가 소장했던 예술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로 설계된 이곳은 알토의 건축과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원래 알바 알토에게 설계를 의뢰하였던 디트리첸에게 레벨을 소개한 것이 바로 알토였음을 생각하면 그다지 놀랍지 않은 일이다. 거실 한가운데 작은 정원, 따뜻한 느낌의 목재가 주를 이루는 마감재, 복합적인 공간 구성에는 인위적이지 않은 여유와 차분함이 그대로 배어있었다. 그것은 알바 알토가 설계한 레스토랑 사보이Restaurant Savoy나 아카데믹 서점Academic Bookshop, 알바 알토 뮤지엄에서도 받았던 한결같은 감흥이었다.

거실에 난 커다란 창으로 건물 뒤편에 펼쳐져 있는 호수와 자작나무 숲의 풍경이 그대로 내려다보였다. 비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건물의 뒤뜰을 둘러 걸었다. 비 내리는 헬싱키의 7월 공기는 맑고도 차가웠다. 몇 해 전 스위스 건축가 발레리오 올지아티Valerio Olgiati는 마흔네 명의 현대 건축가들에게 건축의 본질로 여기는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묻고, 그 이미지를 모아 《The Image of Architects》라는 책을 펴냈다. 만약 알바 알토가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그는 어떤 이미지를 골라 내놓았을까. 혹 그윽하게 안개가 내린 이 호젓한 핀란드 호숫가의 모습이 포함되어 있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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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포토그래퍼 이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