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짝 두 발짝

만화 <개구리 왕눈이> 주제가에 이런 가사가 있다. “일곱 번 넘어져도 일어나라.” 넘어짐도 기꺼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한 발짝 두 발짝 나아가는 이야기, 아무래도 멋진 이야기.

가장 필사적으로 숫자를 셀 때
클라이밍 | 북디자이너 이지선

클라이밍의 기초

 

1. 인공 암벽을 만드는 손잡이들을 홀드라고 부른다.

 

2. 양손을 좌우로 벌려 홀드를 잡고 두 발은 모아 딛는다. ‘삼지점’이라 부르는 역삼각형의 꼭짓점을 잡은 모습이다. 팔은 늘어뜨리고 다리는 90도 정도로 굽히되 무릎은 몸 밖으로 향하게 해 몸을 벽에 붙인 개구리처럼 만든다. 움직일 때도 정삼각형·역삼각형 삼지점을 유지하며 이동해야 균형을 유지하기 쉽다.

나의 기초를 만들었던 코치는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고 검게 탄 얼굴로 ‘클라이밍은 바위에서 하는 발레’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 뭐 하고 있었더라…. 벽에 붙어 10분간 내려오지 않기 훈련을 하며“제가 이걸 왜 해야 할까요?”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되었냐면, 친구가 배워두면 60살까지는 이거 하면서 놀 수 있을 것 같다며 시켰다.

완벽한 저질 체력으로 시작한 기초반에서는 체력 강화 운동과 클라이밍을 함께 가르쳤다. 25분짜리 워밍업 코스를 돌고 나면 귀에선 이명이 울렸다. 한 시간 수업을 끝낸 뒤에 복습하고 가라는 코치의 말을 뒤로하고 비틀비틀 집에 와 곯아떨어지면 한두 시간은 그냥 지나갔다. 60살까지 할 운동익히려다 60살을 맞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주 2일, 반년 뒤엔 주 3일씩, 1년 반 뒤에는 주 5일씩 운동하다 보니 등짝에 근육으로 눈, 코, 입이 생겼다. 지금은 주 3회쯤 쉬운 것만 하면서 다니고 있다.

겨우 반 층쯤을 터서 만든 실내 암장이라도 4미터 꼭대기에 서면 세상의 벼랑에 오른 것 같다(고소공포증 있다). 이런저런 맨몸 운동으로 몸을 데운 뒤, 몸풀기용으로 마련된 0에서 10까지 숫자 모양 홀드를 잡는다. 0, 1, 2, 3을 따라가며 데운 몸을 늘려준다. 그러고 나선 점점 어려운 코스로 가며 다시 1부터 20을 세고 40, 60을 센다. 뒤에서 보면 빤히 보이는 숫자 테이프들이 벽에 붙어서 찾으려면 그렇게 안 보일 수가 없다. ‘16… 17… 17? 17! 18… 19, 20, 21! 아니 21을 여기붙여두면 어쩌란 거야?’ 이런 정도가 내가 암장에서 생각하는 전부다. 수많은 원고를 머리에 넣고 이걸 어떻게 읽어야 할지 고민하느라 좋지도 않은 머리를 굴리는 시간을 멈추는 법을 나는 클라이밍에서 발견했다. 20이 너무 미끄럽다든가 36이 너무 무서운 곳에 있다든가 속으로 소란을 떨면서 겉으로는 차분한 척, 목숨을 건 나무늘보처럼 신중하게 움직이지만 비명은 자꾸 터져 나온다. 죽는다며 소스라쳐도 실상은 지면에서 발이 50센티도 안 떨어져 있을 때가 많다.

권할 만하냐고 묻는다면 언제나 그렇다. 사람 말고 벽 보고 할 수 있고 맘먹으면 우르르 모여서도 할 수 있고, 진짜 암벽인이 되겠다며 산으로 나서는 것도 가능하다. 화나는 날엔 암장에서 오만상을 쓰고 오르다 웃기는 포즈로 떨어지다 보면 집에 갈 즈음엔 적당히 화가 덜 나기까지 한다(풀린다곤 안 했다). 암벽의 발레리나까진 못 해 먹겠지만 플라스틱을 세는 명상이라면 계속해 볼 만한 것 같기도…?

주로 책을 만드는 디자이너다. 남의 이야기에 맘을 자꾸 쏟다가 마음이 약해졌다. 사실은 원래 그랬다.

운동에 대하여 말해보자
롱보드 | 뮤지션 조민경

어린 시절, 내가 놀이기구에 느낀 공포는 안전장치에 대한 불신에서 왔다. 거꾸로 매달린 순간 내가 안전 바 아래로 흘러내릴 것 같았다. 조임쇠가 덜 잠긴 것 같았고, 안전 조끼가 벗겨질 것 같았고, 놀이기구가 크게 스윙할 때 내가 튕겨 나갈 것 같았다. 반면에 자전거, 롤러블레이드, 아이스스케이트, 스키 따위는 무서웠던 적이 없다. 무릎 보호대도 안 차고 수도 없이 넘어지고 깨지고 다쳤고, 일어나서 계속 탔다. 전문가들의 기술보다 내 신체의 가능성을 더 신뢰하던 시절이 있었나보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놀이기구는 불안하지 않고, 자전거 앞에서 머뭇댄다. 이제 나도 어른이
고, 넘어지는 일은 피하고 싶으니까.

넘어지는 것이 창피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무섭다. 자라면서 더 무서워진 것 같다. 이것은 본능에 가까운 감각이다. 내가 넘어져 봤자 며칠 쓰라리거나 얼얼한 정도일 텐데, 고작 그 정도 아픔이 무서워 넘어지고 싶어 하지 않는 감각이 의아했다. 롱보드에는 그래서 이끌린 것 같다. 지난가을 호숫가 광장에서 보드 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다소 황홀했다. 인간의 두 다리만으로는 갈 수 없는 속도로 길을 유영하는 보드, 그리고 그 위에서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라이더의 댄싱. 보드는 사람의 몸짓이 동력인 놀이기구였다. 그 위태로움과 유려함 사이의 균형, 바람을 타는 그 속도의 위험에 나는 매료되었다.

그렇게 롱보드를 시작했다. 처음 며칠간은 안 쓰던 근육들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풀리길 반복하며 온몸이 얼얼했지만 기우뚱거리면서도 용케 엉덩방아는 피했다. 그것이 오히려 중력에 대한 공포를 가중시켰다. 안 넘어지니까 넘어지는 게 더 두려웠다. 그보다 더 두려웠던 것은 내가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이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어둠 속에서 쌩쌩 달리다가 보드가 돌부리에 걸려 튀어 올랐고 나는 허공에 붕 떠올랐다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아팠다. 하지만 괜찮았다. 나는 다시 일어나 보드에 올라섰고, 조금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평생 운동이 하고 싶었던 적이 없다. 늘 운동보다 재미있는 일이 있었고 정신력이 체력을 압도했다. 하지만 건강하고 너그러운 삶을 위해 운동은 필수 불가결하다.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점이 온 것 같다고 비교적 최근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는 목적만이 전부는 아닌 운동을 하고싶었다. 운동하는 사람마다 즐거움을 느끼는 지점은 제각각일 것이다. 나에겐 위험 같다. 위험이 두렵지 않아서가 아니라, 두려워서. 실패를 마주 봐야 하니까.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나의 본능을 거슬러, 나는 넘어지고 싶다. 안 넘어질 수 있을 때까지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싶다. 그 마음을 지켜내는 것이 내게는 운동이다. 내 몸과 함께 마음에도 잔 근육을 기르고 싶다.

밴드 UHF, 극초단파를 거쳐 스위머스와 열섬의 음악가로, MBC 라디오 PD로, 더없이 다정한 한 사람과 한 고양이의 반려인으로, 딸이자 언니이자 친구로, 여성으로 살고 있다.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서핑 | 특수교사 전소연

내가 서핑을 시작하게 된 건 단순한 호기심에서였다. ‘과연 나도 할 수 있을까?’ 30대 후반에 수영을 시작하며 물에서 하는 운동에 자신감이 붙었지만 중년의 나이에 서핑을 배운다는 것은 그야말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어느 날 문득 용기를 내어 2박 3일 동안 서핑을 배우기로 하고 양양으로 향했다. “엄마 파도타기 좀 배우고 올게.” 세 살배기 아들과 열 살짜리 아들은 남편에게 맡겨 두었다. 육아를 하고 있는 워킹맘이 서핑을 하려면 용기뿐만 아니라 다른 노력도 따라야 했다. 그만큼 어렵게 만든 기회이기에 서핑하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파도와 나. 그것뿐이었다. 그게 좋았다.

처음은 테이크 오프Take Off가 목표였다. 보드 위에 서는 것을 말한다. 처음 강습을 받을 땐 강사님이 언제 일어서야 하는지 외쳐 주신다. 심지어 보드도 밀어 주신다. 테이크 오프를 몇 번 성공하고나면 그 짜릿함에 더 잘해보고 싶어져 다음 기회를 결심하게 된다. 사흘 연속 서핑을 해서 너덜너덜해진 몸 상태로 집에 오지만 입가에는 웃음기가 번져 있다. 기분 좋은 근육통이 밀려온다. 다음은 파도를 혼자서 잡아보는 것이 목표였다. 좋은 파도를 만나야 하기에 좋은 파도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이왕이면 여행도 하면서 말이다. 짧게라도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면 서핑 스팟을 찾아다녔다. 오키나와로 다낭으로 송정으로 양양으로 만리포로 서핑 여행이었다. 발리는 긴 휴가를 받으면 그때 가려고 아껴 두었다. 

파도를 잡은 날보다 파도를 놓친 날이 더 많았다. 좋은 파도보다 밋밋하거나 거친 파도를 만나기 일쑤였다. 파도를 타는 실력은 그다지 늘지 않았지만 차트에 1미터짜리 파도가 들어와도 보드를 들고 바다로 들어갈 수 있는 자신감은 생겼다. 1년에 두어 번 서핑을 해서는 도무지 실력이 늘지 않았다. 매번 리셋되는 기분이고 만년 비기너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육지에서 몸만들기였다. 스쿼트, 플랭크, 버핏 등 코어 근육을 강화하면 서핑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듣고 한동안 홈트레이닝을 해보았다. 성과가 없진 않았지만 한 계절을 버티지 못했다. 짬짬이 서핑 영상을 보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보았다. 아니 지금도 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만든 이미지와 현실의 나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커서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만 느끼게 해줄 뿐이었다.

‘서핑의 매력이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선 내 안에 깊이 내재해 있는 도전 의식을 발동하게 한다. 마치 나쁜 남자 같다. 파도를 타기 위해 보드를 들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부터 파도를 타고 해변으로 떠밀려오는 순간까지, 테이크 오프를 성공하든 그렇지 않든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생각보다 센 파도에 귀싸대기라도 한 대 맞으면 그야말로 번쩍!

서핑은 인생이랑 닮아 있는 운동이다. 나만 균형 감각이 좋다고 되는 운동이 아니고 때를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고, 파도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기도 해야 하고, 내 한계를 인정할 줄도 알아야 하고, 다른 사람을 살필 줄도 알아야 하고, 기회가 오면 잡을 줄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이런 생각들을 하는 곳이 출렁이는 바다 위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서핑을 제대로 배운다면 인생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이라고 외치며 할머니가 될 때까지 서퍼로 살아갈 계획이다. 만년 비기너라 할지라도.

아이들과 눈을 맞추기 위해 이름을 수십 번 부르는 특수교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 여행과 사진을 좋아해 방학이면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는다. 그 덕분에 책도 몇 권 냈다. 요즘은 구독자를 늘릴 궁리를 하며 <특뽀입니다> 유튜버로 활동 중이다. 이번 생에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다.

나의 자전거는 오늘도 달려간다, 술집으로
자전거 | 팟캐스트 <시시콜콜 시시알콜> 진행자 김혜경

내가 살고 있는 마포구는 이상한 동네다. 어떤 술집이든 걷거나 대중교통을 타면 30분 정도, 택시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면 10분 정도 걸린다. 걷기엔 오래 걸리고 택시를 타기엔 돈이 아까우니, 아무래도 자전거를 타는 게 여러모로 효율적인 답이다. 내가 스물아홉이 되도록 자전거라곤 보조 바퀴가 달린 네발자전거만 탔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언제나 나 때문에 좋아하는 자전거를 같이 타지 못했던 애인이 말했다. 따릉이 가입자 수 약 186만명 시대, 서울 시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서울시 공용 자전거를 타고 있단다. (*자세한 수치가 기억이 안 나므로 2020년 기준으로 업데이트합니다.) 나는 자전거를 타지 않는 다섯 명 중 네 명이니 내가 대세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려는데, 나를 잘 파악하고 있는 애인이 덧붙였다. 자전거를 타면 마포구에선 택시만큼 빠른데 택시비는 나오지 않으니 술 한 잔은 공짜로 마시고 들어간다는 것이다. 음, 솔깃한데? 물론 쉽진 않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이미 두발자전거 위에서 꼴사납게 넘어지기만을 반복하다 끝내 포기한 전적이 있으니까. 그러나 지금의 나는 구를 일 많은 세상에서 자전거 타느라 넘어지는 것 쯤이야 공짜 술 한 잔에 비하면 별것 아닐 거라고 생각하게 된 스물아홉이다. 쿨하게 넘어질 것을 각오하고 일단 페달을 힘껏 밟자 신기하게도 몸이 ‘알아서’ 균형을 잡았다. 겁을 먹고 등을 뒤로 젖혔다거나, 긴장한 나머지 팔에 힘을 지나치게 줘서 핸들을 극단적으로 꺾었다거나, 애인이 계속해서 옆에서 달려야 했다는 사소한 문제들은 넘어가자.

결과적으로 돈을 아끼진 못했다. 택시비를 아꼈다는 성취감에 취해 평소보다 더 마셔 버리곤 했으니까. 그런데도 자전거는 계속 타게 되었다. 자전거는 처음 생각하던 것처럼 걷기보다 빨리 술집에 도달하게 해주는 운송 수단인 것만이 아니었다. 자전거를 타게 된 후론 도로에서 버린다고 생각하던 시간이 즐거워졌다. 중력에서 살짝 벗어난 듯 매끄럽게 앞을 향해 뻗어 나가는 속도에 몸을 맡기면, 풍경들은 적당히 흐려졌고 바람은 몸을 부드럽게 감싸며 흘러갔다. 두 발에 두 바퀴를 더한 만큼의 가능성으로 나만의 속도를 가지는 일은 더없이 가슴 뛰는 일이었다. 자전거를 타기 위해 술집에 가고, 술집에 가려고 자전거를 타는 일이 잦아졌다. 더 빠르게 갈 수 있는 길도 돌아서 달리며 조금 더 심장이, 마음이 뛰기를 바랐다.

마이클 펠프스가 말했다. “어떤 일에도 한계를 지어선 안 된다. 더 많이 꿈꿀수록 더 멀리 갈 수 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아니어도 이 말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스물아홉까지도 네발자전거가 자전거 인생의 전부였던 나 역시 이제는 꿈꾼다. 자전거로 더 멀리 갈 수 있는 술집을!

보너스! 처음 자전거를 배우는 당신을 위한 TIP

 

운동법을 안다고 해서 한 번에 잘할 수 없습니다. 그 대신 실패해도 해야 하는 이유를 찾읍시다. 솔직한 내면의 욕망에 귀 기울일수록 운동을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회사 다니고 팟캐스트 하고 책 팔아서 술 마십니다. 시 읽고 술 마시는 팟캐스트 <시시콜콜 시시알콜>에서 술 큐레이터 풍문으로 활동하고, 동명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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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

글 이지선, 조민경, 전소연, 김혜경 일러스트 유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