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끼 식사를 차리는 일

엄마가 오셨다

엄마가 오셨다. 며칠 전부터 엄마는 수화기 너머로 뭐 필요한 게 없는지 먹고 싶은 게 없는지 수시로 물어보셨다. 어느 날은 “야, 지금은 깍두기 담고 있다.”라고 하셨고, 또 언제는 “지금은 만두 빚고 있어. 얼려서 가져갈게.”라고, 다소 힘에 부치면서도 조금은 설레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주에 도착한 엄마는 역시나, 그 작은 체구가 가져오기에는 많은 양의 짐을 들고 왔다. 꼼꼼히 테이프로 붙인 스티로폼 상자에는 깍두기와 배추김치를 단단히 동여맨 비닐이 있었고, 곱게 빚은 만두는 한 번에 먹을 양이 비닐로 구분되어 밀폐용기에 정갈하게 담겨 있었다. 그것뿐만 아니었다. 한 끼 먹을 만큼씩 소분된 불고기와 시호가 좋아하는 볶음밥 재료, 엄마표 밑반찬들, 불고기를 볶을 때 함께 넣을 채소까지 부엌에 하나씩 꺼내놓으셨다. “아휴, 엄마 뭘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요. 채소 같은 건 여기에도 있는데.”엄마는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내 성격이 그렇지 뭐, 그래도 같이 넣어서 볶아 먹으면 맛있으니까.”엄마가 올라가고, 한동안 밥상이 푸짐해졌다. 엄마 말대로 배추와 부추, 그리고 양송이버섯을 슥슥 잘라 불고기와 볶아 먹으니 꿀맛이다. 얼린 만두는 해동해서 만둣국을 하거나, 찌거나 튀겨 먹었고, 할미표 볶음밥으로 시호는 든든하게 두 끼를 뚝딱 먹었다.

엄마는 늘 그랬다. 정갈하고 맛있게 밥을 해 먹였다. 좋은 재료가 가장 중요하다는 게 엄마의 요리 철학이었다. 신선하고 최대한 농약을 쓰지 않은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었다. 간을 세게 하지 않았는데 맛있었고, 먹고 나면 속이 편한 음식들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잘 먹는 아이였다. 어릴 때 엄마가 준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한 기억이 없다. 주는 만큼 그릇을 싹 비워냈다. “얘는 잘 먹어서 이쁘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살짝 웃으며 내 등을 쓸어줬다.

특정 냄새나 맛, 소리 같은 것들은 과거를 추억하게 하곤 한다. 나에게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 저녁 공기 냄새가 그러하고, 카펜터스의 음악들이 그렇다. 그리고 엄마의 음식은 늘 그렇다. 그녀가 오랜 시간 우려낸 진한 사골 국물은, 그 국물 한 사발을 꿀꺽꿀꺽 먹던 바가지 머리의 어린 내 모습을 생각나게 하고, 그녀가 빚어준 만두는 젊은 엄마 옆에서 같이 만두를 만들며 이따금 만두소을 몰래 야금야금 먹던 때를 떠오르게 한다. 한여름날 엄마가 냉동실에서 꺼내 주던 샤베트는 어른이 돼서 먹은 여느 아이스크림보다 달달하고 시원했고, 노릇하고 동그랗게 만든 팬케이크에 시럽 부어 먹던 맛은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맛이었다.

사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잘 몰랐다. 누군가에게 밥을 해 먹인다는 것에 대해서. 나는 요리를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못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닮아 언젠가는 잘하겠지, 지금은 신혼이고, 초보니깐 잘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큰 착각임을 깨달은 것은 아이를 낳고 나서였다. 나는 초보 주부라기엔 이미 결혼 사 년 차에 접어들었고, 매끼 밥을 해 먹여야 하는 아이가 생겼다. 그리고 나의 요리 수준은 여전히 밥 짓기와 된장찌개 끓이기, 고기 굽기와 이쁘게 보이는 브런치 차리는 게 전부였다.

처음 이유식을 준비할 때의 막막함을 어찌 표현하리. 밤에 아이가 잠이 들면, 행여나 깰까 봐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믹서기를 돌렸다. 물 묻은 손으로 이유식 책을 넘기느라 책은 금세 꼬깃꼬깃해졌다. 아이를 먹일 때는 행여나 먹지 않을까 봐 손이 떨리기도 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지만 참으로 진지했던 엄마로서의 요리의 시작이었다. 어릴 때는 모든 엄마들이 음식을 잘하는 줄 알았다. 그것은 그냥 엄마에게 장착된 능력인 줄 알았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들, 도시락과 식후에 주는 간식까지 그저 쉽게 만드는 줄로만 알았지, 그 과정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요리는 공부이자 훈련이라는 걸, 음식을 맛있게 잘 만드는 것은 많은 시도와 미세한 양념의 차이에서 오는 숙련됨이라는 걸 아이를 먹이면서 알게 되었다. 잘 먹이고 싶다,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사서 먹이기보다는 직접 해서 먹였고, 횟수가 많아지니 맛은 이전보다 조금씩 나아졌다. 가끔 아이가 “엄마 맛있어, 엄마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것과 아이의 몸무게가, 키가 계속 쑥쑥 늘고 있다는 것은 내 요리의 원동력일 것이다.

표현하는 데 다소 인색한 내가, 언젠가 엄마와 맥주를 마시다 조금 취기가 올랐던지, 느닷없이 엄마에게 고백한 적이 있었다.“엄마, 나도 이제 엄마가 되어보니까 하루 세끼 밥을 한다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알 것 같아요. 엄마는 아이 셋을 먹이고 도시락까지 두 개씩 싸줬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고마워요. 그리고 정말 존경스러워요.” 그 말을 하던 나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취객이었고, 엄마는 가만히 울고 계셨다.

우리가 사는 집의 주인은 요리사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잡초인 줄로만 알았던 마당의 풀들 속에서 당근, 무, 그리고 치커리나 각종 허브류 등 식재료들이 종종 나온다. 마당에는 하귤나무가 있고, 감기에 걸렸을 때 잎을 데워 먹으면 좋다는 이름 모를 나무도 있다. 여전히 이웃집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종종 우리에게 귤이나 상추, 콜라비 같은 것들을 가져다주신다. 사기만 했던 식재료들을 마당에서 발견하고 나눈다는 건, 화분 하나 키우는 것도 어려워하던 내겐 신기한 경험이다. 

실제로 제주에서는 먹거리들을 상당 부분 직접 키우는 소위 자급자족의 삶을 실현하는 이들이 있다. 마당에서 직접 키우는 젖소에게서 나는 우유로 손수 치즈를 만드시는 분도 뵈었고, 제주에 살면서 삶의 모든 부분을 아예 자급자족으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책도 읽은 적이 있다. 이웃들을 만날 때 텃밭에서 직접 키운 식재료들을 주고받는다는 게 어떤 물질적인 교류보다 따뜻하다는 걸 느끼고 있다.

이곳에 살면서 밖에서 음식을 사 먹는 일이 서울에서보다 더 줄었다. 맛집이 많고, 이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먹을거리가 많은 제주지만, 집 주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게 일상이다 보니, 집에서 주로 밥을 해 먹고 있다. 작고 오래된 시골집의 부엌에서 매일 세끼를 차리고, 매일 세 번 설거지를 하고, 나무로 된 싱크대의 물기를 닦는다. 모든 정리를 끝내고 싱크대 앞 창문을 열어 뒷집에 널린 빨래나 돌담, 그 위로 가끔 등장하는 고양이를 보며 한 끼 식사의 성취감을 느낀다.상을 펴고 좌식으로 밥을 먹는다. 어떤 날은 작은 상이 가득 차도록 반찬을 만들기도 하고, 어떤 날은 볶음밥이나 카레, 국수 같은 한 그릇 음식을 내기도 한다. ‘오늘은 무엇을 먹일까?’ 이 한 문장이 늘 머릿속을 맴도는 것을 보니 이제 초보 주부는 뗀 모양이다. 오늘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표 불고기 레시피를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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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백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