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 하나의 삶

창작자의 독서법

한 권의 책
하나의 삶

책이 사람에게 특별하게 스며드는 순간이 있다. 진심이 전해지면 우리는 밑줄을 긋거나 필사를 하고, 메시지를 곱씹으면서 삶에 적용할 부분을 찾는다. 여기 책을 사랑하는 다섯 명의 창작자가 있다. 그들에게 울림을 준 하나의 책을 물었고, 책을 고르는 기준과 독서 습관까지 들어보았다.

정봉남 | 순천기적의도서관 관장

“태어날 때부터 배경이 어둠뿐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겐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질 위태로운 순간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옵니다. … 저들의 잠을 몰고 오는 것은 포만감이 아니라 허기와 불안감입니다. 손으로 소음을 막아주고, 다리로 허우적거리는 아이를 잡아주며 아버지는 딸아이의 잠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 가족이라는, 이웃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랑만이 어둠을 역전시킵니다.”

– 최민식, 조은,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책이 준 깨달음

삶에 대해 이토록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는 책도 드물 거예요. 때로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은 외면하고 싶을 만큼 서글프고 뜨겁죠. 참혹하지만 끝내 두 눈으로 마주보고 끌어안아야 하는 우리 삶의 존엄함 때문일 겁니다. 고된 삶에 내몰린 사람들의 텅 빈 눈망울, 위태로운 세계 속에 들어앉은 샘물 같은 아이들, 목숨을 내놓고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배우는 생의 덧없음과 노동의 신성함, 매혹적인 미소 같은 것들이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특히 절망과 마주한 아이들의 눈을 보면 숨이 멎는 것 같아요. 한 사회의 어른으로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이 들 때마다 이 책은 삶의 지향점을 일러주었어요.

책을 고르는 기준

일상에서 결코 겪을 수 없는 경험을 책 속에서 넓고 깊게 배워요. 삶이 어떠하며 무엇이어야 하는지 진실하게 알려주고, 사람이 살면서 저버려서는 안 되는 가장 소박하고 단단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라는 카프카의 물음에 동의해요. 

나만의 독서법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서 관심 분야가 생길 때마다 관련 도서를 연결해서 읽어요. 책을 읽다가 그 책에서 언급하는 또 다른 책을 읽고요. 그러다 보면 빛나는 별들을 이어서 별자리를 만들어가듯이 요리조리 책들이 연결돼요. 이런 방식을 하이퍼텍스트형 책 읽기라고 하던데, 저는 ‘별자리 책 읽기’라고 부르고 싶어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에요. 장편 소설 《살아야겠다》를 시작으로 보건의료 분야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과 사회학자의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심리학자의 《당신이 옳다》를 동시에 읽어요. 그리고 어린이 책《나비가 된 소녀들》, 청소년 소설 《발버둥치다》, 장편 소설 《내게 무해한 사람》을 연결해서 읽어요. 작가와 장르는 다르지만 일맥상통하는 무언가가 있어요. 무엇보다 독서 동아리를 만들고 꾸준히 함께 읽는 사회적 독서를 좋아해요. 자기의 관심사와 취향에만 머물지 않는 균형 잡힌 독서를 할 수 있고,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과 생각의 깊이를 통해 진짜 삶을 만나는 교류가 일어나요.

독서 습관

읽어가면서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은 밑줄을 긋고 노트에 필사를 해요. 눈으로 읽을 때 한 번, 밑줄 그으면서 또 한 번, 필사하면서 한 번, 적어도 세 번 이상은 밑줄 그은 문장들을 생각하게 되죠. 그 문장들을 인용하여 책을 추천하거나 글을 쓰고, 누군가와 대화할 때 소환하기도 해요. 필사 노트는 분야별로 15권 정도 쓰고 있는데, 출장이나 여행 갈 때 아주 유용해요. 여러 권의 책에서 발견한 것들이 나의 키워드대로 묶여 나만의 보물 상자가 되거든요. 앞으로 또 관심 영역이 생기면, 그 분야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고전부터 최근의 동향을 망라하는 최고의 책들을 10권 내외로 리스트를 만들어서 읽을 계획이에요.

한미화 | 출판칼럼니스트

“자기 내면에 어떤 감정들이 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상대의 마음에도 공감하기 어렵다. 공감능력은 자기 성찰 역량과 비례한다.” 

– 김형경, 《소중한 경험》

책이 준 깨달음

책 읽기에는 저를 알아가는 책 읽기와 세상을 알아가는 책 읽기가 있어요. 저에게 책 읽기의 많은 부분은 자신을 알아가는 읽기였죠. 한때는 저도 저를 다 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살아갈수록 저를 잘 모르겠어요. 내면을 말이에요. 우리는 대개 자신은 무조건 옳고 선량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남들 흉을 보고, 나만 억울하고, 말이 곱게 나오지 않는 사람을 만나게 돼요. 한데 정말 다른 사람들은 모두 틀렸고 나만 옳을까요? 《소중한 경험》은 독서 동아리를 하며, 내면을 성찰해가며 만난 참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줘요.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자기 이해가 시작돼요. 자기 이해가 없이는 진정한 타자 이해도 불가능해요. 늘 남 탓만 하게 되니까요.

책을 고르는 기준

지금 제가 궁금한 게 무엇인지, 알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되돌아봐요.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을 찾아요. 찾아가는 과정이 수고스럽다고 여기지 말고,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그 책이 이야기를 들려주죠. 또한 세상에 절대적으로 좋은 책이란 없다고 생각해요. 나에게 좋은 책이 있을 뿐입니다. 다른 사람이 읽는 책을 따라 읽을 것도 없어요. 지금 나에게 필요한 책을 스스로 찾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아닐까요?

독서 습관

요새는 책을 깨끗하게 봐야 중고 서점에 판다는 생각도 하는 모양이에요. 하지만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저렴한 가격에 많은 지식을 전달한다는 점이죠. 그걸 온전히 내 걸로 만들려면 책을 지저분하게 보길 권해요. 밑줄을 긋고, 책을 읽다 생각나는 게 있으면 메모도 하며 한 권을 천천히 나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거죠.

한예롤 | 칠드런아티스트

“중요한 것은 우주를 한 바퀴 도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중심을 한 바퀴 도는 것이다. 꿈 이야기를 쓸 수는 없다. 그저 잠에서 깨어날 뿐이다.”

– 장 그르니에, 《섬》

책을 읽고 느낀 마음

9년 전 프랑스에서 지낼 때, 일기장에 장 그르니에의 《섬》의 내용을 옮겨 적어놨어요. 저의 세계를 찾으려 끊임없이 ‘그것’을 갈구하고 있었죠. ‘그것’으로부터 작아지고 ‘그것’을 꿈꾸며 ‘그것’에 대한 빈칸 안을 채우려 온 힘을 쏟고 있었어요. 제게 《섬》은 한 글자 한 글자가 세계로 다가와 주었어요. 공중에 떠서 읽고 또 읽던 이 책이 저의 ‘그것’이 되어주었고, 빈칸 그 자체가 되어주었어요. 화가가 자화상을 그려내듯이 저를 마주한 그림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책을 고르는 기준

제가 책을 마중하는 기분일 때와 책이 나를 배웅해줬으면 하는 기분일 때가 있어요. 결국 기분이에요.

책을 잘 읽었다고 느낄 때

제게 책 읽기는 미세 지각으로까지 상념을 옮겨가는 과정이에요. 좀더 구체적으로 그 기분을 떠올리자면, 마치 비행기가 이륙하듯이 공간감을 느끼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글 안에서 상상이 자유롭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상상 비행이 성공했을 때, 책을 잘 읽었다고 느껴요.

김홍기 | 패션큐레이터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For you formed my inward parts; you knitted me together in my mother’s womb.”

– 시편 139장 13절, 《성경》

책과 삶의 연결고리

신이 자신을 한 벌의 스웨터처럼 한 올 한 올 짜서 만들었다며 고백하는 시편 화자의 말이 가슴을 찔렀지요. 니트는 한 올의 고리에 다른 고리를 연결하며 만들어내는 옷이에요. 완성되는 시간도 더디죠. 삶이라는 옷은 다양한 타자들을 내 삶에 초대해서 그들과 연대하며 만드는 세계예요. 삶이 완성되는 시간도 긴 호흡으로 필요하고요. 제가 기획하는 패션 전시도 그렇습니다. 한 벌의 옷을 만들어낸 인간과 사회의 상상력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 그 원천이 된 힘을 찾으려고 노력하죠.

책을 고르는 기준

시대의 변화 조짐을 진중하게 읽어내는 책을 고르지요. 무엇보다 저자가 독자들을 위해 풀어쓰려고 노력한 책을 많이 읽어요. 주로 트렌드를 분석하는 데 필요한 책과 동일한 사안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는 책을 골라 읽습니다.

책을 읽는 이유

기획자는 영감을 얻기 위해 책을 읽어요. 이를 위해 지금 제가 풀어야 할 문제와 전혀 상관없는 책을 동시에 읽는 것도 좋습니다. 가령 패션 브랜드 전략에 관한 책을 읽을 때 세계적인 무용 안무가가 쓴 《안무의 실제》 같은 책을 읽다 보면, 브랜드를 어떻게 무대에 세울 것인가 하는 생각과 만나게 돼요. 

장인성 | 배달의민족 마케팅 이사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책이 준 깨달음

10년 전 이 책을 읽고 나서 달리기가 하고 싶어졌어요. 저는 운동과는 거리가 아주 먼 사람이었는데, 마침 나이키 러닝 앱 때문에 달리기에 약간의 흥미를 느끼고 있었거든요. 근데 이 책이 그 흥미에 불을 질렀죠. 지금은 42km를 달리는 마라토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달리기가 지금 마케팅 일을 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힘이 된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 끝까지 지독하게 몰아붙여야 하는 일이 있을 때, 체력이 무너지면 정신적인 열망도 함께 무너져요. 달리기는 정신과 체력을 지탱하고, 매일 더 나아지는 성실함의 상징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주는 호르몬을 내뿜어줍니다. 달리기가 진취적이고 성실하고 긍정적인 삶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지요.

책을 고르는 기준

닮고 싶고 배우고 싶고 취향이 맞는 사람들이 추천하는 책 제목을 그때그때 메모해놨다가 서점에 가서 실물을 보고 확인합니다. 머리말과 목차, 첫 장을 읽어보고 읽을 만한 책인지 봐요. 저를 더 나아지게 하는 책을 읽고 싶어요. 많이 사고 동시에 여러 책을 봅니다. 지식과 마음에 자극을 주고 상처를 내는 것들에 더 많이 끌리고 몰입하여 끝까지 읽게 됩니다. 

독서 습관

글씨를 한 자 한 자 읽지 않고 적당히 뭉개면서 문장 뒤의 생각을 읽고 저자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듣듯이 읽으려고 합니다. 주제와 관계없는 문장들은 몇 페이지를 대충 후루룩 넘기기도 해요. 물론 비소설의 경우죠. 제목에 책 전체의 주제가 있고, 목차를 보고 챕터마다 주제를 읽을 수 있잖아요. 사례 등 디테일을 꼼꼼히 읽다가 주제를 놓치는 것보다는, 디테일을 적당히 건너뛰면서 주제를 잘 붙들고 읽는 게 더 잘, 더 많이 남는 것 같아요. 저자의 생각을 들으며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내고, 읽기 전과 읽은 후 생각이 달라지는 것이 좋은 독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좋은 만남이 그렇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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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