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피크닉

보름달을 담은 초대장

한밤의 피크닉

보름달을 담은 초대장

청년에게 시간이란 쓸모없는 것이었다. 마땅히 할 일이 없던 그에게 시간이란 흐르기보다는 고여있는 것이었고 그렇게 차고 넘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랐다. 본의 아니게 구직 기간은 늘어났고 집에서 먹는 매 끼니는 눈칫밥이 되었다. 나는 왜 태어난 거야, 생각이 들던 찰나 끝없는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는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두발을 튼튼히 받아줄 땅을 찾았고, 경주로 향했다.

경주는 청년의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곳이다. 서울역에서 신경주역까지는 두 시간 남짓. 집에 도착하니 어느새 어스름한 저녁이 되었다. 뭉근하게 끓인 된장국과 고등어구이, 깻잎장아찌와 김치가 전부였지만 주린 배를 마음 편히 채우는 일이 얼마만인지 몰랐다. 뭘 하고 지내느냐는 물음 대신, 잘 지내느냐는 물음. 무얼 해내야 한다는 채근보다는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걱정만이 있었다. 식사를 하던 중 한 달 전 즈음에 청년 앞으로 왔노라며 할아버지가 작은 편지봉투를 건넸다. 봉투 위에 뚜렷이 그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는 어릴 때 머물던 방으로 돌아가 편지를 열었다. 

보름달이 뜨는 15일 자정, ‘동궁과 월지’에서 연회를 열 예정이니 이 초대장을 받은 사람은 자택 안마당으로 나와 금수 대사의 꽃가마를 타고 행차하시길 바랍니다. 

그때였다. 청년을 둘러싼 벽면에 진동이 느껴졌다. 세찬 바람이 우악스럽게 집을 흔들었고, 덜거덕 소리를 내며 짐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쇠 소리를 내며 열린 창문 밖으로 스라소니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가마 한 채를 들고 있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왜 인간들은 정해진 시간에 제꺼닥 나오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형씨, 시간이 많지가 않소. 벌어진 입 그만 다물고 어서 나오시게.”
청년은 어안이 벙벙한 채 가마에 올라탔다. 옆에 있던 담비가 얼굴을 삐죽 내밀었다.
“얼 빠진 표정을 좀 보게? 금수라고 말 못할 거라는 생각은 하덜덜 말라고.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하늘과 땅의 정기를 쭈욱 받아서 나랏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할 수 있지. 그건 그렇고 자네 주변에 예쁜 암컷 어디 없나?”

청년을 태우고 어디론가 향하던 가마는 길을 멈추었다. 문을 살짝 열어보니 꽃비가 내리고 있었다. 바람결을 타고 꽃잎이 핑글핑글 돌았고 꽃 향기가 하도 진해 콧속이 알큰하기까지 했다.
“여왕님이 나비 없는 모란꽃 그림을 받은 뒤로 연회마다 늘 꽃비를 내리시지.” 담비가 말했다.
“여왕님이요? 선덕여왕이요? 저분이 선덕여왕이에요?” 놀란 나머지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나비 없는 모란이 왜요?” 이어 물었다.
“이런 일자무식을 누가 초대한 거야 도대체? 당나라의 태종이 나비 없는 모란 그림을 선물하면서 여왕님을 조롱한 걸 모른단 말인가?” 낮은 목소리의 호랑이가 말했다. 머쓱해진 청년은 매직아이를 하듯 초점을 흐려 자신을 바라보는 호랑이의 눈을 피하려고 애썼다.
“그만하시게. 갓 태어난 젊은이가 무얼 알겠는가. 잊힐 일은 잊히기 마련이고, 잊히면 안 되는 일은 그만큼 애를 쓰면 될 일이지.” 선덕은 허리를 굽혀 작은 양초에 불을 붙였다. 매 계절 보름이 되면 여왕은 동물들을 만나 이렇게 풍등을 날린다. 인간은 하늘을 동경해 연을 날리고, 등을 올리고, 제를 지냈다. 선덕여왕이 이어 말했다.

“사실 이곳에는 황룡사가 있었습니다. 궁궐을 짓고 있다가 용이 나타나 사찰이 되었지요. 황룡사라는 이름을 얻은 까닭이기도 하고요. 나라 안팎의 균열을 다잡고 싶던 사람들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어요. 지금은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평평한 터만 남아있지만.”
눈은 마음의 창이다. 감정 변화나 마음의 상태는 몸짓이나 목소리에도 담기지만, 눈을 통해 가장 크게 드러난다. 청년은 선덕여왕의 눈에서 그리움을 보았다. 애틋함과 닿아있는 앓고 닳는 어떤 마음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녀가 무언가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황룡사 안에 9층 목탑이 있었지. 목탑을 쌓아 올릴 때마다 주변국가에 대한 굴지의 마음을 담았지.” 호랑이가 청년에게 말했다. 풍등을 올리는 일은 황룡사에 대한 인사 같았다. 하늘을 향해 호랑이는 크게 울었다. 땅을 울릴 만큼 크게 포효했다. 모두가 기억하는 황룡사를 되새기고 있었다.

가마를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고 있는 와중 담비가 유난히 신이 나 보였다. 안 그래도 말 많은 놈이 이제는 덩실덩실 어깻짓까지 한다. 흥얼거리는 콧소리가 신경 쓰여 청년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담비는 콧소리가 잔뜩 섞인 비음으로 대답했다. “오랜 친구를 만나면 단단한 바위 같은 사람도 부드러운 진흙이 되게 마련이지.”
가마가 멈추자 청년은 담비를 따라 따라 내렸다. 나가기 직전 혼자 있을 선덕여왕이 걸려 힐끔 보자 손으로 꽃비를 내리며 생각에 빠져있었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신라의 미켈란젤로 아닌가!”
담비의 능구렁이 같은 목소리가 밖으로 퍼져 나갔다. 그때 사천왕사 안에서 승려 한 명이 절에서 뛰어 나왔다. 그 또한 상기된 목소리였다. “담비, 자네 왔는가!” 맨발로 뛰쳐나온 승려의 손에는 작은 조각 칼이 쥐어져 있었다. 담비와 승려는 진한 포옹을 나누었다. 남는 손으로 서로의 등까지 휘적휘적 따뜻하게 보듬었다. 

“내가 자네를 위해 선물을 준비했네!” 승려는 주머니 속에서 반지 하나를 꺼냈다. 하나는 자기의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담비의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닮은 점이 많지 않은가. 클 거巨, 비슷할 불彿 해서, 거불 반지일세! 요즘 정이 깊은 벗 사이에 많이 하는 징표일세.”
“네? 커플 반지요?” 청년이 잘못 들은 듯 다시 물었다.
“아니, 거불 반지.”
거불 반지를 받은 담비는 반지가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듯 크게 웃어 보였다. 담비도 무언가를 준비했다는 듯이 소맷자락의 속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서신 하나가 나왔다. 그 안에는 승려의 호인 ‘양지良志’로 이행시 편지가 담겨 있다고 했다.
“양지, 자네만큼 내 조각 실력이 뛰어난 것이 아닌 터라 손수 무언가를 만들기 어려웠네. 하지만 미천한 실력이어도 지난 밤 오랜 벗을 만날 생각을 하며 이렇게 몇 자를 써보았네.”
담비 자신은 몰랐겠지만 모두 숨죽여 담비의 이행시를 주목했다. 가마 안에 있는 선덕여왕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모두 담비를 바라보고 외쳤다. “양!”
“양은 냄비에 끓여 먹는 라면.”
이어 외쳤다. “지!”
“지금 먹으면 제 맛인데.”
“허허, 그렇지. 야밤에 먹는 라면이 으뜸이지.” 모두가 조용한 가운데 양지스님만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청년은 생각했다. ‘스님은 라면 못 먹는데 이런 시를 짓다니….’
“시가 미천하긴 미천하구만. 형편이 없어.” 어디선가 굉음 비슷한 목소리가 들렸다. 벽화에 조각된 신장상이었다. 좌우로 악귀를 깔고 앉은 기개가 범상치 않았다. 양지스님은 여러 가지 신기한 재주가 많기로 유명했는데 그중에서도 조각에 매우 능했다.
그렇게 신장상은 양지스님의 손끝에서 탄생했고 오랜 시간 사천왕사를 수호했다. 신장상이 있는 녹유신장벽전은 녹색 유약을 칠한 사각형 벽돌로 조형성과 완성도가 뛰어나 양지스님의 예술 세계가 잘 묻어난다. 양지스님이 가마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맑은 미소와 함께 합장을 보인 뒤, 선덕여왕을 반겼다. 

“오랜만이군요.” 양지스님이 말했다. 선덕여왕이 문틈으로 양지스님을 향해 웃어 보였다.
“본래 낭산은 신유림神遊林, 신들이 노닐던 숲이었지요. 선덕여왕님은 당신이 세상을 떠나거든 이곳 낭산에 묻어달라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이곳에 저승의 집을 짓고 난 30년 뒤에 능으로부터 남쪽에 사천왕사가 지어졌습니다. 여왕님은 황룡사와 9층 목탑이 그리워 요새 능보다는 그곳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계시지만요. 세상에 더는 없는 것에 대한 마음이라 할 수 있을까요? 양지스님과 선덕여왕님은 사천왕사에서 가끔 회동을 가지신답니다.” 신장상이 청년에게 차분하게 설명해주었다. 죽음이 이른 뒤에도 가까운 집에서 지내며 서로의 안위를 묻는 관계라.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저 멀리서 슬그머니 들려오는, 처음 듣는 선덕여왕의 웃음소리가 맑게 퍼져 나가는 것 같았다. 청년은 이유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동하는 가마 안에서 양지스님이 준비한 떡과 한과를 모두 함께 나누어 먹었다. 한과를 한입 베어 물면 그 안에서 꿀이 톡하고 터져 나오고, 떡은 흐물거리며 목구멍으로 녹아들었다. 가마가 멈추었다. 동궁과 월지로 향하는 길, 마지막으로 들르는 곳이라고 했다. 청년이 가마를 내리자 세상을 압도하는 힘과 위용이 느껴지는, 불국사가 보였다. 스라소니는 엎드려 엉덩이를 뒤로 쭈욱 뺐다. 기지개를 켜며 그르렁 소리를 냈다. 털이 삐죽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니 가마를 지고 이동하는 게 꽤나 힘든 모양이다. 옆에 있는 소나무에 날카로운 손톱을 세워 박박 긁자 솔방울이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다. 솔방울에서 각자의 음계대로 소리가 났다. 짜르릉 띵동띵동. 그러자 불국사의 문이 덜커덕 열렸다. 멋지게 옷을 갖춰 입은 사내 한 명이 나타났다. 스라소니는 그를 향해 절을 했다.

“반갑네. 또 겨울이 지나 봄이 왔구먼. 이번 보름에도 나를 찾아와주어 고맙네.”
청년은 호랑이 옆으로 바싹 다가가 한쪽 손으로 입을 가리고 귓가에 속삭였다. “누구예요?”
이제는 호랑이에게 넉살 좋게 질문도 한다. 호랑이의 수염이 움찔거렸다. 짜증이 조금 난 모양이다. “김대성 대상이다. 불국사와 석굴암을 만드셨지.”
“이놈 표정을 보니 김 대상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인데?”
담비가 손가락으로 청년의 얼굴을 콕 짚으며 말했다. 이유 모르게 담비가 놀리면 왠지 기분이 더 나쁜 것 같았다. 라면 시조 때문인가. 호랑이는 한숨을 푹 쉬고 말을 이었다.
“김대성 대상은 본래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 마을의 한 부잣집의 머슴살이를 하며 지냈는데 그 부자가 법회에 베 50필을 시주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전생에 일군 것이 없어 현생이 힘든가 보다 생각했다고 하네. 그래서 갖고 있던 작은 땅을 보시하였지. 그리고 며칠 뒤 바로 김대성 대상은 죽음을 맞이했네.”
“헤에엑!”

인과관계가 맞는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공을 들이니 돌아오는 게 죽음이라니.
“놀라지 말게. 김 대상은 며칠 뒤 어느 재상의 집에서 환생했네. 부잣집의 아들로 다시 태어난 거지. 그래서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는 석굴암을,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는 불국사를 지었다네. 김 대상의 효심이 대단한 거야. 그의 마음속에 있는 열망이 굳게 모여서 스라소니를 부른 거지.”
“우리 스라소니가 다 커서 김 대상을 모시기도 하고, 크핫.” 담비가 코를 훌쩍 먹는 소리를 내며 감격을 드러냈다. 밤 바람이 조금씩 차가워졌다. 바람결을 따라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김 대상은 스라소니와 함께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용히 절을 올렸다. 청년은 저도 모르게 둘을 따라가 함께 절을 올렸다. 스산하던 밤의 기운이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바깥으로 풍경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찌르릉 장글장글. 그러자 법당 문이 닫혔다. 돌계단과 흙이 발바닥에 부딪히는 마찰음만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한 번의 환생으로 두 부모님도 행복하게 할 수 있고 아주 부럽습니다.” 청년이 김 대상의 옆에 붙어 침묵을 깼다.

“정확히 저는 두 번의 환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사냥을 즐기던 때가 있었지요. 수풀에서 곰을 한 마리 잡았는데 꿈에서 그 곰이 나타나 내가 자신을 죽였으니 이제 저를 죽이겠다고 쫓아오더군요. 잠에서 깼을 때, 살아있다는 사실에서 비롯한 안도감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되었죠. 그때 이후로 사냥은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누려온 행복과는 다른 감정이었지요. 단언컨대 두 번째 환생이라 믿습니다.” 청년은 그의 목소리가 좋았다. 마른 목소리, 진중한 단어 선택 그리고 결연에 찬 눈빛.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청년은 힘을 얻는 느낌이 들었다.

마침내 동궁과 월지에 모두 모였다. 작은 보자기를 풀어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을 꺼내 들었다. 누군가는 항아리에 술을 한가득 담아왔고, 누군가는 어여쁜 도기와 함께 차를 가져왔다. 맛있는 음식과 한과, 값비싼 향유와 향초를 켜서 오순도순 연회를 열었다. 조금 차갑던 밤 공기는 금세 따뜻해졌고 향긋한 향기에 취하기 시작했다.
밤은 모든 생명이 숨소리를 낮추는 시간, 잠이 든 도시를 가로질러 산뜻한 연회가 시작되었다. 청년은 벌게진 얼굴을 감추려 헤시시 웃었다. 가마에서 영 말이 없던 선덕여왕이 청년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무언가를 내밀었다. 작은 새 모양의 토기였다.
“우리가 살아있기도 훨씬 옛날, 경주를 중심으로 사로국이 있었을 당시에는 무덤 안에 작은 새 모양의 토기를 꼭 넣어주었다고 합니다. 떠나는 이를 보낼 때에도 꼭 새의 깃털을 이용했는데 죽은 이가 훨훨 날아갈 수 있기를, 천상의 세계로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겠지요.”
“제가 죽나요?” 떨리는 목소리로 청년이 물었다.
“이렇게 좋은 날에 그런 말씀을. 꼭 이 새처럼 자유롭게 원하는 곳에 머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주고 싶었어요. 이 연회에 초대받은 사람들 중에 가끔 현세가 힘들어 경주를 찾은 이들이 있더라고요. 새처럼 살아요. 새가 되세요.”

청년은 작은 토기를 말없이 받아 들었다. 모두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누고 달뜬 분위기가 이어졌다. 곧 동이 튼다는 이야기에 아쉬운 듯 연회는 끝이 났다. 붉어지는 하늘을 보면서 청년은 생각했다. 거꾸로 매달려도 시간은 흐른다. 몹시 공평하게 시간은 모두에게 흐른다. 돌이켜 보니 그렇게 사람들이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사람의 또 다른 이름이 시간일지도. 청년에게 시간이란 쓸모없는 것이었다. 마땅히 할 일이 없던 그에게 시간이란 흐르기보다는 고여있는 것이었고 그렇게 차고 넘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결국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 시간은 흐른다. 결국 해가 떠올랐다. 언젠가의 보름이 또 다가오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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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자연

일러스트 조안빈 자문 김동하(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