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뚝 떨어진 집

홈 스위트 홈

전국에 함박눈이 내리던 날. 엄마는 열일곱 시간의 지독한 진통 끝에 나를 세상에 내보냈다. 서울 변두리에서 세 들어 살던 단독주택 1층, 한옥처럼 높은 마루가 있던 그 집에서 아기였던 나는 주로 앉아있거나 누워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잘 기억나지 않는 시기라 인화된 사진을 보며 짐작해본다. 온전하게 기억나는 집은 지하 단칸방부터이다. 깨진 유리창 너머로 노란 가로등이 비치던 집. 그곳에서 동생이 태어났다. 당시는 집집마다 난방시설이 가스보일러로 교체되던 추세였는데 우리 집은 아직 연탄을 때서 방바닥을 데웠다. 겨울이면 현관 옆에 까맣게 탄 연탄이 쌓였다. 아무리 조심히 다녀도 나와 동생의 옷에는 그을음이 까맣게 묻었다. 엄마는 그 집에서 부업을 해가며 성실하게 살림을 꾸려나갔다. 마찬가지로 아빠도 남대문 시장에서 눈이 오나 밤이 오나 교대 근무를 섰다. 그렇게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부모님은 작은 빌라를 샀고, 첫 부동산 거래를 사기당했다. 푼 돈과 단잠을 아껴 마련하고자 했던 보금자리는 흩날리는 연탄가루처럼 사라졌다. 평수에 비해 터무니없는 값이 매겨진 그 집에서 부모님은 이전에도 그랬듯 여러 날을 다투다 각자의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

 

가족이 흩어지는 와중에도 서울의 집값은 올랐기 때문에 엄마와 동생과 나는 다시 반지하와 월세방을 전전했다. 스무 살이 되어 돈을 벌게 되면서부터는 먹고사는 일에 보탬이 되어야 했다. 집주인에게 방값을 송금하고 나면 단순하게 큰돈이 빠져나갔다는 헛헛함보다도 한 달 동안 제 몫을 벌어야만 이 집에서 살 수 있다는 절박함이 먼저 다가왔다. 어릴 때는 동생과 방을 같이 쓰는 게 불만족스러웠지만 생존 앞에서 그런 것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당장 다음 달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시할아버지가 남겨주신 집은 선물과도 같았다. 한 달 치 살 값을 내지 않아도 되는 집. 그것만으로도 나는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우리는 종종 하늘에서 집이 뚝 떨어졌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결혼 준비의 절반은 끝마친 것 같았다. 큰 짐을 한데 모아 처분하던 날, 텅 빈 집을 가만히 보았다. 조금 오래되었어도 군더더기 없이 정직하게 지어진 집이었다. 그리고 내가 살아본 집 중에 제일 컸다. 작은 방과 거실 겸 주방이 일렬로 이어져 있고 미닫이문을 열면 꽤 널찍한 다용도 방이 나왔다. 집에서 쓰던 책장을 두고 둥그런 테이블을 가운데에 두면 딱 맞을 것 같았다. 도배와 벽지까지 새로 하면 훨씬 근사할 것이었다. 단숨에 가구의 배치 그려지고 그곳에서 시간을 보낼 우리의 모습이 떠오르는 걸 보니 조금 아주 조금 코끝이 찡했다. 그저 살아내느라 알아채지 못했을 뿐, 이런 것을 원해왔구나 나는.

 

집은 가족의 모습을 대변한다고 내가 말하니 그 애가 이 집처럼 우리도 단순하게 살면 좋겠다고 화답한다. 상상만 해도 행복해서 히죽히죽 웃었다. 여전한 시간에 일어나고, 퇴근하면 밥을 지어 먹고, 같은 시간에 나란히 누워 잠드는 부부가 되면 좋을 거라고 맞장구쳤다.

우리의 기척이 소란스러웠는지 아래층 할머니께서 올라오셨다. 현관 앞에 할아버지의 세간살이를 모아둔 걸 보고 버릴 거면 몇 개 가져가도 되겠냐고 물으신다. 우리의 첫 번째 이웃이었다. 그 후로도 담배를 파는 슈퍼 아주머니, 본인의 거동을 돕는 전동 휠체어를 충전하던 할아버지, 마늘 한 묶음에 이천 원을 이만 원이라고 부르는 야채가게 아저씨, 그 애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한 자리에 쭉 계셨던 세탁소 아저씨가 우리의 이웃이 되었다.

 

할아버지의 작은 TV와 유선 청소기, 토스터, 그리고 오픈형 수납장 두 개를 그대로 쓰기로 했다. 할아버지가 깨끗하게 간수하신 세간살이가 우리의 혼수로 재탄생했다. 삶은 신비롭다. 사막 속에서도 꽃은 피어나고, 빈곤하기 때문에 부유해지는 신혼도 있었다. 비록 연고지 없이 낯선 동네이지만 그 애와 이 집이 비빌 언덕이 되어준다. 이 집이 나를 지켜줄 거라고, 우리의 기반이 되어줄 거라고 믿어본다. 앞뒤로 난 두 개의 베란다 사이로 맞바람이 분다. 이렇게 하루 이틀 살다 보면 낯선 동네와 낯선 이웃도 마음에 품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들썩이던 유년의 불안도, 절박한 생존 본능도 잠재워질 것이다.

We Around Project

결혼, 문을 열다

 

브런치에 글을 연재해 7,000명의 구독자를 모은 에세이스트입니다. 어떤 문은 큰 노력 없이 쉽게 열리지만, 어떤 문은 문고리를 잡는 것조차 버거운데요. 재산이라곤 200만 원의 잔고뿐인 이혼가정 자녀에겐 ‘결혼’이라는 문이 딱 그랬습니다. 무거운 문을 열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속 안개를 걷어주는 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글.그림 윤지영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