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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일, 퇴사를 결심하다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퇴사’가 유행처럼 번지는 요즘, 나에겐 그저 생존을 위한 자구책이었다. 일단 살아야겠다, 나를 살려야겠다, 그 생각뿐이었다.
‘주말부부’로 지내는 나와 짝꿍은 한 주 동안의 빨랫감을 모아두었다가 금요일 밤이나 토요일 오전에 세탁기를 돌린다. 주로 내가 벗어둔 것들이다. 그럴 수밖에. 어마어마한 결정을 하고 나면, 평소 예민하던 입맛은 오히려 시시해진다. 뭔가 대단한 음식을 먹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지만 평소처럼 건조기 시작 버튼을 눌러놓고 냉장고를 슬쩍 열어본다.
우리가 애용하는 대형마트는 세 곳 이상인데, 마트마다 목적이 미묘하게 다르다. 생선의 종류가 많은 곳, 육고기를 믿고 먹을 수 있는 곳, 야채가 싱싱한 곳, 공산품이 저렴한 곳, 이런 식으로 분류해두고 필요에 따라 행선지, 그러니까 행선 마트를 정한다. 어떤 날은 두 곳을 연달아 들르기도 한다. 이토록 섬세한 장보기는 우리의 생존 방식이자 취미생활이 되었다. 그중 코스트코에 다녀온 날이면 냉장고에는 냉동 새우나 양념 고기, 아보카도, 브로콜리 같은 채소를 비롯해 대량으로 ‘구비’해두는 식재료가 쌓이는데, 빼놓지 않고 꼭 데려오는 것은 ‘바질 페스토’이다.
선반에서 스파게티 면을 꺼낸다. 바질 페스토처럼 무게감 있는 소스에는 조금 넓적한 ‘페투치니’나 ‘탈리아텔레’ 면이 잘 어울릴 테지만 아쉬운 대로 지금 집에 있는 보통의 ‘스파게티’를 사용하기로 한다. 다음은 31-40 사이즈의 냉동 새우 몇 미를 꺼내 통후추를 갈아 뿌린 뒤 실온에 녹게 둔다. (새우의 사이즈는 1파운드당 마리 수를 뜻한다). 그리고 다진 마늘 조금, 올리브유. 아, 반찬통에 아무렇게나 담겨 있는 시금치 나물과 봉지 깻잎, 청경채도 꺼내본다. 이 채소들은 좀더 푸른색을 내는 용도로 쓸 작정이다.
내게 ‘바질 페스토’ 최고의 맛집은 도산공원 사거리에 있는 ‘일치’라는 레스토랑이다. 그곳은 신선한 우리 식재료를 제철에 맞춰 제공하는 퓨전 이탤리언 레스토랑인데, 가격대가 제법 높아서 자주는 가지 못하지만 가족의 생일이나 분위기를 내고 싶은 날엔 종종 생각난다. 일치의 ‘제철 생선을 올린 깻잎 바질 페스토 파스타’에서 깻잎의 역할을 조금 전에 꺼낸 시금치 나물이 대신한다. 색깔도 더 초록초록하게 하고, 특유의 향이 풍미를 돋운다.
일을 할 때도, 사랑을 할 때도, 그 무엇을 할 때도, “하는 데까지 해보고” 하는 태도를 존경한다. 죽을 만큼 애쓰지는 않으면서도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 하는 마음. 그러고 나서의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그 느슨한 각오. ‘좀 더 해볼 걸’ 하는 이쪽의 후회도, ‘괜히 했어’ 하는 저쪽의 후회도 남기지 않는 깔끔한 상태. 열심히 하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 아니, 오히려 열심히 하겠다는 말은 얼마나 식상하고 공허하게 들리는가. 한때 나를 내려놓고 일에 몰두한 적도, 나 자신보다 상대방을 더 아끼는 사랑을 해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안 되는 걸 억지로 되게 하려다가는 나만 다친다. 그동안 다치고 깨진 마음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치열함과 게으름 사이, 그 적당한 노력이 나는 좋다. 이제서야 겨우 그것을 알게 되었다.
바질 페스토 역시 그렇다. 사실 제대로 하려면 생바질을 절구에 넣어 빻아야 한다. 기계로 갈면 열이 발생해 향과 색이 충분히 살지 않는다. 잣은 마른 팬에 살짝 볶아 잡내를 잡고 식힌 후에 빻아야 고소함이 배가 된다. 그리고 바질, 잣, 다진 마늘, 레몬즙과 올리브유를 함께 섞는다. 이렇게 만든 바질 페스토를 병에 담고 산패를 막기 위해 올리브유를 얇게 덮어두었다가 먹을 때마다 치즈를 조금씩 첨가하면 된다. 기왕이면 치즈도 파르메산보다는 페코리노나 그라다파다노가 좋겠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번거로움 대신 ‘만들어진 바질 페스토’를 이용한다. 시판용 토마토 소스를 살 때도 비슷한 마음이다. 집 앞 작은 슈퍼에서는 팔지 않는 이 바질 페스토를 구하기 위해 마트에 간다. 차를 타고 30분쯤 달려야 하고, 주차하는 데만 또 30분쯤. 그렇게 시간과 노동을 투자해야 ‘적당한’ 바질 페스토를 구할 수 있다. 면은 또 어떤가. 앞서 말한 레스토랑처럼 생면을 뽑는다면, 그 면발의 쫄깃함이야 말해 입만 아프겠지만 천 원짜리 두 장을 내고 잔돈까지 거슬러 받은 스파게티 면도 노력과 가격에 비해 훌륭한 맛을 낸다. 이것이 식탁에서 내가 부리는 ‘적당한 노력’이자 ‘하는 데까지 해보는 마음’인 것이다.
그릇에 묻은 페스토까지 숟가락으로 싹싹 긁어 비우고 나서, 따끈따끈하게 건조된 빨래를 꺼내 한 김 식힌 후 착착 접는다. 사표를 낸 날 하기에 이만큼 단순하면서도 포근한 노동이 또 없다. 우리는 빨래와 함께 주중의 일을 공유한다. 주말에만 같은 집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 것. “앗, 오늘은 사표를 냈구나.”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는 말은 참 희망적이다. 얼마 후, 새 회사로의 출근이 정해졌다. 사무실 위치는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문만 열고 나가면 온갖 나라의 맛집이 줄지어 있는 핫플레이스다. 새로운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적당한 최선’이 무엇일지 생각하다가, 이내 첫 출근 하는 날에는 무엇을 먹으면 좋을까 다시 고민에 빠진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점심 먹고 나오는 길에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저녁 식탁을 치우면서 내일 점심을 고민합니다. 바쁜 일상 중에도 마음에 선명히 남는 한끼의 식사가 있습니다. 음식을 앞에 두고 떠오르는 생각과 마음의 대화를 적으려 합니다.
글·사진 김지향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