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황지수 — 경우의 수
통유리로 된 미닫이문을 살그머니 열고 들어서니 작업대 앞에 서 있던 노란 앞치마의 그가 상냥하게 인사를 건넨다. 꾸밈 없이 간소한 태도에 쓸모없는 긴장감은 사라지고 쓸모 있는 설렘만이 남는다. 요리하는 경우의 수 곁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고민한 게 무색하게 삽시간에 그의 손짓에 매료된다. 정신 차리고 보니 눈앞에 따듯한 한 그릇이 뚝딱. 와…. 이거 먹어도 되는 건가? 일단 잘 먹겠습니다!
(작업대를 바라보며) 이 자체로 예술 같아요. 항상 이렇게 세팅해 놓고 요리하세요?
보통은 이렇게 해요. 수업이나 워크숍도 하고 있어서. 이렇게 해두고 기록해놔야 레시피를 알려주기 편하거든요. 혼자 요리할 땐 타이머도, 계량기도 없이 눈대중으로 하는데, 수업할 때 “적당히” 하라고 하면 난감하잖아요.
레시피를 보면서 따라 하다가 김빠지는 순간이 그런 때 같아요(웃음). 그 풀은 뭐예요?
아, 이건 세이지예요. 향이 좋은 허브인데, 맡아 보세요. 버터나 고기랑 잘 어울려서 이따 고기 볶을 때 살짝 뜯어 넣으려고요. 요즘 양배추랑 당근이 맛있어서 한 그릇 요리를 만들어보려고 해요. 채소들을 한 번 구워서 다시마 물에 미소랑 생크림을 넣고 푹 끓일 거예요. 그 사이 고기를 버터에 볶아서 함께 넣을 거고요. 아침 안 드셨죠?
네. 아침 먹는 게 습관이 안 돼서….
이거 같이 먹고 시작해요. 우선은 약간 거뭇해질 정도로 채소를 구워주는 게 좋아요. 언뜻 보면 탄 것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해야 색이 잘 우러나고 끓이면 감칠맛도 좋거든요. 끓을 때까지 5분만 기다릴까요.
(한 상이 차려진다.) 와, 사진부터 찍어야겠어요.
천천히 드세요. 채소를 먹기 좋게 잘라서 고기랑 같이 드셔보세요. 아, 겨자 좀 덜어드릴게요. 겨자랑 같이 먹으면 맛이 또 다르거든요.
이렇게 단맛이 강하게 나는 당근은 처음 먹어봐요. 정말 맛있네요. 오늘의 메뉴를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어, 구운 양배추와 당근, 미소 크림 스튜… 약간의 고기도 들어간….
‘구운 양배추와 당근 미소 크림 스튜 feat’약간의 고기'(웃음). 미소는 거의 국으로 먹어서 생크림과 어우러지는 게 신선해요.
지금까지 먹어본 거, 시도해 본 것들을 실험하다 보니 미소와 생크림을 조합한 미소 크림이 나왔어요. 아주 독특한 재료를 쓴 건 아니어서 누군가 어딘가에서 비슷한 요리를 하고 있을 것 같은데요. 먹어보거나 책에서 본 것들을 데이터로 제 작업의 조각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이 퍼즐, 저 퍼즐, 어떻게 맞추느냐에 따라 이런 요리도 나오고, 저런 요리도 나오고요.
소스까지 싹 비웠어요(웃음).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해 볼까요? 셰프, 요리사,주방장… 요리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참 많은데, 지금 하는 일을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무게감이 좀 달라지는 것 같은데 제 정체성은 늘 같아요. ‘요리하는 사람’이죠. 요리를 갓 시작했을 땐 저보다 요리를 훨씬 오래 해온 분이 많으니까 스스로 요리사라고 말하는 게 좀 부담스러웠어요. 시간이 흐르니까 셰프든 요리사든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사용하게 되는데요. 지금은 특히 더 ‘요리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현재 하는 작업은 상업 요리보다는 가정 요리에 가까워서 셰프나 주방장 같은 말이랑은 어울리지 않거든요. 한때는 제 활동명이랑 같은 ‘경우의 수’란 식당을 정기적으로 운영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집에서 할 수 있는 요리들 위주로 작업하고 있어요. 사실 요리를 생활 기술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런 생각은 자라온 환경의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부모님이 각각 식당을 하셨다고요.
맞아요. 주말이면 놀이동산이나 나들이 대신 아빠 따라서 제일 좋은 식재료를 보러 백화점에 갔어요. 실컷 구경하고, 장 보고, 집에 와서 그걸로 요리해 먹는 게 일과였죠. 특히 주말엔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집에서 해 먹었는데 부모님이 요리하실 동안 저랑 동생은 옆에서 밑 작업을 도왔거든요. 주방에 네 식구가 함께 있는 게 당연한 일이어서 더더욱 생활 기술처럼 느껴지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일찍부터 요리사를 꿈꿨을 줄 알았는데 디자인을 공부하셨다고요.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겠다고 했을 땐 오히려 부모님이 좀 반대하셨어요. 음, 반대라기보다는 걱정이 많으셨어요.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일이니까 ‘과연 쟤가 버틸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셨던 것 같아요.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꽤 크고요. 그래도 제가 업장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까, 부모님이 요리학교에 가보라고 권하시더라고요. 어깨너머로 기술을 익히느니 기초부터 제대로 배워보는 게 어떻겠느냐 하신 거죠. 그래서 조금 늦은 나이에 요리학교에 가서 한식을 전공했어요.
요리학교보다 업장에서 일한 게 먼저였군요. 처음에 식당 일은 어떻게 시작한 거예요?
음, 그때가 7일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기였는데요. 되게 힘들게 일했는데, 일한 시간만큼 돈을 벌고 있다는 느낌이 안 들더라고요. 노동의 대가를 정확하게 받는 일을 해보고 싶어져서 자리를 잡으려고 면접을 봤어요. 한 군데는 전공을 살린 패션 브랜드의 막내 디자이너였고, 하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본 양식당 홀서빙아르바이트였어요. 시급이 괜찮았거든요. 둘 다 면접을 보고 붙었는데 출근 날까지 마음을 못 정하겠더라고요. 그러다 출근 날 이상하게 양식당으로 출근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어서 결국 아침 9시가 되기 전에 회사로 연락했어요. “죄송하지만 출근 못 할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그때가 터닝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운명이 있나 보다 싶어요. 첫 식당 일은 홀서빙으로 시작한 거네요.
네. 근데 서버로 일한 지 2주 만에 주방에 사람이 필요하게 돼서 주방 보조로 들어갔어요. 마침 보조 업무에 일손이 부족한 거여서 경력 없이도 주방에 들어갈 수 있었죠. 자원한 게 아니라 당장 급하니까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 제안 받은 건데, 사실 재료 손질은 저한텐 익숙한 업무여서 잘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해보니까 어땠어요?
지옥 같았어요(웃음). 저는 요리를 좋아하던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오히려 부모님이 요리를 하시니까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집에서 요리할 일이 없었어요. 주방 일이 이렇게 힘들다는 걸 처음 경험한 시기였고, 그만큼 행복한 부분도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처음 만든 요리 기억하세요?
네. 부모님 결혼기념일에 끓여드린 미역국이었어요. 블로그에서 레시피를 찾아 국이랑 반찬을 만들어서 상을 차려드렸거든요. 근데, 미역을 처음 불리는 거라 감이 없어서 한 봉을 다 불려 버린 거예요. 물에 담가 두고 티브이 보다 다시 부엌으로 갔는데… 미역이 그릇을 탈출해선 엄청나게 불어 있더라고요. 와, 진짜 어마어마했어요. 난리가 난 부엌을 부모님 오시기 전에 치우고 상도 차려야 하니까 마음이 급했죠. 가위로 잘라서 끓일 만큼 두고 부랴부랴 치우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만든 국인데 엄청 짜고 맛이 없었어요. 반찬들도 그렇고요. 말도 안 되는 식탁을 차려드렸는데 부모님이 그걸 드시곤 우시더라고요.
아이고, 왜 제 코가 다 찡하죠.
그때 생각이 아직도 많이 나요.
그땐 부엌이 부모님의 공간이었을 텐데, 나만의 부엌을 갖게 되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였을 것 같아요.
제 첫 부엌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개인 공간은 아니었어요. 개인 자취방을 갖기 전에 셰어하우스에 2년 정도 살았거든요. 2층, 3층을 열네 명이 함께 쓰는데요. 주방이 2층에 하나, 3층에 하나 공용으로 있었어요. 거기서 요리를 가장 즐겁게 한 것 같아요. 항상 같이 먹을 사람이 있고, 그날그날 먹고 싶은 게 다르니까 거기 맞춰서 요리하고….
그럼 요리 도구도 공용이지 않아요?
맞아요. 그래서 그걸로만 요리하려면 부족한 게 많아요. 거의 생존을 위해 모든 도구를 갖다 쓰는 느낌(웃음). 주방 가위가 칼도 됐다가, 밥솥이 만능 냄비 역할도 하고요. 오죽하면 전기밥솥에 밀크티 잼까지 만들었어요. 주방에 있는 가장 큰 요리 도구가 전기밥솥이어서 거기 온갖 걸 다 해 먹었거든요. 그 시절 덕분에 요리는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이 있어요. 지금도 여기저기 이동하며 요리 작업을 하고 있는데 상황이 어떻든 요리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의 뿌리가 그 시절에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오히려 나만의 작업 공간이라는 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요리는 사실 주방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내 작업실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다른 것보다도 제 조리 도구가 많아져서였어요. 공간은 어떻게 보면 개인 물건이 놓일 장소를 의미하는 것 같아요. 셰어하우스 살 때는 개인 물건이 정말 조금이어서 내 공간이 한 평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이젠 요리 소도구는 물론이고 앞치마만 해도 여러 개를 가지고 있으니까 이걸 보관할 공간이 필요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내 작업실을 구해야겠다.’ 생각하게 됐죠.
이번엔 이름 이야기를 해볼게요. 경우의 수는 “같은 요리법이어도 어떤 채소를 쓰느냐에 따라 다 다양한 경우에서의 레시피가 나온다.”라는 의미라고요.
제철 요리를 해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메시지를 담게 되었어요. 국을 하나 끓여도 무를 넣으면 뭇국, 양배추를 넣으면 양배춧국이 되잖아요. 어떤 채소를 넣느냐에 따라 요리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저는 제철 요리가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엄청 거창한, 새로운 요리가 아니라 재료만 바꿔도 맛이 달라진다는 게 재미있지 않나요. 계절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게 멋지기도 하고요.
제가 오늘 달콤한 당근을 처음 맛본 것처럼요(웃음). 그런데 한때는 ‘경우의 (수)’라고 표기해 왔던 것 같아요.
맞아요. 차츰 경우의 수로 바뀌었는데요. 제 이름이 황지수니까 ‘수’ 자에 핵심을 둔 거였어요. “경우의 (수) 안에 나 황지(수)가 있다.” 이런 의미였는데, 요리를 하다 보니까 나라는 사람보다는 접시 안에 담긴 음식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순간 괄호를 빼고 소개하게 됐어요.
‘나’보다는 ‘음식’을 앞세우게 된 거네요. 경우의 수라는 이름으로 워크숍을 계속 진행해 왔죠. 여러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워크숍을 해왔는데 내 작업실이 아닌 데서 요리하는 건 어땠어요?
제 요리 도구를 다 가져갈 수 없고, 공간, 사람, 감정, 환경이 그때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날 할 수 있는 걸 그날 파악하고, 그렇게 나온 결과에 만족해야 하는 작업이에요. 완벽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완벽할 수 없지만, 완벽을 생각하지 않을 순 없거든요. 워크숍 때는 돌발 상황도 많아요. 필요한 도구나 재료가 없는 일도 자주 있고, 때에 따라 조리 시간이 촉박한 경우도 있어요. 그런 상황을 겪으면서 임기응변을 많이 배웠어요. 또, 여러 공간에서 요리하다 보면 같은 레시피여도 결과물이 다 다르거든요. 근데 그게 새로운 데이터가 되더라고요. 워크숍을 할 땐 예측할 수 없는 상황과 과정을 즐기게 돼요. 그러다 보니 요즘은 제 작업실에서 요리하는 것보다 다양한 공간을 옮겨 다니면서 요리할 때 좀더 만족감이 큰 것 같아요.
오프라인 식당을 운영한 이야기도 해봐야겠네요. 바로 이 자리가 작년까지 운영한 식당 경우의 수지요.
작업실 공간을 식당으로 운영한 건데, 서촌이라는 동네를 좋아해서 여기 꼭 작업실을 얻고 싶었어요. 서촌 중에서도 수성동 계곡 쪽에 있다 보니까 조용해서 더 좋아요. 간판도 없는 공간이 생기니까 주민들이 여기서 뭘 할까, 돈은 잘 벌고 있나, 지나다니면서 물어보는 일도 많았어요(웃음). 올라오면서 보셨겠지만, 이 주변에 프랜차이즈가 하나도 없거든요. 제가 알기론 동네 주민들이 프랜차이즈가 못 들어오게 하셨다더라고요. 작은 상점이 많고 높은 건물이 없어서 동네 분위기가 유지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이런 동네를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저는 이 자리가 좋아요. 이런 공간에서 요리를 하다 보니까 차츰 ‘여기서 또 뭐 하지.’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더라고요. 그때 아침 식당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경우의 수를 식당으로 시작한 거였어요. 거창한 꿈이나 목표가 있던 건 아니었죠.
식당을 하면서 어떤 점이 좀 달라졌어요?
엄청 많이 긴장했어요. 떨리는 아침이었죠. 손님들에게 음식을 내어드리는 일이다 보니 매일 평가대에 올라가는 기분이었어요. 어쨌든 돈을 받고 하는 일이어서 마음가짐이 많이 달랐어요. ‘이거 드시고 아프면 안 되는데.’, ‘이 공간이 항상 청결해야 하는데.’ 같은 생각으로 가득했죠.
운영 시간이 7시에서 오후 4시까지였죠. 몇 시쯤 출근하셨어요?
새벽 3시 30분쯤?
으악!
제가 아침 시간을 좋아하니까, 저도 처음엔 아침밥을 만들어드리는 예쁜 그림을 상상했어요. ‘주먹밥과 간단한 국, 샐러드로 한 상을 차려드려야지.’ 근데 막상 해보니까 준비 시간만으로도 어마어마하더라고요. 밥도 무조건 솥밥으로만 해서 새벽 3시 반에 출근하지 않으면 안 됐어요. 솔직히 운영하는 1년여 정말 힘들었는데요. 저한테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에요. 해보고 싶은 걸 이룬 시간이었으니까요.
그 이른 아침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죠. 평일 아침엔 꿈도 못 꿨고, 예약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기억이 있어요.
아이고…. 이른 아침부터 줄 서는데 못 드시고 가거나 멀리서 오셨는데 그냥 돌아가시는 분들 보면 속상했어요. 마음 같아선 운영 시간을 연장하고 싶어도 새벽 3시에 출근하면서 운영을 더 길게 하는 건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영업이 끝나면 저도 식사를 해야 하고, 다음 날을 위해 장도 봐야 했으니까요. 큰 식당이 아니니까 직접 장을 보러 다녔거든요. 장 보고 나면 5시, 돌아와서 밑 작업하면 금세 저녁 시간이 다 지나가요. 보통 9시쯤 퇴근했죠. 하다 보니까 건강한 방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건강한 음식을 만들려면 일단 제가 건강해야 하잖아요. 그 생각으로 경우의 수 시즌1을 종료했어요.
시즌1을 마치고 가장 먼저 한 건 뭐예요?
제 아침을 챙기는 거요. 좋아하는 아침 시간대에 컨디션과 패턴을 회복하는 데 힘썼어요. 그러면서 다양한 음식도 더 많이 해보려고 했고요. 경우의 수를 운영할 땐 주로 제철 재료로 만든 비건 식단으로 메뉴를 준비했거든요. 근데 제가 비건 음식만 하는 건 아니어서 더 다양한 걸 계속해서 연구해 보고 싶었어요.
포토그래퍼가 공간을 둘러보면서 “꼭 카모메 식당 같다.”고 했는데, 정말 이 공간의 모티프가 카모메 식당이라고 하셨죠.
맞아요. <카모메 식당>(2006)도 주먹밥을 차려주는 식당이 배경이잖아요. 그런 따듯한 분위기를 우리 공간에서도 느끼면 좋겠다 싶었어요. 이 공간은 공간과 제품을 다루는 디자인 스튜디오 CAA가 전부 다 디자인해 주었는데, 제 친구거든요. 그 친구가 경우의 수 공간을 꾸리는 데는 하나부터 열까지 도와줬어요. 그 덕분에 저는 요리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었죠. 친구가 골라준 가구, 소품, 그릇 모든 게 따듯한 분위기인데다가 조화로워서, 저는 거기 음식만 담아서 내어드리는 데 집중할 수 있었어요.
아침을 먹어야 머리가 좋아진다는 얘기는 어릴 적부터 들어왔지만 경우의 수가 아침 식사를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도 궁금해요.
개인적인 이유인데, 제가 아침을 안 먹으면 너무 힘든 사람이거든요. 아침을 거르면 종일 기운이 없어요. 간단하게라도 챙겨 먹어야 살겠더라고요. 또 아침 식사를 먹는다는 건 어느 정도 아침에 여유가 있다는 의미잖아요. 시간적으로도 그렇고 마음적으로도 그렇고요. 헐레벌떡 가서 사람을 만나고 일하기보다는 집에서 어느 정도 아침 시간을 보내다 나가면 일할 때도 시작이 다르더라고요. 손님들도 그런 기분을 느끼길 바랐어요.
오늘 아침엔 뭘 드셨어요?
라떼요. 오늘은 제주에서 올라와야 해서 시간이 없었는데, 그래도 간단하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가장 든든한 걸로 마셨어요.
보통 집에서는 어떤 거 자주 드세요?
저는 아침에도 무겁게 잘 먹는 타입이에요. 여유가 좀 있으면 파스타를 만들어 먹을 때도 있고, 오늘처럼 스튜를 해 먹기도 해요. 주로 전날 먹고 남은 음식을 활용하는데요. 밥 위에 얹어서 덮밥이나 파스타를 만들고, 빵 사이에 넣어서 샌드위치를 만들 때도 있어요.
집은 제주, 작업실은 서울인 거죠?
원래 집은 마포구에 있는데요. 경우의 수 시즌1을 종료하고 휴식하면서 주로 집에서 요리를 많이 하게 됐어요. 답답한 마음에 환경에 변화를 주고 싶어 제주에도 집을 하나 더 구했죠. 제주 집에서 지내다 좀 지루하다 싶으면 다시 마포구로 오고, 마포구 집에서 작업하다가 또 서촌 작업실에도 나오고…. 번갈아 가면서 작업하고 있어요.
그중 진짜 내 작업실이라고 생각하는 데는 어디예요?
우열을 가릴 수 없어요. 작업하는 것도 다 달라서 느낌이 전부 다르거든요. 장 보는 곳이 다 다르니까 식재료도 전부 다른 걸 쓰고, 그래서 같은 요리를 해도 맛이 다 달라서 늘 새로운 느낌이에요. 사실 저는 주방이 세 개 생기니까 더 다양한 작업실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 여기서 더요?
네(웃음). 지금 집은 제주시에 있는데, 고산이라고 좀더 바닷가에 가까운 데에 올 4월엔 주방을 하나 더 만들 생각이에요. 새로운 작업이 가능할 거 같아서 설레요.
왜 작업실을 여러 개 두고 싶어요?
여기저기 다니면서 요리하다 보니까 자극되는 게 많더라고요. 상황에 맞춰서 요리하다 보면 같은 메뉴여도 스타일이 달라지고 계속 모험을 하게 돼요. 사실 항상 그곳에서 지내는 게 아니다 보니까 결코 안정적이진 않아요. 장을 보더라도 거기서 지내는 동안 사용할 만큼만 사야 하니까 완벽하게 모든 걸 사기는 힘들고요.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도 충분히 만족하면서 요리하는 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요리는 하면 할수록 완벽하게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드는데요. 옮겨 다니면서 작업하게 되면 오히려 힘 빼고 요리하는 걸 더 많이 생각하게 돼요. 완벽하지 않더라도 ‘오늘은 여기서 만족해야지!’ 하는 거죠. 그런 재미 덕분에 공간을 계속 옮겨 다니며 요리하는 것 같아요.
아무 제약 없이 내 작업실을 만들 수 있다면 어떤 공간으로 꾸리고 싶어요?
요리하는 공간은 크면 클수록 좋거든요. 음… 작업실을 크게 두고, 바로 위층에 집이 있으면 좋겠어요. 충분히 요리하고 충분히 쉬고 싶어서요.
만일 그런 작업실이 생기면 또 다른 작업 공간에 대한 욕구가 사그라질까요?
아니요. 한 층은 작업실이고 한 층은 집인 공간을 여러 개 원하지 않을까요?
요새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요즘 관심을 두는 건 요리 경험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서 4월에 만들 작업 공간은 제 개인 작업실보다도 사람들이 오가는 곳으로 만들어보려고 해요. 여행 온 사람들이 외식만 하고 가는 것보다 제주의 식재료를 직접 장 봐서 요리하는 경험을 할 수 있길 바라서요. 그 외에도 요리를 재미있게 할 만한 방법을 계속 생각해 보고 있어요. 자극을 줄 만한 게 뭐가 있을까 하고요. 또, 저는 계속 장소를 옮겨 가며 요리할 텐데요. 그럴 때 나오는 에피소드가 참 많거든요. 그걸 쉽게 공유하고 싶어서 책이든, 블로그든 기록해 볼 생각도 하고 있어요. 다양한 주방에서 했던 요리나 요리를 같이 나눈 친구들 이야기, 또 다른 요리사 이야기 같은 걸 알리고 싶어요. 아무래도 요리하는 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는 좀 다른 부분이 있는데 그걸 다른 사람들도 재미있어할 것 같아요. 요리하는 친구들이랑 얘기하다가 “우리끼리만 알기엔 너무 재미있는 얘기 아니니.” 하는 일이 많거든요.
대화를 마치기 전에 꼭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이 책은 3월에 독자들과 만나게 될 텐데, 그때 쯤이면 어떤 재료가 가장 맛있을까요?
벌써 마지막이군요. 음, 3-4월이니까 봄풀이 제철일 거예요. 저는 봄풀로 튀김도 많이 해 먹는데 빵과 곁들여 먹어도 맛있어요. 그래서 봄이면 베이글을 꼭 만들게 돼요. 주먹밥 만들 때 섞어도 맛있으니 아침에 간단하게라도 봄풀 식사를 챙겨 먹어보세요.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김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