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이름을 쓰는 우리

함께 사는 이름

어쩌면 우리 사이는 각자의 이름보다 하나의 의미로 더 자주 불렸을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존재가 하나의 관계로 명명되는 가족사진. 그 장면 속에 흐르는 마음과 기억을 꺼내둔다.

1990년 11월 17일, 형숙과 진채

나와 남편 박진채가 부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날입니다. 한 살 차이인 우리는 교회에서 처음 만났어요. 새로운 신자로 온 남편이 마음에 들었는지, 우리 언니와 어머니가 자꾸만 나를 불러다가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자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사실 첫인상은 인상 깊지 않았지만, 가만 보니 영어도 잘하고 성실한 사람 같아 마음이 조금씩 옮겨 갔지요. 전화번호를 주고받고는 영화 <아가씨와 건달들>도 보았답니다. 남편이 카투사에 복무하던 시절에는 서로 편지를 쓰며 무려 6년 동안 연애를 했습니다. 연애 기간이 긴 데다가 그때만 해도 결혼은 당연한 거라고 여겨졌으니, 식을 올리던 날에는 특별한 감동보다 정신없이 바쁘던 게 생각나네요. 오전에는 동네 사진관 기사님과 경복궁에서 웨딩 촬영을 하고, 오후에는 다 같이 결혼식장으로 달려가 식을 올렸어요. 그 바람에 결혼식의 주인공인 우리 부부가 30분이나 지각해 버렸답니다(웃음). 30년도 훌쩍 넘은 세월을 함께 지내면서 가끔은 다투기도 하지만 서로를 위한 마음은 변함없습니다. 요즘 남편은 포토그래퍼인 딸이 물려준 카메라로 나를 찍어주는 재미에 푹 빠졌어요.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의 시선으로 기록되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이었는지, 새삼 느끼는 이맘때입니다.

형숙이 진채에게 전하는 마음

 

일편단심 민들레의 마음으로 나를 이해해 주고 아껴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예쁜 아들과 딸도 얻었네!

1996년부터 1999년 사이, 명주와 경주

엇비슷한 얼굴을 한 두 어린이의 만남은 1996년 5월의 끝자락에 시작됐습니다. 갓 태어나 시원하게 울음을 터뜨리면서 기지개를 켜려던 저는 그 순간, 또 다른 울음소리를 (아마도) 들었습니다. 같은 방을 나눠 쓰던 친구가 뒤이어 세상에 나왔기 때문이죠. 차례를 지켜준 건 고맙지만, 딸 부잣집 막둥이라는 귀한 타이틀을 고작 1분 만에 물려주고 저는 이란성 쌍둥이 중 언니가 되었답니다. 엄마는 세월이 흘러도 사진 속에 남은 쌍둥이 얼굴을 금세 구별해 내곤 합니다. 좀더 넙데데한 얼굴이 언니, 입꼬리가 내려간 얼굴이 동생이라나요. 작고 통통하던 어린 시절을 꺼낼 때마다, 우유병을 쥐여주면 항상 동생 입에 먼저 넣어주고 또 다른 우유병을 물었다는 칭찬도 빼놓지 않고 들려주셨죠. 초등학교 때는 언제나 같은 반이 되었고, 중·고등학교도 같은 곳을 다니며 저와 동생은 보통의 자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방금 화장실에서 나온 사람을 다른 칸에서 또 마주쳤다는 친구들의 놀라움 담긴 제보를 ‘킥킥’ 웃으며 들었지만, 성격이나 관심사는 꽤 다른 편이에요. 달라서 부딪치기보다 다르기에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어려운 고민도 서로의 앞에는 쉬이 꺼내두며 지내고 있습니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자매이자 단짝 친구 사이, 이제는 서로가 없다면 쉬는 날도 영 재미가 없습니다.

명주가 경주에게 전하는 마음

 

혼자라면 매일 심심해할까 봐 둘이 함께 세상에 도착한 게 아닐까? 나는 아직도 너랑 노는 시간이 제일 재밌어.

2021년 봄, 새롬과 재용

저와 남편 재용은 공공 자전거 ‘따릉이 스테이션’에서 자주 마주치다가 사랑에 빠졌어요. 그렇게 시작된 인연을 기념하고자 셀프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한테 부부는 일종의 생활 동반자로, 함께 아이라는 존재를 키우며 삶을 배워나가는 관계라고 생각했어요. 미래 세대를 떠올리며 부부가 되기로 결심했으니, 결혼식 테마도 ‘지속가능성’으로 잡고 참석한 모든 이가 즐거워하길 바라며 축제를 기획했죠. 양가 부모님 대신 친구들이 모인 ‘결혼 위원회’를 혼주로 삼았고, 성혼 선언은 초등학생인 조카에게 맡겼습니다. 예식 전에 플리마켓을 열고 손님들에게 일회용 사진기를 나눠줬어요. 피로연에서는 스탠드업 코미디도 선보였답니다. 어느덧 잘 먹고 잘 자고, 귀여운 게 일상인 이서와 함께 세 식구가 되었죠. 친구이자 동반자가 될 두 사람이 각자의 모습을 잃지 않기로 약속했기에, 가족이란 홀로 있어도 또는 함께 있어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사이라고 믿어요. 혼자가 혼자일 수 있도록 응원하고 격려해 주는 존재가 곁에 있어서 사랑보다 진한 우정, 우정만큼 진한 의리를 느끼곤 합니다.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해 내 삶과 하나가 된 존재들”이라는 남편 재용의 말을 빌려, 우리 가족에게 애정을 보냅니다.

새롬이 재용에게 전하는 마음

 

지금 딱 이만큼만, 더도 덜도 말고!

2022년 7월 14일, 구름과 훈남이

세상에서 산책과 쓰다듬는 손을 가장 좋아하는 열한 살 반려견 훈남이와의 일상을 기록한 날입니다. 저는 대나무로 바구니를 만들고 나무로 공간과 사물을 짓는 일을 해요. 작업실이자 생활 공간인 오두막집에 재료와 도구, 작품들을 꾸려둔 채로 훈남이와 지내고 있었지요. 눈을 뜨면 훈남이와 달리기를 하고 밭일을 조금 하다가 틈틈이 밥을 잘 챙겨 먹어요. 종일 대나무 작업을 하다가도 밤엔 갈무리한 식물로 저장 식품을 만들기도 하고요. 전시를 앞둔 날이면 온종일 빼곡하고 비슷한 하루를 몇 달간 보내게 되는데요. 그 바람에 종종 지쳐버릴 땐 둘이 가만히 누워 서로를 바라보고 있어요. 털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고요. 서로를 통해 충전하는 기분이 큰 위로가 되어서 함께하는 시간을 사진으로 기록하곤 합니다. 아무도 없는 깊은 숲에서 길을 잃어버려도 무섭지 않아요. 언제나 제 곁에서 걷는 산책 메이트 훈남이가 있기에 어디를 걷든 새로운 재미를 찾아낼 수 있고요. 훈남이는 저에게 헤맬 수 있는 용기와 꾸준히 움직이게 하는 힘을 주는 존재예요. 사랑받고 사랑 주는 것에 용기가 가득한 훈남이, 제가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을 먹게 하는 소중한 가족입니다.

구름이 훈남이에게 전하는 마음

 

오래오래 건강하게 지내자. 너와 함께 더 멀리, 더 자주 함께 걷고 달리고 싶어. 나에게 와줘서 고마워.

2022년 6월, 송민과 지훈 그리고 자유

아들 자유를 임신한 모습을 남편 지훈과 함께 집에서 필름 카메라로 기록해 두었어요. 두 번의 시험관 시술을 거쳐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마음이 꽉 차도록 행복해서 펑펑 울었습니다. 나와 지훈, 둘이었던 인생이 셋의 삶으로 달려 나가는 것 같아 무척 기뻤어요. 물론 임신 도중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로 병원에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언제 또 아플지 몰라 불안했지만, 배 속 아이가 움직이는 걸 느낄 때마다 용기가 차올랐어요. 가만히 앉아 불안해하는 대신, 곧 아기를 만날 생각에 설레는 지금을 사진으로 남겨두기로 했죠. 이 특별한 시절을 씩씩한 부모의 마음으로 보낼 수 있던 건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남편 덕분이에요. 지훈과 함께라면 힘든 길도 웃으면서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아기를 만나는 과정을 《wee》 매거진에서 에세이로 연재했는데, 그때 쓴 문장을 풀어둡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 아직 만나지 못한 아기 때문에 속상한 날을 보내고 있다면 아기도 저쪽에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기는 발이 작아서 오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는, 나에게 큰 힘이 되었던 이야기와 부디 그 만남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따뜻한 응원을 보내며.”

송민이 지훈에게 전하는 마음

 

남편이자 우리 아들 자유의 아빠, 그리고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지훈.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지내자.

2021년 3월 28일, 새아와 현민 그리고 하율과 시하

딸 하율이가 여덟 살 때 일회용 카메라로 저와 남편을 찍어준 결혼 사진이에요. 자세히 보면 손가락도 살짝 나와 있죠(웃음)? 제가 남편 현민을 만났을 때 하율이는 다섯 살이었어요. 처음에는 저를 ‘이모’라고 불렀는데 자연스럽게 ‘엄마’라고 불러주면서 우리는 한 가족이 되었죠. 일생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족은 배우자가 유일하다고들 하던데, 저는 배우자뿐 아니라 사랑스러운 첫째 딸까지 삶의 한 부분으로 끌어안았답니다. 태어나서 내린 수많은 결정 중 가장 잘한 선택이에요. 물론 저를 엄마로 바라봐 준 하율이에게도 큰 결정이었을 거예요. 가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면서 서로를 선택한 ‘가장 특별한 모녀’라며 웃곤 해요. 참, 결혼사진에는 주인공이 한 명 더 있어요. 배 속에 둘째 딸 시하가 있거든요. 4월의 결혼을 앞두고 임신했다는 걸 알게 돼서, 친구들과 부랴부랴 제주에 가서 결혼사진을 찍었어요. 시하가 돌이 지난 후에 친구한테 사진집을 받으면서 다시금 그때의 추억을 들여다보게 됐는데, 어쩌다 보니 온 가족의 이야기가 한 장면에 오롯하게 담겨 있네요. 얼마 전, 우리 부부의 세 번째 결혼기념일이 지났어요. 사랑하는 남편과 초등학교 4학년이 된 하율이, 30개월 시하 사이에서 일상의 행복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습니다.

새아가 하율과 시하에게 전하는 마음

 

사랑하는 하율과 시하야. 엄마와 아빠는 너희보단 우리의 행복을 위해 살 거야. 너희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너희다운 선택을 할 수 있는 경험과 그게 행복에 가깝기를 바라는 마음뿐이거든. 하율과 시하답게, 각자의 속도로 걸어 나가길 바랄게. 뒤를 돌아보면 언제나 엄마와 아빠가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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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명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