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어린이가 행복해질 권리

편해문 놀이터 디자이너

평범한 어린이가
행복해질 권리

편해문
놀이터 디자이너

놀이터는 자연에서 뛰어놀기 힘든 도시 어린이들이 ‘몸과 마음을 다해 놀 수 있는 터’다. 그래서 나의 유년기 또한 놀이터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그 시절 미끄럼틀의 형태나 시소의 색깔은 기억나지 않지만, 양팔을 벌리고 구름다리를 건너며 자신만만하던 모습, 고무줄놀이 순서에서 동생이 줄을 잡아주지 않고 도망갔을 때의 억울함은 선명하다. 그곳에서 나는 숱한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자랐다. 나의 놀이터를 떠올리며 지금의 놀이터를 돌아봤다. 놀이터에 오가는 아이들의 연령은 점점 어려졌고 머무는 시간도 짧았다. 그 많던 아이들은 어디로 간 걸까? 아이들이 꿈꾸는 놀이터는 어떤 모습일까? 답을 얻기 위해 순천 기적의 놀이터를 찾았고 이곳을 디자인한 편해문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편해문
사라져 가는 아이들 놀이와 노래를 현장에서 찾아 모은 글이 1998년 창작과비평사 ‘좋은 어린이 책’에 당선되었다. 우리나라를 한 바퀴 돌며 노래와 놀이 조사를 마친 뒤 아시아와 중동 아이들의 삶과 놀이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을 10여 년 했다. 순천시 ‘기적의 놀이터’ 조성 총괄 기획자,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 어린이놀이터 시범사업 총괄 계획가, 서울시 교육청 놀이터재구성위원회 위원장, 시흥시 ‘PLAYSTART 시흥’ 추진단장, 경기도 어린이 상상놀이터 협의회 위원, 일본모험놀이터만들기협회 정회원이다. 저서로는 《놀이터, 위험해야 안전하다》,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동무 동무 씨동무-옛 아이들 노래》 등이 있다.

놀이에도
균형이 필요하다

어린이 책을 내고, 20년 가까이 놀이를 연구하셨어요. 놀이터를 디자인하고 강연도 하시죠. 자세하게 어떤 일들을 하나요?

놀이는 아이들에 관한 일이잖아요. 아이들에 관한 깊은 이해에서 출발해야 해요. 아이들을 이해하는 공부를 꾸준히 하면서, 놀이터를 만들면 놀이터 디자이너가 되고 놀이를 알리면 놀이운동가가 되는 거죠. 이런 생각은 제가 살고 있는 안동에서 하기 시작했어요. 《몽실 언니》, 《강아지똥》을 쓴 권정생 선생님이 안동에 사셨거든요. 멀리서 때로는 가까이서 뵈면서 선생님의 생각을 많이 배웠어요. 아이들을 위한 생각이 무엇인지, 세상의 흐름 속에서 얼마나 아이들이 약자인지, 세상이 어떻게 아이들을 이해하지 않는 쪽으로 흘러가는지를 많이 느끼고 깨달았죠. 아이들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그들의 옹호자가 되어야 하잖아요. 아이들을 이해하고 옹호하면서 아이들의 놀 권리를 돕는 일을 한다고 설명하고 싶어요.

놀이 연구를 하게 된 건 유아교육을 공부하고 어린이 문학을 다루며 자연스러운 순리였을까요? 

사실 학교에서 아이들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건 없어요. 저도 놀이터 디자이너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놀이터 디자인을 배울 수 있는 학과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어요. 그야말로 독학의 영역이에요. 권정생 선생님에게 배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니 요즘 아이들은 놀 곳도 놀 시간도 놀 친구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놀이터를 공부했어요. 

여러 해 어수선하게 놀이터 공부를 하다가 독일의 귄터 벨치히 선생님을 만났어요. 그는 즐거움의 가치, 독창성, 환경을 존중하는 철학을 바탕으로 놀이기구와 놀이터를 만드는 독일 회사, Richter Spielgeräte GmbH의 디자이너로 일했어요. 오랫동안 다양한 놀이터 프로젝트에도 참여했죠. 무엇보다 아이에 관한 이해가 높으셨어요. 일본의 아마노 히데아키 선생님도 만났는데, 일본의 플레이파크(모험놀이터)를 현장에서 40년 지키신 분이에요. 제가 가지고 있던 고민을 말씀드리고 그분들의 생각을 배우면서 여기까지 오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책과 강연에서 교육보다 놀이가 중요하다고 했어요.

현재 한국 사회가 너무 교육 위주라 놀이가 안 보여요. 그래서 놀이의 필요성을 강조했어요. 아이들에겐 두 개의 날개가 있어요. 그중 한 개가 자유의 날개인 놀이라면, 또 다른 하나는 배움의 날개예요. 공부하지 말고 놀아야 한다는 생각과 배움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 모두 위험하고 극단적인 생각이죠. 그 균형을 잘 잡아야 해요. 배움과 이상, 자유와 놀이 두 가지를 균형 있게 맞춰서 풍성하게 성장해야죠. 혹 부모가 배움의 영역으로 지나치게 치우치고 있다면, 자유와 놀이 쪽을 더 돌아봐야 해요. 균형을 딱 반으로 정할 순 없지만, 아이를 가까이 지켜보는 어른으로서 편향된 생각이 있는지 살펴야죠. 어디로 기울고 있는지, 푹 빠져 있는지요. 한쪽이 비대해져 있다면 아이들은 가다가 넘어질 테니까요.

놀이라는 말 자체가 광범위하고 추상적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놀이란 무엇인가요?

어른들한테 “내일부터 나오지 마세요.”라고 하면 해고잖아요. 삶의 모든 것이 다 무너지죠. 어른들에게 일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듯이 아이들에게 놀이는 생존권이에요. 조금 더 있으면 좋고, 덜 있으면 아쉬운 게 아닌 거죠.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뭘 하고 놀아야 할지 모를 정도로 놀 거리가 넘쳐난 세상에 살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놀이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도 너무 많아요. 아이들은 부모가 기획하고 프로그램화하고 외주화한 놀이에 둘러싸여 있어요. “얘들아, 오늘은 이거 하고 놀자.” 이런 체험이 놀이라는 이름으로 쓰이고 있어요. 하지만 그 시간이 끝나면 아이들은 말하죠. “우리 언제 놀아요?” 아이들도 알아요. 놀이는 내가 동기가 되어야 하는 거예요. 내가 놀고 싶을 때, 원하는 재료로 하고 싶은 방식으로 놀아야 놀이죠.

오늘날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없는 데는 부모, 교육 시스템, 사회 환경 등 다양한 원인이 얽혀 있어요. 그중 가장 시급하게 해결돼야 할 문제는 무엇일까요?

놀이 기회의 형평성이에요. 엄마나 아빠가 어떤 일을 하는지와 상관없이 균등하게 놀 기회가 주어져야 해요. 대한민국은 바깥 활동을 할 수 없는 날이 더 많아질 거예요. 그럼 아이들은 실내에 갇혀 있어야 하거든요. 날씨가 나빠서 실내 놀이터인 키즈카페에 가고 싶은데 돈이 없으면 한 시간에 천 원인 피시방에 가는 거죠. 이렇게 놀이에서도 빈부격차가 일어나요. 그래서 공공 놀이터가 필요해요. 시흥시에서 곧 공공형 어린이 실내 놀이터를 오픈할 거예요. 창의와 융합, 4차 산업을 얘기하는 시대에 이 시기를 불균형 속에서 보낸다면 한 나라의 국가경쟁력은 떨어지는 거죠. 내가 선택해서 놀 수 있는 외국 아이들과 틀에 갇힌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경쟁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조금 올드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놀이터는 그런 인재를 길러내는 곳이라고 얘기해요.

제 주변 부모들도 아이들 놀이에 관심이 많아요. 하지만 30대 중반의 우리 세대는 어렸을 때 자유 놀이를 많이 못 해봤어요. 학습 위주의 놀이를 하며 자란 거죠. 그러다 보니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 몰라 어려움을 겪어요.

맞아요. 제가 자란 시대와 다르죠. 그래서 놀이가 가진 즐거움을 헤아리기 어려울 수 있어요. 그런 부모에게 프로그램화된 놀이와 자유 놀이가 무엇이 다른지 알려준다면, 놀이는 돈이 들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놀이는 ‘시간’으로 하는 거예요. 하지만 이 세대에게 가장 편하고 익숙한 건 ‘소비’일 거예요. 바쁘게 살다 보니 아이들에게 마음 쓸 여유가 없어 장난감, 이벤트, 학습 같은 데 돈을 다 쏟아부어요. 이러다 보니 아이들에게 소비가 놀이가 되는 거죠. 외국 친구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놀라는 건 밤 10시에 엄마, 아빠와 마트를 돌아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에요. 집에 손님이 오면 아이들이 하는 말이 있죠. “이거 얼마짜리예요?” 우리가 사는 사회는 자본주의잖아요.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라니 그럴 수밖에 없어요. 한국 사회에서 정말 위험한 게 무엇일까요? 불 꺼진 놀이터 구석일까요? 부모는 아이들을 소비라는 놀이로 끌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그 지점에서 나하고 만나는 부분은 없는지 항상 성찰해야 해요.

아이를 낳고 바로 육아라는 세계에 덩그러니 던져져요. 임신 때부터 어린이의 놀이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보고 안내받을 수 있는 창구가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캠페인이 필요해요. 시흥시에서 ‘플레이스타트’를 시작했어요. 영유아부터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놀이가 무엇인지 꾸준하게 알리는 캠페인이에요. 아이를 낳으면 시흥시 보건소에서 ‘베이비 놀이 박스’를 집으로 보내는 거죠. 치아 발육기부터 2~3개 정도 생애 주기별 놀잇감으로 구성할 예정이에요. 받으면 조금은 울컥해지는 엄마 아빠들 있을 거예요. 출산을 돈으로 축하하지 말고 마음에 다가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를 낳으면 불안과 맞닥뜨리게 되잖아요. 하지만 그 불안은 아이에게서 오는 게 아니고 부모의 속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처녀, 총각일 때와는 다른 부모로서 또 다른 배움의 순간이 도착한 거죠.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를 통해 놀이시간을 정규 수업으로 넣는 교육청이 늘고 있어요. 아이들의 놀이를 위해 교사, 부모, 행정, 어린이들이 조금씩 마음을 모아가고 있는 거 같은데요.

저도 이 일을 20년 해오고 있는데, 이제 그런 제 생각이 조금 전달되는 정도예요. 걸음마 단계죠. 지금까지는 한 날개로 계속해왔어요. 학교나 교육청에서도 학교는 노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 놀이할 필요가 없었죠. 그러다 보니 아이들과 생활에 어려움이 쌓여갔어요. 이후 저 같은 사람들을 만나서 배움과 놀이라는 두 날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끼고 받아들이고 있어요. 이제 조금씩 움직임이 보이는데, 아직 넘어야 할 게 많아요. 아이들의 놀 틈과 놀 터와 놀 친구를 학교와 도시 속에서 연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기적의 놀이터,
기존 놀이터에서 추방된 요소를
모두 불러들인 곳

또 다른 책 《놀이터, 위험해야 안전하다》에서는 아이들은 놀다가 다칠 권리가 있다고 했어요. 

그 책은 세월호 일이 있고 나서 썼어요. 이 일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가 위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기회가 될 거라고 여겼어요. 이제는 아이들이 위험을 알아차리고 스스로 어떻게 회피하고 비껴갈 수 있는지 알려줘야 한다고요. 하지만 전보다 더 위험을 차단해버리더라고요. 위험을 통해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말이죠. 

한국 놀이터에서 가장 큰 화두는 위험이에요. 저는 이 위험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룹니다. 위험을 크게 두 가지로 말씀드릴게요. 아이들이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위험이 있어요. 아이들은 모래에 당연히 맨발 벗고 들어가겠죠. 하지만 전날 어른들이 술 먹고 병을 깨서 던져놨어요. 이걸 해저드Hazard, 인지할 수 없는 위험이라고 해요. 놀이터에서 반드시 제거돼야죠. 또 다른 위험은 리스크Risk예요. 오늘은 용기가 없어서 저만큼밖에 못 갔어요. 못 건너고 내려오죠. 내일은 다시 하면 될 거 같겠죠. 놀이터는 그런 모험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해요. 하지만 지금 대부분의 놀이터는 해저드도 없고 리스크도 없어요. 무조건 안 다치게 만들죠. 

도전을 요하는 위험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초등학생이 놀 놀이터를 유치원생 수준으로 만들어놓으면 아이들이 너무 시시하다고 해요. 기적의 놀이터가 왜 기적의 놀이터냐면, 해저드는 제거하고 리스크는 살아있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이 가보고 싶어 하고 도전할 맛이 있는 거죠. 도전을 못 하게 하면 안전하죠. 그러나 미래가 없어요. 아이들이 다소곳하게 지내기만 하는데 무슨 도전을 할까요. 놀이터는 열 살 안팎의 아이들이 상상하고 실험하고 도전하고 때론 미끄러져 안전하게 떨어져보는 곳이라 생각해요. 그 사회에서 어린이를 어떻게 보는지가 응집된 곳이기도 하고요. 한국은 ‘하지 마라. 하지 마라. 결코 하지 마라.’인 거죠. 창의와 도전은 어떻게 배우라는 거죠? 놀이터에서조차 도전을 못 하게 한다면 말이에요.

왜 순천에 기적의 놀이터를 만들었나요?

아이 키우는 사람들이 바라는 게 두 가지일 거예요. 하나는 아이들이 책을 가까이하길 바라는 거고, 다른 하나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었으면 하는 거요. 순천엔 기적의 도서관이 있잖아요. 그림책 미술관도 있고, 좋은 도서관이 많아요. 한 도시 안에서 어떻게 두 가지 균형을 맞출지 고민하다가, 오랜 신뢰를 바탕으로 순천시에 기적의 놀이터를 제안했어요. 시장님이 해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2020년까지 10개의 놀이터를 만들기로 했어요. 이 정도의 도시 규모면 권역별로 10개의 놀이터가 적당하다 생각했죠.

과정은 어땠나요?

놀이터는 큰 모순에서 시작해요. 놀이터를 만드는 데 가장 힘이 센 사람은 행정가이고, 가장 약한 사람은 아이들이에요. 힘이 가장 센 사람은 놀이터 오픈할 때는 와요. 이후 다신 안 와요. 가장 힘이 약한 아이들은 계속 오거든요. 그런데 놀이터는 권한이 있는 사람들의 취향대로 만들어지죠. 기적의 놀이터는 그걸 바꾼 거예요. 이곳을 가장 오래 많이 이용할 어린이와 주민에게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이야기를 듣고 만들었어요. 

놀이터는 3~4개월이면 만들 수 있어요. 하지만 기적의 놀이터 1호는 3년 걸렸어요. 놀이터 만들 때 탄성 바닥을 안 쓰고 획일적인 놀이기구도 안 넣는다고 했죠. 모래 놀이터 기준이 25cm, 30cm만 모래가 깔려 있어도 합격을 주는데 저는 모래를 120cm 깔겠다고 했어요. 아이들이 25cm는 금방 팔 거 아니에요. 그럼 콘크리트가 나와요. 그건 놀이터가 아니죠. 공사하는 사람, 행정가들 모두 모래 적게 쓰고 싶어 하잖아요. 왜 120cm를 부어야 하는지 설득해야 했어요. 1년 동안 담당 부서 분들을 설득하면서 그 시기를 보냈어요. 우리나라 놀이터를 보고 외국 놀이터도 보면서 같이 공부했죠. 그 다음 1년은 아파트와 학교 유치원을 찾아다니면서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워크숍을 진행했고요. 여기서 도출된 결과를 모아서, 다시 어린이와 주민에게 물어봤어요.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수정하고요. 그러니 이 놀이터가 사랑받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한 도시의 놀이터를 바꾸는 일이 어린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요?

아이들에게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기적의 놀이터 1호 장소에 원래 놀이터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한 명도 이용하지 않았어요. 고양이만 있는 놀이터였죠. 실제로 재미도 없고 아이들도 갈 시간이 없어요. 지금 가면 동네 아이들이 다 나와요. 기적의 놀이터가 기적인 또 다른 이유가 놀이터에는 엄마나 아빠가 함께 나오잖아요. 어떤 엄마가 급하게 시내에 갈 일이 생겼는데, 아이들이 모래를 파고 있어서 못 데리고 가는 거예요. 그때 옆에 있는 엄마에게 부탁하고 가요. 놀이터에서 커뮤니티가 만들어진 거죠. 놀이터를 바꾼 뒤 1~2년 동안 실제 아이들이 학원을 줄였다고 들었어요. 놀이터에서 2~3시간 놀고 나면 아이들이 짜증이 없더래요. 아이들이 짜증 부리더라도 학원을 보내야 하나, 짜증 없이 더 놀게 해야 하나에서 부모들이 판단한 거죠. 학원 하나 줄이고 그 시간에 놀리는 게 더 행복해 보인다고요. 시장님이 위험한 발언을 한 게 있어요. 아이들이 기적의 놀이터에서 놀다가 학원 가는 걸 까먹어야 한다고요(웃음). 실제로 이런 변화가 있기 때문에 이제 우리나라의 놀이터는 기적의 놀이터 이전으로 돌아가긴 어려워요. 기적의 놀이터가 거울이 되어가는 거 같아요. 

놀이터 이름이 ‘엉뚱발뚱’, ‘작전을 시작하-지’예요. 이름만 들어도 어린이가 주인인 느낌이에요.

‘어린이 놀이터 감리단’에서 활동한 초등학생이 지은 이름이에요. 3호도 지난 달 정식 오픈을 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는 기적의 놀이터’의 앞 글자를 따서 ‘시가모노’라고 지었어요. 기가 막힌 이름이죠. 어린이들이 놀이터가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에 참여했어요. 먼저 장소가 선정되면 둘러봐요. 주민 선호도 조사를 하고 실제 공간 사이즈를 디자인하는 어린이 디자이너 스쿨을 열었어요. 모두 수용할 순 없지만 의논을 해서 현재 기술이 도달할 수 있는 수준에서 받아들여요. 공사하고 있을 때는 현장에서 감리도 하고 시장님과 대화하는 시간도 갖죠. 어린이들이 놀이터를 만드는 모든 과정에 참여하면서 민주주의를 배워나가요.

유지하는 데도 공을 많이 들여야 할 텐데요.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해요. 만들고 가버리는 게 아니고 그 이후에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는 예산을 확보해놓고 인력으로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죠. 놀이터 전체를 매일 한 번씩 기술 자가 둘러보고, 제가 놀이터 세 곳을 다 모니터링해요. 기적의 놀이터가 기존 놀이터와 다른 점은 사람이 있는 놀이터라는 거예요. 놀이터 구석에 활동가분들이 머무는 집이 있어요. 활동가들은 아이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심폐소생술, 응급처치 같은 교육도 받았어요. 

더 놀라운 일이 있어요. 순천시와 함께 노력을 해서 올해 1월 2일, 활동가분들이 모두 정규직이 되었어요. 놀이터에서 제일 걱정되는 게 안전이잖아요. 놀이터의 안전은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의 안정된 고용에서 나온다는 게 제 철학이에요. 일하는 분들이 안정적이지 않다면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볼 수 없을 거예요. 사실 기적의 놀이터가 외형적으로 극복한 것도 있지만 일하시는 분이 시민활동가에서 출발해 공무원이 되었다는 게 기적이에요. 각 활동가들은 날마다 저와 순천시에 그날 놀이터에서 일어난 일을 알려요. 오늘같이 방문하는 날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그렇지 못하는 날은 글과 사진으로 받아요. 얼마 전 3호의 바구니 그네에서 아이가 바구니에 맞아서 코피가 났어요. 부모의 전화번호를 받아서 저녁에 전화하고, 다음 날도 연락해서 괜찮은지 확인했어요. 체계적으로 정성 들여서 운영해요. 정성을 부어야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생기겠죠. 우리가 사람을 건성으로 대하면 아이들이 그곳에서 어떻게 자라겠어요? 한없는 정성이 놀이터에서 가장 중요해요.

안동으로 귀촌하신 지 10년이 넘으셨죠. 자녀들의 놀이터도 만들어 줬나요?

요즘 시골에 아이들이 많이 없어요. 저희 동네는 그나마 조금 있어서 저희 집 마당을 놀이터로 만들었어요. 제대로 된 놀이기구 하나 없지만, 아이들이 언제든지 들어와서 지낼 수 있게 해요. 한쪽에는 만화방이 있고, 합판으로 만든 미끄럼틀도 있어요. 아이들은 항상 정적으로도 동적으로도 못 놀아요. 같은 공간 안에 두 가지가 다 있어야 해요. 저는 도서관과 놀이터를 처음부터 같이 짓고 싶어요. 문을 열고 나가면 놀이터고 들어오면 도서관인 거죠. 책을 보다가 놀이터에서도 놀 수 있게요. 우리 집 마당도 그렇게 만들어놨어요. 마당에서 불도 피우고 연장도 쓸 수 있죠. 여름에는 냇가에서 놀고, 겨울에는 강에서 얼음놀이도 하고, 산에서는 밧줄놀이도 해요. 프로그램이나 시간을 정해놓지 않고 자유롭게 놀고 있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놀이와 놀이터에 대한 경험치도 올라갔을 거 같아요.

도움이 되었겠죠. 그런데 아이는 스스로 크더라고요. 그걸 오해하고 늦게 알아서 아이들과 어려움이 생기는 거 같아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놀이의 신념은, 아이들이 크는 힘은 아이 안에 있다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은 밖에 있다고 생각해서 누굴 만나게 해주고 무엇을 보여주려 해요. 저는 그냥 아이 안의 힘으로 크도록 지켜보고 있어요.

바깥 놀이터가 점점 사라질 거라고 예측했어요. 

아이들에게 놀이터가 무엇인지 물어봤어요. 엄마한테 허락받아야 가는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결정을 엄마가 해요. 이렇게 되면 점점 놀이터 이용이 줄어들겠죠. 날씨 영향도 있으니 더 이용을 안 할 거고요. 그럼 도대체 아이들이 이용하지 않는 놀이터를 왜 만들어야 하느냐는 이야기가 나오겠죠. 그럼 미국처럼 놀이터를 만드는 예산이 줄어들 거고요. 지금도 아이들이 갈 곳이 없다고 하는데, 이런 어려운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바깥 놀이터는 정말 큰 위기에 처할 거예요. 지금은 저 포함 조경사, 설계사, 건축가, 관공서 등 모두 지혜를 짜내야 하는 시기예요. 사회적인 합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놀이터는 위협받을 거예요.

그렇다면 미래의 놀이터는 실내 놀이터 중심으로 바뀔까요?

아이들은 날씨가 좋고 나쁘고 상관없이 놀 수 있어야 해요. 실외와 실내 놀이터가 함께 가야죠. 앞으로 밖에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환경도 더 안 좋아질 거라 공공형 실내 놀이터를 만드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어요. 정성스럽게 만들어놓으면 아이들은 이용하고 도전하겠죠. 그 공간에서 커뮤니티가 형성되면 어머님들이 갈 곳도 있고 쉴 곳도 생기면서 어린이에게 친절한 동네로 가는 데 놀이터가 참 필요하구나를 느낄 거예요. 놀이터는 아이들이 도전하고 새로운 생각을 직접 표현할 수 있는 장이고, 처음 보는 아이와 친구가 되면서 관계가 형성되는 곳이에요. 민주주의를 만나는 장으로 놀이터가 기능했으면 좋겠어요. 

이런 환경에서 부모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요?

기적의 놀이터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여기서 하는 놀이만이 놀이는 아니죠. 아이들의 첫 놀이터가 어딘지를 생각하면 좋겠어요. 하우스와 홈이 궁극의 놀이터예요. 부모는 그 첫 놀이터를 가꿀 줄 알아야 해요. 가장 가까이 있는 곳을 아이들이 스스로 놀 수 있는 곳으로 허용하고, 놀 시간을 더 주고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죠. 기적의 놀이터는 그런 놀이의 상징인 공간이고요. 이제는 “이런 놀이터 없으니까 만들어줘.”가 아니라 우리 놀이터는 우리가 스스로 만든다는 자조 모임으로 가야 해요. 이웃들이 만나서 스스로 놀이를 할 수 있는 놀이터 모임이 곳곳에 생겨야 하지 않나 싶어요.

 

기적의 놀이터에 들어서자 탁 트인 넓은 들판이 펼쳐졌다. 놀이터의 중간에 있어야 할 시소나 그네 자리엔 모래와 통나무가 있고, 개울과 바위, 언덕이 이를 둘러쌌다. 유아부터 초등학생까지 여러 연령의 어린이들이 모래에 발을 담거나 물길에서 낚시 놀이를 했다. 평소 높은 곳에 오르길 두려워하던 아이도 굴 터널, 흔들 다리를 건너는 걸 보니, 과연 도전하고 싶은 놀이터인가보다. 

편해문 씨는 놀이터에 들어서자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인터뷰할 때의 진지한 모습은 어디 가고 어린아이처럼 입이 귀에 걸렸다. 그가 특히 자랑스러워한 곳은 미끄럼틀 옆에 층계가 진 언덕이었다. 공사 직후엔 완만하게 흙과 잔디로 덮인 언덕이었으나 아이들이 이곳을 오르고 내리며 계단의 형태가 되었다고. 인터뷰 내내 어린이들이 선택한 놀이를 강조한 그에게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이 흔적이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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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현지

사진 김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