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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내가 무엇이든 먹었던 날들 그리고 당신과 내가 잘 먹지 못했던 날들
당신과 내가 무엇이든 먹었던 날들
그리고 당신과 내가 잘 먹지 못했던 날들
평론가 부부의 책갈피
당신은 무엇을 먹고 자라서 어른이 되었나요. 그러다 당신은 어느 날 무엇도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되지는 않았나요. 우리는 소설을 이야기하다 그리고 시를 말하다 우리가 먹은 목록을 떠올렸다. 또 우리가 잘 먹지 못했던 시간의 비밀스러운 기록들에 대해서도 말해보기로 했다.
그녀의 시선
아이는 그렇게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받아먹으며 자란다
요즘처럼 언제든 무엇이든 원하는 음식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때일수록, 먹는 일에 드는 노력은 가벼운 것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먹는 일에는 언제든 ‘먹이는 일’이 우선한다. 요즘의 나는 자주 지금의 내가 음식과 먹는 환경에 어떤 취향과 선호를 갖게 되었는지, 내 몸의 체형은 어떤 특징을 띠고 얼마만큼의 영양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를 살핀다. 그러다보면 필연적으로 내 식습관이 형성된 계기를 찾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되고, 결국 나 스스로 무엇을 찾아 먹기 이전의 때에 이른다. 지금 내가 즐겨 먹는 것,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것만 같은 먹거리를 오래 바라보다 보면,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자라던 시절, 그때의 나를 마주하게 된다. 이때 내가 먹은 음식은 먹는 일보다는 ‘먹이는 일’에 의해 가능했던 것들이고, 그것들이 나를 지금 이 모습으로 있게 했다.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던 시절, 막 태어난 아기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겨우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던 작은 몸뚱어리는 엄마의 젖을 먹고, 따뜻한 우유를 먹고, 곱게 다져 끓인 밥과 고기와 채소를 먹고 나날이 자란다. 뼈가 굵어지고 근육이 붙고 살이 불어난다. 맑은 피가 더 많이 생겨나고, 손톱과 발톱이 두꺼워지고, 머리카락도 풍성해진다. 아이의 몸이 자랄 때, 아이의 영혼도 더욱 생기를 얻어 말을 배우고 사람을 알아보고 세계라는 관계를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아이는 점점 자라 스스로 무엇을 챙겨 먹는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누군가로부터 ‘먹이는 일’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비늘과 내장을 제거한 우럭을 들통에 깐다. 거기 대파와 생강, 청주를 넣고 팔팔 끓인다. 익은 살은 따로 발라 한곳에 두고, 몸통뼈와 대가리만 다시 삶는다. 먼저 미역국에 쓸 육수를 내야 한다. 뼈 국물. 어릴 때 나도 뼈를 고아 만든 음식을 먹고 자랐다. 그중에는 가물치나 미꾸라지처럼 생물을 통째 곤 것도 있었다. 어머니가 강릉 분이라 우리집은 생일에도 미역국에 양지 대신 우럭을 넣었다. 독립 후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이제 나도 그렇게 한다. 특히 내 생일과 애 생일에 그렇게 한다.
– 김애란, <가리는 손> 중에서
이 소설은 ‘재이’라는 중학생 아들을 키우는 ‘나’의 이야기다. 소설의 핵심적인 사건은 ‘K시 중학생 노인 폭행 사건’인데, 재이는 유일한 목격자로 그 사건에 연루된다. 철없는 중학생 몇몇이 폐지 줍는 노인과 시비가 붙어서 그와 몸싸움을 하다 결국 노인이 사망하게 되고, 사건 이후 ‘나’는 경찰서에서 사건 장면이 녹화된 영상을 보게 된다. 음소거 된 영상에는 노인과 아이들이 시비가 붙고, 그때 근처 인형뽑기 기계 앞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재이의 모습이 찍혀 있다. 영상에서 재이는 노인이 쓰러지자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가 잠시 후 다시 돌아와 뽑아둔 인형을 챙겨간다. 목격자 조사를 하던 경찰이 그때 왜 바로 신고하지 않았냐고 묻자, 재이는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나는 그것을 묵인한다.
재이와 나, 아들과 엄마의 관계 사이에서도 해소되지 않는 의심과 불안이 소설의 중심에서 회오리친다. 보복 당할 것이 두려워 신고하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말했어도 되었을 텐데, 재이는 왜 없던 학원 수업 핑계로 거짓말을 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게다가 어째서 그처럼 태연하게 거짓을 말하는지를 나는 더더욱 알지 못한다.
내가 낳아 기른 아이지만, 재이는 어느새 나에게 완벽한 타인이 되어버린 듯하다. 마찬가지로 재이의 생일상을 앞에 두고 마주한 모자의 대화는 사건의 핵심을 통과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겉돈다. 그러다 내가 그때 아이들이 웃으며 할아버지에게 뭐라고 하더냐고 묻자, 재이는 “틀딱?”이라 말하며 순간 예의 그 표정과 동작을 짓더니 금세 나의 눈치를 살피며 바로 잡는다. 그때 나는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아버린다. 예의 그 표정과 동작은 내가 본 영상 속에도 있었다. 놀란 듯 평소보다 커진 눈과 입을 가린 재이의 손. 음소거 된 그 영상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재이가 너무 놀라서 그런 줄로만 알았지만 그것이 바로 지금처럼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던 모습이었다면…. 이 때문에 소설의 결말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재이는 생일 케이크 초에 붙은 불을 끄고 나는 그 찰나의 어둠 속에서 재이의 얼굴을 찾으려 애쓴다. 내가 해준 밥을 먹고 자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나의 아이는 훌쩍 자란 저 자신의 손 뒤에 감춰져 내가 알 수 없는 입으로 내가 알 수 없는 것을 먹고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존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먹일 미역국을 끓이고 밥을 하고 갈치를 굽고 불고기를 졸이는 일에 대한 묘사가 소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가리는 손>은 결국 먹고 먹이는 ‘손’, 그러다 더 이상 닿을 수 없게 되는 어떤 ‘손’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남편 없이 홀로 나를 키워준 엄마의 손, 역시 홀로 재이를 키우는 나의 손. 그 손들은 손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다. 이 세상의 온갖 모서리를 가려준 손이자 더러운 것들을 대신 씻어준 손. 아이를 깨끗하게 씻기고, 청결하게 세탁한 옷을 단정하게 입히고, 얼룩 없는 몸과 올바른 마음가짐을 갖도록 돕고, 무엇보다도 정성껏 밥을 지어 먹여 살리는 손. 생일날 집에 돌아올 아이를 기다리며 생일상을 차리는 나의 분주한 모습과 그 사이로 아이와 연관된 사건의 전말이 틈입하고, 또 그 사이로 자신을 먹여 길러준 엄마에 대한 기억이 개입하는 이 소설은, 결국 한 어미가 아이를 먹이고, 그 아이가 자라 또 자신의 아이를 먹이는 일에 관한 것이라고도 요약할 수 있겠다. 잘 차려진 상 앞에 앉은 아들이 음식을 뜨기 전에 엄마부터 드시라고 하자, 나는 재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 다 됐네.”
먹이고 먹는 일은 결국 한 사람을 만드는 일이다. 그 사람의 피와 살을, 뼈와 근육을 만들 뿐만 아니라 마음을 넓히고 생각을 키워서 이 세상에 홀로 우뚝 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 옆의 사람들까지도 돌볼 줄 아는 존재로 만드는 일이다. 저 소설 속의 나도, 나의 엄마도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 매일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빈 그릇에 그것들을 담아 딸과 아들에게 먹였을 것이다. 하지만 저 소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내가 먹인 것들이 고스란히 나의 아이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이고, 값비싼 옷을 입히고, 유명한 학원에 보낸다고 해서 그 아이가 반드시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의 기준을 충족하는 어른이 될 수는 없다. 다른 생각을 하다가 이만 원짜리 갈치를 태워버리고야 말듯이, 아이의 밥상에 늘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차려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일에는 누군가의 ‘먹이는 일’이 반드시 동원되긴 하지만, 아이가 먹는 것이 모두 어른의 몸과 마음을 이루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언젠가 이제 막 세상의 부분들의 이름을 발음하게 된 어린 조카의 사진을 찍은 일을 기억한다. 그 사진 속에서 아이는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고 입을 활짝 벌리고 양 눈은 꼭 감은 채로 서 있다. 어느 집 마당을 함께 서성일 때였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이제 그만 안으로 들어가자고 말하는 내게 아이는 이렇게 말한 다음 그런 표정과 동작을 한다. “아니야, 나는 빗물 먹을 거야.” 아이는 그렇게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받아먹으면서 자란다. 빗물과 눈을 먹고, 흙과 풀을 먹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말리는 어른들의 놀란 시선과 엄한 말투까지도 먹으면서 아이도 서서히, 그리고 무사히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의시선
당신과 내가 잘 먹지
못했던 날들
대학 때였다. ㅇ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늘 활짝 웃는 얼굴로 유명한 친구였다. 그래서 누구나 그의 이름을 부를 때면 자신도 ㅇ처럼 환환 표정을 짓곤 했다. 그런 그가 연인과 헤어진 후 표정을 잃고 바위처럼 앉아 있는 날들이 많아 친구들의 걱정을 산 적이 있다. 그때쯤 ㅇ가 동아리 공동의 일기장 역할을 했던 언집에 적어놓았던 구절은 아직도 이상하게 생생하다(이 야릇한 형식의 공개 일기장은 대학에서 아직도 통용될까). 거기에는 이런 내용의 말이 적혀 있었다. ‘연인과 헤어진 후 가장 슬픈 일은 매 끼니때만 되면 배가 고프다는 사실이다.’ 슬픔과 상념에 빠져있다가도 식사 때만 되면 정확히 배가 고프다는 사실 때문에 그는 자신이 단순한 육체에 불과하다는 비참함을 뼈저리게 느꼈으리라. 정말로 인간은 단순하게 복잡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일들을 기어코 묘한 꿈으로 만들어버린다.
헤어진 애인이 꿈에 나왔다 // 물기 좀 짜줘요 / 오이지를 베로 싸서 줬더니 / 꼭 눈덩이를 뭉치듯 / 고들고들하게 물기를 짜서 돌려주었다 // 꿈속에서도 / 그런 게 미안했다
– 신미나, <오이지> 중에서
울고 싶었는 데 울지 못했을 것이다. 헤어진 애인이 짜준 물기는 실은 시의 화자가 흘리고 싶은 눈물이었으리라. 실컷 울고 오이지처럼 쭈글쭈글한 마음으로 아무렇지 않게 살고 싶었던 거겠지. 그런데 그게 잘 안 되었을 것이고…. 헤어지고 나서도 그렇게 너의 도움을 받아야만 울 수 있고, 잊을 수 있어서 못내 미안해졌을 마음. 어쩌면 친구 ㅇ의 글에도 어떤 마음이 생략되어 있었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그의 글은 매 끼니 때마다 찾아오는 배고픔이 비참했다는 뜻만 지녔던 게 아니라, 너 없이 채워지지 않는 생의 허기가 자주 속을 아프게 했다는 말도 포함하고 있지 않았을까.
나는 머리를 숙였네 / 지난 계절 / 밥알마다 네 얼굴이 어려있어 // 그밥, / 차마 먹지 못해 / 편지를 접었는지도 //여름 밥빛은 / 네 얼굴을 지웠다
– 허수경, <밥빛> 중에서
스물 한 살의 나는 짧은 머리를 하고 총을 옆에 두고 군복을 입고 아침밥을 먹다 울었던 적이 있다. 일을 하시던 엄마가 힘이 빠져 길 위에 나뭇잎처럼 쓰러져 누웠고, 급하게 수술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나서였다. 그때 내 눈에도 밥이 그렇게 하얬다. 그리고 밥이 아니라 너무 많은 밥알들이 보였다. 내가 넘겨야할 밥알이 그렇게 많을 수가 없었다. 내 앞에서 밥을 먹던 선임병이 내가 터뜨린 눈물에 당황을 해서 화를 냈다. 어디 조교가 훈련병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냐고. 그래도 그가 출근하는 중대장에게 나의 울음에 대해 곧바로 전해 나는 급하게 휴가를 나올 수 있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나뭇잎처럼 침대에 누워 나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엄마의 눈에서 내가 넘기지 못했던 밥알의 하얀 빛이 주르륵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엄마는 다행히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고 했다. 말없이 눈물만 흘리는 엄마 옆에서 수술 경과를 말해주며 아버지는 나에게 밥은 먹고 왔는지를 물었다. 그때 아버지의 그말이 나에게는 ‘너도 그 많은 새하얀 밥알들을 보았니’라는 물음처럼 들렸다.
차를 마시다니 / 꽃이 피다니 // 목구멍으로 무엇을 넘기다니 / 꽃을 보다니 // 해변을, 파도 끝을, 신 벗어들고 걷다니 / 웃음까지도 생기다니 / 배가 고프다니…… // 분노여 입을 벌려라 / 바다를 넣겠다 / 쏟아넣겠다
– 장석남, <차를 마시다니> 중에서
곧 또 봄이 온다. 곧 또 4월이 온다. 4년이 지났구나. 얼마 전에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04명을 기억하기 위해 시민들과 작가들이 만든 304낭독회를 다녀왔다. 2014년 9월에 처음 열렸던 낭독회가 매달 한번씩 지속적으로 열려 어느덧 마흔한 번째 낭독회가 되어 있었다. 반가운 얼굴들이 많은 자리였는데 그래서 나는 친구같은 그들의 낭독을 들으면서 티 안나게 울기 위해 꽤 애를 썼다. 어느 순간에는 눈물을 확 쏟아내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기도 했는데 꾹 눌러 참다보니 목이 아팠다. 눈밖으로 흘려보내지 못한 눈물은 목울대 근처에서 뜨겁게 고이는 것일까. 어떤 시간 역시 자연스럽게 흘려보내지 못하고 얼음처럼 차갑게 고여있을 때가 있다. 2014년 4월 16일도 아마 그럴 것이다. 그날을 생각하면 여전히 모든 일이 조심스러워진다. 2014년 이후 우리에게 바다와 봄은 다른 것이 되었다. 삶 또한 그럴 것이다. 아마도 평생이겠지. 잊지 못할 것이다. 잊어서도 안 될 것이고. 식탁에서 반찬투정을 하는 아이를 너무 보고 싶어할 부모님들을 떠올린다. 그분들의 오늘이 지난 사년 동안의 나날들보다 조금은 덜 아플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글 김나영, 송종원
사진 이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