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부부의 책갈피

삶은 서서히 영화가 된다

삶은 서서히 영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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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나에게 영화는 현실을 잊게 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의 가장 구체적인 한 장면으로 지금의 나를 조금 다르게 움직이도록 하는 기억이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에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소중하지 않다면, 그 영화 역시 소중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이야기

깊이에의 강요_

그 가게에는 늘 이상한 냄새가 떠 있었다. 공업용 오일 냄새 같기도 했고, 쇠 냄새 같기도 한 것이 베어 있는 곳이었다. 떠올려보면 천변에 있던 그 자리는 예전에 자전거 점포가 있던 것 같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그 가게의 이름은 떠오르지 않는다. 대신 거기에서 만난 비디오테이프에 붙은 영화들의 제목만은 기억한다. <400번의 구타>, <쥴 앤 짐>, <베티블루 37.2>, <바그다드 카페> 등등의 제목들. 그곳은 비디오 가게였다. 장사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이는 아저씨가 가게 주인이었다. 가끔 전도연을 닮은 여자분이 아저씨 대신 앉아 있기도 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조금은 망가진 세상의 냄새가 나던 곳이었다. 당시 고등학생인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직감적으로 그 분위기에 이끌린 것 같다. 세상의 모든 비밀을 이미 알아챈 듯한 기분에 빠져있던 나에게 그 가게는 이상하게 편안했다. 주말이면 거기에 갔다가 시내 중심가의 ‘문학사’라는 이름의 서점에 들르는 것이 나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먼 바다를 본다 / 먼 바다는 깊이가 없고 / 아이들의 삶에도 그런 것이 없고 / 언젠가는 평평한 널빤지나 마루가 될 것이다 / 언젠가 나는 마루가 될 것이다 

– 김이강, <먼바다> 중에서

나는 그 비디오 가게에서 주로 실험적이고 어려운 영화들을 빌려 봤다. 세상의 깊이를 조금이라도 더 느껴보겠다는 과잉된 자의식이 발동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려운 영화를 통해 세상의 깊이를 느껴보기도 전에 나는 자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스토리는 기억하지 못한 채 잠이 덜 깬 몽롱한 의식에서 본 흐릿한 영상만이 머릿속에 잔영처럼 남은 작품들이 많았다. 고2 여름방학의 어느 날로 기억한다. 

가족들이 없는 빈틈을 타 나는 또 다소 기이한 영화를 틀어놓고 낮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등이 축축해질 정도로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내 앞에 서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기 배 속에서 태어난 아이가 점점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염려가 담긴 시선임이 분명했다. 

그 시기 나는 늘 내 삶이 평범해질까 조바심을 낸 거 같다. 삶의 깊이라는 게 평범한 일상이 지속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깨닫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을까. 언제나 요동치는 삶의 환상이야말로 가장 평범하고도 극히 허구적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퇴근 후 티브이를 보다 거실 소파에 누워 잠이 든 아버지의 삶 속에도 우리를 경악시킬 삶의 깊이가 내재해있음을 보지 못했다. 미성숙한 채로 자의식만 비대해져 모든 것이 지루하고 하찮게만 여겨진 걸까. 아니면 스스로를 태워버릴 듯한 젊음의 혼돈스러운 열기를 발산할 사건과 드라마에 굶주린 걸까.

청춘-영화_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닌 소도시에는 극장이 단 두 개뿐이었다. 아카데미 극장과 오스카 극장. 그중 내가 더 자주 다닌 곳은 오스카였다. 100석 정도 규모의 작은 소극장으로 손님이 드물었다. 기억하기로 가장 많은 관객이 든 때는 정우성 주연의 <비트>를 상영할 때였다. 나는 그 영화를 그곳에서 두 번이나 봤는데, 시내의 온갖 불량한 청춘들이 다 모여들어서 영화관을 채운 그 분위기를 기억한다. 그들은 정우성이 싸우고 오토바이를 탈 때마다 피식거리며 비웃었다.

어떤 날은 나를 포함 단 두 명의 사람이 영화를 보기도 했다. 뮤지컬이 가미된 영화로 기억한다. 나는 그 영화 역시 앉은 자리에서 두 번이나 봤다. 그래도 문제 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이었다. 중간에 영화가 끊기면 영사실 바깥에서 놀고 있는 아저씨를 찾아가 문제를 알리기도 했다. 

옛날 영화를 보다가 / 옛날 음악을 듣다가 / 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구나 생각했다 / 지금은 나보다 젊은 나이에 죽은 아버지를 떠올리고는 / 너무 멀리 와버렸구나 생각했다 / 명백한 것은 너무나 명백해서 /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중략) 눈 속에 빛이 가득해서 / 다른 것을 보지 못했다 

– 강성은, <환상의 빛>

그곳은 그때도 이미 오래된 곳이었다. 영화관에 들어오면 동시대의 영화가 돌아가고 있었지만(물론 서울 같은 대도시에 비하면 ‘동시대’라고 말하기 민망하지만) 옛날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고등학생인 나는 그곳이 얼른 더 쇠락하길 기대했다. 2층에 있는 영화관에 들어가기 위해 지나야 하던 낡은 계단 통로의 어둠과 구식 화장실에 울리던 누수된 물방울 소리가 아직도 생생한데, 그것들이 자아내는 분위기 때문에 세상의 끝에 이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런 것들에 안도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실 무언가를 두려워했다. 내가 가진 혼돈이, 불투명한 불만이, 알 수 없는 내면의 끓어오름이 불편했고, 그것을 빨리 용도 처분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의 용도를 알아내기란 어려웠고 처분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런 마음이 얼른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게 한 것인지도. 어쩌면 그때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삶의 메마른 속성에 대해, 명백한 현실의 건조함에 대해, 기쁨은 드물고 괴로움은 늘 우리 곁에 자리한다는 완강한 사실에 대해.

20여 년이 흐른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시기 내 몸속에 가득하던 빛들이 보인다. 그 빛들의 산란이 때론 상상 이상으로 유치해서 부끄럽기도 하고, 또 때론 예상 이상으로 음울하기도 해서 놀랍기도 하다. 다다를 수 없는 먼 곳의 빛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놓인 현재의 자리가 조금은 어두워지기도 한다. 뭐 이 또한 약간은 감상적인 태도이며 지난 시간에 대한 환상이라 말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가끔 그 시기를 영화처럼 관람할 수 있는 거리를 가지게 된 것이다. 나이가 더 들어갈수록 내 인생이 상영되는 또 다른 영화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될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어떤 장르의 영화가 상영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삶은 서서히 영화가 된다는 사실이다.

그녀의 이야기

영화관에서_

최초로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관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학교 특별활동의 일환으로 단체 관람을 한 기억은 강렬하게 남아있다. 그때 본 영화는 <타이타닉>이었고, 거대한 화면에서 거대한 배가 거대한 바닷속으로 침몰하는 장면은 너무나도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그 영화가 인상적인 이유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 엄청나게 슬픈 장면에서, 모두 눈물을 줄줄 흘리는 와중에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키득대며 얘기한 한마디 때문이다. “야야 쟤 콧물 봐라.”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있는 두 배우의 얼굴에서 죽음과 이별의 절망이나 슬픔을 읽어내기는커녕 흐르는 콧물을 먼저 봐버린 친구의 소근거림은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충격을 남겼다. 모두가 울고 있는 어두운 방, 눈앞의 스크린에서는 가히 한 세계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내 옆의 친구는 거대한 울음 가운데 홀로 웃고 있었다. 아마도 그때 나는 사춘기를 지나고 있던, 너무나도 예민하던 나이였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멋진 사람들의 이상적인 세계처럼 보였다. 아무리 절망적이고 슬픈 사연을 다루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그 속에 스며들기보다 정면으로 마주하고 바라보고 있었다. 멋진 배우의 얼굴에 흐르는 한 줄기 콧물은 리얼리티보다는 너무나도 어색한, 미처 편집되지 못한 옥의 티처럼 여겨졌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에는 여느 커플들처럼 우리도 가끔 영화관으로 나들이를 갔다. 주로 상업영화가 아닌 영화를 봤는데, 그 때문인지 우리가 앉은 상영관은 한산하기 일쑤였다. 드문드문 사람들이 앉은 와중에도 어김없이 영화는 상영되었고, 역시 어김없이 관중심리는 작동했던 듯, 사람들은 같은 부분에서 탄식하고 웃고 울었다. 간혹 나는 그걸 보는 게 좋았다. 영화의 어떤 부분이 사람들을 웃게 하는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웃을 만한 무언가가 있다는 게, 그 무언가가 손에 잡힐 듯한 장면으로 거기 있다는 게, 그 확실한 실감이 좋았다. 

게다가 그때는 내 옆에 앉은 남자의 자연스러운 감정이 더욱더 애틋하게 보였다. 특히나 웃을 때는 누구보다도 더 큰 소리로 시원하게 웃어서, 그의 웃음은 ‘좀 웃긴가’ 하고 있던 사람들의 미처 열리지 않은 웃음보를 팡 터트려주는 듯했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는 그와 함께 극장에서 본 영화의 제목이나 내용을 모두 열거할 수는 없지만, 그가 유독 ‘빵 터지던’ 장면들은 여전히 세세하게 기억한다. 그 순간들 덕분에 마치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유쾌한 영화 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으므로.

웃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_

윤성희의 <웃는 동안>은 한 번만 읽어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소설이다. 특히나 ‘영화’나 ‘영화관’과 함께 소설을 떠올리게 되는 경우에는 언제나 이 소설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한국 소설 가운데 실제로 영화화된 작품도 많고, 영화적 기법을 적극 차용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 소설도 많지만 굳이 이 소설이 내 머릿속에서 영화라는 단어와 접착해있는 이유가 뭘까. 

이 소설은 절친하게 지내던 네 명의 고등학교 동창생 친구들 가운데 하나가 죽고 나서 시작된다. 특이한 것은 죽은 ‘나’가 소설의 초점화자로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점이다. 친구들은 나의 조카한테 나의 부고를 전해 듣고, 생전에 나와 약속한 대로 좋은 정장을 빼입고 장례식장에 와서 빈소를 지키고, 장례가 끝난 후 곧장 내가 살던 집으로 와서 초록색 소파를 들고 나온다. 이 초록색 소파는 이들이 더 젊던 시절에 영화관에서 훔쳐 온 것이다. 수능을 치지는 않았지만 수험표를 갖고 영화관을 찾은 그들은 아주 지루한 영화를 졸다 깨며 보고 나와서 우연히 앉은 그 소파를 탐낸다. 재미없는 영화를 돈 주고 봤으니 소파라도 가져가자고 내가 제안했고 친구들도 별말 없이 그 의견을 따른다. 소파수리공 행세를 하며 영화관을 무사히 빠져나온 이후 그 초록색 소파는 내가 죽을 때까지 사용해서 가운데가 푹 꺼지고 낡았지만, 처음 그 소파를 누가 가질지 정하기 위해 여러 가지 내기를 하던 때처럼, 세 명의 친구들은 그 소파를 서로 갖겠다고 우기며 우스꽝스러운 내기를 한다. 이 과정에서 소파를 결국 누가 갖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소파가 얼마나 낡았는지, 혹은 정말로 영화관에서 소파를 훔치는 일이 가능한지, 그들은 왜 낡은 소파를 서로 갖겠다고 하는지 등의 물음과 그 답은 중요하지 않다. 이 소설의 사건을 파헤쳐서 의미를 발견하려는 일은 무의미해 보인다는 말이다. 

이 소설이 압도적인 이유는 그야말로 ‘영화적인 풍경’을 절묘하게 그려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세상에 첫발을 들이민 청년 넷이서 함께 초록색 소파 하나를 들고 밤길을 걸어가는 장면을 떠올려보라. 이어서 청년과 중년의 경계에 서서, 더 이상 젊다고도 그렇다고 충분히 늙었다고도 할 수 없는 이들이 상복을 입고 죽은 친구의 방에 있던 소파를 꾸역꾸역 옮기는 장면도 떠올려보라. 친구들이 옮긴 소파는 결국 한 친구의 옥탑방 앞에 도착했으나, 그 과정에서 가로수길 아래, 횡단보도 앞에, 학교 운동장에 잠시 멈춰 서서 그들을 쉬게 했고, 떠들게 했고, 계속해서 걸어가도록 했다. 친구들이 옮기고 내가 올라탄, 빛바랜 소파에는 자세히 들여다봐야 알 수 있을 저마다의 고단한 삶이 스며있다. 

<웃는 동안>의 나와 친구들은 한 시절을 함께 보내면서 나의 생애라는 영화에서는 평생을 함께 보낸 것이 되었다. 어딘가 좀 모자라고 삐뚤어져 있으며 때문에 이 세계의 기준이나 논리에 잘 맞지 않는 인물들. 사회적인 시선에서 그들은 불필요한 잉여 인간에 불과하지만, 나의 눈으로 다시 그려지면서 그들은 저마다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로 살아난다. 결국 그들이 함께 본 영화映畫는 부귀가 빠진 영화榮華였을 것이다. 그들의 시간은 서로를 되비추며 영화로워진다. 

적어도 나에게 영화는 현실을 잊게 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의 가장 구체적인 한 장면으로 지금의 나를 조금 다르게 움직이도록 하는 기억이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에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소중하지 않다면, 그 영화 역시 소중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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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나영, 송종원

사진 이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