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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어둠
그녀의 이야기
여행을 뜻하는 영단어 ‘Travel’의 어원은 고통과 고난을 의미하는 ‘Travail’이라고 한다. 교통수단이 지금처럼 발달하기 이전에도 여행을 떠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떠남이란 단순히 어떤 목적지로의 이동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겪을 만한 숱한 고난과 고통을 감수하는 고행이기도 했으리라. 그럼에도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여정을 꾸리고 집 밖으로 한 걸음 내딛게 할 정도로 여행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
일상적인 장소를 벗어나 아름다운 풍경이나 쾌적한 환경을 찾아 떠나는 이들에게 여행은 무엇보다도 휴식을 위한 행위일 것이다. 흔히 사람은 관광 아니면 휴양을 목적으로 여행을 한다. 여행이야말로 숨 돌릴 틈 없는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의 어원을 재차 따져 묻지 않아도, 여행 가방 귀퉁이에 어쩔 수 없이 챙겨 넣은 업무 서류와 노트북이 아니어도, 모든 여행에는 일종의 과제가 포함되어 있다. 모두가 ‘다시 돌아오기 위해’ 떠나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올 때는 떠날 때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내가 되어 있기를 바라면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일상을 재건할 힘을 여행에서 얻어 와야 한다. 아니 반대로, 여행에서 얻어 오는 것으로만 우리는 또 다시 일상을 재건할 수 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의 충전, 그것이 무위의 휴양과 맹목의 유랑에서도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얼마 전 강원도의 산속에서 하룻밤을 묵은 적이 있다. 별 계획 없이 갑자기 떠난 여행이었다. 산속에 미술관이 있고, 산을 타고 흐르는 계곡 옆으로 드문드문 늘어선 똑같이 생긴 육면체의 숙소가 인상적인 곳이었다. 초봄이었고, 눈 덮인 얼음장 아래로 물 흐르는 소리가 제법 시원했다. 밤이 되자 말 그대로 칠흑 같은 어둠, 그 속에 세상의 모든 빛을 빨아들인 것만 같은 달이 떠 있었다. 그때 문득 생각했다. 고요함이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가장 크고 깊은 빛과 소리가 한데 고여 있는 듯한 느낌을 말하는 게 아닐까 하고. 시간이 멈춘 듯, 나 역시 한자리에 붙박인 채 앉아 한동안 그 고요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했다. 가장 선명한 채로 완전히 지워지는 경험.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여행의 의미를 조금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시간을 재고 장소를 옮겨 다니며 음식을 맛보고 사진을 찍는 일에서 의미를 찾는 여행도 있겠으나, 그 모든 일상적인 행위에서 한순간 벗어날 때야말로 정말 여행을 하게 되는 거라고 말이다. 떠나온 곳을 잊지 않은 채로 그곳을 지워야만 마침내 다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스무 살 무렵, 대학 시절의 친구들. 그들과 여러 빛깔과 온도로 만들어갔을 우정을 오래 잊고 있다가 문득 그때를 떠올리고, 무엇인가를 뒤늦게 깨닫고 절절하게 후회해본 경험이 있는 자들에게라면 이 소설은 소설처럼 읽히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소설은 대학 문학 동아리에서 만난 세 동기 간의 이야기다.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하는 송, 그저 책 읽기를 좋아하던 민아와 나는 같은 기수라는 것만으로 자연스레 친구가 된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소설가로 등단한 사람은 나이고, 드문드문 드러나는 정황상 송은 많이 아프거나 그 밖의 사정으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상대가 되어버린다. 송은 친구들에게 이야기로만 남게 된 것이다.
이 소설의 핵심은 내가 소설가가 된 것을 알게 된 민아가 오랜만에 연락을 해와, 오래전 셋이 떠난 적 있던 곳으로 다시 여행을 가는 데 있다. 이들이 함께 떠난 여행은 이전 여행의 구멍을 메꾸는 데 목적이 있는 듯하지만, 결국 이 여정은 새로운 결락을 또한 만들어갈 뿐이다. 하지만 이들이 거듭 떠났다는 데 주목하자.
땅끝이라는 장소, 여기가 한자리에서 해가 지고 다시 뜨는 곳이라는 점은 특히나 소설가라는 단 하나의 목적지를 꿈꾸며 고달픈 삶을 견디던 송의 인생에 비추어 봤을 때, 희망과 절망이 매 한자리라는 식의 뻔한 해석이 가능한 지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의 제목이 암시하듯 끝내 ‘길 위의’ 존재인 그들에게 그런 구체적인 장소에 깃든 의미는 부차적인 것일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전에도 떠나본 적이 있었고, 지금 다시 떠나왔다는 점이다. 이들의 여행이 보여주는 것은 거듭 제자리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각자의 삶을 살아가더라도, 어떤 끝을 향해, 닿을 수 없는 어떤 지점을 향해 거듭 가보고자 시도한 적 있기에 이들은 각자 자기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자기만의 이야기를 통해 송은, 나와 민아는 서로에게, 그리고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로 거듭난다. 민아는 송의 소설 속 한 구절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이국으로 떠날지도 모르고, 나는 계속해서 소설을 쓰게 될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일과 떠나는 일과 다시 돌아오는 일은 끝 모르게 반복되며 긴 이야기로 어딘가에 기록될 것이다.
그의 이야기
어느 해부터인가 얼굴 근육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걸 느낀다. 나는 웃는 표정을 짓고 싶은데, 웃고 있는 내 자신을 인식하는 순간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어색해진다. 그럴 때가 제일 난감한 순간이다. 혹 상대방이 나의 경직된 얼굴을 알아챌까 마음이 쓰이는 순간, 얼굴은 더 말을 안 듣는 딴 세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시선을 돌려 부러 먼 곳을 본다. 애써 나를 지금 이 장소에서 이탈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누군가에게 인독人毒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독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게 인독이라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내 얼굴의 경직 또한 오랜 시간 쌓인 인독 때문은 아닐까 하는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시답지 않다고 말했지만 나는 내심 아직도 나의 경직이 정말 인독 때문인 것 같다고 여긴다. 사람의 병을 낫게 하는 것 중 하나가 사람의 눈빛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아픈 사람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눈빛이야말로 어떤 약보다도 귀하다고. 그러므로 사람을 진정 아프게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또 사람의 눈빛이지 않겠는가.
나보다 세상을 몇 년 더 산 친구 중 하나는 ‘끔찍하지 않아?’라는 표현을 잘 쓴다. 가령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자신의 욕망의 테두리 안에 붙잡아 두려는 사람들의 삶이란 너무 끔찍하지 않아? 이런 식. 나는 그 말투가 상당히 문어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삶이 괴롭긴 하지만 끔찍하다고 여긴 적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며 “짐승 같은 흐느낌” 같은 종류의 감정을 길을 걷다가, 또는 샤워를 하다가, 혹은 TV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알아버리고 말았다. 이쯤에서 삶이 그냥 중단되었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순간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속초에서 화진포까지 버스를 타고 달린 날이 있었다.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버스였다. 스무 살에서 서른 살로 넘어가는 시기 어느 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때 강원도가 참 좋았다. 그곳에서는 어디를 가든 아는 사람을 하나도 만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게 그렇게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자유로움은 어떤 감정으로부터의 해방감이었다. 좋을 것도 없고 싫을 것도 없었다. 외로울 것도 없고 기쁠 것도 없었다.
7번 국도는 바다를 곁에 두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나에게 7번 국도는 어둠으로 더 인상 깊었다. 밤의 7번 국도는 그 어느 곳보다 깊은 밤을 보여주었다. 버스에서 내려 그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내가 완전히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그곳에서 나는 아무에게도 전화 걸지 않았다. 걸려오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렇게 밤중의 몇 시간을 홀로 강원도의 어두운 밤 속을 지나자 나는 조금 단순하게 건강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배가 고팠고 낡은 숙소 어디에선가 곯아떨어지고 싶었다.
나는 속초의 국밥집에서 배를 채우고 속초의 낯선 모텔에서 잠이 들었다. 내일이면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어색할 정도로 나는 그곳의 기분에 깊게 빠져들었다. 사실은 돌아가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서울이 끔찍하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혹 속초가, 아니 강원도의 깊은 어둠이 나의 발목을 잡고 있었는지도.
거짓말처럼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강원도를 이야기하겠다며 마음먹고 강원도를 생각하며 며칠이 지나서야 그날의 여행이 떠올랐다. 강원도 산골짜기보다 더 깊은 의식의 산골짜기가 나의 내부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왜 그날들을 그렇게 감쪽같이 잊고 있었을까. 그러자 갑자기 사람을 무서워하는 삶의 얼굴이 그려졌다. 인독과 사람들의 힘겨운 시선을 피해 세상의 끝 어느 곳에 자신을 숨겨두고 있는 삶의 얼굴들을 상상했다. 아마도 많을 것이다. 강원도에는 그런 얼굴들이 숨어서 살 것 같다. 속초에도 있고 화진포에도 있고 아야진리에도 있겠지.
글 김나영, 송종원
사진 이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