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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민 ㅡ 미구프로덕트
한 번 입어보고 다시는 손이 가지 않는 옷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나의 몸과 마음, 나아가 일상에까지 꼭 맞는 옷이 있다. 미아동의 한적한 골목 한편, 작은 언덕이 그려진 입간판을 세워둔 ‘미구프로덕트Migu Product’는 몸에 닿는 옷과 물건에서 불편함이라는 단어를 지웠다. 주인장 강수민의 취향에서 흘러나온 모든 것은 품이 넉넉하고 여유로우면서 사람을 대하는 데 경계가 없기 때문이다. 미구프로덕트에서 고르고 지은 경쾌한 실루엣의 원피스를 입을 때마다 기분이 좋은 이유를 알아챘다. 편하고 오래가는 옷은 그와 같은 마음으로 지어냈기에 가능하다는 걸.
비 오는 날의 미구프로덕트를 만나게 됐네요. 반가워요.
어서 오세요. 궂은 날이라 미아동까지 걸음 하는 길이 괜찮으실지 걱정했어요. 아침부터 장맛비가 쏟아지네요.
마음 한편에서 비와 ‘미구’가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날이 궂어도 귀여운 블라우스나 장화를 신고 하루를 거뜬히 보낼 것 같거든요. 비 오는 날을 좋아해요?
정말 좋아해요. 하지만 가게 운영 면에서는 내내 마음이 쓰여요. 여기 미아동이 서울 중심부와 좀 떨어져 있는데, 구경할 곳이 그다지 많지 않아요. 미구프로덕트 하나만 들르기 위해 오는 분들도 계셔서 날이 궂으면 손님들이 고생하실까 봐 걱정되더라고요.
저는 가뿐한 마음으로 왔으니까 걱정 마세요.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미구에서 소개하는 제품이죠?
맞아요. 일본 의류 브랜드 ‘오드리Audrey’에서 올여름 시즌 제품으로 출시한 브라운 컬러 원피스예요. 여기다가 보라색 양말과 검정 샌들을 신었고요. 미구프로덕트에서는 자체 제작 의류 외에도 일본의 옷과 생활에 쓰이는 잡화를 함께 소개하고 있어요. 입점된 브랜드들은 전부 제가 자주 쓰고 입어보는, 제 일상과 가까운 것들로 골라두었고요.
양말 색깔이 정말 귀엽네요. 평소에는 그날의 옷을 어떤 마음으로 골라요?
샤워하면서 떠오르는 걸 입어요(웃음). 옷을 고르며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거든요. 고등학생 때 호르몬 문제로 살이 많이 찐 적이 있는데, 그러다 보니까 체형에 구애받지 않는 옷을 찾게 되더라고요. 몸에 딱 맞거나 조이는 듯한 느낌이 들면 내 몸이 계속 신경 쓰이는 게 싫었어요. 그때부터 편하게 훌훌 입고 나갈 수 있는 옷을 좋아했고, 그때 입던 걸 아직도 입어요. 펑퍼짐한 상의나 원피스가 밋밋해 보이면 양말이나 가방, 소품에 컬러를 더해주고요.
스스로를 “프로엔잡러”라고 표현한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렸죠. 어떤 일들을 하고 있어요?
대학교 마지막 학기 즈음부터 미구를 꾸리기 시작했는데, ‘삼성패션연구소’라는 곳에서 회사 생활을 짧게 병행했어요. 지금은 다른 의류 브랜드들의 촬영과 디렉팅, 룩북과 시즌 준비에도 참여하고 있고요. 미구에서의 일이 점점 바빠져서 이제 다른 건 내려두고 여기에 좀더 집중해 보려고요.
오늘은 미구프로덕트의 대표로서 이야기를 나눌 텐데요. 대표라는 호칭, 어떤가요?
조금 부끄러워요(웃음). 주인장 정도면 적당할 거 같아요. 사실 지금 인터뷰도 떨리거든요. 새언니가 《AROUND》 매거진을 구독하고 있어서 집에 갈 때마다 넘겨봤는데, 이렇게 만나게 된 게 신기하고 기뻐요.
좋아요. 그럼 미구프로덕트 주인장인 수민 씨로 부를게요.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해요.
쇼룸은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운영해요. 오전 10시부터 오픈 직전까지 혼자 택배 작업을 해야 해서 하루 중 문 여는 시간이 길진 않아요. 쇼룸을 닫으면 매장 정리와 온라인 배송 업무를 마무리 짓고요. 일요일과 월요일은 쇼룸이 쉬는 날인데, 그때도 제작 상품 미팅이나 원단을 보러 다니다 보면 쉬는 날이 금방 지나가요. 내성적인 성격이라 일과 후에 친구들을 만나는 빈도가 적은데요. 일을 마치고 저녁 10시쯤 집에 가면 그때부터는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니까 휴식에 대한 갈증도 별로 없어요.
그래도 일하는 시간이 꽤 긴데 가끔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겠어요.
‘고시생’이라고 부르는 가장 친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준비하던 시험에 떨어지면 미구에 들어오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떨어질 때마다 또다시 시험을 준비하는 거예요. 이번이 마지막이라면서요(웃음). 지금은 택배 발송 수량이 많을 때만 일일 단기 알바 친구들을 불러서 같이 작업해요. 그리고 근처에 오랫동안 알고 지낸 ‘가현 옷 수선집’ 이모님이 계신데요. 의류 공장을 운영하던 분이라 작업에 대해 잘 아셔서 흔쾌히 도와주셔요. 저도 섭섭지 않게 챙겨드리고요.
앞서 대학교 마지막 학기에 미구프로덕트를 시작했다고 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어요?
제가 여기 근처에 있는 성신여대 의류학과를 졸업했어요. 그래서 미아동이나 쌍문동은 대학교 시절부터 자취하면서 내내 머무른 곳이기도 해요. 방금 말한 수선집 이모도 그때부터 알고 지냈고요. 미구의 시작은 직접 만든 가방이었는데, ‘실용’과 ‘필요’라는 단어를 집약해서 만들었어요. 의류학과를 다니면 짐이 무척 많거든요. 자도 보통 쓰는 것보다 훨씬 크고, 미싱에 들어가는 실기 도구나 가위 같은 게 굉장히 무거워요. 일반적으로 쓰는 천가방에는 작업 도구를 넣고 다닐 수가 없고, 괜찮은 작업 가방이 있는지 찾아보면 너무 비싼 거죠. 그러던 중 도쿄 여행에서 우연히 마음에 드는 원단을 발견했어요. 옥스포드 컨버스 원단이었는데, 부드러우면서도 탄탄해서 힘을 받아도 거뜬해 보이더라고요. 조금 구입해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 저만의 가방을 만들어 봤어요. 줄 이어폰 쓰던 시기니까 가방 안에서 꼬이지 않도록 고정 스트랩을 달고, 토트백이나 크로스백으로도 쓸 수 있도록 끈을 매달았죠. 그리고 그걸 블로그에도 올렸어요.
그 길로 찾는 사람이 많아졌나 봐요.
맞아요. 학교 다닐 때부터 뭐든 많이 배워야 볼 줄 아는 눈이 생긴다고 생각했어요. 낮에는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밤에는 동대문 시장에서 소매업자분들을 응대하기도 했죠. 블로그도 하나의 유통 방식을 배운다는 마음으로 올린 건데 가방을 갖고 싶어 하는 분들이 점점 많아졌어요. 작업실이 없으니까 학교에서 야간 작업을 신청해서 만드는 데도 부족한 거예요. 결국 작업실 겸 매장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학교 주변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시작했고, 옆 골목에서 ‘미아 원조 흑염소’라는 간판이 붙은 건강원을 발견하게 됐어요.
작업실을 연 게 2018년도라고 알고 있는데,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라면 미아동에서만 꽤 오래 머물렀네요. 오픈 준비는 순조로웠어요?
부모님께서는 하고 싶은 걸 해보라며 믿어주시는 분들인데 그만큼 모든 준비와 책임은 저한테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최대한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았고, 제대로 된 사업을 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월세만 벌자는 목표를 세웠죠. 그때 제가 알바로 모은 돈은 자취방에 전부 쏟아 넣은 터라 자금이 충분하지 않더라고요. 고민하다가, 학교에서 토익 시험에 응시하고 900점이 넘으면 장학금을 준다길래 열심히 공부했죠. 그렇게 얻은 돈으로 가게 계약을 하고 나니 이번에는 미싱이나 매장에 두고 써야 할 집기들을 사야 하는 거예요.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웃음), 때마침 택시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나서 보험금이 나왔어요. 그걸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원단도 한가득 사두고서 문을 열게 된 거예요.
혼자서 단단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일해왔네요.
그런데도 제 눈에는 여기저기 부족한 점투성이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작은 가게에 손님들이 찾아오는데 보여드릴 건 가방 하나뿐이니까요. 무언가 다른 걸 함께 보여줄 순 없을까 고민하면서 제 옷장을 열고 가만히 쳐다봤죠. 그런데 같은 브랜드 옷이 꽤 많더라고요. 내가 만든 가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고른 옷도 좋아하지 않을까, 이 마음으로 작업실을 편집숍으로 탈바꿈했어요.
편집숍으로 바꾼 후 첫 오픈 날이 기억나세요?
그럼요. 흑염소집 간판은 그대로 둔 채 몇 가지 옷을 걸어두고, 이웃 떡집에서 시루떡을 맞춰 예쁘게 포장한 후에 손님 맞을 준비를 했어요. 집주인 할머니 댁을 포함한 가게 주변 이웃분들께도 떡을 나누어드리고 보잘것없는 작은 가게로 와주신 손님 몇 분을 대접했는데… 그뿐이었던 거예요. 그날따라 친구들도 시간이 안 맞았고요. 사실 블로그에서 가방을 만들어 소개할 때는 끊임없이 품절됐어요. 저한테 이익이 크게 남는 제품은 아니지만 저렴한 가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도요. 어린 마음으로는 많이들 와주실 거라 기대했고 그분들이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준비한 건데 예상이 엇나간 거죠. 잔뜩 쌓인 시루떡을 형용할 수 없는 마음으로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어요. 그 마음을 잊을 수가 없어서 직접 들러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해요. 장난을 조금 담아, 지금도 시루떡은 잘 안 먹어요(웃음).
이제는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됐지만 그날의 마음을 헤아려보면… 조금 뭉클해요. 그 자리에서 한 골목 지나 여기로 가게를 옮겼죠. 얼마나 됐어요?
4년 정도 됐어요. 다행히 미구를 찾는 손님들이 점점 많아지고 온라인 홈페이지도 오픈하면서 배송 업무를 위해 더 넓은 공간이 필요했거든요. 둥글게 깎인 아치형 문이나 목조로 이루어진 부분은 그동안 여행을 다니며 만난 아름다운 공간들을 생각하면서 만든 거예요. 종일 여기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제가 기분 좋게 출근하고 싶어지는 공간이길 바랐어요.
‘미구’라는 이름의 의미가 궁금해지네요.
미아동이 본디 두루 펼쳐진 언덕이라는 뜻을 담아 지었다는 설이 있대요. 그래서 언덕을 바라본다는 의미로 ‘볼 미䙿’와 ‘언덕 구丘’를 붙이고, 그 이름을 바탕으로 작은 동산과 해가 뜬 듯한 로고를 만들었어요. 나고 자란 울산 이외에는 미아동에서만 지냈으니 두 번째 고향이나 다름없는데, 이제는 고향을 본다는 의미도 담고 싶어요.
부르기에도, 곱씹어보기에도 다정한 이름이에요. 거기에 ‘프로덕트’가 붙은 이유는 뭐예요?
이 질문에 답을 하고 싶어서 맨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의 기록을 찾아봤어요. 2018년 5월 30일인데, “시간을 뛰어넘어 사랑받는 제품을 만드는 건 모든 제작자가 꿈꾸는 일일 것입니다. 오래된 물건에 애정을 가지고 나이 들어가는 일 또한 그것 못지않게 행복한 일이겠지요. 오랜 시간 사랑받는 미구 프로덕트를 소개합니다.”라고 적었더라고요. 처음에는 내가 쓰기 위한 가방으로 시작했다면 그다음에는 그때의 취향으로 고른 물건들을 소개했고, 이후에는 자취를 하면서 쓰는 도구들을 가져다 두었어요. 나중에 결혼하게 된다면 남편 될 사람과 함께 입을 옷도 지을 테고, 아이나 반려동물이 생기면 그에 맞게 쓸 만한 물건들을 만들 거예요. 내가 고르고 만든 것들과 함께 천천히 나이 들고 싶어서 붙인 단어예요.
직접 제작한 의류는 무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고 싶어요.
티셔츠나 맨투맨, 슬리브리스처럼 대단한 아이템은 아니지만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걸 만들고 싶었어요. 원단이나 소재에 신경을 쓰는 건 당연하고, 옷의 흐름이 딱딱하지 않도록 패턴 뜰 때 직선보다 곡선을 많이 쓰죠. 놓여 있는 옷이 직선처럼 보여도 그걸 입는 사람 몸은 전부 곡선이니까요. 혼자 하다 보니 옷의 가짓수가 엄청 많진 않지만 때마다 제가 입고 싶은 걸 만들어 보고, 불편했던 부분을 개선하거나 아이디어를 더해서 계절에 맞춰 나오려고 해요.
미아동 이야기를 더 들어볼까요. 수민 씨가 느끼기엔 이 동네의 어떤 점이 특별해요?
평균적으로 동네에 머무는 어르신들 연령이 높은 편이에요. 처음에는 제가 일찍 나와서 늦은 밤까지 가게 불을 켜둔 모습을 보고 신기하셨는지, 뭐 하는 곳인지 물어보곤 하셨어요. 그러다가 컴퓨터에 무엇 좀 설치해 달라, 메시지 좀 적어 달라, 소상공인 혜택 서비스 신청해야 하는데 도와 달라, 이런저런 부탁을 하시더라고요(웃음). 대신 지나가시면서 참외나 수박 쥐여주시거나 청과점에서 산 흙 잔뜩 묻은 당근을 툭 건네시고요. 직접 만든 떡볶이 먹어보라고 주시고 가게 앞에 둔 식물을 저 대신 꼼꼼히 살펴주기도 하세요. 어르신들만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에요.
식물은 어떻게 돌봐주시는 거예요?
오늘도 지나가실 것 같은데, 근처에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니가 살고 계세요. 한번은 튤립 다섯 송이를 사서 가게 앞에 둔 적이 있는데요. 어르신들의 시선과 젊은 사람의 시선에서 키우는 식물이 달라서인지 볼 때마다 참 예쁘다고 좋아하셨죠. 꽃 한 송이가 시들 즈음에 튤립은 구근을 말려서 심는 식물인 걸 아는지, 그걸 할 수 있는지 물어보시더라고요. 전혀 모른다고 했더니 할머니가 데려가서 다시 꽃을 피운 후에 돌려주시겠다는 거예요. 도리어 짐이 될까 봐 싱싱한 친구를 가져가시라 해도, 당신은 꽃이랑 멋진 강아지가 좋다며 그 꽃을 빌려 가겠다고 하셨어요. 빌린 값이라며 찰토마토 세 개도 주셨고요.
튤립 한 송이를 빌리는 할머니라니! 그 꽃은 다시 돌아왔나요?
아뇨. 실패하셨나 봐요. 돌려받지 못했어요(웃음). 동네 할머니들, 할아버지들이랑 재미있는 추억이 많아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바쁘셔서 할머니 손에 자랐는데 괜스레 그런 마음들이 반갑기도 하고요. 제가 이곳에 오래 머물 수 있도록 해주는 발판 같아요.
한 동네에 뿌리내려 씩씩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가족들이 응원을 보낼 것 같아요.
2019년에 남녀 공용 맨투맨을 만든 적이 있는데요. 대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친오빠와 새언니가 그 옷을 색깔별로 전부 샀더라고요. 무뚝뚝한 편이라 별다른 말은 없지만 식당을 다녀간 손님들이 올린 후기를 보면 항상 그 옷을 입고 있는 거예요. 마음을 모아 만든 옷을 소중하게, 기분 좋게 입어주니까 고맙죠. 그리고 제가 이런 취향을 갖게 된 건 어머니 영향이 커요. 일본에서 온 의류나 원단, 가구, 그릇 등에 오래전부터 관심이 많으셔서 아름다움을 보는 시선을 자연스럽게 물려받았어요. 저랑 옷 고르는 취향도 비슷하고 완전 멋쟁이예요. 지금은 아버지랑 마트를 운영하시다 보니 주로 편한 옷을 입는데, 당신도 저처럼 예쁘게 입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 하세요. 엄마와 내가 좋아하는 걸 함께 누리고 싶은 바람이 생겨서 언젠가 온 가족이 미구를 함께 꾸려나가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 마음이 애틋하게 느껴져요. 손님들의 말 한마디도 수민 씨에게 큰 힘이 될 텐데요.
얼마 전에 송장을 뽑는데 거기에 배송 메시지가 적혀서 나오거든요. 별다른 내색 없이 오랫동안 미구를 이용해 주신 손님이라 성함을 알고 있는데 메시지 칸에 처음으로 “늘 만족합니다”라고 적으신 거예요. 단 여섯 글자를 보자마자 마음이 울컥하면서 힘이 솟더라고요. 나의 진심이 잘 나아가서 닿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 외에도 손님들이 배송 메시지를 통해 보내주신 응원을 하나씩 다 읽어보고 마음에 간직해요.
매장으로 온 손님들을 대할 때는 어떤지 궁금해요. 적극적으로 다가가 조언하는 편인가요?
어느 정도 일을 하다 보니까 어떤 성향의 손님인지 알아보는 눈이 생기더라고요(웃음). 누군가와 함께 고민하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는 좀더 다가가서 대화하는 편이에요. 사람은 대부분 콤플렉스를 갖고 있잖아요. 어떤 부분을 가리고 싶은지, 반대로 어떤 부분을 장점으로 드러내고 싶은지 찾는 걸 도와드리려고 노력해요. 저를 예로 들자면 어깨가 좁은 편이라, 어깨부터 소맷단에 디테일이 들어간 원피스를 추천하면서 기장과 품이 넉넉하니까 체형 커버도 되고 활동성이 높다고 말씀드리는 거죠. 손님 한 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건 작은 가게이기에 잘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아요.
“주인장과 손님들이 모두 결이 같고 분위기가 닮았다는말”을 좋아한다는 기록을 봤어요. 이유가 궁금해요.
제 취향은 미구를 시작할 때와 변함이 없고 그런 미구를 오랫동안 응원해 주시는 단골손님들이 계세요. 그분들과 하나의 시선으로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죠. 같은 걸 좋아하기에, 제가 만든 공간이어도 여기서 저만 아는 건 하나도 없어요. 좋아하는 마음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쁜데, 미팅을 앞둔 브랜드 대표님께서 저런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가게로 들어가는 사람이 저인 줄 알고 인사를 하려는데 알고 보니 손님이셨다면서요. 미구를 통해 만나는 모든 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 사랑스러움이 있는데 그게 닮았다고 해주시는 것 같아 기분 좋았어요.
그러고 보니 나이 지긋한 손님들도 곧잘 오신다고 들었어요. 엄마랑 딸이 함께 오는 경우도 있고요.
맞아요. 옷가게에 젊은 친구들이 와글와글 모여 있으니까, 어머니뻘 손님들이 자주 들여다보시거든요. “우리가 입는 옷도 파나?” 하면서요. 이것저것 입어보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쇼핑하세요. 사실 미구에서 소개하고 있는 일본의 ‘노던 트럭Northern Truck’, ‘놀스 오브젝트North Object De Petit’, ‘리라식Lilasic’ 같은 브랜드는 50-60대 여성분들을 겨냥한 곳이에요. 그래서 룩북 모델도 연령이 높은 편이죠. 나이가 들면 사이즈가 늘기 쉽잖아요. 체형을 보완하면서 취향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옷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제가 좋아하는 사진이 있는데 보여드릴까요?
어머나, 멋쟁이 할머니네요(웃음).
그렇죠? 단정한 머리에 볼륨이 들어간 하얀색 반팔 원피스를 입고 스타킹과 메리제인 구두까지. 나중에 이런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수민 씨의 취향을 단어로 표현한다면 뭐라고 하고 싶어요?
음, ‘목가적’이라는 말이요.
(휴대폰을 든다.) 정의를 한번 찾아볼까요? “농촌처럼 소박하고 평화로우며 서정적인 것.”이라고 하네요.
한번은 손님들에게 여쭤본 적 있어요. 미구나 저를 생각하면 어떤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르느냐고요. 오래된 단골손님이 목가적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면서 말씀해 주셨죠. 그런데 그 말이 의류 브랜드에서 흔히 쓰이진 않잖아요. 옷을 유달리 잘 입거나 화장이나 머리 손질에 뛰어난 것도 아니라서, 그 느낌을 겉모습으로만 완성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표정과 태도, 말씨와 공간 분위기 등에서 우러났으리라 싶어서 더욱 그 단어처럼 되려고 노력해요.
옷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지만 나의 전부를 보여주는 건 아니네요. 입는 것이 일상에서 중요한 의미지만 가끔은 훌훌 내던지고 신경 쓰고 싶지 않기도 해요.
그 말을 들으니까 작년 여름휴가가 생각나는데요. 언젠가 읽었던 소설의 작가님께서 프랑스 여행을 할 때 일상복 안에 속옷 대신 비키니를 입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마음에 드는 호숫가를 발견하면 언제든지 망설이지 않고 뛰어들 수 있도록요. 저도 그 말을 듣고 제주도에서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위에 랩 가디건이랑 바지만 걸쳤거든요. 길을 걷다가 바다가 보이면 옷 벗고 풍덩 들어가서 수영도 하고 스노클링도 했어요. 잠시 햇볕에 몸을 말렸다가 벗은 옷을 간단히 입고 오토바이나 자전거 타러 가고요. 여분의 옷을 챙길 필요 없이 그 상태로 산도 탈 수 있어요. 옷으로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행동이 국한되는지, 단 한두 벌로도 얼마나 즐겁게 휴가를 보낼 수 있는지 깨닫게 됐죠.
생각만 해도 가뿐해요! 지금까지 수민 씨가 좋아하는 것,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어요. 아직 나만의 취향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약간의 팁을 전해주세요.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겠어요. 저도 그랬고요. 어딜 가든 예쁘고 잘난 친구들이 있잖아요. 지금 속한 사회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게 그 잘난 친구들에게만 어울리는 거 아닐까 고민하게 되는데요.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은 넓고 남들은 나한테 관심이 없다는 걸 피부로 느끼게 될 거예요. 맨날 똑같은 옷을 입었더라도, 어느 날 문득 핫핑크색 양말이 궁금하다면 신어보면 돼요. 그런 경험이 켜켜이 쌓이면서 하나씩 알게 되지 않을까요?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거네요. 하고 싶은 걸 숨기지 않는 태도로요.
저는 아직도 제 취향이 과도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취향은 목적지가 아니니까 할머니가 될 때까지 혹은 할머니가 되어서도 변할 수 있잖아요. 내가 지금 무얼 좋아한다고 정의하기보다 그때마다 선호에 맞는 것들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해요. 지금 바라보고 즐기는 것들이 쌓여서 나중에 나의 취향 한쪽이 된다고 생각하면 일상이 더 애틋해져요.
좋아하는 것에 잔뜩 둘러싸여서 귀여운 할머니가 되어 있을 수민 씨가 보여요(웃음).
원피스에 다른 옷을 레이어드하고, 빨간 양말 신고 립스틱도 바르겠죠? 그땐 화장도 지금보다 늘어 있지 않을까요(웃음)?
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김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