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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우 — 셰프
테이블에는 나의 것 보다는 타인의 것이 더 많이 존재한다. 누군가를 위해 만든 음식과, 음악과, 예쁜 커틀러리, 그리고 반대편에 자리한 그 누군가. 테이블은 그렇게 채워진다. 타인의 경계를 조금씩 허무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얼마 전 SNS에서 ‘오트뤼Autrui’의 신메뉴를 개발하고 있다는 글을 보았어요. ‘유럽맛’이라는 표현이 제일 좋으시다고요.
결과물로 나오기까지 시간도 걸리고 수적으로 많지는 않지만 머릿속으로는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어요.
노래나 시를 짓는 일에 영감이 필요한 것처럼, 메뉴 개발에도 역시 영감이 필요하겠죠.
시나 노래나 맛이나 다 비슷할 것 같아요. 영감이라는 게 결국 기분이기 때문에 내키는 기분에 따라 결과물이 나오니까요. 조금 더 이성적인 사람들이 있겠지만 저는 기분파여서 자다가 문득 ‘이걸 만들어 볼까?’ 하기도 하고, 아침에 잠에서 깨 침대에 누워 있다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아주 즉흥적인 편이죠.
오랜 시간 벨기에에서 거주하셨죠?
아버지께서 주재원으로 파견 가면서 가족이 다 같이 나가게 됐어요. 그러다 정착하게 된 거죠. 고등학교 졸업 후에 대학교와 학원을 다니면서 벨기에에 있다가 한국에 들어온 거예요.
벨기에에서 문학을 전공했다고 들었어요.
한국에 있었다면 국어국문학과나 철학과, 문예창작과를 갔을 거예요. 원래 문과 성향이거든요. 문돌이라고 해야 하나(웃음)? 벨기에에는 국어국문이 없으니 현대어문학과를 지원해서 들어갔죠. 그래도 저는 그곳에서 여전히 외국인이고, 불어를 활용하는 일을 많이 한다고 해도 나고 자란 이들만큼 잘하진 못하니깐 고민을 하고 있었죠.
글쓰기는 자신을 반추하는 일이기도 한데 요리도 그런 맥락이 있을 것 같아요. 자기표현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인가요?
저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에요. 주변에서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라는 얘기도 듣지만, 기본적으로 그래요. 공통점을 찾아보면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혼자 요리하는 게 좋고, 혼자 글 쓰는 것도 좋아요. 타인의 공감을 유도하려는 건 아니었어요.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였죠.
벨기에에 있을 때 지인이 《미식예찬》이라는 책을 권했다는 인터뷰를 보았어요. 거기에서부터 많은 변화가 시작된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이것저것 해왔지만 열심히 살아온 사람은 아니었어요. 글쎄, 뭐 포장이 되긴 하겠죠. 절대 열심히 산 건 아니고요, 아무 생각 없이 때에 맞춰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지낸 편이었어요. 포기가 빨라서 새로운 것도 해보고요.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이 파리에 가기 직전에 《미식예찬》이라는 일본 소설이 재미있다고 권했어요. 그걸 보고 요리 학교 혹은 요리 수업에 매력을 느껴서 파리에 있는 요리 학교를 알아보게 됐죠. 그게 파리에 가게 된 계기였어요. 좀 돌아다녀보고 싶기도 했어요. 벨기에에서 오래 살기도 했고요. 거기에서 학교만 세 군데를 다녔거든요. 현대어문을 전공한 대학교, 연극 학교, 조각 학교. 그래서 다른 분위기, 다른 문화, 변화를 겪고 싶었어요.
그래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나요?
그렇죠. 하다못해 전라도와 경상도, 충청도의 정치도 다르잖아요. 인접한 지역이지만 파리라는 대도시와 벨기에라는 작은 나라의 분위기가 많이 달랐어요.
그 책에서 삶의 결정적인 요인을 찾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뇨, 아뇨. 가장 큰 계기는 그냥 제 성향이었던 것 같아요. 이것저것 다 해보려는 것 중 하나였을 뿐인데 요리가 잘 맞아 떨어진 거죠. 제가 조각을 1년 반 배웠지만 조각으로 돈을 벌어본 적은 없거든요. 연극도 배웠지만 연극 일을 해본 적도 없고요. 요리는 5개월밖에 배우지 않았는데 <마스터셰프 코리아(이하 마셰코)>에 도전을 하게 되었어요. <마셰코> 때문에 <올리브쇼>를 했고, <올리브쇼>로 <냉장고를 부탁해>에 나올 수 있었어요. 한국 생활에 큰 변화가 두 가지 있어요. <마셰코>와 <냉장고를 부탁해>죠. 요리를 좋아하는 마니아층에 저를 어필할 수 있었던 건 <마셰코>였고, 일반적인 사람들이 박준우라는 사람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잘 알든 잘 알지 못하든 인지도를 얻게 된 건 <냉장고를 부탁해>였으니까요. 수많은 변덕 중에 하나가 잘 풀렸을 뿐이에요.
스티브 잡스가 한 말이 생각나요. “Connecting the dots.” 하나도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일들이 돌이켜 보면 결국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 거잖아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느끼고 있을 거예요. 저도 요리를 할 생각이 없었고, 요리에 대한 글을 쓰려고 요리 학교를 다닌 것뿐이니까요. 미식 전문 기자를 하려면 요리에 관한 지식과 상식은 알아야 하잖아요. 이욱정 PD님 같은 경우죠. 음식 전문 방송을 하면서 ‘르 꼬르동 블루’에 가서 공부도 더 하셨으니까요. 결과물은 다르지만 모든 일은 연결되는 것 같아요. <마셰코>에서도 사람들 앞에서 처음으로 요리를 해봤어요.
어땠어요?
처음엔 별 생각이 없었어요. ‘떨어지면 떨어지는 거지, 뭐.’ 했죠.
그러기엔 되게 열심히 하시던데….
후반에 욕심이 나서 되게 열심히 했는데, 결국 상금도 못 받고 떨어졌죠. 아무튼 제 요리를 보고 누군가 “플레이팅이 예뻐요!” 하는 건 조각 배울 때 공부한 구도 덕분인 것 같고, 방송도 싫다 싫다 하면서 계속 할 수 있었던 건 짧은 기간이지만 연극 학교를 다녀서 그런 것 같아요. 사람들 앞에 서는 걸 무척 싫어하거든요. 어떻게든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마셰코> 떨어지고 혹시 후유증이 있었나요?
<마셰코>는 제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시기였어요.
오, 저도 박준우 셰프 일생의 어떤 기점에 깃발을 꽂는다면 그게 <마셰코>이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맞아요. 사람들에게 몇 가지 터닝포인트가 있다고 하는데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첫째는 집안이 부도난 것, 둘째는 벨기에를 간 것이에요. 그리고 셋째가 <마셰코> 출연이에요.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우승을 한 김승민 형, 준결승에 오른 유동렬 형. 당시 메인 PD인 하정석 형과 정오찬 PD. 아직까지도 만나서 술 한잔하는 사이예요.
<마셰코> 촬영하는 동안 무척 많은 일이 있었잖아요. 좋은 일도 있었지만 좋지 않은 일도 있었는데요, 버겁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나요? 대중의 온도를 확인하는 게 두려울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아, 그럼요. <마셰코>에 참여해서 세 명의 심사위원이 내 요리를 심사하는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되게 바보처럼 ‘그들이 뭔데, 나를 평가하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근데 제가 경연에 나왔고, 심사위원이 있으면 당연히 평가를 하는 거잖아요. 나중에 ‘내가 지금 무슨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 거지?’ 싶더라고요. 제가 셀프 퀘스천을 많이 하는 성격이에요. 본능적인 사람이기도 하지만 항상 스스로 질문을 해요. 자기 교정 같은 걸 하는 거죠.
성찰 같은 거네요.
성찰이라고 하면 너무 낯뜨겁고요(웃음). 자기 교정이요.
‘기억에 남는 <마셰코> 등장인물 4인’이라는 인터넷 게시물을 본 적 있어요. 아주 인상 깊은 분들이 있었는데 그중 셰프님이 계시더라고요.
제가 그때 술 처먹었었죠.
후회하셨어요? 엄청 화제가 된 일화였죠.
사실 요리하다 맥주 소스를 만들었는데 남은 맥주를 버리기 아까워서 마신 것뿐이거든요. 역시 편집은 무서운 거예요.
아, 그렇군요. 방송에서는 떨려서 술 마셨다고 나왔거든요.
집에서 요리할 때 오이 썰다가 남으면 먹잖아요. 그런 상황이었어요.
방송 전과 후가 다르기도 했겠죠?
길거리를 가다가 알아보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는데 약간 낯선 경험이었죠. ‘도를 아십니까?’ 빼고는 모르는 사람들이 인사하는 경우는 많지 않으니까요. 이런 일에 익숙해지는 데 3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한번은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어떤 사람이 “안녕하세요. TV 잘 보고 있어요.”라고 말을 걸더라고요. 그런 대화에 껴본 적이 없어서 무척 당황했죠. 너무 당황한 나머지 “아, 네.”라는 짧은 대답도 못하고 그냥 쳐다보고만 있다가 목적지에서 내렸어요. 근데 너무 신경 쓰이는 거예요. 그걸로 며칠을 고민했죠. 그 이후로는 감사합니다, 이런 얘기도 연습을 많이 했어요. <냉장고를 부탁해>를 하면서 많이 달라졌죠. 워낙 많은 사람들이 보니까요.
<냉장고를 부탁해> 하차할 때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프로그램이 무척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어요. 그게 심적으로 번거로웠죠. 관심의 대상이 되면서 이건 아무래도 어렵겠다 싶어서 제작진에게 못 나갈 것 같다고 했어요.
여러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겠어요.
아뇨, 저는 결정은 한 번에 내리는 스타일이에요. 여러 번 고민하는 편은 아니거든요. 하루 종일 가 있는 게 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했고, 또 몇몇 셰프의 연예인화를 지켜보는 것도 조금 곤혹스러웠어요.
TV나 미디어를 통해서 셰프님이 다른 셰프들과 인연을 맺고 가까운 사이로 보였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셰프님의 짝꿍으로 이미 한 사람을 점찍어 놨죠. 누굴 것 같아요?
김풍? 이연복 셰프님?
조금 의외인데요, 광희 씨예요!
아, 옛날에! 광희 씨 무척 열심히 하셨죠. <올리브쇼>를 오랜 시간 했는데 6회밖에 하지 않은 <마트당>이 재미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어요.
그때 광희 씨에게 휘둘리는 셰프님의 모습에 빠진 사람들도 적지 않았어요. 아직도 연락을 하시나요?
아뇨, 방송 하면서 연예인이랑 따로 연락하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이렇게 보니, 요리와 관련된 방송을 거의 장악했어요. ‘방송에 능숙한’ 혹은 ‘방송에 적합한’ 셰프라는 생각도 들어요.
요리 예능에 적합한 사람들은 나와 있죠. 최현석 셰프, 백종원 셰프 등이요. 저는 예능보다는 시사·다큐에서 불러주세요. 앞에서 분위기를 띄워주시는 분들이 있으면 중간 중간 템포를 잡는 사람도 필요하잖아요. 그런 역할을 하는 거겠죠. 안정적인 서브를 원할 때 저를 찾는 것 같아요. 그게 <올리브쇼> 때 역할이었죠. 조세호 씨가 띄우면 제가 차분하게 하고….
셰프라고 불리는 걸 조금 어려워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2년 전 즈음부터 셰프라고 하면 가만히 있어요. 그 전에는 전문 셰프가 아니고 요리 관련 글 쓰는 사람이니까 ‘준우 씨’라고 불러 달라고 했죠. 아주 예전에는 요리 방송에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박준우 셰프님, 섭외 하고 싶어서요.”라고 전화가 오면 그냥 끊어버리기도 했어요. 섭외로 연락했다고 하면서 누군지 알아보지도 않은 분들이 있던 거죠. 사회생활을 통해 이제는 좀 유해지기는 했어요.
개인적으로 셰프의 정의를 내리셨던 거예요?
모든 단어의 정의는 언어권과 문화권을 옮겨가면서 바뀔 수밖에 없어요. 근데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김풍도 셰프가 될 수 있고, 요리연구가나 푸드스타일리스트도 셰프라고 불릴 수 있어요.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렇게 형성이 되어 있어요. 그런 것들은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아요. 다만 셰프라는 이름을 멀리하려 했던 이유는 개인적인 미안함 때문이었어요. 직함을 받으려면 꽤 많이 노력해야 하는데, 고작 3개월짜리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하고서 셰프라는 이름을 가질 수는 없었어요. 제가 당당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거죠. 그 사람들을 위한 이타심이라기보다는 저를 위한 이기심이었던 거예요. 그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서 있으려면 제 선에서 끊어야 해요. 괜히 분위기 타서 어영부영 넘어가면 결국 제가 불편해지거든요.
저는 음식이 시대상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생활에서 여분의 시간이 생기고 경제력이 조금 여유로울 때는 슈퍼푸드나 웰빙 얘기를 했죠. 그런데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편의점에서 싸게, 자극적으로 맛있게 음식을 조합하는 것을 강조하곤 해요.
삶이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편의점 음식이 유행하는 거라고 볼 수도 있겠죠. 그런데 경기가 안 좋다 보니까 기업끼리는 ‘자본 몰아주기’를 해야 해요. 기업에 돈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는 거죠. 왜 우리가 자발적으로 기업에 돈을 주게 될까요? 엄연히 자발적으로 주는 건 아니죠. 기업이 돈을 원하기 때문에 마케팅을 하는 거예요. 너구리 라면과 짜장 라면 섞어 먹는 것 알죠? 둘 다 같은 회사 제품이에요. 누가 만들었겠어요? 기업들이 아주 작은 구매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까지 공략하는 거죠. 기업 대 기업으로 장사를 하던 시장이 이제는 서민 등골을 파먹는 거예요. 사람들이 힘들어서 점점 음식에 신경을 못 쓰는 게 아니라 기업이 힘들기 때문에 서민들이 유혹의 대상이 되는 거죠. 그래서 그런 거라고 봐요.
환경적 요인도 중요하니까요.
저는 자본주의에 어마어마한 불신이 있는 사람이에요. 기업이 이런 환경을 만드는 거죠. 자본가들이요.
빈 커피잔을 계속 보시네요. 제 커피 드실래요? 저는 커피에 약해서요.
괜찮으신가요? 아, 저도 커피에 약해요. 그래서 먹어요. 카페인에 약하고 알코올에 약해서 맨날 취해있거든요(웃음).
예전에 밸런타인데이를 맞이해서 이벤트를 했는데, 해쉬태그로 ‘#커플환영 #동성커플환영’이라고 쓴 걸 보았어요.
유럽 생활이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벨기에에도 호모포비아는 있어요. 미움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니까요. 부모님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부모님한테 남자친구 데려오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우리는 너만 좋으면 상관없어.” 하시더라고요. 백인이든 흑인이든, 여자든 남자든. 그런 분위기의 부모님이었어요. 부모님 버프와 벨기에 버프가 만난 게 아닌가 싶어요. 또 제 주변에 게이와 레즈비언 친구들이 많기도 하고요. 사실 그들 사이에도 혐오는 존재해요. 예를 들어서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레즈비언, 양성애자를 혐오하는 게이. 그러니까 저는 모든 접근을 개인으로 봐요. 한번 무리 짓기 시작하면 말도 안 되는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에 생각하기 힘들더라고요. 그렇다 보니 개인으로 보려는 거죠. 개인의 시선이 생긴 상태여서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한국도 혐오와 집단화가 이슈가 되는데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아는, 내가 이해하는 개인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요. 모두 평등해야 한다고 주창하는 건 아니에요. 사상을 펼치는 운동을 짊어가는 건 아니고, 그냥 말 그대로 개인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요.
쿡방이 정리돼가고 있어요. 사실 이 열기가 멈추지 않을 줄 알았어요.
쿡방과 먹방은 요리와 음식이 화두였던 게 아니라 요리, 음식, 셰프를 소재로 한 예능이 화두였던 거예요. 올림픽 시즌에는 선수들 모습을 보여주는 게 이슈인 것처럼 올림픽이 끝나면 다른 소재가 다뤄질 차례가 오는 거죠. 소재가 고갈이 되면 다른 소재를 많이 쓰잖아요. 그런 것 아니겠어요? 연예인 자리를 운동선수가 차지하고, 또 그 자리를 셰프가 차지했을 뿐인 거예요. 또 다른 사람이 올 거고요.
셰프라고 하면 위계질서 있는 사회가 생각나요. 부엌 질서가 중요하니까요.
보통 부엌에서 위계질서가 엄격하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말단 사원도 해봤고, 무엇보다 군대도 다녀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곳은 위계질서가 뚜렷하지 않아요. 자유롭게 말하고 좋으면 웃고 짜증 나면 짜증 내죠. 제가 벨기에 시민권을 갖고 있거든요. 교포들이 겪는 문제가 현지에서는 외국인 취급 받고, 한국에서는 또 타자화되고요. 아, 그것 때문에 더 개인에 집중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계속 이방인 같은 삶의 형태였으니까요. 어릴 때 제가 전교생을 따 시키고 그랬거든요.
튼튼한 자아를 갖고 있었네요.
튼튼할까요? 아닐 것 같은데(웃음). 그렇게 하면 무척 멋있어 보일 것 같지만 진작 상처를 받아서 벽을 쳤을 수도 있죠. 자기 방어 기제 같은 걸로요.
SBS <자기야>에서 ‘사랑꾼’으로 화제가 되었어요.
그건 화제가 된 게 아니고, 기사가 온라인에 올라오면서부터 너무 말도 안 되는 제목과 헤드라인을 뽑아내요. 자꾸 이슈도 아닌 걸로 이슈로 만들려고 하니까요. 주변 사람들이 계속 카톡으로 기사를 보내니까 진짜 민망해 죽겠어요. 셰프계 차태현이 가당키나 합니까(웃음)?
요리를 잘하면 연애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말이 있어요.
완전 잘됐겠죠! 근데 저는 못 써먹었어요. 제가 고2 때부터 연애를 했으니까, 요리를 배우기 전이었거든요.
차태현 맞으신데요?
아, 연애 오래 해서요(웃음)? 둘이 너무 좋을 때는 운명이다, 둘이 너무 미울 때는 팔자다 하면서 지내요.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이런 얘기가 나와요.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아침을 맞이하는 유일한 사람이 된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일에 만족을 느껴요. 제품을 만들 때 재미있어요. 설탕이 구워지는 모습, 녹아내리는 모습 모두 재미있거든요. 근데 겪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요. 실상은 조금 다를 수 있죠. 어떤 매체를 전할 때 이미지화하는 게 있잖아요. <내 이름은 김삼순>도 그런 거예요. 사람들에게 이해를 시켜야 하니까 극적인 대상화를 해서 전달할 뿐인 거죠. 그렇게 로맨틱할까요?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 실제로 다른 셰프들 인터뷰를 보면 너무 로맨틱한 이야기를 많이 해요. 얼마나 노력을 했고, 어떻게 결실을 맺었고. 과연 그게 다일까요? 전달을 하다 보면 곡해될 가능성이 있어요. 분명 매력 있고 재미있는 직업이지만요.
삼순이처럼 유일한 기쁨을 겪은 적은 없나요?
달콤함은 김삼순을 보는 시청자들이 제과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을 거라는 전제 하에 그런 표현을 정한 것 같고요. 오히려 제과는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일이에요. 정확히 계량해야 하고, 계량에 따라 결과물이 다 달라져요. 이런 과정을 컨트롤한다는 재미가 있겠죠? 달콤한 낭만이라기보다 이성적인 작업이에요.
‘눈물 젖은 빵’ 같은 한국 특유의 정서가 느껴지는 미식 표현도 재미있어요. 혹시 이 말에 담긴 개인적인 경험도 있나요?
개인적인 이야기 때문에 제 경험에는 눈물 젖은 빵이 존재하지 않아요. 인생 자체가 눈물이거든요.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이에요. 그래서 정말 친한 사람들과 하는 얘기인데, 인생도 뭐 같은데 굳이 음식과 술에서까지 애환을 다뤄야 하냐고요. 아니, 소주는 맛없는 술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죠. 인생의 쓴맛을 느껴야 소주가 달아진다고요. 아니에요(웃음)! 이건 그냥 가장 저렴한 주종이에요. 저는 차라리 저금을 해서 10만 원짜리 와인을 사서 먹어요.
3월엔 새로운 시작, 조금의 불안감, 낯섦, 설렘 등을 경험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요. 이분들을 위한 와인을 몇 가지 추천해주세요.
개인적인 취향이 조금 영향을 줄 것 같아요. 일단 저는 스파클링을 싫어해요. 스파클링은 맥주거든요. 와인을 추천한다면 로제 와인은 주로 여름에 마시는데 봄의 로제 와인도 나쁘지 않겠네요. 로제 와인은 차갑게 먹거든요. 봄에 나는 아스파라거스와 봄나물을 곁들여서 먹는 너무 차지 않은 달큰한 로제라면 좋을 거예요. 미네랄이 많은 화이트 와인도 괜찮아요. 레드 와인을 좋아하긴 하는데 너무 무거울지도 몰라요. 보졸레 같은 가벼운 레드 와인이라면 괜찮겠네요.
마지막으로 목표가 있나요?
2년 전 어떤 잡지 인터뷰에서 했던 답변이기도 한데, 아직도 그대로예요. 월세 탈출!
오트뤼
A.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89-8 1F
T. 02 333 1898
알테르에고
A.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89-8 2F
T. 02 336 1898
에디터 이자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