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길어 올린 다디단 자연

박현신 — 오르또 마드레

서울에서 한참을 달려 도착한 용인. 일러주신 주소에 가까워질수록 푸름은 짙어지고 사위는 고요해진다. 인기척이 지워진 동네에 다다르자 낮은 대문과 다정한 문패가 인사를 건넨다. 주변의 산과 경계가 없는 정원, 올망졸망 매달린 작물들이 귀여운 텃밭, 제 계절을 지나 숨죽이고 있는 허브. 대문 안에 놓인 두 채의 공간이 궁금해 목을 길게 빼고 있으려니 창문으로 어스름히 실루엣이 비친다. 문을 열고 나오는 여성을 본 순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저분이 바로 허브의 어머니구나, 텃밭의 엄마구나, 하고.

디저트라는 건 배가 부른 것도 아니고

꼭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근데 디저트값을 지불하고 나면 행복해져요.

엄청 큰돈이 아닌데도 쉽게 행복해지잖아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요.

용인까지 오는 길이 꼭 소풍 길 같았어요. 설레고 즐거웠거든요. 집이 무척 넓어요. 뒤쪽에 공간이 또 있는 것 같은데요? 

정원과 텃밭, 집과 작업실로 이루어진 곳이에요. 뒤쪽 공간의 원래 용도는 남편 작업실인데, 제 작업실로도 겸사겸사 사용하고 있죠. 용인에서 전원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20년이 넘었네요. 원래는 근처에 저수지가 있는 마을에 살다가 펜션이 너무 많이 생기는 바람에 이사 오게 됐어요. 이 집을 지은 지도 벌써 6년이 됐네요. 

 

층고가 높아서 그런지 쾌적해요. 거실에 이렇게 큰 나무를 키울 수도 있고, 탁 트인 느낌이 참 좋아요. 

멋진 나무죠? 호주에서 온 나무인데 이름이 뭐더라(웃음). 아, 아우라카리아. 실내에서 키우기 좋은 나무예요. 물 주는 게 어렵지도 않고요. 

 

집도, 작업실도, 정원도, 텃밭도 휴대폰 액정으로만 봐왔는데, 이렇게 두 눈으로 직접 보니 더욱 좋네요. 

아무것도 없는 동네라 못 찾으시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여차하면 마중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죠. 디저트라는 주제로 연락해 주셔서 반가웠어요. 주제가 주제인 만큼 디저트를 좀 준비했는데, 멋진 분들과 근사한 음식이 많이 나올 것 같아서 나름대로 저만의 테마를 고민해 봤어요. 텃밭을 갖고 있으니까 채소로만 만든 디저트가 어떨까 싶었죠. 네 가지를 준비했는데, 이건 텃밭에서 수확한 노란 비트로 만든 케이크예요. 비트는 사실 냉장고에 두면 손이 잘 안 가는 채소예요. 그럴 때 오븐을 활용하면 좋아요. 한 번 구우면 단맛이 응축되어 더 맛있어지고 활용도가 높아지거든요. 샐러드나 수프, 케이크를 만들 때도 유용하고요. 통밀에 구운 비트를 두 컵 갈아 넣고, 코코아 파우더와 메이플 시럽, 올리브 오일을 넣어 달지 않은 케이크를 완성했어요. 그 옆에 있는 둥그런 케이크는 천도복숭아를 가득 넣고 구운 거예요. 제철 재료를 넣은 거라 계절의 맛을 품고 있죠. 

 

정말 예쁘네요. 그 옆에 작고 동그란 디저트는 뭐예요? 

제라늄이라는 허브를 다져서 아몬드로 만든 스노볼이에요. 한번 드셔 보세요. 설탕은 아주 조금만 넣어서 달지 않게 만들었어요. 당도는 설탕보단 채소나 과일에서 끌어내는 걸 좋아해요. 어때요? 

 

처음 보는 디저트라 맛이 상상되지 않았는데 고소해요. 식감은 좀 쿠키 같고… 입에서 부서지는 느낌이 좋아요. 맛있어요. 

다행이에요(웃음). 테이블이 좀 허전해 보여서 비트 케이크에 데커레이션을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이 꽃으로 해볼까요? (화병에 꽂힌 꽃을 가리킨다.) 

 

이건 무슨 꽃이에요? 

야생 당근꽃이에요. 이렇게 하나씩 따서 올리면 꽤 근사해지지요. 음료도 준비했는데, 더우니까 목부터 축이고 시작해요.

(테이블에 음료가 놓인다.) 색이 참 청량해요. 

요즘 텃밭에 오이가 무척 잘 자라서 오이로 만들어 봤어요. 봄에 허브를 수확하면 차나 시럽 형태로 만들어 두거든요. 그러고는 남은 계절 이렇게 사용하는 거죠. 민트 시럽은 만드는 것도 간단해요. 물 한 컵, 설탕 반 컵을 넣고 바글바글 끓이다가 민트 이파리를 넣고 뚜껑을 덮어 두면 되거든요. 한 김 식으면 걸러서 병에 담아요. 오늘 음료는 오이와 민트 시럽 조금, 그리고 얼음과 탄산수를 부어 시원하게 만들어 봤어요. 

 

오이를 좋아해서 생오이를 곧잘 베어 먹는데 오이 음료는 처음 먹어봐요. 정신없이 먹기만 하고 싶네요(웃음). 먼저 이름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오르또 마드레Orto Madre’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죠. 

오르또Orto는 텃밭이란 뜻이고, 마드레Madre는 엄마라는 의미예요. 이 이름은 한 축제에서 따오게 되었어요. 15년 전쯤 이탈리아에서 ‘살로네 델 구스토Salone Del Gusto’와 ‘테라 마드레Terra Madre’라는 슬로푸드 축제를 경험한 적이 있는데요.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가 정착하면서 사람들 입맛을 균일하게 만들어 버리는 걸 막자는 취지의 축제인데, 여러 오가닉 푸드와 소멸 위기에 처한 전통 음식, 식자재를 다채롭게 경험할 수 있어서 참 좋았거든요. 이 축제의 이름인 테라 마드레가 땅의 엄마라는 의미예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는데, 땅까지는 너무 거대하고… 저는 텃밭을 하니까 오르또 마드레라는 이름을 짓게 됐어요. 

 

텃밭 엄마, 참 다정한 이름이에요. 워낙 허브로 이것저것 많이 만드셔서인지 허브의 어머니라는 애칭도 있는 것 같던데요. 

일본에 요리를 배우러 가서 가장 놀라고 신기했던 재료가 허브였어요. 그때가 38년 전이니까… 정말 오래됐네요. 요리로 유학을 가는 것도 우리나라에선 흔치 않던 시절이에요. 해외여행도 못 가던 때니까요. 허브를 알고 나서 정말 신기했던 게 어떤 허브를 넣느냐에 따라 일본 요리도 되고, 중국 요리도 되고, 프랑스 요리도 되고, 이탈리아 요리도 된다는 거였어요. 사실 채소나 고기는 다 거기서 거기인데 허브가 요리를 확 바꾸어 놓더라고요. 충격적이었죠. 한국엔 허브라는 게 잘 알려지지 않던 시절이니까 한국으로 돌아올 때 허브를 직접 키워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때만 해도 아파트에 살 때라 베란다에서 시작했는데 생각만큼 잘 안 자라더라고요. 마침 남편과 시골로 이사하자는 이야기를 하게 돼서, 인테리어 디자이너이던 남편이 집을 짓고 저는 본격적으로 허브를 키울 겸 전원생활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게 벌써 27년도 더 된 일이네요. 요리를 공부하고 허브를 키우면서부터 ‘팜투테이블Farm To Table’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커졌어요. 푸드 마일리지(식품이 생산지에서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이동하는 거리)가 짧을수록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나기 때문에 신선한 재료가 식탁에 오르는 데 집중하게 된 거죠. 그렇게 직접 키운 허브부터 새로운 식재료로 여러 요리를 만들며 지내고 있어요. 음, 이거 한번 보실래요? (푸른색 식물을 내민다.) 

 

이게 뭐예요? 예쁘게 생긴 식물이네요. 

홉Hop이에요. 맥주 원료, 8월에 수확한 프레시 홉. 이걸로 작년에는 부산에 있는 고릴라 브루잉이랑 홉피니스 맥주를 만들어서 한정 기간 판매하기도 했어요. 디자인하우스와 함께한 작업이죠. 제가 하는 일이 이런 거예요. 새로운 식재료로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소개하는 거요.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도 하면서요. 

 

활동의 중심에 허브가 있군요. 이젠 허브가 우리 삶에 제법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향신료 정도로 인식되는 것 같아요. 선생님은 허브를 잎뿐만이 아니라 열매나 꽃을 다 포함하는 거라고 이야기하셨는데요. 허브에 관해 좀더 들려주실래요? 

일단은 몸에 이로운 식물이에요. 근데 꼭 먹는 거라고만 이야기할 순 없어요. 독이 든 허브도 있거든요. 어떻게 보면 식물 전체를 다 허브라고 볼 수도 있을 거예요. 요리 측면에서 보자면 메뉴 성격을 바꿔주는 재료라고 생각해요. 레몬그라스 하나로 태국 요리가 되고, 민트 하나로 모로코 요리가 되니까요. 우리나라로 치면 고춧가루를 넣어야 매운탕인 것처럼요. 

 

허브에 관해 이렇게 이야기하신 적이 있죠. “다른 나라 음식에 대한 편견을 없애줬고 또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관심을 갖도록” 해줬다고요. 

여행 갔을 때 맡은 다른 나라의 공항 냄새를 떠올려 보세요. 특유의 향이 나잖아요. 일본은 간장, 중국은 오향 같은 냄새요. 그런 향이 자리 잡은 건 그 향의 허브나 스파이스가 많이 나는 곳이어서 그래요. 다들 그런 재료로 요리하며 지내니까 특유의 향이 자리 잡게 된 거죠. 우리나라로 따지면 마늘 같은 거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허브가 다른 나라 음식 문화를 이해하게 해줬어요.

일본에서의 이야기를 좀더 해볼게요. 유학지로 결정한 게 왜 일본이었어요? 

외국에 자유롭게 나갈 수 없던 건 물론이고 유학도 시험을 봐야만 갈 수 있던 때였어요. 그러니까 유럽이나 미국은 너무 먼 얘기였고, 일본은 그나마 문화를 접하기 쉬운 환경이라 선택하기 편했죠. 지금은 우리나라가 문화적으로 많이 발전했지만 그땐 일본과 격차가 엄청났어요. 일본은 식문화가 굉장히 일찍 발달했거든요. 우리나라에 식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은 건, 제 생각에 10년도 채 안 되는 것 같아요. 

 

그 시절 일본은 어땠어요? 

우리나라 식문화는 이제야 그 시절 일본 수준에 미치는 것 같아요. 일본엔 38년 전에도 외국 식재료가 많이 들어왔거든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와인에 관심을 갖고 맛이나 종류에 대해 이야기하는 오늘날 문화가 38년 전 일본엔 이미 자리 잡고 있던 거죠. 허브 역시 일찍 들어와 있어서 마트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어요. 그 당시 저에겐 충격일 수밖에 없었죠. 디저트만 해도 그래요. 그때 우리나라엔 디저트라는 문화가 자리 잡기는커녕 케이크도 태극당 같은 제과점 말고는 잘 볼 수가 없었거든요. 근데 일본은 다도 문화가 발달한 덕에 화과자가 무척 잘돼 있었어요. 케이크도 다양했고요. 그러니까 일본에 가서 제가 충격을 받은 딱 두 가지가 허브, 그리고 디저트였던 거예요. ‘스위츠Sweets.’ 

 

일본은 꾸준히 식문화가 발전한 반면 우리나라는 단시간에 발전한 것 같아요. 

아주 이른 시일 내 따라잡았지요. 물론 디테일하게 따지면 차이 나는 부분도 있겠지만, 요즘은 우리나라 커피가 더 맛있다고 느끼는 일도 많아요. 우리나라에 디저트 문화가 발전하기 시작한 건 해외여행이 가능해지고부터일 거예요. 여행을 다니게 되면서 여러 나라 문화를 습득하고 표현하기 시작한 거죠. 10년 전엔 없던 것들이 생겨나고 그에 따라 디저트 문화도 많이 바뀌었어요. 지금은 케이크는 물론이고 베이글도 다양한 형태로 자리 잡았고, 캐러멜이나 도넛 같은 것도 문화가 되었잖아요. 이런 현상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잘살게 되었다는 의미 같기도 해요. 이제 디저트값으로 1만 원을 지불할 만큼의 여유가 생긴 거죠. 

 

어떻게 이렇게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 걸까요?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이나 성향 때문이 아닐까요? 사실 디저트라는 건 배가 부른 것도 아니고 꼭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근데 디저트값을 지불하고 나면 행복해져요. 엄청 큰돈이 아닌데도 쉽게 행복해지잖아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요. 디저트의 이런 특징이 쉽고 빠르게 소비하는 요즘 사람들 정서랑 잘 맞는 것 같아요.?

 

디저트는 꼭 먹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배가 부른 것도 아니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디저트를 뭐라고 정의해 볼 수 있을까요? 

행복감을 주는 거요. 옛날엔 디저트를 축하하기 위해 먹었어요. 생일 케이크가 대표적이죠.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심적으로 여유 있고, 삶이 빡빡하지 않을 때 찾게 되는 음식이란 인식이 있어요. 고급스러운 기분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도 예쁜 디저트를 찾게 되고요. 그래서 디저트는 행복인 거죠. 

 

지금 말씀하신 디저트는 아름다운 디저트를 의미하는 것 같아요. 그럼 슈퍼마켓에서 파는 과자는요? 

과자도 디저트지요. 

 

디저트는 참 광범위하네요. 샌드위치만 해도 누구에겐 식사, 누구에겐 디저트잖아요. 

둘 다 맞는 얘기 같아요. 속이 푸짐한 샌드위치부터 차에 곁들이는 작은 샌드위치까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종류는 다양하니까요. 디저트는 아주 작은 과일부터 샌드위치까지 모두 포함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먹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도 같고요. 내가 식사로 먹겠다면 식사가 되는 거고, 디저트로 먹겠다면 디저트가 되는 거죠. 요즘 친구들은 케이크 한 조각으로 식사를 대신하기도 하잖아요. 

 

맞아요. 저도 종종 베이글로 식사를 대신하는데 엄마는 빵으로 배가 차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시대가 많이 달라져서 그런 것 같아요. 요즘은 옛날에 비해 뭐든 풍요로워요. 그러니까 ‘꼭 밥을 먹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없는 거죠. 옛날 사람들은 무조건 밥을 먹어야 끼니라고 생각했거든요. 한 번 먹을 수 있을 때 푸짐하게 먹어 두자는 마음이었겠죠. 반면, 지금은 언제든 먹을 수 있으니까 시간 내서 먹는 디저트가 더 붐을 일으키는 것 같아요. 

 

그럼 디저트도 끼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네요. 

그럼요. 오늘 차린 디저트만 해도 충분히 끼니가 되는걸요. 게다가 이렇게 채소가 들어간 디저트가 요샌 의외로 많아요. 채소나 곡물은 식사 대용이 되는 재료니까 더욱더 식사를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일반 디저트에 비해 인공적인 당분도 적어서 몸에도 더 좋을 거고요.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죠. “입맛은 한 번 길들여지면 바꾸기가 쉽지 않은데 자연의 단맛보다 인공적인 단맛의 자극성에 익숙해져 버리면 원재료의 맛을 느끼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주방에 알맞은 대답이 있어요, 잠시만요. (냉장고에서 오이를 꺼내온다.) 아까 오이 좋아한다고 하셨죠? 이 오이를 먹어보면 ‘자연의 단맛’이 뭔지 분명히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요새 오이 못 먹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이 많이 보이는데 진짜 오이를 안 먹어봐서 그래요. 갓 딴 걸 먹어야 진짜 채소 맛을 알 수 있거든요. 이 오이는 어제저녁에 수확하자마자 냉장고에 넣어둔 건데, 한번 드셔 보세요. 

 

어? 엄청 시원해요. 그리고… 달아요! 

그렇죠? 마트나 시장에서 파는 오이는 유통 과정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오이일 거예요. 푸드 마일리지가 긴 거죠. 오이, 당근, 아스파라거스, 어떤 채소든 바로 수확했을 때 당도가 가장 높아요. 그러니까 유통 과정이 길면 길수록 향과 맛이 떨어지는 거죠. 한여름에 수박 먹으면서 무지 달다 그럴 때 있죠? 사람들이 자꾸 단 걸 찾으니까 인공적으로 단맛을 만드는 거예요. 그런 것만 찾으니까 농부들도 어쩔 수가 없는 거죠. 근데 인공적인 단맛은 계속 먹으면 물려요. 역하기도 하고요. 경험해 보지 않으면 진짜 맛을 알 수가 없어요. 채소 본연의 단맛을 알려면 자연에서 제대로 재배한 걸 먹어봐야 해요. 그래야 자연의 단맛과 인공의 단맛이 구분되거든요. 채소들은 대부분 달아요. 이 오이도 마찬가지고요. 어때요, 기운이 좀 나나요? 

 

네. 작고 얇은 오이라 생소했는데 먹어본 오이 중 가장 시원하고 달았어요. 이걸 다 재배하신 거라니, 엄청 부지런해야 할 것 같아요. 

시골에 살면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뜨거운 한낮엔 밖에 나가 있을 수가 없거든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좀 시원한 공기를 쬐면서 일할 수 있어요. 저는 보통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차를 한 잔 마시고 두 시간 정도 밭일을 해요. 그러다 7시 반쯤 되면 아침을 먹죠.

 

그 ‘밭일’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거예요? 

수확하는 일이죠. 거둬들이기도 하고, 잡초도 뽑고, 꽃을 잘라 꽂기도 하고요. 

 

제 꿈이 적당한 시골에서 오이를 키우며 지내는 건데,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 좀 어렵겠죠(웃음)? 

벌레를 견딜 수 있다면, 부지런하다면 할 수 있어요. 저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일인걸요. 남편도, 저도 서울 토박이예요. 서울에서 쭉 살다가 나중에야 용인으로 와서는 마구잡이로 해본 거죠. 사실 지금도 아마추어예요. 근데 텃밭에서 수확한 작물들을 누구한테 팔 게 아니니까 부담이 없어요. 잘못되면 잘못되는 대로 두는 거죠. 사실 밭일보다도 새로운 식재료에 관심이 많아서 구하기 어려운 것들을 키우는 거예요. 외국에 나갈 때마다 씨를 사 와서 직접 키우다 보니 이렇게 텃밭이 되고, 과일이나 채소도 기르게 된 거죠. 

 

요새는 어떤 걸 키우고 있어요? 

웬만한 허브랑 채소류는 다 있고요. 베리류를 좋아해서 베리 종류도 굉장히 많아요. 블루베리, 레드커런트, 블랙커런트, 구스베리, 스트로베리, 이런 베리, 저런 베리…. 베리는 키우기가 쉽거든요. 스스로 잘 자라는 애들이라 웬만한 베리는 다 들여놓고 지내요. 

 

꽃도 다 직접 심으신 거죠? 이렇게 알찬 정원이 되기까지 얼마나 걸린 거예요? 

10년이 넘게 걸렸죠. 근데 지금 이 정도로는 가드닝을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어려워요. 20년 넘게 해야만 가드닝 좀 한다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드닝도 어느 순간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죠? 갑자기 우리나라가 카페 공화국이 된 것처럼 식물에 대한 관심도 점점 커져가는 것 같아요. 한 5-6년 전부터 이렇게 된 것 같은데, 저는 20년 전에 이미 정원과 텃밭을 꾸리기 시작했으니 조금 빨랐죠. 근데 저는 정원을 꾸밀 목적보다는 허브 가든을 조성하는 게 1차 목적이었어요. 그다음은 베지터블 가든. 제가 원하는 건 아름다운 정원을 만드는 것보다도 푸드 마일리지가 짧은 작물을 얻는 거였으니까요. 

 

허브가 이국의 재료라고 생각하고 보니 우리 주변에 있는 디저트는 주로 서양식인 것 같아요. 

좀더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전통 디저트도 있죠. 떡. 사실 떡도 분명히 디저트인데 우리나라엔 떡을 디저트로 먹는 문화는 잘 안 잡혀 있는 것 같아요. 반면 일본은 전통 식문화를 디저트에 잘 녹여낸 편이죠. 차를 마실 때 과자를 곁들이고, 간편하게 떡을 먹는 문화도 오래 정착해 있었으니까요. 디저트에 관심이 생긴 건 일본에서 공부하면서부터였어요. 한국에서 온 애가 일본 식문화에 관심을 가지니 대견하셨나 봐요. 선생님이 매주 따로 다도랑 이케바나를 가르쳐 주셨는데, 그 덕에 일본 문화와 좀더 가까워지게 되었죠. 

이케바나가 뭐예요?

아, 꽃꽂이의 일종인데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하더라고요. 서양식 꽃꽂이가 아니라 침봉에 꽂는 방식이에요. 재미있게 배웠죠. 매주 수업마다 선생님이 집에 가서 먹으라며 다도 할 때 곁들이던 과자를 싸주셨는데요. 그 화과자에 흥미가 생겨 오래된 화과자 집을 직접 취재해 보기도 했어요. 일본에 있는 화과자 집은 몇백 년씩 명맥을 이어온 곳이 많거든요. 제가 있던 곳이 오사카여서 교토의 장인들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연락했죠. 그땐 전화도 일반적이지 않던 때라 소통하려면 우편을 이용해야 했어요.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 한 장과 답장을 쓸 수 있는 엽서를 함께 보내곤 했어요. 일본어도 잘 못할 때인데, 그 편지를 보고도 주인들이 취재를 수락해 주더라고요. 

 

재밌어요. 좀더 듣고 싶어요. 

편지에 대단한 내용은 없었어요. “저는 한국인 유학생입니다. 화과자에 관심이 무척 많으니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대충 그런 내용이었죠. 몇백 년 동안 이어져 온 화과자집 장인한테 그런 엽서를 보내다니(웃음). 근데 절반 정도가 수락해 주셔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뜬금없는 짓을 한 것만 같은데… 그땐 그런 개념이 없었고, 한국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정교한 과자를 보는 게 신기하고, 맛 또한 경이로워서 무조건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38년 전이라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다들 기특해하셨어요.

 

일일이 편지를 보낸 정성에 탄복한 게 아닐까요. 허브와의 만남도 궁금해지는데요. 

그 당시에도 일본엔 전 세계 요리를 하는 레스토랑이 많았어요. 저는 요리를 공부하는 사람이다 보니 그런 델 많이 찾아가곤 했죠. 메뉴 이름을 보면서 ‘이건 무슨 맛일까.’ 상상했고,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점점 더 궁금해졌어요. 지금 저희 집 주방 서랍에 향신료가 꽤 많은데요, 이 많은 종류를 일본에선 38년 전에도 만날 수 있었어요. 일본 향신료 브랜드도 엄청 오래된 것이 많거든요. 허브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요리 덕분이었고, 차차 허브티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지금은 이런저런 허브를 직접 키우고 있으니까 허브로 요리도 많이 하고, 봄이 오면 수확해서 이렇게 저렇게 가공해서 1년 동안 먹을 걸 저장해 놔요. 아까 말했듯 티나 시럽으로 만들면서요. 여기 뜯어 놓은 게 로즈제라늄인데, 향 한번 맡아보세요. 원래는 더 진하고 짙은 향인데 지금은 향이 옅게만 남았을 거예요. 

 

이 은은한 향도 좋은데요? 그 옆에 있는 것도 허브인가요? 네. 박하예요. 어, 그러고 보니 박하사탕 향이네요. 

허브는 제철에 향기를 맡아봐야 하는데…. 먼 길이지만 내년 봄에 허브 향 맡으러 다시 한번 놀러 오세요(웃음). 

 

지금은 텃밭의 어머니처럼 요리가 익숙해 보이는데, 38년 전이면 요리를 배우기도 쉽지 않던 때잖아요. 어떻게 요리를 배워야겠다 마음먹게 된 거예요? 

저희 아버지가 옛날부터 새로운 식재료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요즘도 여전히 그렇고요. 아버지가 지금 아흔인데, 일흔에 로스팅을 배우셨어요. 지금도 원두를 볶아 점조직으로 납품하고 딸들 몫도 만들어 내시죠. 저희 집은 옛날부터 새로운 먹거리가 들어오면 제일 먼저 먹는 집이었어요.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음식에 관심이 많아졌고, 이것저것 많이 만들면서 지냈기에 요리를 공부해 보자는 생각도 이상하지 않았죠. 그 당시 처음 요리로 유학 간 학생이다 보니 신문에서 인터뷰하러 오고 그랬어요(웃음).

저였어도 인터뷰하고 싶었을 것 같아요(웃음). 요리의 어떤 점이 특히 좋았어요? 

재밌잖아요. 음식을 하면 여러 사람이 행복해져요. 저는 푸드 콘텐츠 기획자지만 요리사는 아니어서 더 길게,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대가를 받는 역할이 아니니까요. 운 좋게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고 있어요. 제가 원하는 건 재료와 가깝게 지내는 거거든요. 요리도 물론 즐겁지만 싱싱한 재료를 보거나 새로운 재료를 발견했을 때 정말 기뻐요. 

 

요새는 또 어떤 재료를 발견하셨어요? 

유럽 포도요. 샤인머스캣 말고, 향이 굉장히 좋은 유럽 포도가 있거든요. 유럽 포도는 모양이 정말 예뻐요. 종류도 다양하고요. 

 

포도 얘기 듣는 순간 입에 침이 쫙 고였어요(웃음). 디저트에 관한 책도 여럿 쓰셨는데, 디저트를 이야기할 때 “요리를 마무리할 디저트”라는 표현을 쓰셨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디저트는 애피타이저나 본식보다는 후식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달콤하니까요. 디저트의 뿌리는 서양 문화에 있는데, 서양 메인 요리엔 우리나라와 달리 설탕이 안 들어가거든요. 그래서 설탕을 마지막에 먹는 문화가 발달했던 거예요. 반면 우리나라는 갈비든 불고기든 메인 요리에 설탕을 넣어요. 오히려 설탕을 넣지 않는 요리를 보기가 어렵죠. 일본도 그렇고요. 그러니까 후식으로 먹는 디저트 문화는 서양에서 먼저 발달할 수밖에 없던 거죠. 서양에서 후식으로 먹는 게 단 거다 보니 디저트는 단 거란 이미지가 생기는 것 같아요. 

 

사가 다 끝난 다음 먹어서인지 좀 여유롭다는 인상도 있어요. 

맞아요. 서둘러 먹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밥은 급하게 먹기도 하지만 디저트는 그렇지 않아요. 기분이 안 좋을 때 예쁘고 단 걸 먹으면 행복해지지 않나요? 그런 게 디저트의 매력이겠지요. 대화하다 보니 에너지가 좀 떨어지네요. 시원한 디저트 하나 더 내올게요. (냉장고에서 꺼내 온 연둣빛 젤리 위에 노란 꽃과 얇게 썬 오이를 올린다.)

 

이렇게 예쁜 걸 어떻게 먹죠? 노란 꽃도 정말 예뻐요. 

잘 보세요. 꽃 아래 오이가 달려 있죠? 

 

와, 제 새끼손가락보다 작네요. 오이꽃이군요! 

오이 민트 젤리예요. 보기만 해도 예쁘죠? 요새 오이가 많이 나서 오이로 만든 디저트를 많이 내오게 되네요. 자연 재료로만 만든 거예요. 민트, 오이, 탄산수, 민트 시럽. 

 

(한 숟가락 떠먹는다.) 이거… 너무 맛있는데 또 먹고 싶어지면 어떡하죠? 

큰일 났네요, 제가 만든 거라서 어디서도 못 먹는데(웃음). 촬영할 거 생각해서 큰 디저트볼에 담았는데 혼자 먹기엔 양이 좀 많죠? 

 

아니요, 저 이거 다섯 그릇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왜 디저트는 가볍게 먹는 거란 인식이 있을까요? 

단맛 위주니까요. 단 건 많이 먹기가 힘들어요. 사실 디저트는 맛도 그렇지만 행복을 주는 음식이라 좋은 것 같아요. 디저트는 보기만 해도 표정이 펴지고 “아, 예쁘다!” 소리가 절로 나오잖아요. 디저트를 앞에 두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먹는 사람은 거의 없거든요. 

 

어쩌면 디저트를 만들어 내는 데 들어가는 정성 덕분일지도 모르겠어요. 스콘 하나만 만들어도 반죽하고, 발효시키고, 굽는 시간이 꽤나 오래 걸리잖아요. 

차근차근 만들어야 하는 음식이죠. 저는 구운 이후에는 후반 작업을 그리 많이 하지 않는 편이에요. 구운 상태에서 끝을 내곤 하죠. 재료에 손을 많이 대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요. 제 눈엔 있는 그대로의 것이 뭐든 가장 아름다워 보여요. 정성껏 장식하고, 정교하게 데커레이션 하는 것도 나름대로 매력 있지만, 터프해서 아름다운 것도 있잖아요. ‘심플 이즈 더 베스트.’ 그게 제 모든 요리의 목표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재료가 신선해야 해요. 그래야 그 자체만으로 빛이 나거든요. 간단하게 올리기 좋은 자연 재료가 바로 허브예요. 약간의 허브만으로도 요리가 특별해지니까요. 탄산수 한 잔에 민트만 올려도 분위기가 확 달라지잖아요. (물끄러미 바라보며) 근데, 아까 내어준 젤리를 아직도 먹고 있네요(웃음).

 

너무 맛있어서 아껴 먹고 있어요.

디저트는 그런 게 좋아요. 많이 먹어도 배가 안 부르다는 거. 게다가 여긴 설탕도 얼마 안 들어가서 물리지도 않고 건강을 해치지도 않죠. 허브에도 궁합이 있는데 민트랑 오이는 참 잘 어울리는 재료예요. 더 청량해지고, 더 상큼해지면서 시너지를 내죠.

이런 디저트를 개발하려면 많이 경험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요. 

많이 먹고, 생각도 많이 하고, 먹어본 걸 조합하기도 하죠. 머릿속으로 맛과 모양을 상상도 많이 하고요. 그래서 바깥에서 사 먹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이 만드는 것에도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일이거든요. 디저트는 어떻게 보면 만드는 사람이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음식 같아요.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같은 디저트여도 맛과 모양이 다르거든요. 

 

먹어본 디저트 중에 정말 맛있다 싶은 거 있으세요? 자꾸 생각나는 거. 

누데이크Nudake요. 이 디저트 브랜드는 세상에 없는 디저트를 만들어 내요. 여기야말로 디자인적인 면에서 만드는 사람의 성향이 그대로 반영된 디저트를 만드는 것 같아요. 누데이크 케이크는 그 자체로 작품이에요. 그래서 더 좋아하죠. 먹어본 것 중에서는 ‘오이크’가 인상 깊었어요. 오이 무스로 만든 케이크인데 맛과 디자인, 색상과 식감의 모든 조화가 좋았죠. 누데이크는 전 세계로 뻗어 나가기에 충분한 브랜드예요. 외국에서도 수많은 디저트를 먹어봤지만, 누데이크만큼 특별한 곳은 못 본 것 같아요. 이제 예쁘고 맛있는 디저트는 어디서든 만날 수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크리에이티브한 디저트는 또 없죠. 얼마 전엔 새로 오픈한 성수점에 다녀왔는데 신메뉴가 기대를 저버리지 않더라고요. 저는 외국에서 지인이 놀러 오면 누데이크부터 데려가곤 해요. 숨도 못 쉬게 만드는, 정교한 기교가 있는 디저트도 아름답지만 저는 누데이크의 파격적인 비주얼과 맛을 좋아해요. 너무 크리에이티브 하다 보면 맛을 놓치기 쉬운데, 누데이크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브랜드죠.

 

비주얼만으론 맛이 상상되지 않는단 점도 매력적인 것 같아요. 선생님이 SNS에 올린 디저트 레시피 중에서도 그런 게 있었어요. 딸기와 후추를 함께 드시는 걸 보고 무척 놀랐거든요. 

간단한 조합인데 굉장히 잘 어울려요. 딸기 철이 오면 꼭 드셔 보세요. 음, 그러고 보니 이번 호가 나올 때면 무슨 계절이죠?

 

9월이요, 초가을. 

9월이면 사과가 제철일 텐데, 맛이 좀 덜한 사과를 가지고 디저트를 한번 만들어 보세요. 사과의 심을 빼서 그 안에 흑설탕, 시나몬을 넣고 오븐에 굽기만 하면 고급스러운 디저트가 되거든요. 40-50분 정도 구워주면 되는데, 그냥 먹어도 맛있고, 아이스크림이랑 먹어도 맛있어요. 뭐든 채소와 과일은 구우면 맛있어지니까 맛이 좋은 사과는 생으로 먹고 좀 떨어지는 사과로 만들어 보는 걸 추천해요. 당도가 쫙 올라올 거예요. 

 

더 달아지기도 하는군요. 

그럼요. 과일과 채소는 구우면 당도가 확 높아져요. 그래서 오늘 차린 비트 케이크도 구운 비트를 사용한 거예요. 구우면 당도도 높아지고 젤리처럼 쫄깃쫄깃해져요. 떡에 호박이나 무를 넣는 것도 비슷한 이유예요. 생각해 보면 디저트에 채소가 은근히 많이 들어가요. 당근 케이크, 호박 케이크, 고구마 케이크도 있고요.

 

채소는 식사에만 사용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디저트에도 잘 어울렸네요. 왠지 더 가까워진 기분이에요(웃음). 오늘 저녁엔 뭘 드실 예정이에요?

저녁엔 거의 간단한 식사에 술을 곁들여요(웃음). 오늘은 와인? 아, 디저트가 남았으니까 샴페인이랑 먹는 게 좋겠네요. 샴페인이 디저트랑 정말 잘 어울리는 거 아세요? 요새는 사람들이 디저트를 아메리카노랑 먹는 걸 즐기는 것 같은데, 제 취향은 커피보단 차, 차보단 술이에요. 와인도 좋고, 와인보다 더 좋은 건 샴페인(웃음). 해외여행 가시면 케이크집을 유심히 보세요. 샴페인 파는 곳이 은근히 많거든요. 집에 샴페인이 있다면 오늘 한번 디저트랑 드셔 보세요. 혹은 맥주. 특히 에일과 먹으면 궁합이 좋답니다.

마침 집에 먹다 남은 케이크가 있어 냉장고에서 꺼내 접시에 올렸다. 포크로 푹푹 파먹은 못난이 케이크. 자연의 단맛도, 수백 년의 전통도 없는 케이크였지만 와인과 엉켜 혀에 감겨오는 맛이 색달라 좋았다. 좀더 자연에 가까운 디저트를 찾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오르또 마드레의 정원에서 받아 온 토마토를 잘게 자른다. 속이 비어 있는 이국의 토마토. 선생님이 알려 주신 대로 올리브 오일과 소금을 살짝 쳐 입에 넣으니 ‘아사삭’ 기분 좋은 소리가 입속을 메운다. 냉장고에 넣어 차게 만든 오이는 함께 사는 식구들과 한 입씩 사이좋게 베어 물어야지.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누군가와 나눠 먹는 일은 마음을 넉넉하게 만든다. 자꾸만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