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전

마음의 빗장을 풀고 받아들이기

매미가 째르르 울던 여름. 우리는 전주로 떠나기로 했다. 결혼 준비로 골머리를 쓰느라 지친 무렵에 결정한 셀프 휴가였다. 답이 보이지 않는 문제를 잠시 제쳐 두니 뭘 입고 뭘 먹지 하는 간단한 고민조차 설렜다. 그 애가 부모님 차를 운전해서 내려가기로 했다. 부모님은 차를 빌려주시면서 전주로 가는 길에 할아버지 댁에 들러 죽을 전해달라고 부탁하셨다. 며칠째 살인적인 더위가 계속 되던 때였다.

할아버지는 경기도 시흥에 사셨다. 그 애가 할아버지 댁에 올라가 있는 동안 잠시 주위를 둘러봤다. 대중교통으로 왔다면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로 산골 고개를 넘어야 했을 외진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할아버지 댁은 마을 가장 끝에 있었다. 서울에 한 블록마다 카페나 유명한 음식점이 있다면, 이곳엔 같은 빈도로 공장부지와 논밭이 자리하고 있었다. 도시의 인프라를 좇아 젊은이들은 떠나고 어른들만이 남아있는 곳. 한번도 와본 적 없는 동네지만, 어쩐지 정겨운 느낌이 들었다.

터벅터벅 내려온 그 애의 표정이 어두웠다. 곧 점심이니까 바로 드시라고 식탁에 죽을 올렸는데 할아버지가 뚜껑조차 제대로 열지 못하시더란다. 식사를 도와드리려 했는데 하도 강성하게 괜찮다고 하시는 바람에 마지못해 내려온 것이다. 다시 출발할 때 그 애는 한층 가라앉아 있었다. 어릴 적 조부모와 많은 시간을 보낸 그였기에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얼마나 마음을 쓰는 지 알 수 있었다.

얼마쯤 내려왔을까. 결국 차를 돌려 다시 시흥으로 올라갔다. 먼저 도착한 구급대원들이 할아버지 집으로 서둘러 올라갔다. 어느새 정오였다. 뜨겁게 익은 아스팔트의 열이 운동화 바닥까지 느껴졌고, 초조한 그 애의 얼굴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들것에 실려 나오신 할아버지는 구급차로 인근 병원에 이송되셨다. 우리도 그 뒤를 따라가 입원 수속을 밟았다. 병원에 오신 부모님께 차를 반납한 후 그 애와 나는 버스를 타고 고개를 넘고 다시 지하철을 타 서울로 돌아왔다. 아침에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늦저녁까지 해가 떨어지지 않아서 하루가 더 길게 느껴졌다.

“우리 할아버지네 갔던 거 기억나?”

그 애가 오랜만에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결혼식 전에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을 써내려가는 중이었다.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근심거리는 ‘무슨 수로 집을 마련하는가’였다.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가정의 사연이 심연에서 발목을 붙잡았다면, 결심한 후에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 나아갈 방향을 잃게 했다. 신혼여행 비용은 결혼식 직전까지 모으고, 가구와 가전은 살면서 산다고 쳐도 당장 살 집은 아무리 궁리해도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결혼한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면 예산에 맞춰서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돌아왔다. 가진 계좌를 몽땅 조회해보니 적금통장에 이백사만 원이 찍혀있었다. 전세금은 커녕 계약금으로도 턱없이 모자란 액수였다. 심지어 그 애는 갓 대학을 졸업하고 다음해 대학원에 입학할 예정이었으니 모아둔 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제야 ‘돈이 없어 결혼까지 포기하는 세대’가 바로 나의 세대라는 게 뼈저리게 실감 났다.

그런데 이런 사정을 아신 그 애 부모님이 괜찮다면 할아버지 집에 신혼살림을 차리는 게 어떤지 물으셨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아신 할아버지도 장손을 위해 기꺼이 동의하셨다고. 할아버지의 안위를 물으니 그날 이후로는 요양병원에 계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유년시절 조부모와 얼마간 시흥에서 살기도 했던 그 애는 아무래도 괜찮아 보였다. 보아하니 나만 동의하면 우리는 그 집에서 살게 될 모양이었다.

선택이란 무릇 여러 개의 선택지가 있을 때에나 가능한 법. 찬 밥 뜨신 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우리가 가진 돈으로는 한강에 텐트를 치고 살아야 할 판이었으니까. 하지만 낯선 곳에 신혼집을 꾸리는 것과 집주인인 할아버지가 편찮으신 것, 생경한 공장부지와 그보다 더 낯선 논밭이 내심 걸렸다. 잠시 들렀다 가는 나그네의 시선으로 볼 때는 정겨웠던 풍경이, 나의 터전이 된다고 생각하니 슬그머니 빗장이 생겼다. 그러나 정말 하늘에서 뚝딱 떨어진 집이 아닌가. 걱정하는 한편으로는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낙관도 샘솟았다.

할아버지 댁을 청소하고 짐을 싹 정리하기로 한 날. 막연한 낙관은 지하철에서 빠르게 달아났다. 대중교통으로 두 시간, 읽을 책까지 챙겨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섰는데도 시흥에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중간에 환승한 1호선은 인천행, 천안행, 서동탄행, 병점행 등 목적지가 여러 개였는데, 시흥으로 가는 인천행 대신 천안행에 잘못 탄 바람에 결국 세 시간이나 지하철 의자에 앉아있었다. 배차간격은 또 어찌나 길던지 두 다리를 비롯해 온 몸이 배배 꼬였다. 집으로 향하는 여정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는 역사를 나와 차를 타고 고개 하나를 더 넘어야 했다.

옅은 한숨을 폭 쉬었을 때, 그 애는 기진맥진한 나의 등을 쓸어내렸다. 아직 살아보지도 않은 집인데 벌써 지치다니. 신혼집이라면 로망으로 가득 차야 하는데 어쩐지 들어가기 전부터 많은 사연이 쌓이는 것만 같았다. 많은 신혼부부가 살고 싶은 집에서 살지 못하고 예산에 맞춰서 산다고들 하지 않는가. 머리 뉘일 곳이 있음에 감사하자. 그런다고 울적한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내 맘도 모르고 시흥으로 향하는 고개는 야속하리만치 고요하고 아름답다. 차창을 열면 금방이라도 풀내음이 들어올 것만 같이.

 

 

We Around Project

결혼, 문을 열다

 

브런치에 글을 연재해 7,000명의 구독자를 모은 에세이스트입니다. 어떤 문은 큰 노력 없이 쉽게 열리지만, 어떤 문은 문고리를 잡는 것조차 버거운데요. 재산이라곤 200만 원의 잔고뿐인 이혼가정 자녀에겐 ‘결혼’이라는 문이 딱 그랬습니다. 무거운 문을 열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속 안개를 걷어주는 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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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윤지영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