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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달아나며 늘 함께
내가 적은 적 없는 집이라는 일기.
바람 부는 것을 좋아하는지? 나는 무척이나 좋아한다. 머리를 다 헝클어 놓는 바람부터 여기 있다, 라고 말할 수조차 없는 미세한 바람까지 모두 소중하다.
스치고 간질이고 흔들고 말리고 밀고. 바람은 마치 뭐라도 전할 말이 있어 보인다. 바깥에 바람이 있으니 실내가 가끔씩이라도 아늑한 게 아닐까?
종종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2년 전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할 당시 내 마음을 한껏 끌어당긴 것은 아주아주 커다란 창문이었다. 9평짜리 원룸에는 어울리지 않게 이 집에는 큰 창문이 두 개나 있었다.
작은 얼굴 속 커다란 눈동자인 것처럼 조금은 부담스러우면서 꼭 가져보고 싶은 그런 모습이었다. 계절에 상관없이 나는 창을 수시로 활짝 열어 놓길 좋아했다. 그때마다 큰 주걱으로 떠넣은 것처럼 집 안에는 금세 바람이 가득 찼다. 현관문까지 열어 놓는 날이면 뭐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로 순식간에 집 안 분위기가 바뀌곤 했다.
창문으로 경험하는 것 중 가장 좋아하는 행동 두 가지를 꼽아보자면, 하나는 방금 말한 것처럼 문 활짝 열어 놓고 이불 털기. 창가에 매달려 이불을 흔들면 함께 사는 개와 내가 묻혀 놓은 것들이 뿌옇게 공중으로 흩어진다.
묵히지 않고 제때 털 수 있다니, 참 홀가분하다. 그리고 또 하나. 언제나 새어 들어오는 공기를 느끼는 것이다. 한겨울이 찾아와도 나는 문을 꽉 닫는 법이 없다. 창문을 꽉 닫은 채로 손잡이를 위로 끝까지 돌리면 이번에는 창문의 윗부분만 살짝 열린다.
이곳으로 들어오는 얇은 찬바람이 잠든 내 이마와 발바닥을 차게 한다. 차가워지는 걸 참 좋아하지만, 생각해 보니 나는 아침에 일어나 뻣뻣해진 손발 마디가 다시금 잘 움직여지는 감각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호텔에 가서 그렇게 하듯이 나는 집에서도 간접등을 여러 개 두고 지낸다. 불빛을 좋아하긴 해도 전체가 환해지게 불을 켜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센서등도 없어서 불빛이 켜지려면 조명 쪽으로 늘 그림자가 먼저 움직이는 식이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켤 수 있는 조명 하나, 요리할 때 쓰는 것 하나, 그릇장 위에 하나 그리고 침대 위에 하나. 나름의 용도에 맞게 켜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닌다. 이걸 다 켜 놓으면 작은 집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밝고 애틋해진다.
완두를 두고 저녁 약속에 갈 때면 침대 위 조명만 ‘아주 어둡게’ 켜 놓는다. 그렇게 하고 싶어 디머 스위치를 따로 주문 제작해서 달았다.
꺼지기 직전의 촛불처럼 은은한 불빛 속에서 완두는 쿨쿨 잘 잔다. 예전에는 내 발소리를 듣고서 현관문이 열리기도 전에 뛰어나오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내가 들어와도 침대 위에 누워 꼬리만 흔든다.
올해로 열두 살이 된 개. 왜 마중도 안 나오나! 탓하면서 나는 활짝 웃고 있다. 매일매일, 어떨 땐 하루에 두 번 세 번, 우리는 반갑다. 반갑지 않으면 그만해야지.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완두 덕분에 친구 관계도 연인과도 그리고 나와도 꽤나 사이가 좋아졌다. ‘그래 반갑지 않으면 말야….’ 나는 안심하며 선반 위의 조명을 하나 더 밝히고 겉옷을 하나씩 벗어 정리한다.
프라이팬이라든지 의자 혹은 물컵처럼 어련히 있을 법한 물건이 아닌데도 내가 사는 집이라면 반드시 있는 물건이 하나 있다. 돌아보니 이 물건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언제나 집에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문틀용 철봉이다. 적당히 위치를 잡아서 양쪽 문틀 사이에 끼워 고정하는 운동기구. 지금 집에 달려 있는 철봉은 지난 월셋집에서 산 것으로 이제 7년째 쓰고 있는 중이다. 체대 입학을 위해 실기 준비를 하며 연습하게 된 턱걸이를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하고 있다. 요즘에는 턱걸이뿐 아니라 그저 매달려 있기도 열심히 한다. 어디선가 건강에 좋다고 들었는데, 중력에 짓눌린 몸을 풀어준다고 했었나. 아무튼. 조명이나 창문보다도 어쩌면 이 집에서 나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물건이 이 철봉 아닐까.
특히 손잡이의 검정 스펀지 부분이 눈에 띈다. 이제는 움켜잡고 나면 손에 스펀지 조각들이 묻어 나온다. 교체해야 하는 게 맞지만, 그대로 두고 싶은 마음도 동시에 인다. 내 몸의 상처를 볼 때처럼 왜인지 모르게 ‘없앨 수는 없는 게 아닌가.’ 하며 쓸어 보게 되는 것이다(물론 교체할 예정).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손잡이가 많이 보인다. 작은 운동기구들 손잡이는 철봉의 그것처럼 해져 있다. 수전이나 현관문 손잡이, 냄비 손잡이, 컵 손잡이도 보인다. 다시 철봉 손잡이를 봤더니, 여기에는 분명 무언가 다른 것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중력에 짓눌린 몸을…’ 나는 손잡이를 통해 다음 단계로, 다른 곳으로 갔던 것일지 모르겠으나 이상하게도 매달리는 것 자체도 참 좋아했던 것 같다.
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