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 위에 꽃잎을 얹는 마음

이지은 — 아네모네시

하얀 물결에 여린 꽃잎을 얹어보는 느낌일까. 꽃의 이름, ‘아네모네’로 불리고 싶었던 지은의 바람은 ‘아네모네시’만의 케이크를 만들며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끼는 사람들에게 나누기 위해 애정으로 시작한 일은 점점 풀어올라 평생 하고 싶은 일이 되었고, 오늘 누군가의 특별한 날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의미로 완성된다. 지은이 만드는 아네모네시의 케이크는 그가 좋아하는 모네의 그림처럼, 우리의 하루에 또 다른 아름다움을 남긴다.

요즘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들었어요. 

프랑스 전통 제과 수업을 듣고 있어요. 작년 겨울부터 시작했는데 동시에 아네모네시도 운영하면서 바쁘게 지내고 있었어요. 지금은 방학이라 조금 쉬어가는 중이에요. 원래 베이킹에 관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알아보며 연습하다가 이제 전문적으로 배우게 됐어요. 훨씬 체계적이고 베이킹에 관한 깊이 있는 내용을 배울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아네모네시의 첫 시작은 취미로 했던 베이킹이었네요. 

원래 요리를 좋아해서 베이킹도 조금씩 해보는 수준이었는데, 친구들에게 하나씩 해주다가 재미를 붙였어요. 친한 친구들과 을지로에 공용 작업실을 얻어서 요리를 했던 게 시작이 되었죠. 아네모네시 이전에는 을지로 카페의 매니저로 일하면서 디저트 메뉴를 맡아서 해보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친구들에게 케이크를 만들어서 선물하게 됐는데, 신기하게 여기저기에서 연락이 왔어요. 알음알음 저한테 케이크를 주문해 주시는 분들이 생기기 시작한 거죠. 

 

말 그대로 입소문이었군요. 

일본어를 전공했던 학생이었고 이 일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요. 사람들에게 요리를 해주는 게 좋아서 했던 일에 어느새 아네모네시라는 이름까지 붙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시작이 됐어요. 

 

이름은 어떻게 정했어요? 

제가 ‘아네모네’라는 꽃을 좋아해요. 전형적인 꽃 모양인데, 친구가 아네모네 꽃과 제가 잘 어울린다는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그때부터 왠지 모르게 아네모네라고 불리고 싶었어요. 그냥 아네모네라고 하면 좀 심심하니까 누구누구 씨라고 불리듯이 단어 뒤에 ‘시’를 붙였어요. 그렇게 아네모네시가 됐죠. 좀 구구절절이네요(웃음). 이 이야기를 아는 친구들은 조금 간지럽지만 저를 ‘모네’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해요. 

 

부끄러워하면 안 돼요(웃음). 지은 씨의 또 다른 자아인 거죠.

뻔뻔하게 해보려 하는데(웃음) 아직 어려워요. 그래도 모네라고 불리고 싶은 마음은 한결같아요. 

 

그러고 보니 아네모네시 케이크를 보면 모네 그림이 떠오르기도 하네. 오묘한 색들이 돋보여서요. 

모네 그림을 정말 좋아해요. 회화를 보면서 케이크 디자인 모티프를 얻기도 하고요. 

 

아네모네시 브랜드 이미지의 시작은 정원이었다고 했죠. 

꽃도 좋아했지만 허브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아네모네시의 케이크는 조금 색달라 보였으면 했는데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렸어요. 꽃 종류가 워낙 많으니까 올라가는 꽃들마다 느낌이 무궁무진하고요. 

 

아네모네시를 떠올리며 그렸던 정원의 모습이 있어요?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정원에 핀 꽃의 살아 있는 생명력에 큰 영감을 받기도 했고요. 사실 우리 주변엔 살아 있는 것보다는 죽어 있는 것들이 많잖아요. 꽃과 정원은 생생한 에너지를 전해주는데, 그런 이미지를 아네모네시에 담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어딘가 조금 독특한… 그렇다고 괴상한 건 아닌데(웃음) 신기해서 돌아보게 되는 그런 매력을 담고 싶었다고 할까요. 정말 어려운 건데, 이렇게 복잡한 바람을 갖고 있긴 하지만 막상 만들 때는 즉흥적으로 디자인이 조금씩 달라져요. 그날 제 눈에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대로 구현해내거든요. 같은 종류라고 해도 꽃마다 모양이 다 다르니까요. 온전한 ‘그 꽃’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하는지에 따라 변화를 주며 가장 잘 어울리는 여백의 크기를 잡아가고 있어요. 

 

초반의 아네모네시 케이크는 여백을 잘 담았다고 생각했어요. 배경 가운데 꽃 하나가 덩그러니 있는 멋이 돋보였거든요. 

맞아요. 딱 알아보셨네요. 초반에 그 지점을 염두에 뒀어요. 보통 생화 케이크 하면 풍성하고 화려한 디자인을 많이 떠올리는데 그러면 사실 화분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케이크는 어쨌든 먹기 위한 용도가 분명하니까요. 요즘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있어서 그런지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돼요. 조금 더 기술적인 지점에서 나름의 노하우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 케이크 디자인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초기엔 아이싱도 일부러 거칠게 하는 면이 있었는데 이제는 조금 정돈된 모양새를 잡기도 하면서 풍성하지만 여백이 있는 그림에 집중해요. 완성도를 높이려 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지은 씨가 전문가가 아닌 단계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아네모네시에 더 다이내믹한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떨 때는 지금의 성장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이 작업실을 오픈한 지 1년 5개월 정도밖에 안 됐거든요. 지금은 욕심을 많이 내고 있는 단계에 있어요. 기준을 높이면서 내실을 단단하게 다지고 싶은 마음이에요. 이런 고민들이 쌓여서 작년에 쉬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어요. 시작과 경험에 비해 너무 이른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해서요. 완벽한 준비를 갖출 수는 없지만 관심을 받은 만큼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겼어요. 모든 걸 혼자 하고 있기도 하고요. 아네모네시를 시작하면서 성격도 변했어요(웃음). 성격 유형 검사를 하면 INFP가 나왔는데 얼마 전에 ENFJ가 나오더라고요. 

 

와, 아주 다른 성격으로 변한 것 같아요. 

경영을 하게 되니까 책임질 일도 많아지더라고요. 전에는 흘러가듯이 산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지금은 계획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이루면서 생긴 변화이기도 해요. 

맞아요. 정말 신기해요. 제가 여태 살면서 관심을 두고 좋아했던 모든 요소가 다 아네모네시로 합쳐진 느낌이거든요. 케이크 하나에 저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것들을 한데 모아 담을 수 있다는 게 정말 재밌는 점이죠. 그 과정에서 방황도 많이 했어요.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두렵고, 뭔가를 하고 싶은데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고. 누구나 다 겪는 혼란의 시기를 저도 겪었는데 지금은 일을 하면서 자아실현을 안정적으로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척 만족스러워요. 오래오래 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부풀어 오르고 있어요. 

 

평생의 업이 생겼네요. 

지금은 그래요. 아네모네시로 벌이고 싶은 일이 정말 많거든요. 케이크 말고도 더 다양한 메뉴를 만들고 싶기도 하고, 아예 다른 분야로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케이크가 꼭 먹는 용도로만 사용되는 건 아닐 수 있잖아요. 좀더 팬시하고 캐주얼한 디저트로 변주될 수 있고요. 더 나아가서, 케이크를 소재로 하는 전시를 진행하거나 다른 분야가 어우러지는 파티나 축제를 기획해도 재밌을 것 같아요. 다양한 시도를 하기 위해서는 클래식을 잘 배워서 지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본을 먼저 잘 갖추고 거기에 아네모네시만의 것을 입혀 가야겠죠. 그리고 지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접근성이에요. 사람들이 좀더 쉽게 다가올 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케이크는 기념일용이라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공간을 확장할 계획도 세우고 있죠. 

 

요리와 베이킹은 언제부터 좋아했어요? 

요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좋아했어요. 집에서 혼자 엄마한테 혼나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하려고 했죠. 다 크고 혼자 살게 되면서 요리 솜씨가 더 늘었는데, 시작은 교환학생으로 일본에서 공부할 때였어요. 작은 일식당에서 일하기도 했거든요. 한 맨션에서 친구들과 다 같이 지내면서 그때부터 누군가에게 요리해 주는 일을 좋아했어요. 일본 마트에는 딱 혼자 먹을 양의 재료를 잘 팔아서 작은 요리를 하기엔 참 편리했죠. 

 

지은 씨는 친한 친구들에게 요리해 주는 일이 정말 좋았나 봐요. 

그것도 그런데, 사실 가장 즐긴 건 요리하는 과정이었어요. 재료 손질하고 모아서 조리하고 요리에 몰두하는 시간이 마음을 편하게 해줬어요. 그 순간들은 온전히 다 제 거잖아요. 만드는 걸 넘어서 사람들과 같이 먹을 땐, 좋은 기억을 만들어내는 일이 되기도 하고요. 

 

요리를 명상처럼 생각하나 봐요. 

맞아요. 십자수 하는 것처럼요. 친구들에게 요리가 명상 같다고 말하면 오버하지 말라고 하는데(웃음) 저는 정말 그렇게 느껴요. 훨씬 동적이긴 하지만 생각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돼요. 어떤 결과물을 완성했다는 뿌듯함도 있죠. 결정적으로 요리는 레시피대로 따라 하면 되는 거니까 다른 일보다 하기 쉬운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에이, 천부적으로 요리 못하는 사람들도 많아요(웃음). 

그렇긴 하지만(웃음) 요리는 베이킹보다는 비교적 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베이킹은 정말 예민한 과정을 거치거든요. 요리는 실수를 하더라도 입맛대로 수정할 수 있는데, 베이킹은 달라요. 계량, 시간, 온도, 순서, 방식 등등 하나하나 신경 써야 할 것투성이거든요.

케이크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특별히 집중하는 단계가 있나요? 

특별히 어떤 단계를 꼽기보다는 모든 순간이 중요해요. 케이크는 특별한 날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잖아요. 아네모네시를 방문해 주시는 많은 분들이 엄청난 기대를 품고 들어오시는 모습을 보면 어떤 단계도 허투루 할 수가 없어요. 주문 방법도 다른 케이크 가게보다 쉽지 않고 번거로운 과정이 많거든요. 오시는 분들이 어떤 노고를 거쳐서 아네모네시를 찾아주시는지 아니까요. 그래서인지 평소에는 안 그런데, 케이크 만들 때의 저는 누구보다도 예민한 사람이 돼요. 그 기대를 채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요. 

 

사명감을 가지고 있네요. 

꽃잎 하나하나 배치가 디자인에 맞춰 완벽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빠진 재료가 있으면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요. 중간에 모양이 생각만큼 안 나왔거나 뭔가 잘못된 모습이 발견되면 못 참아요.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있나 봐요. 이런 모습들도 아네모네시를 통해서 새롭게 발견한 점이네요. 

 

아까 일로 하는 자아실현 이야기를 했는데, 아네모네시 SNS 계정을 보면 과거로 갈수록 지은 씨 개인의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개인 계정에서 아네모네시 계정으로 바꾸게 된 거죠? 

맞아요. 아네모네시의 시작이 알음알음 자연스럽게 흘러갔던 지라, SNS 계정에도 그러데이션이 생겼어요. 

 

단순한 SNS 피드지만, 지은 씨 이콜 아네모네시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과거 피드를 지울까 말까 되게 많이 고민했어요. 그래도 그때의 저를 담고 있는 기록을 지우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방황의 시기였다고 했지만 그 모습이 그리울 때도 있거든요. 당시는 취업을 준비할 때였는데 대학 졸업하면 당연히 회사에 들어가야 하고 뭔가를 도전하려고 하면 주변에서 만류하고, 그런 환경이 저를 좀 힘들게 했는데 요리와 베이킹을 하면서 조금씩 해소했던 것 같아요. 그런 과정이 SNS에 담긴 거죠. 

 

지은 씨가 중요한 걸 찾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는 욕심이 막 나요(웃음). 

 

방황할 땐 미래를 알 수 없으니까 막연해서 힘들었을 것 같은데 요리와 베이킹은 언제나 결과가 있는 일이니까, 그래서 더 안정감을 느꼈던 걸까요? 

그렇죠. 온전한 나만의 결과물이니까요. 요리 안에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어떤 순서로 만들었는지 하나하나 다 아니까 다른 사람이 만든 요리보다 맛을 더 디테일하게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평소에 혼자 어떤 요리를 해 먹어요? 

파스타 종류를 많이 해요. 계절마다 다른데, 요즘엔 날이 더워서 콩국수를 자주 해 먹었어요. 요리도 좋지만 제가 술을 좋아해서(웃음) 술과 어울리는 요리를 많이 떠올려요. 

 

술과 케이크도 너무 잘 어울리는 조합이네요. 

맞아요. 그래서 페어링도 시도해 보고 있어요. 원래 와인이나 위스키도 함께 판매하려 했는데 지금은 케이크 만들기에 바빠서(웃음). 공간을 확장하게 되면 여러 가지를 도전해 보고 싶어요. 

 

새로운 생각을 거듭하는 시기네요. 자극과 영감이 된 일이 또 있나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셰프의 테이블>을 재밌게 보고 있어요. 전 세계 셰프들의 이야기가 모였는데 크고 작은 부분에서 영감을 많이 받고 있어요. 시즌 3에 알랭 파사르Alain Passard 셰프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채소로만 요리를 하는 셰프예요. 채소로만 요리하는 셰프가 아주 드물어서 집중해서 보기도 했고, 셰프라기보다는 아티스트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요리 실력도 훌륭하시고요. 완성한 요리도 아름다움 그 자체예요. ‘어떻게 이렇게 만들 수 있지?’ 하는 놀라움의 연속이었어요. 사실 보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 너무 멋있어서(웃음). 사는 방식이나 요리를 대하는 가치관, 본인에 대한 확신 같은 것들이 마음을 울리더라고요. 

 

카타르시스를 느낀 거네요. 

맞아요. 그리고 되게 즉흥적으로 요리를 하시는 편인데, 그 모든 과정이 정말 자연스럽게 보였어요. 보통 대중이 생각하는 셰프의 모습은 엄한 이미지가 있잖아요. 카리스마 넘치는 그런 모습이요. 알랭 파사르는 부드럽고 자연스러워요. 자연스럽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에요. 요리할 때 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요. 요리를 오래 한 셰프에게서 천진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어요. 프랑스에 가게 되면 꼭 알랭 파사르의 식당에 가야겠다는 목표가 생겼어요. 

 

만난다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어요? 

말이나 할 수 있을까요. 울지도 몰라요(웃음). 먼발치에서 보고 있겠죠. 사실 일을 하다 보면 지치고 지루하다고 느낄 때가 있잖아요. 베이킹을 평생의 업으로 여기기 시작하면서 알랭 파사르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잡기도 했어요. 나중에 한계가 왔을 때 알랭 파사르의 태도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어떤 태도일까요? 

순수함이요. 일에 대한 사랑, 이것 자체가 순수한 거죠. 알랭 파사르한테 요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보였어요.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도 업이 되면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생기는 것 같아요. 케이크를 만드는 마음에 처음과 지금 차이가 있을까요? 

다행히 아직은 크게 없어요. 그때도 지금도 좋고, 사실 더 좋아진 것 같아요. 혼자서 하다가 배우기 시작해서 그런가, 베이킹의 세계는 생각보다 더 무궁무진하다는 걸 깨달아 가고 있어요. 더 잘해야지,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뿐이에요. 

 

그리고 베이커는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잖아요. 요리는 힘 닿을 때까지 할 수 있으니까요. 

몸이 따라준다면요(웃음). 시간이 지날수록 능숙해지고 쌓이는 노하우가 있으니까 제가 한 40-50대가 됐을 때 어떤 걸 하고 있을지 되게 궁금하기도 해요.

아네모네시를 운영하면서 많은 손님을 마주했을 텐데,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나요? 

그럼요. 한 번은 연령대가 좀 있으신 남자분이 찾아오셨어요. 아네모네시는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로만 주문을 받아서 접근성 때문인지 20대 여성분들이 많이 찾아주시는 편이거든요. 아내분께 선물해 주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 마음이 느껴지더라고요. 다정한 모습이 정말 좋아 보였어요. 아무래도 케이크라서 단골손님이 생기기가 어려운데 친구들끼리 모임에서 각자의 생일 케이크를 아네모네시 케이크로 통일하기로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오실 때마다 다른 분인데, 매번 같은 생일파티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기분 좋은 모임 자리에서 아네모네시를 함께 공유해 주신다니, 정말 감사했어요. 속으로는 너무 고맙지만 티는 못 내고 있어요(웃음). 

 

아, 지은 씨는 자주 가는 가게에서 단골손님으로 알아보면 멈칫하는 타입인가 봐요. 

맞아요. 저도 모르게 부담을 느낄 때가 있어요. 그래서 저도 손님분들을 대할 때 더 조심하게 돼요. “오셨네요.” 하면서 반기는 것도 좋지만 다음에도 가벼운 마음으로 오시도록 조금 멀리서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죠. 

 

케이크를 건네주실 때 보람을 많이 느낄 것 같아요. 이런 케이크를 마주하면 누구라도 웃음이 지어지니까요. 

케이크를 계속 만들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해요. 제가 만든 케이크가 누군가에게 행복한 순간으로 남는다니, 제가 더 행복한 일이죠(웃음). 아네모네시가 확장되어서 같이 일하는 스태프가 생기고 제가 하는 일의 범위가 줄어든다고 해도 케이크를 직접 내어드리는 일을 놓고 싶지는 않아요. 손님들이 만족해하시는 순간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거든요. 짧지만 미묘한 유대감을 느끼죠. 

 

지은 씨 자신을 꿈 많은 아마추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어떤 단계에 있는 것 같아요? 

아직 시작이죠. 가끔은 너무 느리게 가고 있나 싶기도 하지만 이 일을 오래 할 생각을 하면 더 천천히 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반짝하고 그만둘 일이 아니니까요. 이제 출발이지만 아네모네시를 향한 관심들을 보면 이젠 제가 아마추어라는 생각은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프로가 되어야죠. 

 

아네모네시 케이크를 보고 있으면 죽어가는 꽃의 마지막을 기록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앞으로 어떤 기록들을 남기게 될까요? 

그 표현이 맞아요. 케이크 하나하나 완성할 때마다 기록한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작은 농장을 운영하고 싶은 꿈이 있어요. 시장에서 구하기 힘든 꽃과 허브를 가득 키우고 싶어요. 직접 키운 특별한 재료로 세상에 없던 케이크를 만들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기대’와 ‘기다림’이란 꽃말을 가진 아네모네. 오랜 기다림 끝에는 맑은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아네모네시의 새로운 공간도, 지은이 만들어갈 케이크의 모양도, 모든 것이 맑게 번져가 또 다른 내일을 만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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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지수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