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의 속살

Lee Jaeyeon — Photographer

《파도를 넘어서 케이크》를 읽으면서 재연 씨 성격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어요. “만나기가 싫지 않은” 사람을 헤아리는 대목에서, “사람을 불러 모으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라는 대목에서, ‘맛있다’는 칭찬을 받으면 쑥스러워하는 대목에서요. 

저에게는 무척 자연스러운 표현이었는데 그렇게 짚어 주시니 흥미롭네요. 저는 원하는 것이나 편안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이 매우 한정적이고 모양새도 구체적인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런 만큼 싫지 않은 상황과 사람은 무척 소중한 존재죠. 저는 9시 출근, 6시 퇴근하며 평일을 보내요. 주말이나 쉬는 날에 종종 베이킹을 하고, 그것이 멋져 보이도록 사진을 찍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취미를 가진 사람이에요. 홈 베이킹을 시작하고 베이킹하며 생각한 것들을 조금씩 적었고, 얼마 전엔 이를 엮어 《파도를 넘어서 케이크》라는 책으로 출간했어요. 

 

베이킹 레시피가 아닌 생각을 담은 책이어서 흥미로웠어요. 

처음 베이킹을 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땐 막연히 베이킹 블로거 정도의 위치라고 생각했어요. 레시피나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 나 자신에게 설명하기도 했고요. 근데 주기적으로 포스팅하다 보니 구체적인 레시피나 기술적인 이야기가 피로하고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점차 파운드케이크 레시피보다 소개 글에 집중하게 되고, 브라우니에 대해 장황한 서론을 늘어놓기 시작했어요. 어느새 레시피보다는 다양한 디저트에 관한 가벼운 이야기를 더 많이 쓰게 되었지요. 홈 베이커가 느끼는 외로움이나 작은 성취, 소형 오븐으로 굽는 기적 같은 순간에 관해 할 이야기가 훨씬 많았거든요. 저는 전문 레시피 개발자도 아니고 파티시에도 아니니까요. 남을 위해 베이킹하는 건 더더욱 아니고요. 자연스레 레시피는 공유하지 않게 되었고, 새로운 쿠키를 만들면서 느낀 것이나 레몬 타르트 만들기에 실패하며 겪는 고충 같은 걸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하고 싶은 말과 불평을 하는 대신 쿠키를 굽고 버터크림을 만들어 보는데 그렇다고 내 감정이 어딜 가지는 않는다.”라는 문장이 참 좋았어요. 베이킹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날려버렸다는 스토리가 아니어서요. 

스트레스를 풀려고 베이킹을 하지는 않아요. 베이킹을 한다고 해결되는 고민은 없고 슬픈 현실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으니까요. 힐링, 여유라는 키워드는 제 베이킹 생활과는 거리가 멀어요. 제가 베이킹을 목숨만큼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에요. 베이킹이 제 삶의 모든 것은 아니거든요. 제 인생에 디저트보다 중요한 건 많으니까요. 

 

그럼 재연 씨한테 디저트는 뭐예요?

아마 남들보다 디저트 생각을 200퍼센트 정도 더 하고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유명한 디저트 숍을 발품 팔아 찾아다니지는 않아요. 어딜 가서 디저트를 찾아 먹는 것보다 제가 만든 걸 먹는 게 더 즐거워서요. 우리 집에서도 베이커리 부럽지 않은 브라우니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디저트는 사치스러운 선물이 아닌 ‘우리 집에도 있어 좋은 것’이죠. 

 

“나에게 디저트란, 확실하게 많이 먹었구나! 하는 기분이 들게 먹어야 그게 진짜 먹은 것이다.”라고 이야기했죠. 화려하지 않더라도 큼직하고, 밀도 높고 목이 메는 빵과 과자들을 사랑한다고 했어요. 재연 씨만의 언어로 디저트를 한 번 더 설명해 주실래요? 

디저트가 식후에 하는 간단한 입가심이라고 생각한다면 작은 케이크 한 입도 큰 의미가 있겠지요. 제 삶에서 베이킹은 요리보다 훨씬 우선순위에 있기 때문에 식후에 즐기는 음식이라는 개념이 어색하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심지어 디저트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조차 편하지가 않아요. 그렇다고 많은 사람이 통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문화를 부정하려는 건 아니에요. 저는 베이킹을 할 때 ‘나는 디저트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에요. 제가 SNS나 책에서 디저트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면, 그것을 달리 표현할 방법은 없을지 고민한 끝에 사용한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저한테 디저트란 식사와 상관없이 삶의 일부인 습관이기에 식후 입가심처럼 가볍고 개운하기만 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식사만큼 존재감이 있어도 되기 때문에 눅진한 초콜릿케이크나 목이 턱턱 막히는 브라우니에서 해방감을 찾는 것 같아요. 

 

책에서 케이크는 물론이고 쿠키, 타르트부터 베이글까지 다양한 종류를 다루고 있죠. 그러나 케이크에 관한 마음은 특히 남다르다고 느꼈어요. “어떠한 방식이라도 내 삶에서 케이크는 필연적이다.”라고 이야기했고요. 

케이크는 구체적인 디저트의 종류이기보다는 그 단어 자체로 디저트나 간식거리를 대변하는 말 같아요. 인간에겐 불필요하지만 개개인에겐 가치 있는 무언가가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제 삶엔 그런 의미에서 케이크와 쿠키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요. 그런 삶을 꾸려가려고 하고요. 그 과정이 번거롭고 힘들어도 언제나 케이크라는 보상이 저에게 주어질 테지요. 제 삶을 이루는 수많은 단편 소설의 엔딩에는 디저트가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어요. 

 

재연 씨의 베이킹 이야기에서 쿠키 박스 프로젝트를 빼놓을 순 없을 거예요. 

아주 가끔, 인류애가 상승하거나 긍정적인 에너지를 방출하고 싶어질 때면 직접 만든 다양한 쿠키를 사람들에게 보내주는 일을 해요. 그 사람들은 보통 추첨이나 선착순 지원을 통해 받고요. 주말 내내 열심히 만들어서 월요일에 우체국에 가서 발송하죠. 쿠키 박스 안에는 쉽게 상하지 않는 제과류를 담아요. 베이킹을 시작했을 땐 회사에 디저트를 가져가 동료들에게 나눠주는 일이 많았는데, 그게 반복되다 보니 오히려 조금 불편하더라고요. 항상 같은 사람들에게 나눠주는데, 매번 이럴 때마다 억지로 디저트를 먹이는 기분도 들고 내 주변에 디저트를 좋아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계속 베이킹은 하고 싶은데 어디다 이 많은 걸 나눠줘야 할까 고민하다가 차라리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우편 쿠키 박스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그때는 맛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는 무사히 도착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처음 쿠키 박스를 발송하고 하나둘 수령했다는 소식을 받았을 때 기분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 모든 것이 기적 같고 신기했어요. 항상 우리 집이나 내 주변이라는 경계 안에서만 머물던 쿠키들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집에 가 있다는 것은 새로운 기분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홈 베이킹에 돈이나 명예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둔다고 생각했어요. 

특별한 목표를 가지고 홈 베이킹을 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지금도 대단한 뭔가를 어떻게 해보려고 시간을 내서 고생하는 건 아니거든요. 감정과 생각은 대부분 사람들이 가지고 살지만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방식은 제각각이에요. 집에서 맛있는 디저트를 만들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제가 최근 몇 년간 선택한 표현 방식인 거죠. 표현을 더 잘하려고 애쓰고 연습하는 과정, 즐겁고 좋은 방법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여러 사람이 봐주는 것이고요. 저는 좋아서 하는 일에 가치가 있는지 고민하는 순간마저도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순수한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사람에게 “그게 그렇게 재미있냐.”라고 묻는 것이, 예민한 사람한테는 무례할 수도 있겠다는 맥락과 비슷한 거죠. 그렇게 묻는 순간 그 사람은 민망한 기분에 잠시 그걸 내려놓고 한 발 떨어져 생각하게 되고 자기 자신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하니까요. 

 

맞아요. 누군가의 취향을 재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거예요. 재연 씨는 책에서도 “베이킹이 또 다른 표현 도구가 된다.”고 했죠. 빈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도 비슷하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비주얼 면에서도 그렇지만 맛도 그래요. 같은 레시피를 두고서도 이 사람은 잘 해내지만 또 다른 사람은 처참하게 실패하기도 하니까요. 똑같이 잘 만들어도 결과물의 겉모습이 무척 다를 때도 있고요. 신기한 일이죠? 케이크 디자인으로도 예를 들어 볼게요. 멋진 파이핑 테크닉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이는 기발한 상상력이 담긴 구조를 만드는 것에서 케이크의 의미를 찾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다양한 케이크의 형태를 즐기게 된 거고요. 사실 디저트는 먹으면 없어지는 것이지만, 만드는 이에 따라 같은 디저트여도 어떤 부분을 중요시하는지 자세히 지켜보면 디저트 세계는 훨씬 다채롭게 느껴질 거예요. 

 

추측하건대 재연 씨의 베이킹은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기보단 재료 본연에 충실하단 생각이 들어요.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저도 예쁘고 예술적인 디저트를 만들고 싶어요. 하지만 베이킹이 개인적인 사치를 해소하기 위한 장치가 아닌 것은 맞아요. 베이킹하기 오래전부터 케이크와 쿠키는 제 머릿속에 매우 빈번하게 떠오르는 것들이었고, 그것을 내 손으로 만들어 보는 건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이었어요. 저는 행복을 위해, 제 가치를 상승시키기 위해 디저트를 만들지는 않아요. 베이킹은 제 삶과 가치관의 일부이고, 지루한 일상이 되었을 정도로 무척 당연한 것이거든요. 제가 만드는 디저트의 주인공은 화려한 버터크림 파이핑이 아닌 적나라한 텍스처와 클로즈업된 디테일이에요. 재료의 질감을 살린 투박한 사진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고요. 

 

책에서 읽은 맛과 식감 묘사가 특히 좋았어요. 입 속에 디저트를 담은 느낌이었거든요. 재연 씨에게 ‘끝판왕’ 디저트에 관해 듣고 싶어요. 

저한테 모든 디저트는 ‘달고 진한 초콜릿케이크’로 귀결해요. 홈 베이커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성취는 달고 진한 미국식 초콜릿케이크를 집에서 만들 수 있는 것 아닐까요? 화려한 앙트르메, 아름다운 타르트도 멋지지만 위선 없는 만족은 초콜릿케이크면 충분해요. 하나 덧붙이자면 최근에 올드패션드 도넛을 만들었는데 이 또한 무척 좋았어요. 튀긴 케이크 반죽에 설탕 글레이징을 입힌 건데 더이상 뭐가 필요할까요? 

 

엄청 달고, 분명히 맛있을 것 같아요(웃음). 궁금한 문장이 있었어요. 디저트가 “달지 않고 맛있다.”라는 표현이 모순적이라고 하셨죠. 

“달지 않고 맛있다.”는 말은 실제 의도가 잘못되었다기보다는 표현에 오류가 있는 것 같아요. 그 말이 주는 불편함을 최근에야 제대로 인지하게 됐는데, 사실 그걸 통해 하려는 이야기는 “알맞게 달아서 맛있다.”는 거겠죠. 

 

음, 달지 않은 음식은 디저트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나요? 

달지 않은 음식이 후식이 될 순 있을 것 같아요. 식후에 감자칩을 먹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그것은 간식, 즉 스낵에 가까운 것이라 본격적으로 디저트 카테고리에 포함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간식이 출출한 입을 달래주는 거라면 디저트는 불필요한 것이지만 행복감을 더해주는 게 아닐까 싶어요. 

 

달콤한 디저트로 축복과 응원을 전하려던 마음도 인상적이에요. “내 결정에 대한 축하가 필요했지만 그것을 받지 못했던 여성. 원치 않는 임신을 해 어렵게 임신 중절을 해야만 했거나 홀로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하고 강한 어머니가 되기 위한 격려를 받지 못했던 미혼모….” 따듯한 위로가 필요한 여성들에게 케이크로 마음을 건네고자 했죠. 

임신 중절을 결정한 친구를 위한 축하 파티를 계획하는 노래의 가사가 있는데, 그 가사 속 여성이 분명 제 주위에도 있을 거란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어요. 여성들의 이야기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들을 위로하거나 축복할 기회가 없다는 것도요. 사적으로, 조용히, 몰래 해야만 했던 결정에 “잘했다, 축하한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들에게 절절한 위로나 눈물 대신, 용기 있게 내린 결정을 종류에 상관없이 축하해 주고 싶었어요. 그들이 한 결정 때문에 자신의 여성성을 원망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도요.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의 삶을 지켜낸 거니까요. 

 

긴 시간 베이킹을 해오면서도 꾸준하게 감각하는 기분이나 태도가 있나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 손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의지는 저에게 자연스러운 기분이에요. 감사하게도 저는 그런 삶이 주어진 사람이고요. 어떤 기술을 얻어 능숙해진다 한들, 100퍼센트 마스터하는 건 어려워요. 평생 해도 다 못 해보고 끝날 정도로 할 게 많다는 점에서 베이킹 또한 멋진 활동이고요. 홈 베이커로 생활하는 게 좋은 이유는 여러 번 해본 거라 해도 언제나 과정에서 어려움이 생기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같은 케이크를 하루에 50개 만들 일은 없기 때문에 케이크 하나하나가 새로운 챕터고 모험이죠. 그래서 베이킹이 지루해지지 않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제가 서툰 홈 베이커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어요. 

 

어렵고 번거로울 거라 생각해 온 과일 케이크에 도전한 적이 있죠. 그렇게 만든 체리 피스타치오 케이크가 “완전하게 마음에 든 케이크”가 되었다고 했어요. 베이킹은 도전의 연속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또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어떤 것이 있다면요? 

그 시도로 개운한 성취감을 느낀 건 사실이지만, 사실 그것이 제 근본적 두려움과 불안감을 해소해 주지는 않았어요. 그렇지만 정말로 불필요한 두려움이 실행을 막는다는 생각이 들 때면 다시금 펼쳐 볼 수 있는 과거의 챕터가 되기는 했지요. 요즘은 제 이야기보다는 지어낸 이야기들을 하고 싶어서 단편 소설을 쓰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음식이나 케이크, 다양한 디저트가 반드시 한 장면 등장하는 이야기를 써보려고 해요. 아주 짧게 두 편 정도 써보았는데 저의 지질한(웃음) 감정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어서 무척 상쾌한 기분이에요. 하지만 훨씬 어려워요. 자꾸만 제 모습을 담게 되더라고요.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이상하거나 흥미로운 사람들을 잘 기억하고 기록해 두려고 노력 중이에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지만 새로운 시도엔 에너지 소모가 크네요. 하지만 어렵게 써 내려간 에세이가 어느 날 책이 되어 돌아온 사실을 기억하며 소설 쓰기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해요.

Book—《파도를 넘어서 케이크》 이재연 | 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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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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