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와 함께하는 비행

뜻밖의 다정함

이 글에는 수많은 상호가 실명으로 등장하게 될 예정이다. 뭐, 괜찮겠지.

케이크와 함께

부드러운 생크림 케이크를 들고 비행기 타본 적 있는 사람! 나는 두 번 있다. 종종 대전으로 출장을 간다. 대전은 육지에서 보기엔 교통의 요지이지만, 제주에서는 가는 과정이 조금 고단하다. 우선 제주공항에서 청주공항까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다. 그다음 청주공항에서 다시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대전역에서 내린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30분가량 더 달려야 출장 장소에 닿는다. 편도 이동에만 서너 시간 넘게 걸리는 여정이다. 저녁에는 다시 제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하루 일정이 무척 빠듯하다. 특히 기차와 비행기 시간표를 잘 맞추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아무리 일정이 빡빡하더라도 성심당에 들를 시간은 꼭 확보해야 한다. 대전 출장의 보람이기 때문이다. 매번 잊지 않고 대전역 성심당에 들러 빵을 산다. 사실 빵을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성심당은 아무리 많이 골라도 2-3만 원이 넘지 않아서 좋다. 넉넉하게 사 온 성심당 빵을 제주도 친구들이랑 푸짐하게 나눠 먹곤 한다. 그런데 그 맛있다는 튀김소보로도 서너 번 먹으니까 조금 질리더라. 이번 출장에선 시내에 있는 성심당에 들러 망고시루 케이크를 사기로 결심했다. 어마어마한 대기 끝에 망고시루 케이크를 사는 데 성공했다. 이제 대기보다 더 어려운 미션이 남았다. 이 케이크를 들고 무사히 제주도까지 가야 한다. 재빠르게 택시를 타고 대전역에 내려 무궁화호를 타고 청주공항에 도착한 뒤, 다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왔다. 택시, 기차, 비행기를 여러 번 갈아탔지만 망고시루 케이크는 무사하다! 사실 케이크랑 비행기를 탄 적이 한 번 더 있다.

누데이크가 첫 매장을 오픈한 지 얼마 안 되던 때, 마침 서울 청담동에 출장 갈 일이 있었다. 잘됐다! 블랙 올리브로 만들었다는 까만 빛깔 케이크 맛이 너무 궁금했다. 빵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케이크는 좋아한다. 일을 부지런히 마무리하고, 케이크를 사러 누데이크에 갔다. 여기도 대기 줄이 꽤 길었지만 다행히 블랙 올리브 케이크는 남아 있다. 포장해 주던 점원이 묻는다. “가시는 데 얼마나 걸리세요?” “제주도에 가야 해서요, 비행기를 탈 건데 괜찮나요?” “그건 좀 어려우실 것 같은데. 녹을 수 있어요” “아, 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해볼게요.” 서너 시간 기준으로 드라이아이스를 챙겨 주었다. 케이크가 최대한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조심 압구정로데오역까지 걸어가 지하철을 타고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비행기를 탔다. 케이크는 다행히 앞좌석 아래에 쏙 들어간다. 휴, 짐칸에 올리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야. 기장님, 안전 비행 부탁드립니다.

케이크와 함께 비행기를 타본 적이 있나요? 얼마나 설레는지 모릅니다. 내가, 아니 누데이크 케이크가 제주를 방문했다는 소식에 동네 친구들이 캄캄한 밤에 우리 집에 모였다. “이게 요즘 서울 사람들이 줄 서서 먹는다는 케이크야.” 그날의 멤버와 시간, 나누던 대화까지 모두 생생하다. 비행기를 타고 온 케이크가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기억될 리가 없는 평범한 어느 저녁, 잠깐 제주 중산간이 들썩였다.

떡볶이와 함께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살 때 친구들이 자주 여행을 왔다. 한국의 친구들을 바르셀로나 골목에서 만나는 일이 그렇게 반갑고 좋았다. 지영이와 얼싸안은 집 앞 골목과, 미현이가 택시에서 내리던 도로 풍경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의 다정한 친구들은 여행 가방을 싸기 전 언제나 물어봤다. “한국에서 필요한 거 없어? 뭐 사다 줄까?” 그럴 때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원하는 걸 구체적으로 말했다. 새로운 라면이나 과자가 막 유행하던 때였고, 라면은 가볍고 비싸지 않아서 부탁하기에 좋았다. 신제품은 한인 마트에서도 구하기가 어려우니까. 그때 유행하던 진짬뽕, 허니버터칩 등을 사다 달라고 했다. 하지만 유행하는 제품은 한국에서도 구하기 쉽지 않을 거란 건 미처 몰랐지. 친구들은 마트를 뒤져가며 신상 라면과 과자를 잔뜩 구해 여행 가방에 넣어 왔다.

나는 스페인에서 가이드를 하고 있었는데, 친구들이 여행 오는 시기는 대개 가장 바쁜 때였다. 한국인들이 주로 여행하는 시기는 거의 비슷하니까. 낮에는 가이드 일을 하고 저녁에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다. 아침저녁으로 레드불을 마시고 코피를 쏟으면서도 좋아하는 친구들과 바르셀로나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좋았다. 친구들이 넉넉하게 사 온 과자나 라면은 스페인에 사는 다른 한국인 친구들과도 나눠 먹었다.

스페인 생활을 마무리하고 귀국해 지내다가 다시 바르셀로나에 갈 일이 있었다. 친구에게 물었다. “먹고 싶은 거 있어? 뭐 사다 줄까?” 친구는 먹태깡을 부탁했다. 맛이 너무 궁금하다고. 히히 웃음이 난다. 내가 그 마음 잘 알지. 여러분, 외국에 사는 친구들에게 놀러 갈 때면 신상 과자와 라면을 사 가세요. 마트 세 곳을 돌아 먹태깡을 구하고, 누룽지, 고사리 등 말린 나물과 백명란을 샀다. 그리고 황태채도 담았다. 이건 친구들의 사랑스러운 개들에게 줄 선물이다.

그리고 하나 더, 떡볶이 밀키트를 챙겼다. 내가 스페인에 살 때만 해도 밀키트라는 게 별로 없었는데, 이제 한국에는 엄청 다양한 밀키트가 있지! 보냉백 안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또보겠지 떡볶이’와 ‘사과 떡볶이’를 챙겨 넣었다. 친구들이 맛있게 먹을 생각을 하니 설렌다. 너무 소중하니까 핸드 캐리로 들고 비행기에 탈 생각이다. 그런데… 인천공항에서 짐 검사를 하는데 보냉백이 걸렸다. 액체란다. 기내 반입 제한 용량인 100밀리리터가 넘어서 핸드 캐리가 안 된단다. 아니 그런데, 떡볶이가 액체라고요?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깨달았다. 떡볶이는 액체가 맞지. 육수와 소스가 있었지. “짐 검사에서 걸렸어요. 이거 떡볶이인데….” 했더니 다시 수속을 도와주는 직원이 “아, 떡볶이….” 하더니 추가 요금 없이 그냥 짐을 부쳐 주셨다. 역시 떡볶이는 언제나 옳아. 떡볶이도 떡볶이지만, 그분은 알아차린 거겠지. 스페인까지 떡볶이를 들고 가는 이유를. 떡볶이에 담긴 마음을. 여러 사람의 마음이 더해져 떡볶이는 스페인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친구들아 맛있게 먹었지?

보카디요와 함께

보카디요 가게 ‘BAR SANZ’는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좋아하는 식당 중 하나다. 보카디요는 스페인의 샌드위치로, 주로 바게트 속에 하몽, 돼지고기, 치즈, 토마토 등을 끼워 넣어 만든다. 한국식 샌드위치처럼 야채가 많이 들어가지 않고, 재료 한두 개만 넣는데도 정말 맛있다. 가게는 장 보러 자주 가던 산타 카테리나 시장 바로 옆 골목에 있다. 카로(바퀴가 달린 장바구니)를 끌고, 달달달달 돌길을 걸어 시장에서 장을 본 뒤, 보카디요 가게에 가서 장 본 것들이 가득한 무거운 카로를 발밑에 세우고 외친다. “로모 이 께소 뻬께뇨 이 꼬르따도 뽀르빠볼.” 돼지 등심과 치즈가 들어간 보카디요 작은 사이즈와 코르타도를 달란 얘기다.

주문은 후안이 받고, 보카디요는 후안의 아버지가 만든다. 키가 크고 머리가 하얀 후안의 아버지는 창가에 있는 커다란 그릴 판 앞에 등을 구부리고 서서 아무 말 없이 바게트를 데우고, 속 재료를 그릴에 굽는다. 느리지만 능숙한 솜씨로 바게트 속을 채워서 건네면 후안은 그사이 커피를 내리거나 생맥주를 따른다. 혼자 가든 둘이 가든 언제나 좋은 곳이다. 나는 보카디요를 펼쳐서 케첩과 머스터드소스를 한 번 더 뿌려 먹곤 했다. 더운 여름엔 주로 콜라를 함께 시켰다. 다른 손님들은 대부분 카냐(생맥주)를 주문했다.

바르셀로나살이를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수년이 지난 후 다시 혼자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갔을 때, ‘BAR SANZ’에 여러 번 들렀다. 후안은 마치 지난주에 만난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 마지막으로 가서 ‘로모 이 께소 보까디오’ 큰 사이즈를 주문했다. “이거 한국 가져갈 거야. 네 보까디오를 그리워하는 이가 있거든.” 후안은 웃는다. 후안도 잘 아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특별히 두툼하게 만들어 주지도 않는다. 언제 가도 변함없을, 적당한 온도의 호의. 그래서 내가 여길 좋아했지. 아 지금 이 순간 ‘BAR SANZ’의 공기가 몹시 그립다.

백팩 왼쪽엔 텀블러, 오른쪽엔 보카디요를 끼우고 비행기를 탔다. 그러고 보니, 등심은 사실은 국내 반입이 안 되는 품목이다. 떡볶이는 액체고, 보까디오는 육류였네.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언젠가 딸기시루를 들고 바르셀로나로 가는 상상을 해본다. 생크림 케이크는 액체가 아니겠지? 그런데 과일이 스페인 반입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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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정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