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가 남긴 잔상

《생일 축하합니다》

촛불처럼 꼿꼿이 선 숫자, 111은 이 책에 생일 사진을 수록한 사람들의 수다. 이 사적인 기록들은 단순히 오래된 기억이 아닌, 시대의 풍경을 알려주는 단서가 되었다. 케이크의 모양과 생일상 위에 오른 과자, 주인공의 옷차림이 담긴 사진에는 1970-90년대 생활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까. 똑같은 노래가 울리는 그날의 필름을 넘겨보며 저자 최지웅의 이야기를 듣는다.

Q. 왜 생일 사진을 모았나요?

“누구에게나 생일은 삶의 한편에 자리한 따뜻한 기억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생일날 찍은 사진 속에는 사랑받고 축하받는 그 순간의 환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그래서 비록 내 사진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생일 사진을 바라보면 그 기쁨과 온기가 전해져 함께 미소 짓게 되는, 작은 마법 같은 힘이 있어요.”

최지웅 | 1976년생
유치원에 다니던 7살 생일날 누나와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학교에 가지 않는 공휴일에 태어나서 생일은 항상 집에서 보냈는데 생일 당일 학교에서 선물 받고 축하받는 애들이 좀 부럽기도 했었어요. 참 철없죠?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없던 1980년대 초반, 각 지역의 동네 빵집에서 사용하던 기성품 빨간 스트라이프 케이크 상자가 지금 봐도 참 예쁘네요.

Q. 사진집에서 꼭 살펴볼 부분은요?

“출생 연도순으로 사진을 편집했어요. 그 이유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해가는 집 안의 풍경과 상차림, 의상, 케이크 디자인의 변화를 한눈에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사진들을 차례로 넘기다 보면 한 사람의 생일 사진 보는 걸 넘어, 마치 한국의 생활사 한 페이지를 들춰보는 듯한 감정이 들죠.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1970-80년대 한국의 단독주택에서 자주 보이던 장판 무늬, 벽지 패턴, 가구 색감 같은 것들이었어요. 그 시절에는 너무나 흔해서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던 것들이 지금은 거의 사라져버린 풍경이 되었지요. 그런데 개인의 오래된 사진 속에서는 그런 흔적들이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어 마치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묘한 향수와 따뜻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어요.”

김다희 | 1983년생

1989년 흥신유치원. 한여름 생일자들을 모아서 성대하게 해주었던 생일 파티. 양옆에 앉은 친구들을 두고 생일 단상까지 가운데로 걸어가야 해서 조금은 긴장했던 기억이 납니다. 예쁜 버터크림 케이크가 여러 개 있었고 선생님들과 친구들 모두 진심으로 축하해 줘서 무척 축하받는다고 느꼈던 기뻤던 날이에요.

Q. 방대한 사진들을 어떻게 모았나요?

“저는 특정한 이야기가 담긴 사진과 거기에 얽힌 사연을 모아 책으로 엮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어서, 이번 사진을 수집하는 일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어요. 보통 인스타그램을 통해 참여자를 모집하고, 관심 있는 분들은 사진을 보내달라고 안내하곤 해요. 처음엔 과연 누가 자신의 소중한 기록을 보내줄까 걱정했지만, ‘아주 사적인 기억들이 모여 하나의 역사가 된다’는 책의 취지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셨고, 그 덕분에 오래된 앨범을 꺼내 소중한 사진들을 기꺼이 보내주셨죠.”

김민지 | 1993년생

3살 생일에 옆집 친구들과 저희 오빠와 생일 파티를 하는데 초를 오빠가 다 불어버려서 우는 사진이에요. 초는 최소한 세 번은 불어야 하는 거 아시죠? 히히. 당황하는 우리 오빠의 얼굴~ 결국 다시 초 꽂고 한 컷 더 찍어 주셨대요. 그리고 제 기억에 생일 케이크는 항상 롤케이크! 요즘엔 잘 안 사 먹게 돼서 추억의 롤케이크가 되었어요.

Q. 이 사진을 가장 인상적이라고 꼽은 이유는요?

“가장 한국적인 생일 사진이라고 생각해요. 1980년대 유치원에서는 이런 생일상을 자주 차려줬어요. 한복을 입고 종이 왕관을 쓴 아이 앞에는 전통적인 떡과 함께 서양 과일인 파인애플까지 한 상에 올라 있어, 시대와 문화를 아우르는 독특한 풍경을 보여주죠. 특히 인상적인 건, 사진 속 주인공의 에피소드였어요. 1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한 케이크를 손꼽아 기다렸는데, 막상 생일상에는 케이크 대신 오예스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고 하네요. 너무 속상해서 화가 잔뜩 났던 그날의 감정이 사진 속 표정에서도 느껴질 정도였지요. 그런 순수하고 솔직한 어린이의 모습이 담겨 있어서 이 사진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이런 장면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기억하는 따뜻한 시절의 한 조각이 아닐까요?”

황미옥 | 1981년생
1987년 4월, 유치원에서 찍어준 저의 일곱 번째 생일 파티 사진입니다. 케이크를 아무 때나 먹는 게 쉽지 않던 시절이어서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눈앞에 탑처럼 쌓인 오예스를 보고 너무나 실망했던 기억이 나요. 이제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는 얼굴입니다. 그리운 기린반 친구들아 그날 분위기 망쳐서 미안했어.

그 시절, 달콤한 조각의 얼굴

Book—《생일 축하합니다》 최지웅 | 프로파간다 시네마 그래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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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차의진

자료 제공 최지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