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대구단편영화제

대구를 생각하면 영화가 떠오른다. 대구 출신 영화감독이 많은 것도, 지역의 이름을 딴 영화제가 있는 것도, 서울 이외 지역에서 최초의 독립영화관이 생긴 것도 이유가 될 테지만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다. 바로 어떤 열악한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멈추지 않는 이들이 있다는 것, 세상 바깥으로 시선을 꺼내보려는 영화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여름의 끝자락, 계절을 매듭짓듯 열리는 대구단편영화제를 바탕으로 그들이 머무는 곳, 영화가 흐르는 대구를 돌아본다.

해당 기사의 제목은 2017년 일본에서 개봉한 동명의 영화에서 따왔다.

어떤 시대의 영화에 대해

뤼미에르 형제의 손에서 탄생해 그랑카페에서 최초로 상영되었다는 영화가 땅을 건너, 물을 건너 그리고 낯선 것을 두려워하며 배척하던 마음을 넘어 동아시아 대륙에 닿기까지 불과 1-2년의 시간이 걸렸다. 일본과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도 그 요상한 ‘활동사진’이 당도했다는데, 시기는 정확히 짚을 수 없어도 감정은 헤아려볼 수 있을 듯하다. 순간을 장면으로 기록한 사진도 놀라운데 사진들을 이어 붙이면 틀에 갇힌 세상이 움직이기까지 한다니, 그토록 경이로운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서양 문물이 빠른 속도로 자리 잡던 부산의 ‘행좌’와 ‘송정좌’를 시작으로 1910년에는 대구에 최초의 옥내 극장인 ‘대구좌’가 들어섰다. 한국전쟁 즈음에는 대구가 영화 촬영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는데, 생사가 치열하게 오가는 전선을 피해 대구에 닿은 피란민 사이에 영화인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에 처하든 영화를 향한 애정을 놓치지 않은 그들은 끊임없이 제작에 임해 전쟁 기록 영화들을 남겼고, 한국 최초의 여성 감독 박남옥이 첫 연출작 <미망인>을 선보이기도 했다고. 냉혹한 시대에 오히려 마음의 불을 피워낸 이 모든 이야기는 우리나라 영화사에 빠질 수 없는 흔적이 되었다.

냉전의 시대가 막을 내릴 즈음부터 대구에서의 영화 제작 편수는 급격히 줄어든다. 1960년에는 한국 영화를 보호하고 육성한다는 취지 아래 ‘영화법’이 제정되면서 대구는 물론 지역 곳곳에 퍼져 있던 영화사들이 더욱 어려움을 겪게 됐다. 충무로 중심으로 영화 산업이 집중화되어, 그 보이지 않는 경계 너머에서는 영화를 찍거나 제작하기에도 수월하지 못한 환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세상의 짧은 이야기를 모아

그러나 차가운 바람에도 싹은 움튼다. ‘독립 영화’라는 세계가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1990년대 말부터 부산국제영화제를 필두로 지역 영화제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독립 영화는 상업 자본에 의지하지 않고 제작되는 작품을 뜻하며, 제작자나 감독이 주제 의식을 표출할 때 수익이 아니라 대안적인 내용과 형식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작품이다. 대구는 그 안에서도 ‘단편’에 집중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장편을 위한 35밀리미터 필름은 그림의 떡인지라, 8 또는 6밀리미터로 짧은 영화를 만드는 소수의 영화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데 모여 협회를 만들고 영화제를 꾸렸다. 목표는 ‘우리가 보고 싶은 영화를 모은 영화제’를 만드는 것. 그렇게 움튼 ‘대구단편영화제’는 2000년부터 현재까지 무려 25년간, 40분 남짓한 세상 속 짧은 이야기들을 한데 모은다.
대구단편영화제 프로그램 팀장인 최은규 씨의 말을 빌리자면 “영화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그 목소리는 대체로 선정한 영화에서 드러나기에 경쟁작을 비롯하여 초청작까지 고심에 고심을 더해 모은다. 장편 영화의 조각을 연상시키는 큰 규모의 매끈한 단편도 좋지만,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단편을 발굴하는 것이 우선이다. 올해는 경쟁 부문(전국 부문과 대구, 경북 지역 작품인 애플시네마 부문을 아울러 말한다. 시상은 부문 별로 대상과 우수상을 선정한다.)에 지원한 작품이 무려 1,203편으로 역대 최다 편수를 기록했다. 은규 씨는 경쟁 부문에 선정되지 못한 영화를 포함하여 출품작을 가능한 한 많이 찾아보는데, 고유의 가치와 개성을 갖고 있는 영화인들에게 여전히 열정을 배운다고. 영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오래 기억되는 축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엿보였다.

밝았던 상영관이 암흑으로 빠져들었다가 다시금 불이 켜지면 관객들은 일어나 출구로 향한다. 걸어가는 뒤로는 엔딩 크레디트 속 영화를 만든 이들의 이름이 줄줄이 올라가고 있다. 우리는 한 편의 영화만 보면 끝이라 생각하지만 실은 창작인들의 이름까지 안고 가는 셈이다. 열악하거나 고약한 상황에서도 대구의 영화인들은 야무지게 카메라를 쥐고, 선연히 빛나는 생각으로 장면을 만들어 이어 붙인다. 그 분명한 애정을 목격했기에 대구 속으로, 대구단편영화제 속으로 기꺼이 걸음을 옮겼다.

올해의 축제를 회고하며

8월 21일부터 26일까지, 작열하는 태양의 마지막 춤사위를 볼 때쯤 시작한 대구단편영화제는 한여름 밤의 꿈을 안겨준 채로 막을 내렸다. 그간 대구에 머물면서 어디서도 만나지 못한 영화를 감상하는 것뿐 아니라 영화를 만들고 사랑하는 이들의 열정까지 느낄 수 있었기에, 이 도시에 온 이방인은 남몰래 시샘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는 여운만 남은 빈 상영관을 돌아보며 대구단편영화제를 운영한 은규 씨와 함께 올해의 영화제 속 특별한 점을 소개한다.

65초의 시선,
공식 트레일러

영화제의 중심 메시지를 짧은 영상으로 표현하는 트레일러. 올해는 대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영화감독 중 한 사람인 장병기 감독이 제작했다. 흑백 세계 속 광활한 육상 트랙 위에 홀로 선 사람은 온 정신을 하나로 모으며 출발 자세를 취한다. 장면에 색이 부여된 후에도 같은 자세를 취하던 사람은 스타트건 소리를 듣자마자 뛰어나간다. 결승점에 도달한 모습은 볼 수 없이 영상은 막을 내린다. 결승점 대신 출발선에서의 장면만 반복되는 이유는 결과가 아닌 과정, 성공이 아닌 노력에 대해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결승점에 어떤 결과가 기다릴지 몰라도 영화인들은 열정을 안고 앞으로 뛰어나갈 테니까.

영화제의 목소리,
초청 섹션과 아시아단편교류전

영화제의 중심 메시지를 짧은 영상으로 표현하는 트레일러. 올해는 대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영화감독 중 한 사람인 장병기 감독이 제작했다. 흑백 세계 속 광활한 육상 트랙 위에 홀로 선 사람은 온 정신을 하나로 모으며 출발 자세를 취한다. 장면에 색이 부여된 후에도 같은 자세를 취하던 사람은 스타트건 소리를 듣자마자 뛰어나간다. 결승점에 도달한 모습은 볼 수 없이 영상은 막을 내린다. 결승점 대신 출발선에서의 장면만 반복되는 이유는 결과가 아닌 과정, 성공이 아닌 노력에 대해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결승점에 어떤 결과가 기다릴지 몰라도 영화인들은 열정을 안고 앞으로 뛰어나갈 테니까.

경계 없는 만남,
‘DIFF n Poster’

분명히 짚어두지만 대구단편영화제는 영화인들만의 축제가 아니다. 영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함께 즐길 수 있는 부대 행사를 마련해 일반 시민들까지 품으로 안는다. 그중 ‘DIFF n Poster’는 모든 경쟁작에 대해 전국의 그래픽 디자이너가 매칭되어 영화 포스터를 제작하고 전시하는 프로젝트다. 작업을 주고받는 차원을 넘어, 디자인과 독립 영화가 서로의 예술 영역을 이해하고 나아가 대중과의 네트워크를 이룰 수 있도록 도모한다고. 이외에도 상설 영화 상영 부스 ‘The Diff Archive’, 장르 영화 특별전 ‘미드나잇 시네마’ 등을 통해 대구 시민들에게 영화로운 나날을 선물했다.

신뢰와 연대,
영화인 사이의 끈끈함

영화도 혼자 만들 수 있는 게 아닌데 영화제는 어떠하랴.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을 비롯하여 씨네토크, 단편제작워크숍, 부대 행사가 열리는 장소 곳곳에는 진행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이 상주한다. 경쟁작의 감독이나 배우인 이들도 자원하여 스태프로서 참여하기도 했다. 모두들 진심을 갖고 진중한 자세로 임하기에 영화제 내내 보는 이까지 열정과 설렘 사이를 간질간질 오갔다. 대구에서는 영화인이 하나의 역할만 맡지 않는다. 한 영화의 감독이 다른 작품에서는 스크립터나 조감독, 촬영감독, 운전 스태프, 심지어 배우가 되기도 한다고. 대구를 기반으로 두각을 보이는 창작자들이 대거 등장하지만, 영화 창작을 위한 제반이나 상영 여건이 탁월하지 않기에 생긴 일종의 ‘품앗이’다. 서로에게 작품 완성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 되어주는 모습에서 영화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마음이 모였을지 부러 헤아려본다.

2024 대구단편영화제 공식 트레일러 중 일부

지난 여름에 새긴 장면

대구단편영화제가 열리는 6일 동안 경쟁작 서른아홉 편의 이야기가 쉴 새 없이 상영됐다. 여기다 초청 부문 작품들까지 더하면 그 숫자는 훨씬 많다. 어떤 이의 마음을 맴돌던 이야기는 스크린을 통해 세상 밖으로, 이내 다른 이의 마음으로까지 흘러 들어갔다.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과 메가박스 프리미엄 만경관에서 상영된 단편들 중 (수상 여부와 관련 없이) 나에게 흘러온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이미 지나버린 여름을 마음에 품은 장면들로 되새기며.

이한오
<헤어 나올 수 없는No Hair>(2024)

우산 하나를 쓰고 꼭 붙어 걷는 두 남녀. 숙희는 연거푸 영모를 향해 애정을 고백하지만 그는 영 반응이 시원찮다. 사실 영모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다. 풍성해 보이는 그의 머리칼이 가발이었던 것. 콤플렉스를 털어놓지 못해 숨기기에 급급한 영모와 그 사정을 알 리 없는 숙희는 답답하기만 하다. 과연 우리는 서로의 단점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김현빈
<치킨맨Chicken Man>(2024)

닭의 무게를 값으로 따지는 계량소에서 일하는 태희와 정민. 둘은 같은 공간에 머물지만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으로 분리되어 있다. 더 나은 삶을 준비하는 태희와 지금의 삶만 주어진 정민은 길가에 버려진 닭 한 마리로 인해 서로의 다름을 서서히 인식한다. 온몸의 솜털이 삐죽 솟을 듯, 불안감과 긴장감이 서서히 차오른다.

김은명, 전상진, 황영
<야식금지클럽Anti Late-Night Snack Club>(2024)

세 여자는 마음의 허기를 배고픔으로 착각해 토할 때까지 먹었던 불면의 밤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였다. 당장이라도 입에 무언가를 넣고 싶은 밤 아홉 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 서로의 곁을 지키며 야식을 참지만, 우리는 알고 있지 않나. 무언가를 ‘금지’한 순간부터 더욱 갈망하게 된다는 걸. 씩씩하고 사랑스러운 세 사람의 밤을 엿본다.

이야기가 모이는 곳,

오오극장

대구에서 가장 특별한 극장을 꼽으라면 모두들 입을 모아 ‘오오극장’이라 말한다. 2015년 2월 11일 개관한 오오극장은 대구의 독립영화전용관으로 대구단편영화제의 주무대다. 서울을 제외한 지역에서 세워진 최초의 독립영화관이자 대구의 영화인을 한자리에 모으고 영상 문화가 나아가도록 돕는 공간이기에, 단순한 감상관을 넘어 한 도시의 아고라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상영 외에도 ‘관객프로그래머 초이스’와 ‘관객프로그래머 영화제’도 열린다고. 이름에 들어간 ‘오오’는 숫자 55를 말하는데, 단 하나뿐인 상영관의 좌석 수가 55개인 것에서 착안했다. (곁에서 함께 운영되는 카페는 삼삼오오 모여 다채로운 예술과 문화를 만끽하길 바라며 ‘삼삼’이라 불린다.) 예매한 영화의 좌석을 찾을 때는 보통처럼 알파벳으로 구분한 열 대신 숫자 하나면 충분하다. 좌석에는 오오극장을 만들기 위해 힘을 모은 대구의 시민단체와 독립영화협회, 시민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무심코 앉던 자리에서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흔적이 보이니, 오오극장이 받은 사랑과 더불어 이 도시에게 되돌려주는 온기에 달뜬다. 도시의 곁에 오래 머물길 바라는 장소다.

A.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 537
O. 매일 12:0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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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명주

자료제공 DIFF(대구단편영화제), 최은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