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음악가에게

누구든 마음속에 음악가의 기록 한 장을 품고 산다. 검정 물감에 적신 붓을 우아하게 털어낸 것처럼, 오선지 위에 톡톡 떨어진 음표들. 이름은 분명히 말하지 못할지라도 앞선 멜로디를 들으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선율들. 무심코 들은 오래전 기록이 보통의 일상에 살아 읽히는 것에 관해 말하려 한다. 우리의 이야기는 친애하는 음악가의 손끝에서 시작된다.

20220207

솔직하게 밝히자면 클래식에는 문외한이다. 평소 리듬감과 개성이 뚜렷한 음악을 주로 듣는다. 말하자면 한 번에 꽂히는 음악. 그런 내가 클래식의 세계에 한 발 내딛게 된 건 사카모토 류이치Sakamoto Ryuichi의 음악 덕분이다. 그의 두터운 팬층을 생각하면, 나의 ‘입덕’은 매우 늦은 편이다. 영화 〈괴물〉의 엔딩 크레디트에서 ‘Aqua’를 들었던 순간, 알 수 없이 요동치던 이상한 마음이 기억에 박제되었다. 이후 한참 동안 하루 시작과 마무리에 그의 음악을 들었고, 도서관에서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를 빌려 읽으며 사카모토 류이치는 나의 일상에 제대로 스며들었다. 책 마지막 장에는 그의 마지막 오리지널 앨범인 [12]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12] 는 2021년 수술 이후 일기를 쓰듯 스케치를 기록한 음원들이다. 곡은 총 열두 곡, 이름은 모두 레코딩한 날짜를 의미한다. 지난겨울엔 이 앨범을 배경 음악처럼 들으며 지냈다. 차츰 목소리가 없는 음악에 익숙해졌다. 자극적이지 않다기보다 새로운 종류의 자극이었다. 열두 곡 중 가장 애정을 갖고 있는 건 ‘20220207’. 앨범을 쭉 듣다가 문득 곡 이름을 확인해 보고 싶어질 때면 늘 이 노래였다. 이어폰을 끼고 들으면 선명하게 느껴지는 숨소리(실제로는 숨소리가 아닌 페달 소리라고 한다.)와 멈췄다 다시 흐르기를 반복하는 음악의 묘한 긴장감에 빠져든다. 

앨범 커버에는 평소 좋아하는 작가인 이우환의 드로잉도 실려 있기에, 이 앨범만큼은 꼭 CD나 바이닐로 소장하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엔 꽤 웃돈을 주고 사야 하거나 배송비에만 삼만 원을 내야 하는 해외 직구뿐이었다. 그러다 얼마 전 우연히 들른 광흥창의 레코드 숍에서 문득 이 앨범이 떠올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R’로 시작하는 코너로 찾아가 하나씩 하나씩 뒤적이는데 보이는 너무나 익숙한 그림. 빙고! 바로 내가 찾던 [12] 바이닐이었다. 그때의 행복을 잊을 수 없어 아직 비닐도 뜯지 못한 채로 방 한쪽 잘 보이는 곳에 모셔두고 있다. 

요즘은 러닝용 플레이리스트로 [12] 앨범을 다시 듣는 중. 러닝할 때 왜 클래식을 듣는지 의아할지도 모른다. 나도 처음엔 BPM이 빠른 곡들을 찾아 들었는데, 곡이 계속 바뀔 때마다 자꾸만 스텝이 꼬이려 했고 페이스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내 발소리, 숨소리에도 집중할 수 있어 의외로 러닝 페이스를 유지하는 데 제격이다. 뛰는 도중 ‘20220207’이 시작되면 누군가 함께 숨 쉬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하고 숨을 제대로 가다듬어 보게 된다. 

오늘도 그의 음악은 나의 일상에 함께하고 있다. 내가 음악을 듣고 느끼는 방식은 달라지더라도, 언제나 고요한 시간 속에서 나를 위로해 주겠지.

기록한 이

사카모토 류이치 (1952-2023)

청년의 그는 3인조 일렉트로닉팝 밴드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ellow Magic Orchestra’의 멤버로 재능이 풍부한 아이돌이자 배우였다. 영화 〈마지막 황제〉,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는 연기와 음악 작업을 병행하며 ‘Merry Christmas Mr. Lawrence’, ‘Rain’ 등 유려한 선율이 돋보이는 명곡을 만들었고, 특히 〈마지막 황제〉로 동양인 최초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 몇 차례의 암 투병과 회복을 오간 그는 유한한 삶에서 현재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되었다고. 여윈 얼굴로 피아노 앞에 앉아 백발을 부드럽게 쓸어 넘기다 한 곡을 마치고 나서야 숨을 고르던, 사카모토 류이치의 모든 것은 음악이 되어 남았다. 

듣는 이

문주원 《AROUND》 마케터. 

자신을 놀고 먹는 데 늘 진심인 사람이라 소개하곤 한다. 때때로 사진을 찍고 글을 쓰기도 하며, 클래식이 주는 힘을 천천히 알아가고 있다. 

여섯 개의 손을 위한 로망스

“주연 씨, 피아니스트 조성진 알아요?” 스물둘, 인턴으로 시작한 첫 직장에서는 종종 클래식 FM을 틀어두곤 했다. 아마 편집장님의 취향이었을 거다. 내게 질문을 던지던 편집장님은 이어 그의 연주를 꼭 들어보라는 말을 덧붙였다. 내가 좋아할 거라면서. 줄곧 밴드 음악만 듣던 나는 퇴근길 버스에 앉아 낯선 그 이름을 검색했다. 그때는 몰랐다. 편집장님이 건넨 그 한마디로 내 클래식 음악 인생이 시작될 줄은. 

스물여섯, 여전히 클래식 음악은 잘 몰랐지만 좋아했다. 그 마음을 핑계 삼아 클래식 공연 기획사에 출근도 했으니까. 입사 4개월 차가 되던 무렵, 처음으로 꽤 큰 공연을 맡았다. 세 피아니스트의 합동 공연이었는데, 한 작곡가의 작품을 각자 연주하는 형식이었다. 가을과 겨울 어디쯤의 공연 날, 무대 리허설을 위해 한 사람씩 피아노 앞에 앉았다. 얼마 지나 한 연주자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각자 준비한 개인 앙코르 외에 세 피아니스트가 함께 연주해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는 피아노 의자 하나를 더 요청했고, 한 대의 피아노 앞에 세 연주자가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잠깐 정적이 흘렀다. 가장 왼쪽에 앉은 연주자가 첫 음을 시작했다. 이어 남은 두 연주자의 손이 천천히 건반 위로 올라섰다. 모든 게 서툴고 불안하여 종종대며 무대 뒤편을 쏘다니던 나도 발걸음을 멈췄다. 이상하게도 관객이 되어 객석에 홀로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공연을 감상하듯 숨을 죽였다. 합을 맞춰보던 그들은 제법 만족스러웠는지 앙코르 곡명을 일러줬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의 ‘여섯 개의 손을 위한 로망스’. 러시아의 장대함만을 그리는 작곡가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서정적인 면도 있었구나 싶었다. 실은 감탄할 겨를도 없이 곧장 무대 뒤를 다시 뛰어다녔지만. 

이제는 서른하나가 되었고, 아직도 클래식 음악은 자신 없다. 대신 좋아하는 마음은 조금 더 확실해졌다. 가을과 겨울 사이를 지나고 있다.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아서일까, 발걸음이 조급하다. 발을 동동 구르며 라흐마니노프의 ‘여섯 개의 손을 위한 로망스’를 꺼내 듣는다. 그러면 종종대던 발걸음이 차츰 느려지고, 홀로 객석에 앉은 사람처럼 마음이 고요해진다. 아무리 시끄럽고 어수선한 퇴근길 지하철 안일지라도 어김없이.

기록한 이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1873-1943)

러시아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지휘자인 그는 형형한 눈빛과 굳게 다문 입가에서 진중함이 흘러나온다. 키도 무척 컸기에 한때는 ‘6피트의 찌푸린 얼굴’이라는 별명도 있었다고.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은 러시아가 가진 특유의 ‘멜랑꼴리Melancholy’가 묻어 있다고 평가받는다. 전반적으로 우울하지만 풍부한 하모니에 깔끔한 기교가 더해지면서 당대 음악가들에게도 깊은 영감을 주었다. 최근 그의 음악이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임윤찬의 손으로 다시금 읽히면서 과거의 선율이 현재로, 우리들의 마음 한편으로 기록되고 있다.

듣는 이

유주연

언제나 어디서나 자기소개를 가장 어려워하는 사람.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에서 글을 쓰다 클래식 공연을 기획하고, 영화제에서 뛰어다니며 지냈다. 매번 자기소개에 붙이는 문장은 달라져도 꾸준히 좋아하는 것은 밴드와 클래식 음악.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

나는 지적 허영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지성은 허영으로 채울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을 깨닫고 지레 무딘 얼굴로 살아가고 있지만, 학생 때는 우아하고 점잖은 취향을 가진 어른을 꿈꿨다. 문장 해석도 버거운 고전 문학을 구매하고(읽었다는 게 아니다), 흑백 영화를 틀어놓고(봤다는 게 아니다), 맛도 모르는 커피를 주문했다(남겼다). 그러면 촌스러운 체크무늬 교복이 빳빳한 트렌치코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영 닿을 수 없던 영역이 클래식이다. 태교를 나훈아로 해서일까, 음악 시간에 나오던 비발디는 자장가의 유사어일 뿐이었다. 봄 지나 여름 악장은 잠이 깨서 더 싫었다. 

이야기 각설하고 클래식 애호가로 발전한 일대기를 풀어나가고 싶지만, 나는 케이팝에만 눈을 반짝이는 그런 어른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어찌 좋은 감정을 복기하는 클래식 하나 정도는 갖게 됐다. 직장을 잃고 친구들과 함께 떠난 포르투에서였다. 마감 기한을 두지 않은 여행은 공원에서 일몰을 보는 것 정도가 중요한 일과다. 하루는 매일 가던 언덕 공원을 두고 이름 모를 공원에 갔다.

도시의 건물은 보이지 않았고, 잔디 사이로 레몬색 들꽃이 난개했다. 캐치볼을 하는 어린 남매와 책을 보는 중년 여자가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먼 거리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호수 앞에 하늘색 천을 깔았다. 그때 왜 갑자기 클래식이 듣고 싶었을까. 매점에서 산 치아바타 때문인지, 책을 넘기는 중년에게서 떠올린 어릴 적 허영이었는지…. 휴대폰에서 무작위로 나온 노래는 고운 피아노 음률 사이로 이유 모를 불안이 감도는 곡이었다. 불완전하지만 고상한 평화로움이 주변을 감쌌다. 미래 계획이라고는 하나 없이 평화의 순간을 누리는 우리 같기도 했다. 우리는 이름 모를 공원을 평화 공원으로, 이름 모를 노래를 평화의 노래로 불렀다. 

그때 들은 음악이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다. 슈베르트의 우아한 왈츠와 감상적인 왈츠를 모델로 한 곡으로, 여덟 개의 소곡으로 구성된다. 그가 평화의 노래를 작곡한 나이가 얼추 지금의 나다. 이미 떡잎을 한참 지나던 라벨에게 이 곡이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평화를 원할 때 이 음악을 듣는다. 눈 감는 날까지 동반할 고상한 불안을 왈츠처럼 품에 안고, 그저 이 순간의 평화를 누리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쌓인 지금도 나는 평화의 노래를 듣고 있다.

기록한 이

모리스 라벨 (1875-1937)

현대 프랑스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전통적인 고전주의 형식에 기꺼이 따르면서도 말끔한 선율과 생동감 넘치는 리듬으로 음악을 지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스페인계 바스크인인 어머니가 불러주는 스페인 민요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라벨에게는 대표 곡으로 꼽히는 ‘볼레로’를 비롯하여 이국적인 정취가 담긴 음악 기록이 많다. 노년을 맞은 라벨은 자동차 사고 후유증으로 더 이상 음을 읽고 기억하거나 악보를 그리는 일이 어려워졌고, 회복을 위한 수술 중 결국 깨어나지 못했다. 머릿속에 담긴 수많은 악상을 오선지 위에 그려내지 못해 비통했을 그의 심정에 못내 마음이 아리다. 

듣는 이

김기수 

공간 플랫폼 ‘헤이팝’ 에디터. 먹고 노는 데 관심이 많다. 사실 음악은 클래식보다 케이팝이 좋고, 맛집은 오래된 곳이 좋다. 노포에 관한 에세이 《한참이 지나도 유효한 사랑》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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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명주

글 김기수, 문주원, 유주연 일러스트 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