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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디트가 필요 없는 감독들
취향입니다, 감독님
크레디트가 필요 없는 감독들
상영관을 착각해서 중간에 잘못 들어가도 금세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있는 영화가 있다. 뚜렷한 인장으로 고정 팬을 거느린 이 시대의 비주얼 천재들.
웨스 앤더슨의
아트버스터
동화 같은 챕터 구성, 빈지티한 색감, 인물을 정중앙에 둔 좌우대칭 프레임, 사립학교 출신 상류층이 입을 법한 우아한 의상, 냉소와 허무와 유머를 버무린 대사들 그리고 빌 머레이까지, 웨스 앤더슨의 트레이드마크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거의 강박증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그의 이야기는 매번 새롭고, 미장센은 점점 화려해진다. 특유의 고급스러운 취향 덕에 럭셔리 브랜드가 협업하고 싶은 감독 1순위이기도 하다. 이제 그의 영화는 전세계 아트 러버와 힙스터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문화 이벤트가 되었다. 다음 이벤트는 2018년에 열린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이후 4년만에 공개될 신작 <아일 오브 독스>는 유배된 개들이 사는 섬으로 자기 개를 찾으러 간 소년의 모험담이다. 애니메이션으로는 <판타스틱 Mr. 폭스>(2009) 이후 9년만이다.
아날로그의 미학,
미셸 공드리
그는 현실적인 이야기와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결합하거나 초현실적인 이야기와 현실적인 이미지를 결합하는 것을 즐긴다. 내용은 SF지만 미장센은 전혀 SF 같지 않던 <휴먼 네이쳐>(2001)와 <이터널 선샤인>(2004), 몽환적인 이미지로 가득한 로맨스 <수면의 과학>(2005)과 <무드 인디고>(2013) 등이 그랬다. 그의 비주얼 감각은 아름답다거나 멋지다는 말보다 ‘예쁘다’는 말이 어울린다. 심지어 <마음의 가시>(2009)나 <미셸 공드리와 노암 촘스키의 행복한 대화>(2013) 같은 다큐멘터리조차 눈을 뗄 수 없게 ‘예쁘다.’ 밝고 아기자기하고 컬러풀한 이미지와 손맛 나는 아날로그 특수효과 때문이다. 공드리의 2007년작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주인공 잭 블랙이 실수로 동네 비디오가게 테이프들을 망가뜨린 후 직접 원작을 패러디해 녹화한다는 내용인데, 특수효과를 위해 골몰하는 잭 블랙의 모습이 미셸 공드리의 자화상 같다.
자비에 돌란의
맥시멀리즘
20세기 최고의 힙스터가 짐 자무시였다면 21세기는 자비에 돌란의 시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장편영화를 일곱 편이나 연출하고 그중 다섯 편이 칸영화제에서 이런저런 상을 수상했지만 아직 서른 살이 안 됐다. 그의 영화를 보는 것은 폭풍 치는 감정의 바다에 서핑을 하러 뛰어드는 것과 비슷하다. 그의 주인공들은 대개 애정과 증오의 롤러코스터를 타는데, 감독은 슬로모션, 거창한 음악, 화면비의 변화 등 온갖 드라마틱한 방법을 동원해 그 감정에 기어이 관객을 이입시킨다. 그의 사전에 절제란 없다. 예컨대 <로렌스 애니웨이>(2012)에서는 비장한 클래식 음악과 함께 실내에 폭우가 쏟아지거나, 하늘에서 옷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식이었다. 1980년대 팝컬처에서 영향 받은 의상과 음악도 빼놓을 수 없는 트레이드마크다. 뮤직비디오도 아니고 뭔 영화가 이렇게 과해? 싶다가도 금방 빠져들어 훌쩍거리게 된다면, 그건 자비에 돌란이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비극을 그리는 법
이냐리투는 자신의 초기 영화들을 음악에 빗대어 표현한 적이 있다. “<아모레스 페로스>(2000)는 록, <21그램>(2003)은 재즈, <바벨>(2006)은 오페라, <비우티풀>(2010)은 장송곡이다.” 모두 삶의 비극, 고통, 극한의 슬픔을 장엄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최근 들어 할리우드 메인 스트림에 점점 가까워지면서도, 그는 자신만의 대담하고 드라마틱한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버드맨>(2014)의 핸드헬드 카메라와 환각 신,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의 생생한 겨울 장면들, 독특한 음향과 음악은 이 시대 최고의 테크니션이자 비주얼리스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진가를 새삼 확인시켜주었다.
MTV 세대를 위한 누아르,
니콜라스 윈딩 레픈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스타일리시한 단편영화와 패션 광고 작업으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그러다 덴마크 뒷골목의 마약거래업자를 다룬 <푸셔> 시리즈(2001~2005)와 <드라이브>(2011)로 전세계 젊은 남성들의 우상이 되었다. 번쩍거리는 전갈 무늬 블루종을 걸치고 비트에 맞춰 도시를 질주하는 <드라이브>의 라이언 고슬링은 윈딩 레픈의 스타일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깊이 각인되었다. 그의 골수팬들과 일부 비평가들은 <발할라 라이징>(2009), <온리 갓 포기브스>(2013), <네온 데몬>(2016) 같은 장광설을 보고도 ‘저 정도 스타일이면 스토리는 좀 부실해도 되잖아?’라고 편을 들 정도다.
글 이숙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