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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사람과 여덟 개의 방
취향의 교집합
여덟 사람과 여덟 개의 방
10년 전, 어제와 오늘. 나의 모든 취향의 교집합을 모으면 그곳은 방이 될 거다. 여덟 명의 취향이 켜켜이 쌓인 여덟 개의 방 또는 집.
노란 불빛 아래 글 쓰는 방
김봉곤
취향이 드러난 공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소파지만, 그곳은 소파만 있으면 되는 곳이니 제 취향이 드러나는 곳은 책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아마 두 번째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겠지요. 책상엔 대중없이 이것저것 쌓아두는 편인데요. 노란 불빛 아래에서 글 쓰는 걸 좋아해 뱅커스 램프를 두었습니다. 뿌리지 않더라도 글을 쓰다 기분 전환을 위해 계절에 맞는 향수 몇 개를 구비해놓았고요. 최근엔 선물 받은 손풍기도 토템처럼 올려두었습니다. (일단 책상엔 기분 좋아지는 게 많아야 해요!)
그곳에 없어서는 안 될 의외의 물건
향입니다. 집에 향기를 낼 수 있는 물건이 많아요. 향초, 향수, 디퓨저 그리고 피우는 향까지. 분리형 원룸이기에 반을 잘라 베란다 쪽은 침실로, 욕실과 싱크대가 있는 쪽을 서재로 쓰고 있어요. 그래서 때때로 안 좋은 냄새가 나기도 하는데, 일단 향을 피우면 잡내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 실제로 그런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기분이 들어요.
집에서 보내는 가장 좋아하는 시간
잠들기 직전의 시간을 좋아합니다. 잔업이나 소설 마감이 없는 날 기준,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씻고 소파에 기댄 시간 이후 잠들기까지의 모든 시간이 잠들기 직전이에요. 사랑하는 나의 가족 쿠마와 놀아주기도 하고 그러다 지치면 멍하니 누워 유튜브를 보기도 합니다. 아주 가끔 책을 읽기도 하지만 TV는 거의 보지 않아요. 회사 일도 소설 마감도 없이 집에 있는 모든 순간을 좋아합니다.
이상적인 방
사실 의식주에서 제가 가장 신경을 쓰지 않는 부분이 ‘주’예요. 고등학생 이후 거의 기숙사에서만 살아왔고, 이전에 살던 집은 겨울에는 입김이 나는 곳이었지만 크게 괘념치는 않았어요. (쿠마는 지난겨울 이사한 집이 너무 따뜻하게 느껴진 나머지 이른 털갈이를 하기도 했답니다!) 이상적인 방을 굳이 말해보자면, 누웠을 때 아무 고민도 없는 곳이면 충분하지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소음이 없어야겠군요. 욕심을 한 가지만 내자면, 괜찮은 조명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아요.
하루가 있는 방
박로지
취향이 드러난 공간
작년 이맘때 이 집으로 이사를 온 뒤 임신했어요. 입덧이 심하고 유산기가 있어서 거의 일 년 동안 침실 생활을 하게 되었죠. 그러다 올해 아기가 태어났고 함께 방을 쓰고 있어요. 그러니까 제 취향이 드러난 곳은 아기와 함께 쓰는 침실입니다.
그곳에 없어서는 안 될 의외의 물건
침대 옆 조명과 책을 올려두는 좁은 탁자에는 서랍이 달려 있어요. 누웠을 때 손이 잘 닿아 서랍 안에는 이것저것 잡동사니를 넣어두죠. 그중 ‘효자손’은 우리 부부의 ‘필수템’이에요. 침대에 누워 효자손을 찾는 날이 은근히 많아요.
집에서 보내는 가장 좋아하는 시간
침실에서 보내는 새벽 시간을 좋아해요. 새벽에 아기가 일어나면 혼자 놀기도 하고 엄마를 부르기도 하는데요. 그때 침대 옆에 앉아 눈을 맞추며 아기에게 노래를 불러준답니다.
이상적인 방
방은 쉼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로 나에게 위로를 주는 곳, 사람들과 소란에서 구분된, 오롯이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죠.
파스타와 노을이 있는 방
최아영
취향이 드러난 공간
부엌이요. 최근에 이탈리아 남부 여행을 다녀온 후 이탈리아병에 걸려 부엌에 각종 파스타, 올리브 오일, 스프릿츠를 만들어 마실 수 있는 아페롤 그리고 비스킷 등이 있어요. 맛있는 파스타를 해 먹는 데 빠져 있습니다.
그곳에 없어서는 안 될 의외의 물건
모카포트. 주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내려 마시는데, 맛도 맛이지만 냄새가 너무 좋아요. 일주일 중 가장 행복해하는 시간 중 하나입니다.
집에서 보내는 가장 좋아하는 시간
퇴근 후(혹은 동료, 친구들과 와인을 마시고 돌아와) 해 질 녘 노을이 잘 드는 넓은 창가에 앉아서 좋았던 시간을 떠올리거나 짧은 글(고지서라도)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빌딩 아래로 지나는 사람을 구경합니다. 마음이 안정되는 시간이에요.
이상적인 방
나에게 익숙하고 나만 이해할 수 있는 사소한 이야기로 채워진 공간. 작고 불편해 보이는 공간 속에서도 결국에는 익숙해져 가며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애정, 혹은 뿌듯함이 분명 있어요. 친구가 보낸 엽서 한 장도 벽에 붙이면 웬만한 작가 작품 부럽지 않고요. 그런 소소한 행복이 있는 집이면 좋겠어요.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방
김아름
취향이 드러난 공간
우리 집이 곧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어요. 예쁜 것들을 보고 사고 만지고 가질 때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고 믿었죠. 그래서 나를 대변해준다고 생각하는 물건들을 사 모으고 좁은 집에 그것들을 전시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러자 나는 없고 오히려 물건들만 있더라고요. 그래서 발에 치이는 것들을 조금씩 정리하고 버렸어요. 그럼에도 끝내 버리지 못한 것은 여러 곳에서 모은 패브릭과 빈티지 소품들이에요. 그것들이 집 곳곳을 채우고 있어요. 그러니 집 전체가 취향을 드러낸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어디서 무엇을 하든 조화를 잘 이루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정직해지기가 쉽진 않지만, 어떻게 하면 기분 좋게 잘 살 수 있을까, 많이 생각해요.
그곳에 없어서는 안 될 의외의 물건
저는 항상 모든 아이들이 제가 생각하는 영역에서 그 자리 그대로 있길 원해요. 예를 들면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고도 손 닿을 거리에 있는 줄자나 가위, 칼, 테이프들이요(게으름의 증거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이런 규칙들을 벗어난 ‘의외’의 물건이라면 화장실 안에 있는 시계 정도일까요. 버릇처럼 시간 약속을 잘 못 지켜서 정시보다 10분 정도 빨리 가고 있는 시계가 화장실에 하나, 부엌에 하나 있어요.
집에서 보내는 가장 좋아하는 시간
여기에서 보내는 시간은 대부분 제게 행복한 시간이에요.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해가 뜰 때와 질 때를 가장 좋아해요. 저와 동거인인 남자친구는 각종 세리머니를 좋아하는데요. 우리는 따르는 신도 종교도 없지만 ‘의식적인Ritual 행동’이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해가 뜨면 커피를 내려 옥상에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해가 지면 향을 태우고 일본의 젠Zen 불교에서 영감을 받아 티 세리머니를 하듯 차를 마셔요. 그때마다 인생이 별거 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왜냐하면 그런 시간이 더없이 행복하거든요.
이상적인 방
가장 ‘나’다워지는 공간이 가장 이상적인 방이 아닐까 해요. 사회와 조직 속의 가면을 벗고, 부모님과 함께 산다면 ‘딸 혹은 아들로서의 나’도 내려놓고, 오롯이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 가장 자연스럽고 억지가 없는 곳. 또 나의 완전한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가 되기도 하는 곳이요.
아침을 보내는 방
사보미
취향이 드러난 공간
큰 테이블이 중앙에 놓인 거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작은 복도를 지나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모습이에요.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에서 보내요. 큰 테이블에서는 매일 하는 거의 모든 일을 하죠. 제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테이블을 둘러싸고 있어요. 책, 핸드드립 도구, 토스터. 반년 전 해방촌으로 이사를 오며 모든 가전과 가구를 새로 샀어요. 그러면서 취향이 더욱 뚜렷하게 보이게 된 것 같아요.
그곳에 없어서는 안 될 의외의 물건 아침을 먹으며 책을 읽다 보니 독서대가 없으면 안 돼요. 3년째 함께하는 독서대가 있어요. 디자인이 예쁘지 않아서 다른 제품을 찾아봤지만, 마음에 드는 게 없더라고요. 크고 두꺼운 책도 잘 받치고 책장을 잡아주는 홀더도 있어야 하고 접어서 보관도 되어야 하는데, 이 모든 기능을 갖추면서 아름다운 독서대를 계속 찾고 있어요.
집에서 보내는 가장 좋아하는 시간
아침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 아침에 일어나 집을 나서기 전까지의 시간이에요. ‘아침 있는 삶’을 지향해요. 7시 반에 식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죠. 식빵 두 조각, 에스프레소 투 샷. 아침을 먹으며 주로 글을 읽어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아침에 하면 하루가 개운해요. 일할 때도 아쉽거나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덜하고요. 제가 좋아하고 절 힘이 나게 하는 것들이 있는 때가, 집에서 보내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으면 해요.
이상적인 방
일종의 사원 같은 곳. 내가 시간을 경건하게 바라보고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날은 흐트러진 정신을 가다듬고, 어떤 날은 즐거운 아이디어가 샘처럼 넘쳐나고요.
나에게 집중하는 방
양예슬
취향이 드러난 공간
방 곳곳에서 제 취향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하얀 커튼이 늘어진 창문, 바스락거리는 하얀 이불이 덮인 침대, 차곡차곡 쌓인 그릇들과 제멋대로 놓인 향수들이 있는 책상까지요.
그곳에 없어서는 안 될 의외의 물건
주말처럼 방에 머무는 시간이 긴 날엔 꽃을 사다가 책상 위 화병에 꽂아두어요. 식물이 주는 위로는 아주 깊어요. 꽃이 시들 대로 시들어 버려야 할 땐 조금 속상하기도 하지만요.
집에서 보내는 가장 좋아하는 시간
깊은 밤, 방의 공기가 조금 차분해진 때도 좋고, 한낮에 햇빛이 가득 들어와 생기가 더해진 때도 좋아요. 그때는 주로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화를 틀어놓고 딴짓을 해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지금의 생각을 기록하고, 인터넷 쇼핑을 하고…. 이런저런 딴짓을 하고 나면 시간이 금세 지나가 있는데, 그냥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게 좋아요.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방
이상적이란 말은 저에겐 조금 어려워요. 이상적이다, 이상적이라는 게 뭘까요? 조금 다가가기 힘든 느낌이에요. 그 표현이 낯설어 인터넷에 쳐봤어요. 이상적이라는 말의 뜻이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또는 그런 것.”이라고 해요. 음,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이 말도 어려워요. 그냥, 저는 잠만 자는 방은 싫어요. 방이라는 건 또 하나의 자아라고 생각해요. 방에서 온전한 나를 찾고, 나에게 집중하고, 조금 더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방을 모두가 가진다면 참 좋겠어요.
사람과 물건이 모이는 방
장현석
취향이 드러난 공간
아무래도 거실 같아요. 영화를 보고 작업을 하고 지인들과 모여 술도 마시는 다목적 공간인데요. 방에서는 잠을 자거나 옷을 보관하는 등 한 가지 활동에만 집중하고 싶어서 집 안의 거의 모든 물건을 거실에 두었어요. 멋들어진 쇼룸처럼 깔끔하진 않아요. 하지만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번잡스러워 보인다고 깊숙이 넣어두거나 버릴 수 없잖아요. 생필품은 가장 마음에 드는 거로 꼭 하나씩 사는 이유죠. 그래서인지 거실엔 제 취향이 가득 담겼어요.
그곳에 없어서는 안 될 의외의 물건
지오와 국이라는 아비시니안 고양이 형제와 함께 살고 있어요. 그래서 ‘돌돌이’는 필수죠. 여러 돌돌이를 써봤는데 안정감 있고 세워 두기에도 좋은 건 무인양품 제품 같아요. 돌돌이 옆 저의 작은 술 창고도 빠질 수 없겠네요.
집에서 보내는 가장 좋아하는 시간
이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오후 4시예요. 그때는 주로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죠. 집이 서향이라 그 시간에 해가 끝까지 들어와요. 평소 모노톤의 집이 차가워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그때만큼은 따뜻한 노란빛이 집 안을 가득 채워요. 그때 제가 집에 없다는 게 늘 아쉬워요.
이상적인 방
영화 〈다가오는 것들〉 속 나탈리의 집. 수많은 영화에 좋은 집이 등장하지만 저는 이상하게 나탈리의 집에 시선이 가요. 세트처럼 보이지 않고 살면서 잘 가꾼 집 같아요. 한쪽 벽엔 부부가 읽던 책이 가득하고 커다란 테이블은 주말마다 지인들이 둘러싸죠. 그리고 그녀는 주기적으로 꽃을 바꿔가면서 분위기를 내요. 인테리어를 살펴보는 시선으로 이 영화를 봐도 좋을 거예요.
시간이 부유하는 방
김소현
취향이 드러난 공간
거실 한편의 홈 오피스 공간. 이 공간을 이루는 모든 것은 아주 천천히 하나씩 덧대고 포개듯 자리하고 있어요. 그중 가장 상징적인 물건은 아무래도 몇 년 전 남편이 홈 오피스 개업(?) 기념으로 선물한 빈티지 쉘빙입니다. 쉘빙의 유닛들은 모두 따로 모아 천천히 완성한 결과물이에요. 캐비닛과 데스크 유닛을 구하러 암스테르담 교외의 창고까지 다섯 시간 운전해 찾아갔던 기억이 생생해요. 설치 또한 만만치 않았죠. 이 공간에 있으면 둘이 숨 고르며 벽을 뚫고, 맞들고, 달면서 함께 공들인 시간이 종종 떠올라요.
그곳에 없어서는 안 될 의외의 물건
조명만큼 공간의 온도를 좌우하는 것이 또 있을까요? 이곳만 해도 총 네 개의 조명이 자리하고 있어요. 벽에는 1960년대 독일 빈티지 월 스콘스와 거울 조명을, 작업등으로는 한남동 세컨호텔에서 구입한 클램프 스탠드를, 라운지체어 옆 독서등으로는 카이저 이델을 놓아두었어요.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른 빛을 드리우죠. 다양한 조도만으로도 공간을 훨씬 풍요롭게 누릴 수 있어요.
집에서 보내는 가장 좋아하는 시간
요즘 같은 계절엔 침실 창으로 이어진 루프탑 테라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요. 구조적으로 재미있는 공간이기도 한데, 증축한 낮은 옆 건물의 옥상이 이 집의 침실 창과 연결되면서 뜻밖의 루프탑 테라스가 생겼죠. 이 비밀스러운 공간을 함께 즐기는 멤버가 셋으로 늘었어요. 올봄부터 2세가 합류했거든요. 볕 좋은 오후, 아기와 함께 하늘을 바라보고 누워 있는 시간을 가장 좋아해요.
이상적인 방
볕 좋은 창가와 반려식물, 오래 곁을 내어준 물건들이 정연하게 놓인 방.
에디터 김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