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사진

DRUNKEN PHOTOGRAPHY IN THE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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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UNKEN PHOTOGRAPHY IN THE NIGHT

술에 취해 있다가 찍어둔 사진들이 있다. 뭘 찍었는지 왜 찍었는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를 것 같고, 그냥 모르는 채로 두게 되는 사진들.

“엄마, 술 취하면 시력 좋아지는 거 알아?” 엄마는 무슨 소리냐며 웃었다. 이미 취한 엄마는 나의 질문이 의미 없다고 생각했는지, 빠른 걸음으로 저만치 앞서가더니 벚꽃 아래에 섰다. “이상한 소리 말고 사진이나 찍어봐!” 한 손은 흔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빨대가 꽂힌 맥주를 꼭 움켜쥐고 있었다. 엄마는 50여 년, 나는 20여 년, 우리는 술을 즐기지 않았다. 술에 떡이 되어 동생이 집에 올 때, 아빠가 화장실에서 웩웩거릴 때, 엄마와 나는 혀를 차며 양말을 벗겨주거나 등을 두들겨주는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엄마와 둘이 맥주를 마시며 벚꽃길을 걷고 있는 순간은 영 낯설 수밖에 없었다. 30년을 알고 지냈지만, 처음 겪어보는 일. 엄마는 조금 취했고, 나는 그런 엄마를 따라가다가 엄마에게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질문을 대뜸 던져본 것이다.

술을 마시고 적당히 취기가 올라오면 시력이 좋아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마다 옆에 있는 친구들에게 묻는다. “술 취하면 시력 좋아지는 거 알아?” 대부분 모른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고개를 젓는다. 취하면 시야가 더 흐릿해지지 어떻게 좋아지느냐고 되물으면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정말 시력이 좋아지는 것을 어떡하지. 아주 잠깐이지만 모든 게 선명하게 보이는 순간이 있다. 인터넷에 검색해봐도 그런 증상을 갖는 사람은 없었는데, 언젠가 딱 하나 비슷한 이야기를 찾을 수 있었다. 약간의 술이 몸에 들어오면 혈액순환이 잘 된다고 한다. 그때 순간적으로 눈 주변의 신경들이 느슨해진다나? 긴장하고 있던 눈 주변의 피가 빠르게 돌면서 잠시 피로가 풀리는 거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었다. 흔치 않지만 어쨌든 나만 겪는 일은 아닌 것 같고, 근거도 있는 일이란 사실에 안심이 된 건 왜일까. 여전히 술을 마시다가 눈앞이 깨끗해지는 순간이 있고, 그때마다 함께 마시는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곤 한다. 혹시나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나, 확인하고 싶어서.

눈 마주치는 것을 쑥스러워하는 나는 평소엔 땅을 보고 말하거나 상대방의 입술이나 볼 같은 곳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다.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보는 것도 어렵기에 상대의 눈을 보는 일은 쉽지 않다. 술을 마시다 보면 자연스레 상대방의 눈동자에 시선을 갖다 두는 순간이 생긴다. 일종의 용기랄까. 그런 게 생기고, 몰랐던 상대의 눈동자를 알아간다. 오래 알고 지내던 사람도 달리 보인다. 술이 들어가기 전엔 볼 수 없던 것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시력이 좋아지고, 눈을 마주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하고 싶었던 말이나 묻고 싶은 것을 묻기도 하고, 힘껏 달리거나, 무거운 몸을 흔들어 춤을 추기도 한다. 술을 마시면.

엄마와 처음 단둘이 마신 술은 우리를 처음 겪는 세계에 몰아넣었다. 함께 본 벚꽃은 점점 더 선명해졌고, 엄마의 눈을 볼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났다. 평소 하지 않던 질문도 잔뜩 하고, 생전 안 찍던 셀카도 찍고, 사진을 찍지 않을 때는 손을 꼭 붙잡았다. 맑은 정신으로는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고 말하면 술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싫어하려나? 아무렴 어떨까. 나도 술을 싫어하던 사람이다. 술 없이도 재미있게 놀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잘 노는 사람이라고, 입에 달고 살았는데 요즘은 잘 모르겠다. 어떻게든 잘 놀면 그만이지 싶다. 그 순간엔 많은 게 엉망이 되고, 그걸 담은 사진은 매번 엉망진창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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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박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