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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VILLAGE camp
오월의 어느 날, 우리는 또 한 번 작은 축제를 열기 위해 충북 보은의 어라운드 빌리지로 향했다. ‘분명 또 엄청 바쁘겠지.’, ‘이번에도 우리는 즐기지 못할 게 뻔해.’ 그런 생각이 없지는 않았지만 계절마다 사람들을 모으고 무언가 새로운 일을 계획한다는 건 분명 설레는 일이었다. 더구나 영화 속에서나 봤던 댄스파티라니. 축제를 준비하면서도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될 풍경이 어떤 모습일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축제. 정신없이 흐른 3일이 지나고 우리는 아주 빠르고 까맣게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날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대부분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사진 속 우리는 어느 때보다 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바람은 잔잔하고 아이는 춤춘다
‘댄스파티’를 한다고 했을 때 자유분방한 미국 고등학생들의 졸업파티나, 풍성한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이 커다란 저택에 모여 정중히 예를 갖춘 무도회를 떠올렸다. 어찌 됐든 한국에 살면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풍경은 아니라는 게 축제를 준비하는 우리 모두의 생각이었다. 빌리지의 교문을 열기 하루 전까지도 이 파티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쉽게 판단하지 못했고, 다만 영화 <반지의 제왕>과 <타이타닉>의 춤추는 모습 그 중간 어디쯤일 거라고 어렴풋이 상상할 뿐이었다.
축제를 준비하며 가장 많이 본 뉴스 페이지는 일기예보였다. 손님을 맞으며 먹거리를 준비하고, 전시관을 꾸미고, 분위기를 띄울 음악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었지만 축제의 성패는 날씨에 달려있었다. 다행히 아이들이 운동장을 마음껏 뛰어다니는 2박 3일 동안 하늘은 높고 바람은 잔잔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가 이어졌다. 그 온화한 공기 속에서 아이는 망토를 두르고 인디언 왕관을 썼다. 트램펄린에서 내려올 줄 몰랐고, 조그만 수영장에 들어간 아이는 물 밖으로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이는 아빠와 캐치볼을 했다. 엄마는 아이가 잡아온 작은 곤충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아이들은 처음 본 또래와도 금세 친구가 됐다. 그들은 삼삼오오 재잘거리고 함성을 지르고 빙글빙글 돌고 함께 뛰어다니다 넘어져도 울지 않았다. 아이의 손은 언제나 흙투성이였지만 어떤 부모도 그런 아이의 모습을 나무라지 않았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자주 웃었다. 웃음의 시작은 언제나 아이였다. 아이는 어른보다 더 신나게 춤췄다. 처음 본 춤을 열심히 따라 하고 거리낌 없이 옆 사람의 손을 잡았다. 그러니까 축제라는 것이 그저 평소보다 많은 음식을 만들어 먹고, 술을 마시고, 밤새 시끌벅적하게 노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아이들을 통해 배웠다. 웃음의 영역에서 이미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었다. 웃음이 아이의 몫이라면 그 뒤에는 부모가 서 있었다. 아장아장 막 걸음마를 뗀 아이에게 비눗방울을 불어주는 아빠와 끼니마다 간식을 챙겨주는 개구쟁이들의 엄마. 그들은 스스로 그림자를 자청한 사람들이었다.
축제기간 내내 손님을 맞으며 무대 뒤에서 함께 고생한 사람들도 있었다. 늘 멋진 영상을 찍어주는 촬영 팀, 기간 내내 야외무대에서 음악을 틀어주었던 음향 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쓰레기를 치워주고 주차를 도와주고 끼니마다 맛있는 밥을 챙겨주었던 동네 주민분들, 멋진 음악으로 밤을 밝혀준 뮤지션 허니와 샘,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빛내준 선생님들, 함께 축제를 계획하고 만들어나간 어라운드 식구들. 어두운 곳에 서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그림자가 있어 무대가 더 빛난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인화된 사진을 보면서 처음 축제를 계획할 무렵으로 시간을 되돌려보았다. 우리가 생각했던 풍경이 이런 모습이었나? 잘은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사진 속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하얀 얼굴로 웃고 있다는 거였다. 아이와 어른, 동네 주민과 손님, 스텝과 고양이 모두. 누구 하나 소외되는 사람 없는 ‘모두의 축제’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모두가 떠난 운동장에 다시 밤이 찾아왔다. 먼동이 트고 땅거미가 지고, 그렇게 몇 번의 하루를 보내며 운동장은 자란다. 계절마다 나무는 부풀고 여물고 단단해지기를 반복할 것이다. 이곳에서 마음껏 뛰어놀던 사람들이 그날의 푸른 하늘을 오래 기억해준다면 좋겠다.
“텐트 안에 있으면 더운데 방방 많이 타서 좋아요.”
INTERVIEW 김복남(할아버지), 최정숙(할머니), 김차현(엄마), 박선미(아이)
어제 세 분이 먼저 오신 걸 봤어요.
아이 네, 아빠가 출장 가셔서 셋이 먼저 왔어요. 오늘 할아버지가 오셨어요.
할머니와 엄마, 아이까지 세 분이 같이 다니시는 모습은 흔치 않은데 보기 좋더라고요.
엄마 저는 딸이랑 자주 캠핑을 다녀요. 그러다 보니 혼자 텐트 치는 것도 힘들지 않더라고요(웃음). 저희는 수원에서 왔고 부모님은 서울에서 오셨어요. 생각보다 멀지 않아서 좋았어요.
아이를 위한 프로그램이 많았는데, 어떠셨어요?
엄마 그동안 캠핑은 주로 머물다 돌아간 적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체험도 많이 하고 좋았어요. 부모님은 힘들지 않으셨나 모르겠어요.
할머니 아니에요. 저도 재미있었어요(웃음).
엄마 아까 어머니가 카페에서 잡지를 보셨는데 오랜만에 마음이 설렌다고 하시더라고요.
선미는 체험 많이 했어요?
아이 화관 만들기랑 토끼 인형 만들기를 했어요. 조금 이따가 샌드위치 만들기도 할 거예요.
뭐가 제일 좋았어요?
아이 토끼 인형 만들기요. 이건 옛날에 만들었던 거고, 지금 또 만들어서 두 개가 됐어요.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어요?
아이 오늘 같이 놀았던 애는 세 명인데 제가 이름 아는 사람은 딱 두 명이에요. 김지윤이랑 그리고 장… 뭐지? 아까 수박 같이 먹던 애 있었는데. 이름이 생각이 안 나요.
나이도 똑같아요?
아이 아뇨 걔는 일곱 살이에요. 여자애는 여덟 살. 노을공원에서 캠핑했을 때는 친구들이랑 같이 갔었어요.
노을공원에서 했을 때랑 언제가 더 좋아요?
아이 지금이 더 좋아요. 재미있어요.
할머니 내일 갈 건데 더 있다가 가고 싶다고(웃음).
집이 더 편하지 않아요?
아이 텐트에서 자면 덥고, 밖에 나오면 더 더워요.
할아버지 그건 좋은 게 아니지(웃음).
아이 그래도 친구들 많이 사귀고, 방방(트램펄린)도 많이 타서 좋아요. 더 있고 싶어요.
“자연에 있으면 순한 것만 볼 수 있어서 좋아요.”
INTERVIEW 조규영(아빠), 박근희(엄마), 조주원(형), 조주은(동생)
이번에 ‘인디언 왕관 만들기’ 프로그램 선생님으로 참여하셨죠?
아이들이랑 캠핑을 자주 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막상 캠핑을 나오면 아이들이 가지고 놀만 한 게 마땅히 없더라고요. 자연과 함께 노는 건 좋은데 나무를 막 뽑거나 살아있는 물고기를 잡아서 놀다가 금세 싫증 내기도 하더라고요. 그러면 차라리 아이들이 가지고 놀 수 있는 걸 직접 만들어보자 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남편이 ‘아이와 캠핑’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하는데 거기에서 무엇을 판매한다는 마음보다는 사람들이 직접 보고 참고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인디언 왕관도 그렇게 시작하게 된 거죠.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모습이 보기 좋은 것 같아요.
사실 요즘 아이들이 캠핑에 와서도 핸드폰에 매달려 있잖아요. 자연에 나와서 땅강아지 같은 것이 지나가면 같이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런 것에 관심이 없는 게 너무 아쉬운 거예요. 그래서 함께 놀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했는데 효과가 꽤 좋은 것 같아요.
하긴 도시에서는 잘 보기 힘든 모습이기는 하죠.
저희가 맞벌이를 하니까 함께 놀아줄 시간이 거의 없거든요. 주말에 시간을 내도 도시에서는 언제나 줄을 서야 하거든요.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게 보기에 안쓰럽더라고요. 그런데 자연에 나오면 달라요. 일단 주변에 보이는 것들이 다 순한 것들이잖아요. 자연에 있으면 아이들 관찰력도 좋아지는 것 같아서 좋아요. 조그만 것에 관심을 보이고 자세히 보게 되거든요.
아이들이 자연을 통해서 무엇을 얻는 것 같나요?
일단 계절감을 느낄 수 있어요. 봄에는 뭐가 있고 여름에는 뭐가 나오고, 장난감이 없어도 흙만 만지면서도 잘 놀거든요. 주말에 다른 엄마들 만나면 뭘 시켜야 한다더라, 하고 조바심만 생기는데 자연에 나오면 일단 무얼 먹을지 대화하게 되고, 날씨는 어떤지 주변을 둘러보게 돼요. 순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가장 마음에 들어요.
다음 페스티벌에서도 뵐 수 있다면 좋겠어요.
너무 복잡하지 않고 단란한 느낌의 페스티벌이었으면 좋겠어요. 예전에 양평 서종에서 했던 페스티벌 분위기가 좋았거든요. 아 맞다. 나 그 얘기해야겠다. 이번에 드레스 코드가 ‘보헤미안 스타일’이었잖아요. 조금만 어설프게 꾸며도 없어 보이는 게 보헤미안 스타일이어서 고민 많이 했어요. 그것 때문에 가위도 눌렸다니까요(웃음).
에디터 김건태
포토그래퍼 안선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