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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광전구
촛불을 기억하는 최초의 전구
일광전구
작은 방에 앉아 친한 친구들과 조용히 술을 마실 때, 연인과 밀담을 나눌 때, 잠들기 직전까지 책을 읽을 때, 나는 노란 백열전구를 켜 놓는다. 주변을 구석구석 밝히지는 못하지만 가까이 있는 것들을 조용히 주목할 수 있게 돕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 백열전구를 만드는 기업은 단 한 군데, ‘일광전구’뿐이다. 에너지 효율의 문제로 전세계가 LED 산업을 권장하면서 백열전구의 입지가 좁아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세상에서 버티지 못하고 없어지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다. 그래서 일광전구 본사가 있는 대구를 향하는 내 모습은 주인이 며칠째 물을 주지 않는 화초처럼 힘이 없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 내내, 나는 꺼지지 않는 빛을 지켜보게 된다.
일광전구는 1962년에 세워진 작은 전구 회사다. 그 시절엔 국내의 수요뿐 아니라 외국 수출량도 많아, 여러 개의 공장이 있었다. 물론 전구 생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지금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필라멘트Filament(전구 유리관 속에 있는 가는 금속선) 상태를 확인하느라 어두운 공장 안에서 불빛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를 지금의 대표 김홍도 씨(56)가 물려받게 된 건 1999년, IMF 직후의 일이다. 그는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운수회사를 운영하다가 스물 일곱에 아버지의 권유로 회사에 입사하게 된다. “그때 제가 이 일을 선택한 이유는 평생을 이어갈 사업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회사는 1962년에 시작했지만, 백열전구는 개발된 이후로 130여 년이 넘게 흔들리지 않는 산업이었죠. 많은 고민을 하진 않았어요.”
사실 내가 이곳을 찾게 된 이유도 바로 그 백열전구 하나 때문이었다. 얼마 전 작은 편집샵에서 일광전구의 클래식 모델인 ‘에디슨 전구 ST 64’를 발견했다. 길고 동그란 유리관 안에 여러 가닥의 필라멘트가 복잡하게 교차되어 있는 전구였는데, 나는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결국엔 사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 하얀 LED램프 대신 에디슨 전구를 껴 넣었는데, 그때 내가 가졌던 생각이 그가 방금 말한 생각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 따듯한 빛이 어쩌면 끝내 없어지지 않을지도 몰라.’ 희미한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과연 어떻게? 이미 백열전구는 지구에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으로 분류돼 가고 있었다. 오늘 멋진 전구를 발견하고 기뻐한 내가 대책 없이 감상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우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던진 첫 질문은 무례하게도, 어떤 대책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여유를 잃지 않고 웃으며 내게 설명해주었다.
“과거에는 백열전구가 주조명이었습니다. 범용조명이었죠. 가장 저렴했으니까요. 그러다 형광등이 개발되면서 둘은 공존했습니다. 사무실이나 공장에서는 직관형광등이 사용되고, 가정에서는 여전히 백열전구가 사용됐어요.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구식 형광등이 나왔고 대부분 그걸 썼습니다. LED가 등장한 건 2000년대 일이에요. 그래서 지금은 어떤가 하면, 전세계적으로 LED를 사용해요. LED가 지배적이고 부수적으로 전구식 형광등을 쓰고 있죠. 이런 모습이 적어도 10년간은 지속되리라 봅니다. 효율의 문제죠. 다시 말해 백열 전구의 입지가 없어진 거에요.
그런데 그와 동시에 이런 시각도 있습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얘기에요. 2000년대 들어오면서 디지털 문화가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렇죠? LED도 그 중 하나였고요. 그때만 해도 디지털은 고급스럽고 조금 비싸다는 인식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니죠. 누구나 쓸 수 있고 오히려 저렴한 것으로 인식돼요. 그리고 또, 디지털 문화 속에서 지내다 보니 사람들 마음 속에 점점 원시적이고 단순한 것들에 대한 향수가 생겼어요. 너무 급속하게 바뀌니까 거부감도 좀 있고요. 우리 나라만의 얘기는 아니에요. 전세계적으로 그렇죠. LP판도 재생산되고 디지털 제품에 아날로그적인 디자인을 입히는 경우도 있어요. 오늘 아침 신문을 봤더니 LED 화면에 오래 전 박스형 디자인을 입힌 TV가 나온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웃음)”
“원시적인 것에 디자인을 입히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 그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짧은 질문 하나 던져놓고 한 동안 듣기만 했는데, 그는 길게 말하는 와중에 전혀 헤매지 않았고, 일목요연하게 이어갔다. 오래 생각했던 것을 차분히 풀어 놓는 것처럼 보였다.
“백열전구는 촛불 직후의 빛이에요. 계량을 하기 시작한 최초의 빛이죠. 그래서 전구의 밝기를 얘기할 때 캔들Candle 단위를 써요. 촛불 하나의 밝기냐, 두 개의 밝기냐를 따지는 거죠. 촛불 이외에 백열전구밖에 없으니, 대량생산했습니다. 저렴한 가격에 모두가 쓸 수 있어야 했으니까요. 그렇게 과거에는 가장 저렴한 전구였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백열전구는 가장 고급스러운 전구가 될 겁니다. 저는 지금 상황을 그렇게 바라봐요. 뒤바뀝니다. 가장 원시적인 것이 가장 값진 물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양산이 아닌 수작업 방식을 선택합니다. 디자인을 넣는 거죠.”
일광전구는 과거에 수만 개의 전구를 생산해 수출하던 기업이었다. 기술과 생산력을 가지고 있어, 지금도 수요만 있다면 얼마든지 생산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곳에는 오래 전 그의 아버지와 함께 일하던 직원들이 남아있다. 그들은 과거 수작업 시절을 지나 온 장인이다.
“저는 그 분들이 회사의 큰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그 분들만 할 수 있는 작업이 있고, 그건 큰 가치가 있습니다. 그 분들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처럼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밀고 나가지 않았을 거예요.”
예전에 전구회사가 번창하던 시절에는 각 회사마다 필라멘트 모양이 달랐다고 한다. 인재들이 마음껏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시절, 하지만 호황기는 짧게 지나가고 경기가 어려워져 하나 둘 공장 문을 닫았다고. 참담한 그 시절을 지나 온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가 선택한 방향에 마음이 설렜지만, 여전히 걱정이 남았다. 과연 잘 운영될 수 있을까. 좋은 의도와 방향을 가지고도, 매출을 올리지 못해 쓰러지는 기업을 많이 봐왔다. 그에게 걱정되는 부분이 없는지 물었다.
“역시 마케팅입니다. 많이 팔아야 유지할 수 있죠. 생산공장과 사무실 직원들의 인권비만 해도 꽤 큰 돈입니다. 전구를 몇 개 팔아야 유지할 수 있을까요?(웃음) 하지만 막막하진 않습니다. 우리는 거래망이 넓어요. 오래된 기업이니까요. 그리고 그곳에 백열전구만 납품하지 않아요. LED전구도 함께 납품하죠. 물론 저희가 생산하는 제품은 아니에요. 국내와 외국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제품들을 선별해서 공급하고 그 사이에 자체 생산하는 백열전구를 끼워 넣습니다. 30% 정도를 차지하죠. 거래처들이 저희와 꾸준히 거래하는 이유는 바로 이 30%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남들에겐 없는 품목이니까요. 다시 말해 백열 전구가 회사의 근간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씩 그 영역을 넓혀가죠.
백열전구의 종류는 소형, 가정용, 장식용, 산업용, 네 가지로 나뉜다. 5년 전, 국가에서 가정용 백열전구를 퇴출시키는 법안이 통과됐을 때부터 그는 점진적으로 가정용 전구의 생산량을 줄이고 장식용 전구 생산량을 늘렸다. 당시 일광전구가 생산하는 전구의 90%가 가정용 전구였지만, 지금은 3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거래처에 내수제품을 다양하게 공급해 주면서 자체 생산품의 가짓수를 조금씩 늘려가는 것이 지금 그가 회사의 영향력을 키우는 방식이다. 스무 개 남짓한 자체생산품들이 골고루 팔리고 있지는 않지만, 그는 조바심 내지 않는다.
“어떤 제품은 어느 날 갑자기 잘 팔리기도 합니다. 10년 정도의 주기로 유행이 돌거든요. 그리고 저희는 앞서 말했듯, 장식용 전구에 더 다양한 디자인을 입힐 예정입니다. 장식용 전구 중에서도 가장 멋진 전구를 만드는 거죠. 소켓에 끼워 놓으면 그대로 디자인 제품이 되길 원합니다.”
아주 오래 이야기 나누지 않았지만, 나는 그의 생각과 행동 앞에서 어떤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겉에서 보는 일광전구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았는데, 폭풍의 한 가운데에는 바깥처럼 거센 바람이 불고 있지 않았다. 신문 기사를 읽었을 때, LED전구를 생산하지 않고 있는 일광전구가 시대의 흐름을 타지 않고, 작은 혁명을 꿈꾸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일광전구의 대표인 그는 큰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흐름이 있다는 걸 알고, 그 작은 물살을 타고 있었다.
“작은 기업이나 큰 기업이나 대표는 시대를 읽는 눈이 중요합니다. 기업이 바라봐야 하는 방향을 정할 수 있어야 해요. 저희 회사는 51년 된 회사입니다. 그 동안 저희들보다 덩치가 크고 기술이 좋은 회사들을 수없이 봐왔어요. 외국 회사들도 있었죠. 그리고 많은 회사가 쓰러지는 것도 봤어요. 오래된 기업의 장점이죠. 30년 전의 상황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거든요. 그건 무슨 의미냐 하면, 앞으로 일어날 일들도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완벽히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시작한 기업보다는 훨씬 낫겠죠. 시어머니가 잔소리가 많은 이유와 같아요. 그대로 가면 며느리가 실수할게 훤히 보이니까 한 마디 하게 되는 거죠.(웃음) 그런데 며느리야 실수하면 혼나고 다시 하면 되지만 기업은요? 지금 시대에는 기업이나 개인이나 마찬가지예요. 실수하면 아주 치명적입니다. 우리가 백열전구 생산을 멈추고 LED시장에 뛰어들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 다른 기업들처럼 무너졌을 거예요. LED가 첨단은 맞아요. 시장을 지배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죠. 하지만 저는 거대기업들과 경쟁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국내 대기업도 세계 LED시장에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요, 오스람Osram, 제네럴 일렉트릭GE, 필립스Philips 등의 외국 기업이 워낙 강하거든요. 우리는 방향을 잡은 겁니다. 우리가 제일 잘하는 걸 하면 살 수 있다
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국내시장과 더불어 외국시장 진출에도 무게를 두고 있었다. 대기업이 조명시장을 장악한 유럽에서는 작은 기업이 설 자리가 없기 때문에 백열전구를 생산하는 곳이 없고, 아무래도 앞선 디지털 문화 속에서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도 그만큼 깊어졌을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장비를 설계하고 있어요. 지금은 전적으로 수작업에 의지하고 있어서 가격이 비싸지만, 기계가 만들어지면 1/5 수준으로 가격을 낮출 수 있을 겁니다. 중국과 가격경쟁에서 앞서고, 선진국과의 기술경쟁도 걱정할 필요가 없죠. 그리고 우리는 과거에 월마트Wal-mart, 이케아Ikea 등의 기업과 거래경험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안전한 기업으로 기억돼 있는 거죠.”
뉴스에서는 분명 ‘가정용 백열전구 퇴출’이라고 발표했지만, 나를 포함한 소비자들 대부분은 ‘백열전구 퇴출’이라고 들었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인식, 사원들의 인식을 바꾸는 일이 가장 우선이었다.
“방향을 정했으니, 행동이 따라야 했습니다. 직원들을 포함한 회사 전체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여태까지 해왔던 걸 접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여태까지 해왔던 게 뭐냐 하면, 창조, 성실, 뭐 그런 거였거든요. 좀 딱딱하지요?(웃음)
경영자 수업, 가치관 경영 교육을 1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희가 하는 일에 가치를 부여했어요. 여태껏 전구를 만드는 이유는 오직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였는데, 이제는 그게 아니었죠. 빛을 만들어 세상을 밝히고, 따뜻하게 하는 게 목적이 됐어요. 그리고 이런 가치관은 직원들 모두가 낸 의견을 다듬은 것입니다. 제가 정한 게 아니에요. 제 가슴만 벅차서 될 일이 아닙니다. 직원들도 자신이 하는 일로 설레야죠. 저는 자율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정해진 규칙에 너무 얽매이다 보면 서로의 꿈이 달라질 수 있어요. 대표와 직원들의 꿈이요. 작은 화분을 가꾸는 일도 스스로 애정을 가지지 않으면 잘 될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애정을 준 화분에서는 꽃이 피죠. 제품생산도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기술은 기본이죠.”
그는 자율에 관한 이야기를 끝내자마자 곧바로 엄격함에 대해서 말했다. 자율을 얻기 위해 꼭 지켜야 하는 것은 두 가지였다.
“우선 기본기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기본기는 바로 체력인데,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얘깁니다. 활발한 모습은 물론, 좋은 아이디어도 나올 리 없어요. 그리고 이와 더불어 주변이 청결해야 합니다. 정리가 되어 있지 않고, 청결을 게을리 하면 공동생활은 불가능 해요. 생산업에서 효율만큼 중요한 게 없는데, 효율도 떨어지죠. 물건이 제자리에 없는데 일의 속도가 날 리 없어요. 청결이 있어야 자율도 있고, 품질관리가 가능하고, 제조기술 개발의 여건이 생깁니다. 그런 게 없다면 사상누각이에요. 지금 말한 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입니다.”
아버지에게 일을 물려 받았을 때부터 오랫동안 현장 일을 해왔다는 그가 꺼내놓은 이야기들은 사실 머릿속에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그 시절을 살지 않았으니까. 생산공장 환경이 지옥 같았다고 말하면, 나는 그저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나간 일이 모두 추억이라는 듯, 웃으며 말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어떤 고마움을 느꼈다. 또, 어떤 추억은 함께 웃을 만큼 재미있었다.
“현장 일은 대부분 생산 관련 일이었죠. 그때 외국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고, 우수한 기술도 모두 그쪽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나라로 견학을 갔습니다. 좋게 말해서 견학이지 기술을 엿보러 갔던 거예요.(웃음) 80년 대 초부터 6, 7년 동안 자주 오갔죠. 자재를 수입하는 입장이었는데, ‘물건을 보러 가겠다’, ‘상담할 일이 있다’ 뭐 그런 식으로 요청을 했습니다.(웃음) 지금 같으면 당연히 거절했겠지만, 그때 당시에는 기술격차가 너무 크니까 방심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가서 살펴봐도 잘 몰라요. 기술자가 아니니까요. 그래서 오래 일한 기술자를 보내면, 그건 또 그쪽에서 막았습니다. 명함에 엔지니어라고 써있으면 입구에서 막았죠. 그래서 제가 가고, 사진을 찍었어요. 그땐 카메라가 컸잖아요. 소리도 크고.(웃음) 제가 대학 다닐 때 사진 동아리에 있었거든요. 어두운 곳에서 플래시를 쓰지 않고 사진을 찍는 방법을 알고 있었죠. 청계천에 가서 감도 1000짜리 필름을 사서 갔죠. 옷 속에 카메라를 숨겼다가 다른 데를 보
면 얼른 찍었어요. 당연히 쫓겨난 적도 있습니다.(웃음)”
젊은 모습의 그가 상상됐다. 아마 나와 비슷한 나이였을 것이다. 외국 생산 공장에 들어가 긴장한 모습으로 안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모습. 왜 그렇게 땀을 흘리냐고 묻는 외국인에게 그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그에겐 어떤 추억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무척이나 재미있는 일화로 들렸다. 오히려 상상이 되지 않는 얘기는 국내 생산 공장의 얘기였다.
“시설이 아주 열악했어요. 유리를 녹이는 과정이 있는데, 지금에야 도시가스나 전기를 사용하지만, 그때만 해도 석유를 사용할 때였거든요. 60년대에는 그 열을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어요.
여름이면 모두 웃통을 벗고 일했죠. 한여름은 정말 지옥 같았습니다.(웃음) 80년대에 와서도 크게 나아지진 않았죠. 그리고 더위만큼 우리를 긴장하게 만들었던 건 바로 ‘납기일’이에요. 수출이 많던 시절이니, 반드시 지켜야 하는 날짜가 있었죠. 수천 개의 전구를 만들어 놓고 납기일을 못 지켜서 일이 틀어지면 큰일 아닙니까. 직원들과 밤을 많이 새웠어요. 유리로 된 제품이다 보니 네 번이나 감싸야 했습니다. 밤새 포장하다가 현장에서 쪽잠을 자곤 했죠. 지금 하라고 하면 아무도 안 할겁니다.(웃음)”
처음 인사를 나눌 때부터 깔끔한 사무실과 활짝 웃는 얼굴에는 당당함이 배어 있었다. 그건 상대를 주눅들게 하기보다, 오히려 무언가를 말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당당함은 그가 회사의 과거, 힘들었던 시절을 얘기할 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자부심으로 변했다.
“회사의 기억들은 모두 자원이에요. 그 시간을 지나와야만 얻을 수 있는 게 있죠. 납기일에 관한 계약내용도 이제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고, 외국기업과 거래하는 방식도 많이 배웠어요. 거래조건을 정할 때 저희에게 불리한 내용이 있으면 함께 일하지 않아요. 문제가 생길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거죠.”
일광전구의 직원과 대표로 살아온 30년이 자신을 풍부하게 해주었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조율하는 동안 다양한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기획, 디자인, 생산, 유통, 심지어 소비자 반응도 살폈을 테니까. ‘가장 기본적인 것,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것들에 매달리는 게 열쇠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 그가 지금까지 올 수 있게 한 배경에는, 물론 그의 성실함과 에너지가 큰 역할을 했겠지만, 백열전구라는 고전적인 소재의 도움도 있었을 것이다. 시대가 빠르게 변해도 어떤 것들은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또 얼마든지 새롭게 길을 열어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만약 그가 아버지에게서 LED 전구공장을 물려받았다면 어땠을까. 아마 ‘100년을 바라보는 기업’이라는 문구는 어색하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BRAND DIRECTOR’S
TALK
평소 캠핑을 즐기고, 제주도를 여행지 이상으로 생각하며 자연을 사랑하는 디자이너 권순만 씨는 현재 디자인회사 ‘클라우드앤코’에서 코카콜라, 무인양품, 디즈니, 마이크로소프트, 삼성, 11+ 등 글로벌컴퍼니의 디자인 컨설팅과 브랜딩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일광전구 브랜드 총괄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일광전구의 브랜드 총괄을 맞고 계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봤을 때 일광전구는 어떤 브랜드인가요? 그리고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요?
1962년 설립하여 50여 년 동안 전구만 생산한 국내 유일의 회사인 일광전구를 우리는 그 동안 브랜드로 인지하지 못했지만, 생활 곳곳에 꾸준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에너지 절약의 흐름 속에서 과거에 비해 백열전구 소비는 줄어들고 있고, 정부차원에서도 LED 제품 사용을 권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따뜻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백열전구를 따라올 제품이 없기 때문에 분위기 있는 공간에서 여전히 쉽게 만나실 수 있습니다. 전자메일이 있지만 손글씨로 쓴 편지가 특별하고, 전기가 있지만 촛불을 사용하는 아날로그 감성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일광전구는 계속해서 존재할 것입니다.
일광전구 브랜딩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솔직함과 소통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기존의 방향을 전면 수정하는 브랜딩이 아닌, 일광전구가 기존에 해왔던 그대로의 모습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스토리를 발굴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경험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꼭 필요한 제품을 만드는 것은 물론, 수동적인 비즈니스 방식에서 벗어나 조금 더 적극적으로 소비자와 소통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례가 있나요?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소비자와 활발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오브젝트에 일광전구의 제품을 입점함과 동시에 브랜드 스토리를 보여주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저희는 그렇게 작은 전시를 기획하였고, 일광전구의 담당자 분들도 흔쾌히 전시를 위해 노력해 주셨습니다. 한달 간 많은 분들이 다녀갔고, 응원해주셨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일광전구에 가장 필요한 것은?
많은 사람이 붐비는 ‘맛 집’의 서비스가 낮아지고 맛이 변한다면 소비자에게 외면 받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계속해서 기본에 충실하고 일관성 있는 브랜딩으로 초심을 잃지 않게 노력하려 합니다.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지금까지의 전구가 산업용 또는 생활 필수품 제품 정도였다면, 이제는 인테리어 제품으로서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 전구브랜드로 다시 태어나고자 합니다. 좀 더 쉽게 조명을 고르고 설치하며 즐길 수 있도록 시스템과 문화를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한 가지 소개해 드리자면, 지금 시대에서 전구는 문화재로써의 가치가 있습니다. 예전의 방식 그대로 유리를 불고 필라멘트를 거는 수작업 과정을 부활시키려 합니다. 충분한 검증과정을 거쳐 팝업스토어 형태로 공개될 예정입니다. 일광전구는 아날로그문화의 한 부분으로써 지속해 갈 예정이고 그런 감성이 필요한 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소비자를 찾아 뵐 예정입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캠퍼들을 위한 제품도 곧 출시할 예정입니다.
에디터·포토그래퍼 전진우
자료제공 일광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