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원에서 움튼 생의 순간들

임이랑 — 작가·뮤지션

겨우내 죽은 줄로만 알았던 식물이 작은 화분에서 새순을 틔워낸다. 기대하지 않았던 생명력에 다시금 환희하며 이랑은 되뇌었을 것이다. 정말이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그는 초록빛 가득한 이 안전하고 커다란 세계 안에서 글을 짓고 음악을 매만지며, 이곳에 뿌리내린 하루를 천천히 보듬어 키워가고 있다.

빛이 정말 잘 드는 집이네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오시기 전에 집 정리를 하느라 정신없었어요(웃음).

 

이전에는 마포구 망원동에서 지내셨다고 알아요. 그때 생활은 어땠어요?

제가 살아본 어떤 동네보다도 망원동을 좋아했어요. 집이 망원시장 앞에 있어서 과일이나 채소를 필요할 때마다 바로 살 수 있었고요. 그 동네만의 정감도 느껴졌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망원동이 조금씩 관광지처럼 변해가더라고요. 제가 아끼던 상점이나 풍경이 하나둘 사라졌고, 집에서 차분하게 무언가를 하며 지내기엔 동네가 너무 번잡하게 느껴졌어요. 잠깐 집 앞 편의점에 가는 일조차, 놀러 온 사람들로 가득한 동네의 기운 때문에 점점 버거워졌고요. 그러던 중 어느 날에는 집주인이 와서 집세를 50퍼센트 인상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더는 안 되겠다 싶었고, 지금 사는 동네로 넘어오게 됐어요. 망원동 이전에는 서교동에 오래 살았는데요. 그때도 동네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풍경이 바뀌던 시기였어요. 서교동에서 망원동으로 갈 때도, 망원동에서 이곳으로 올 때도 결국은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조금씩 밀려 나오게 된 거죠(웃음).

 

새롭게 집을 구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기준이 있었나요?

이 집을 선택한 이유는 테라스 때문이었어요. 저는 재미있는 집을 좋아하거든요.

 

재미있는 집이라고 하면….

어딘가 각이 살짝 틀어져 있다거나, 갑자기 비밀 공간이 하나 튀어나오거나, 언덕에 있다거나, 집 안에 계단이 있는 것처럼요(웃음). 한국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유형의 집을 좋아해요. 투자 관점에서는 안 좋은 집이겠죠. 친구끼리도 이 얘기를 자주 하는데, 저희는 자신을 ‘절대 집값이 안 오르는 재미있는 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부르거든요. 아무래도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다 보니 제 친구들 집에도 계단이 있거나 내부 구조가 독특한 경우가 많아요. 이 집은 전형적인 빌라지만, 테라스가 있다는 점이 결정적이었어요. 저는 평소에 일이 있지 않으면 집 밖으로 안 나가는 날이 꽤 많은데요. 그런 날에도 어쨌든 외부로 나갈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에요. 그냥 바람 쐬고 싶을 때, 멀리 갈 필요 없이 테라스에만 나가도 충분히 시원해지거든요.

 

테라스에 있던 식물들을 다 안으로 들이신 거죠? 겨울이라는 계절은 가드너에게 어떤 시간인지 궁금해요.

버티고 견디는 계절이면서 동시에 기다리는 계절이에요. 겨울을 잘 보내야 따뜻한 계절에 식물이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우거든요. 그렇다고 마냥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면 안 돼요. 식물도 어느 정도는 추위에 노출되어야 다음 계절을 잘 맞이할 수 있어서요.

 

키우는 식물이 다양해서 온도 관리를 더 세심하게 신경 써야겠어요.

맞아요. 식물마다 추위를 견디는 정도가 다 다르니까요. 저는 테라스가 있는 가드너라 이 과정이 더 복잡한 편이에요. 베란다에서 키우는 분들은 그 자리에 두고 관리해도 되지만, 저는 들고 나르는 일이 많아요. 낮에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면, 어떤 식물은 밖으로 내놓고 어떤 식물은 안으로 들여오는 식으로요. 상황에 따라 밖과 안을 오가게 하면서 겨울을 보내는 편이에요.

식물과 함께하신 지 20년이 넘었다고 알아요. 본격적으로 식물에 대해 공부한 계기가 있을까요?

계기는 슬럼프였어요. 그 전에도 식물을 많이 키웠고 또 많이 죽였거든요. 그런데 어느 시기에 슬럼프가 꽤 세게 왔을 때, 모든 게 다 싫어졌는데 식물까지 죽이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식물만큼은 좀 살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때 처음 제대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돌이켜보면 그 전까지는 공부를 해가며 식물을 키운 적이 없더라고요. 어떤 흙이 좋은지, 비료는 뭘 써야 하는지 하나하나 찾아보기 시작했죠. 당시에는 식집사들도 많지 않아서 정보를 찾기 위해 농촌진흥청 자료나 관련 논문들도 찾아봤어요. 그러다 보니 식물들이 정말 잘 자라더라고요. 그게 재미있어서 기질이 다른 식물도 키워보고, 같은 식물을 서로 다른 흙에서 키워보기도 했고요. 그렇게 조금씩 실험처럼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이전에도 식물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오래 잘 키운 식물은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애정을 갖고 들여다보기 시작하니까 정말로 식물이 살더라고요. 결국 관심이 있어야 살릴 수 있다는 걸 그때 알게 됐죠.

 

식물을 키울 때 관심도 중요하겠지만 알맞은 방식도 필요했을 텐데요. 집필하신 《아무튼, 식물》에도 식물을 여럿 떠나보낸 이야기가 나오는데, 돌아보면 주로 어떤 패인이 있었나요?

물 주기에 실패해서 죽이는 경우가 제일 많았는데요. ‘물 주기 3년’이라는 말이 있어요. 식물에게 알맞게 물을 주기까지 3년의 시행착오가 필요하다는 뜻이에요. 식물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면 ‘며칠에 한 번씩 물을 주라’는 식의 안내가 많잖아요. 그런데 직접 흙을 만져보고 흙이 말랐다고 느껴질 때, 지금이 딱 물 줄 타이밍이다 싶을 때 주는 게 가장 좋아요.

 

습득한 정보보다 체득한 정보가 더 중요한 부분이겠네요.

맞아요. 물 주기는 경험치가 정말 중요한 영역이에요. 토분인지 플라스틱 화분인지, 어떤 자리에 놓여 있는지, 통풍은 얼마나 되는지 같은 조건에 따라 물 주는 주기와 방식이 전부 달라지거든요. 절대적인 기준이 없는 거죠.

 

그 시행착오가 책 《아무튼, 식물》과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에도 잘 드러나요. 작가님은 줄곧 “식물을 죽여도 된다.”고 말하셨죠.

저는 식물을 키우고 싶어 하면서도 잘 못 키울까 봐 시작조차 못 하는 분들이 참 많다고 느껴요. 그런데 식물을 하나의 개체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하나를 죽인다고 해서 그 종이 멸종되는 건 아니거든요. 식물은 동물이나 인간과 달리 끝없이 번식할 수 있고, 무성 생식도 가능한 존재잖아요. 그래서 식물의 죽음을 동물이나 인간의 죽음과 같은 선상에 두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더 편하게, 더 적극적으로 즐기셨으면 해요. 그래야 결국에는 식물을 살릴 수 있게 되더라고요. 

식물을 키우며 달라진 생활도 있을까요?

가장 크게 달라진 건 기상 시간이에요. 저는 원래 낮 12시 전에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식물에 대한 마음이 커지다 보니, 아침에 좀 더 일찍 일어나서 환기를 해주게 되더라고요. 제 집을 보시면, 사람 자는 방에만 커튼을 달고 다른 공간에는 커튼을 아예 달지 않았어요. 햇빛이 너무 아까워서요. 정말 오랫동안 오후에 일어나는 사람이었는데, 식물을 조금이라도 더 잘 키우려면 제가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간에 일어나서 환기해 주고, 공기가 집 안에서 항상 잘 돌 수 있도록 하게 돼요.

 

이른 기상을 해보니 어때요?

제 성격이 많이 밝아졌어요. 주변에서도 제가 밝아졌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원래 되게 염세적이었거든요(웃음). 어떤 것을 크게 기대하거나 너무 좋아하게 되면 나중에 마음이 힘들어지잖아요. 저는 그런 상태가 되기 싫어서 한동안은 기대도 안 하면서 지냈어요. 아무래도 20대에는 더 염세적으로 기울어지기 쉬웠던 것 같고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꽤 바보 같은 상태였더라고요. 그때의 시기를 조금씩 벗어나면서 생각도 자연스럽게 달라지기도 했고, 식물을 키우면서 생활 패턴이 바뀐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식물이 좋아하는 집의 환경과 작가님이 좋아하는 집의 환경이 일치하게 된 거네요.

맞아요. 완전히 똑같게 됐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에요. 예전에는 거실에도 늘 어두운 커튼을 달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잠드는 공간 외에는 밝게 해놓는 게 좋아요. 집 구할 때도 ‘밝은 집’이 목표였고요. 식물이 좋아하는 집은 대체로 밝고 공기가 잘 통하는 집인데, 지금 제 집이 딱 그런 환경이 된 거죠.

 

작가님에게 특히 잘 어울린다고 느끼는 식물은요?

저는 모든 식물이랑 잘 어울리고 싶긴 한데요(웃음). 그래도 요즘 특히 좋아하는 건 알로에나 아가베 같은 식물이에요. 물을 많이 먹지 않으면서도, 카리스마 있게 크는 친구들이요. 난을 제외하면 지금까지는 편식하지 않고 이것저것 다 키워봤어요. 사실 요즘 난에도 관심이 많이 가긴 하는데, 일부러 시작하지 말자고 생각 중이에요.

 

왜요?

난을 들이기 시작하면 집이 너무 우아해질 것 같거든요(웃음). 호접란을 보면 호텔 로비가 떠오르잖아요. 그 우아함을 제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은 거예요. 그래서 일단은 잠시 미뤄두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꽃을 피우는 식물을 많이 키우진 않아요. 꽃이 피는 식물보다는 이파리를 더 좋아하거든요. 꽃을 피우기 위해 애쓰는 모습보다는, 그냥 일상을 살아가는 느낌이 좋달까요. 특별한 순간을 위해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날마다 잔잔하게 사는 식물이 저한테는 더 잘 맞더라고요.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 그 나라의 식물원을 꼭 찾으신다고 들었어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곳이 있을까요?

영국 런던의 ‘큐가든Kew Gardens’이라는 왕립 식물원을 정말 좋아해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정말 멋있는 나무가 많거든요. 식물원이 워낙 커서 누군가와 함께 가도 결국엔 늘 혼자 걷게 돼요. 제가 나무들을 쫓아다니다 보면, 같이 간 사람들은 못 버티고 “우린 카페에 있을 테니 천천히 보고 와.” 하더라고요(웃음). 이상하게 저는 거기만 가면 나무들에게 말을 걸게 돼요.

 

뭐라고 말을 걸어요(웃음)?

제가 고민 상담을 그렇게 하더라고요. 집에서 키우는 식물들한테도 말을 안 거는데…. 그곳의 참나무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기운이 느껴지나 봐요. 

 

아, 나중에 집 마당에 유리 온실을 짓는 꿈이 있다고 했죠? 

그 꿈은 늘 있어요. 마당이 있는 집에 작은 온실을 하나 두고 사는 것. 아마 제가 꾸리는 온실은 식물들로 빼곡해져서 금세 터져나갈 거예요. 지금은 겨울이라 집에 있는 식물 수가 이 정도지만, 다른 계절에는 두세 배쯤 된다고 보시면 돼요. 물도 많이 주고, 비료도 아끼지 않는 편이라 식물을 늘 뚱뚱하게 키우거든요. 다만 유리 온실을 둘 만한 마당 있는 집을 서울에서 구하기엔 집값이 너무 비싸서요(웃음). 지방이라면 지금도 가능하겠지만, 그렇다고 서울 생활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고 보니 작가님의 책마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서 느껴졌어요. 서울이 왜 좋아요?

저는 문화생활을 가까이에서 할 수 있는 게 좋아요. 한두 달 머물기에 좋은 매력 있는 지방 도시도 많지만, 저는 어느 날 갑자기 독립 영화관에 가서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보고 싶어지는 사람이라서요. 그런 욕구를 충족하기에는 아직 서울이 가장 편한 도시인 것 같아요. 무엇보다 태어나고 자란 도시이다 보니, 제게는 워낙 익숙하기도 하고요.

 

최근 《나를 키워봐!》 번역을 맡으셨지요. 글을 꾸준히 써 오신 건 알았지만 번역 작업을 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했어요.

이 책은 뉴욕에 거주하는 작가가 쓰고 그린 그래픽 노블인데, 식물을 키우는 이야기와 나 자신을 돌보고 키워가는 이야기를 같은 선상에 놓고 풀어가요.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제가 유학을 다녀왔고 영어를 할 줄 안다는 걸 알고 계셔서 제안을 주신 것 같아요. 아마 식물과 관련된 제 책도 읽으셨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제가 책에 써온 주제와 《나를 키워봐!》가 이야기하는 지점 중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거든요. 처음에는 ‘번역이라는 영역에 내가 과연 발을 담가도 될까?’라는 고민이 있었어요.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니, 어떤 표현들은 식물을 직접 키워본 경험이 있어야 자연스럽게 옮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구체적으로 식물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옮길 수 있던 포인트가 있다면요?

예를 들면 그림 속에 “SUPER-GRO”라고 쓰인 흙 봉투가 등장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대로 번역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의 농자재 상점에 가면 “싹자라”, “잘자라”처럼 직관적이지만 조금은 웃긴 이름의 비료들이 있거든요. 그런 언어는 실제로 식물을 키워보고, 그 문화를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점들을 번역에 반영할 수 있던 점이 재미있었어요.

작가님은 작가이기도 하고, 밴드 디어클라우드의 베이시스트이기도 하죠. 집에서 음악이나 글 작업을 하는 공간이 따로 있나요?

2층 작업 방이요. 프리랜서분들 중에는 작업 공간이 명확히 분리되지 않아서 힘들어하시는 경우도 많잖아요. 저는 써야 하는 글이 있거나, 연주해서 전달해야 할 일이 있으면 작업 방으로 출근해요. 그러니까 이 집에서 제가 스트레스받는 일들은 거의 다 그 작업 방, 2층에서 이루어져요(웃음).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아예 작업 방에 들어가지 않아요. 프리랜서치고는 출퇴근 개념이 꽤 분명한 편이죠. 작업 공간이 확실히 나뉘어 있다는 게 큰 역할을 하고요.

 

1월 말에 디어클라우드 콘서트도 있죠?

맞아요. 차례로 8회 공연을 하거든요. 요즘 공연 준비로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음악은 저에게 너무 당연한 존재라서, 오히려 당연하게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20대 초반에 음악을 시작했고, 지금은 40대 초반이 됐으니까요. 성인으로 살아온 대부분의 시간을 디어클라우드 멤버로 보냈어요. 그래서 혹시 내가 이 자리를 너무 익숙하게,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돼요. 그래서 일부러 당연하지 않게 느끼려고 하고요.

 

당연함을 왜 경계하세요?

당연해지는 순간 곧 매너리즘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냥 늘 하던 공연, 늘 내는 음원처럼 흘러가고 싶지는 않아요. 너무 비장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저는 늘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공연해요. 지금 한국 음악계가 큰 아티스트들만 살아남는 구조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잖아요. 중소 규모 아티스트들은 갈수록 힘들어지는 시기거든요. 앞으로는 더 그렇게 될 거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리고요. 그럼에도 언제까지나 음악을 붙들고 있어야겠다는 마음이에요. 음악이 제 수입의 가장 큰 부분이 아니게 되더라도, 저는 이걸 쉽게 놓고 싶지는 않아요.

 

한 인터뷰에서 “음악이 제 삶의 중심에 가까운 예술의 형태일지도 모르겠다.”고 말씀하신 적도 있죠.

제가 가장 오래 해온 예술의 형태가 음악이거든요. 제일 익숙하고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음악만 특별하다고 느끼는 건 아니에요. 식물 키우기도, 글쓰기도 다 너무 좋고, 각각 저를 채워주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요. 각자 제 마음 건강에서 담당하는 영역이 따로 있다고 해야 할까요. 물론 세 가지 말고도 다른 요소들이 필요하겠지만, 이 세 가지의 균형이 잘 맞을 때 제가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 세 가지 큰 축이 작가님 마음을 어떻게 돌보고 있나요?

음악은 제 안의 조금 어두운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감정을 표출하거나 혹은 조용히 감싸주는 역할을 하고요. 글쓰기는 굉장히 수다스러운 저를 맡고 있어요. 음악과는 다르게, 글은 풀어놓는 작업이니까요. 더 조잘조잘 이야기할 수 있고, 거기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분명히 있어요. 식물 키우기는 정말 온전히 저를 위한 일이에요. 무엇을 보여주기 위한 것도,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도 아니고요. 저는 창작이라는 게 결국 몸에 독을 쌓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안에 있는 걸 덜어내면서도 동시에 스트레스와 피로가 쌓이는 일이요. 글쓰기도, 음악도 재미있지만 분명히 스트레스가 있잖아요. 그걸 가장 잘 풀어주는 게 저한테는 식물이었어요. 이파리 닦고, 물 주고,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때 스트레스가 제일 많이 풀려요.

 

영역마다 몰입의 순간이나 집중하는 감각도 조금씩 다를 것 같아요.

많이 다르죠. 음악에서 오는 집중의 순간이 가장 강렬해요. 정말 도파민이 한 번에 팡 터지는 느낌이랄까요. 무대 위에 있을 때도 그렇고, 무대 아래에서 연습할 때도 그래요. 함께 연주하는 사람들, 그리고 무대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전부 같이 들숨을 쉬고, 날숨을 내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거든요. 그런 카타르시스 때문에 무대와 음악에 대한 사랑이 계속 이어지는 것 같아요. 글쓰기는 또 다르게 재미있어요. 이 문장이 앞에 오느냐, 뒤에 오느냐에 따라 의도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도 재미있고요. 아무도 알아차릴 수 없을 행간의 의미를 혼자 슬쩍 심어두는 기분도 좋아요. ‘여기서 사실 나는 이런 마음이야.’ 하고 혼자만 알고 있는 그 비밀스러움이요. 아무리 풀어 써도 결국 다 읽히지는 않는, 작가의 마음이라는 게 있다는 점도 저는 참 재미있게 느껴요. 식물 키우기는 또 전혀 달라요. 그 순간에 바로 즐거워지는 일이에요. 솔직히 말하면 제가 잘 사용하진 않는 단어인데, 이럴 때는 그 말 말고는 설명이 안 되더라고요. 식물 키우기는 정말로 순간적인 ‘힐링’을 계속해서 주는 일이에요.

 

지금은 그 모든 것들이 균형이 잘 맞는 시기일까요?

네, 전반적으로 밸런스가 잘 맞아요. 그래서 평안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몬스테라 델리시오사의 열매를 먹어보고 유칼립투스의 꽃을 피워보는 것을 버킷리스트로 삼은 사람. 그는 식물과 글쓰기, 음악이라는 씨앗을 심고 물을 주며, 때로 죽이기도 하고, 다시금 생이 가진 자생력을 믿어주면서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는 듯했다. 생의 기운이 가득한 이 집을 찬찬히 둘러보다가, 내가 심어두고 키우고 싶은 씨앗들은 무엇일지 오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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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황진아

포토그래퍼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