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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정현우 ㅡ 900KM
900KM를 이끌어가는 혜민과 현우는 종종 세상의 질서가 답답했다. ‘우리만 그런 걸까?’ 의문을 품고 주위를 돌아보니, 비슷한 불편함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살살 보이기 시작했다. 900KM는 요즘 것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세상이 정해놓은 길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말한다. 혜민과 현우는 초대장을 만드는 데 골몰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또 다른 방식이 있음을 전하기 위해, 세상에 정해진 답은 없다는 걸 알리기 위해.
날씨가 참 좋네요. 오전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현우: 이젠 정말 봄이네요. 일어나서 청소하고, 유튜브 편집 좀 하다가 밥 먹으러 잠시 나갔다 왔어요. 일요일이면 <출발! 비디오 여행>을 꼭 봐야 해서 밥 먹다 말고 빠르게 집으로 왔네요(웃음).
혜민: 저희는 밖에서 촬영할 때가 아니면 밖으로 거의 안 나가는 편이에요. 집으로 누군가를 초대할 일도 잘 없는 데다가 집에서 인터뷰하긴 처음이라 낯설면서 설레네요. 집 단장도, 화장도 오랜만에 했어요(웃음). 만나서 반갑습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900KM라는 이름으로 하는 일이 다양해서인지 소개도 조금씩 다르더라고요. 900KM 스튜디오부터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콘텐츠 스튜디오….
혜민: 결혼한 2016년부터 지금까지 900KM라는 이름으로 함께 활동해 오고 있는데, 그때그때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소개는 달라진 것 같아요. 지금은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예전엔 콘텐츠라는 단어를 꼭 붙였는데 이젠 저희가 하는 게 콘텐츠에만 한정되는 것 같진 않아서요. 분명히 콘텐츠를 매개로 활동하지만 콘텐츠를 생산하려고 만든 스튜디오는 아니에요. 콘텐츠는 저희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종의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콘텐츠가 하나의 장르에 국한되지 않아요. 지금까지 만들어 온 다양한 콘텐츠로 그간의 행보를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혜민: 2017년에 시작한 ‘요즘 것들의 사생활(이하 ‘요즘사’)’부터 이야기해 볼게요. 그중에서도 ‘결혼생활탐구’라는 테마로 이야기를 시작했죠.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던 때라 더 그랬겠지만,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결혼 문화에서 이상한 점을 많이 발견했어요. ‘우리만 불편하게 여기는 걸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였죠. 보편적인 고민은 아닐지라도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시도할 수 있었어요.
현우: 우리만 이렇게 생각하는지, 다른 삶이나 대안은 없는지, 사람들이 정답처럼 이야기하는 것들이 정말 괜찮은 건지 확인하고 싶었어요. 결혼생활탐구 이후에는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 수는 없을까 고민하면서 ‘먹고사니즘’을 탐구했어요. 좋아하는 일로 먹고사는 사람들을 찾아 인터뷰하고 책과 영상 콘텐츠로 만들었죠. 사실 900KM의 활동은 우리 삶에서 파생된 고민들이기 때문에 일과 삶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여행하면서 노동하는 노마드 워커도 되어 본 거군요.
혜민: 맞아요. ‘워크 앤 라이프 블렌딩Work And Life Blending’이라는 슬로건으로 해본 실험이었죠. 작년 여름에 한 달 동안 강원도 곳곳을 여행하면서 일하는 시도였는데요. 강원도를 시작으로, 앞으로는 더욱 많은 곳에서 더 다양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올해 2월부터는 개인적인 작업으로 요즘사와 팟캐스트의 컬래버레이션이라고 볼 수 있는 <책읽아웃>도 진행 중이에요. ‘이혜민의 요즘 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수요일 코너를 맡고 있는데, 요즘사의 관점으로 책을 소개하고 그 안에서 일과 삶을 이야기하려고 해요.
이렇게만 나열해도 무척 많은데 올해 프로젝트를 새로 또 시작하셨다고요.
현우: 올해 시작한 ‘베러 노멀BETTER NOMAL’ 시리즈는 요즘사를 단순히 유튜브 채널을 넘어서 미디어로 바라보고 발전시키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정기 프로젝트예요. 코로나19 이후에 뉴노멀 시대라는 이야기가 한창 나왔잖아요, 근데 어떻게 보면 뉴노멀은 수동적인 대응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베러 노멀은 뉴노멀 시대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능동적으로 더 나은 일과 삶을 찾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월간으로 주제를 정해서 매주 새로운 진행하고, 유튜브 영상과 웹사이트yozmsa.com 아티클, 뉴스레터로 발행하고 있죠. 요즘사는 저희가 만나고 싶은 인터뷰이나 하고 싶은 주제를 찾을 때마다 비정기적으로 진행해왔기 때문에 이렇게 매달 새로운 주제를 찾아서 영상을 만들고 아티클을 발행하는 것 자체가 저희에겐 새로운 도전이에요. 지금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몸소 방법을 깨달아가는 중이죠.
900KM 안에서 두 분의 역할은 명확한 것 같아요. 혜민 씨는 스토리 파인더, 현우 씨는 비주얼 메이커라는 명칭을 쓰고 있죠.
혜민: 초반에는 그때그때 소개가 달라졌어요. 에디터라고 하기도 하고, 기획자나 작가라고 하기도 했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크리에이터라고도 했고요. 근데 영상 분야만 봐도 피디가 될 때도 있고, 작가 업무를 하기도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하나로 소개하기 어려운 데다가 점점 헷갈리기 시작했어요. 다양한 역할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기존 직업명보다는 우리만의 명칭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는 이야기를 발굴하고 그 안에서 길을 찾는 사람이더라고요. 처음엔 스토리 메이커라고 했는데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서 그치는 건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토리 파인더로 부르기 시작했어요.
현우: 저는 회사에 소속돼 있을 땐 UI/UX 디자이너로 일해왔는데 지금은 영상 촬영은 물론이고 영상 디자인, 그래픽 디자인까지 두루 맡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모든 일을 하나로 묶어서 설명할 명칭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혜민이가 스토리를 기획하고 구성하는 데 집중한다면 저는 그걸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인 것 같아서 비주얼 메이커가 되었어요.
부부가 일과 생활을 함께하다 보면 불편해지는 점도 있을 것 같아요.
현우: 있죠. 회사랑 똑같아요. 그렇지만 오래 함께하다 보니까 초반에 비해서는 싸울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만난 지 벌써 10년이 넘었거든요.
혜민: 결혼한 지도 벌써 6년이 되었고….
현우: 연애도 6년이나 했고….
혜민: 함께한 지 12년 된 건가? 이제 생활 영역에서 싸울 일은 거의 없는데, 일할 때는 스타일이 달라서 부딪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특히 초반에는 일하는 방식 때문에 많이 다퉜어요. 저는 좀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어서 원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붙잡고 있는 성격이라면 현우는 빨리빨리 약속한 시간 안에 쳐내는 걸 원하거든요. 말하자면 저는 장인 스타일, 현우는 스타트업 스타일(웃음).
현우: 근데 오히려 이렇게 다르다 보니까 뭐라도 나오는 것 같아요. 서로 보완이 되어서 이제는 합이 잘 맞거든요. 어떤 점에서는 각자가 고집하던 걸 포기할 줄도 알게 되고요.
12년이나 함께한 사이라니…. 6년 연애하고 결혼한 이야기도 해볼게요. 결혼식을 올리는 대신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를 택했죠. 그때 주변 반응은 어땠어요?
혜민: 회사 사람들 아무도 안 믿었어요. 그때 저희 팀에 예단, 예물, 폐백까지 다 하고, 드레스와 예식장도 고심해서 준비하던 동료가 있었거든요. 드레스 보러 간다고 연차도 내고 그러니까 결혼식 준비하는 티가 나는데 저는 그에 비해 아무 준비도 안 하는 것처럼 보였겠죠. 결혼 준비라면서 주말에 성곽길 걷고, 여름휴가로 올레길 걷고, 등산복을 사러 가고 있으니 더 그랬을 거예요(웃음). 그런 날들이 이어지다 보니 저도 좀 흔들리더라고요. 호기롭게 결혼식 대신 산티아고로 간다고 했지만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도 종종 들었어요. 선례가 없으니 더 걱정스러웠고요.
현우: 사람들이 안 믿을수록 ‘우리가 보여주자.’라는 마음이 커졌어요. 청첩장이 없어서 그런가 싶어서 청첩장 대용으로 소식지를 만들어서 보여주기도 했죠.
혜민: 어른들의 경우엔 결혼의 개념을 바꿔드리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조금 다른 방식의 결혼식 장벽을 낮춰드리기 위해 스몰 웨딩 사례를 여럿 보여드렸죠. 마침 그 과정에서 원빈과 이나영이 밀밭에서 결혼해서 ‘와 잘됐다!’ 싶었어요(웃음). 특히 아빠가 보수적인 편이라 준비를 많이 했어요. 정석대로 결혼식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부터 과정까지 기획안을 만들어서 보여드리기까지 했거든요.
현우: 근데 다녀와서도 “그래도 어른들 모시고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니.” 그런 얘기가 한동안은 나왔어요. 그러다 책 《세상에서 가장 긴 결혼행진》도 나오고, 방송도 나가다 보니까 그런 이야기가 잦아들더라고요.
혜민: 이렇게 결혼에 대해 다른 방식을 한 번 얘기하고 보니까 사람들이 이런 행보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응원도 많이 받았고, 비단 결혼 뿐만 아니라 삶 자체를 조금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때 900KM를 만들면서 책이든 뭐든 여러 방식으로 살아가는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걸 말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일이든 취미든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땐 불안감이 있잖아요. 확신이 51퍼센트만 있어도 시도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50퍼센트를 넘게 하는 1퍼센트의 어떤 것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혜민: ‘의미’요. 개인적인 의미일 수도 있지만 요즘엔 좀더 사회적인 의미를 많이 생각해요. 예를 들면, 제가 요즘 채식을 하고 있는데 채식하는 게 저한텐 꼭 미션 같았거든요. 사회적으로 더 나은 의미를 보여주는 활동이라는 점에서요. 물론 힘들기도 하고, 이렇게 바쁠 땐 유지하기도 어렵지만 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만큼 저한텐 너무 의미 있는 일이에요. 저희가 하는 일도 그런 것 같아요. 의미를 찾고 전달하는 거. 사실 콘텐츠 만드는 거 정말 힘들거든요.
그럼요, 당연하죠.
혜민: 저희 콘텐츠를 보고 단 한 사람이라도 ‘삶엔 또 다른 선택지가 있구나.’라고 느낀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계속할 수 있는 거고요. 저희는 유튜브 구독자가 엄청나게 많은 것도 아니고, 900KM 이름을 알린 지도 얼마 안 되었거든요. 그런데도 하고 또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은 사람들의 반응이 저희에겐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느껴져서였어요. 메시지나 댓글을 받을 때마다 힘이 나고 용기를 얻었거든요. 구독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희 유튜브 채널을 보기 전까진 어떤 현상이나 문화에 대해 ‘나만 이렇게 생각하나.’라고 여길 때가 많았대요. 저희 콘텐츠 덕분에 이렇게 살아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셨다는 데서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 이런 것 때문에 콘텐츠를 만들었지.’ 싶었죠. 저희 콘텐츠로 한 명이라도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된다면, 우리도 그 덕분에 발전하고 성장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인지 점점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생겨나는 것 같아요. 이번 호 주제어가 ‘편지’인데 인스타그램, 유튜브, 책 등 많은 플랫폼을 활용해서 이야기를 전하는 것도 넓은 의미의 편지 같아요. 같은 콘텐츠여도 어떤 플랫폼에 보여주느냐에 따라 많은 게 다를 듯한데 어때요?
현우: 처음엔 독립출판으로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저희가 전하려는 바를 책으로 풀어나가고자 했어요. 근데 영상 콘텐츠를 만들면 좀더 파급력이 생기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텍스트로 전달했을 때 예민하게 들릴 수 있는 말들이 영상과 함께라면 부드럽게 풀어지는 면도 있겠다 싶었고요. 책으로만 출판하면 책을 읽는 사람들과만 만날 수 있지만 유튜브를 활용하면 영상을 향유하는 사람들까지, 좀더 확장된 범위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혜민: 어떤 플랫폼으로 접하느냐에 따라 반응은 확실히 달라요. 저희 콘텐츠의 뿌리는 인터뷰예요. 그 내용이 영상이 되기도 하고, 책이 되기도 하죠. 인터뷰는 기획을 통해 전체적인 밸런스를 맞춰 가며 진행하기 때문에 저희는 항상 맥락에 집중해요. 기획 의도가 전체적으로 전달되기를 바라고요. 그걸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건 책이기에 출판을 메인으로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인지 책으로 접한 독자들은 확실히 맥락과 의도를 전체적으로 이해해 주세요. 반면, 유튜브 콘텐츠는 단편적인 영상이기 때문에 맥락보다는 단일 콘텐츠에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임팩트 있게 담는 데 집중해요. 이처럼 하나의 인터뷰에서 출발해도 영상과 책에서 강조하는 부분은 달라져요. 그건 독자 스타일에 맞춰 다르게 기획하는 거기도 하고요.
독자들에게 편지를 받는 일도 있나요? 아까 집을 둘러보다 저쪽에 편지가 모여 있는 걸 봤어요.
혜민: 아(웃음), 저 편지들은 전부 독자들에게 받은 거예요. 편지를 보내 주시는 분들은 보통 저희를 오랫동안 지켜봐 주신 분들이에요. 산티아고 결혼 행진 때부터 알고 지금껏 함께해 준 분들이 대부분이죠. 저희는 독자들이 새로운 도전에 시도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실 때마다 용기를 얻어요. 그게 저희 콘텐츠를 통해 일어난 일이라면 무척 뿌듯하죠. 저희 구독자들은 대개 20-30대인데요. 제각기 다른 고민을 하며 지내지만 결국 그 맥락은 비슷하더라고요. ‘나답게 살고 싶다.’, ‘세상이 말하는 정답에서 벗어나서 살아보고 싶다.’는 거죠. 한 번은 저희 콘텐츠를 보고 보물을 발견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되게 찡하더라고요.
현우: 재미있는 건 군인분들이 편지를 많이 보내 주신다는 거예요. 성비로는 여성 구독자가 7 대 3 비율로 많은데, 그 3의 절반 정도가 군인인 것 같아요. 전역하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이 특히 많아요. 저도 군대에 있을 때 진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에 공감이 가더라고요.
무척 의미 있는걸요?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고민 상담도 해올 것 같아요.
현우: 주로 북토크나 행사에서 많이 듣게 되는데, 최근에 한 대안학교에서 강연하다 좀 어려운 질문을 받았어요. 대안학교이기 때문에 삶의 방식을 다른 시각으로 많이 접할 텐데도 고3이란 무게감 때문인지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 보였어요. 굉장히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중 한 친구는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집 형편이 조금 어려워서 졸업하고 나면 돈을 먼저 벌어야 할지, 하고 싶은 걸 해도 될지 고민하더라고요. 제가 상황을 다 아는 게 아니다 보니 답하기가 조심스러웠죠.
뭐라고 답하셨어요?
혜민: 짐을 꼭 본인이 다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고요. 집안 상황을 모른 척하라는 건 아니지만, 저는 학생일 때 해야 할 것, 누려야 할 것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가정 형편을 책임지느라 자기 삶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죠. 정 힘들다면 주변에 도움을 구해보는 건 어떻겠느냐 했는데, 사실 구체적인 이야기는 모르는 데다가 제 답변이 정답은 아니다 보니까 조심스러웠어요.
콘텐츠를 만들 때도 그런 고민을 할 것 같아요. 두 분이 하는 활동은 사회에서 정답처럼 만들어 놓은 길 말고 다른 길도 있다고 보여주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두 분이 이야기하는 게 정답처럼 보여선 안 될 것 같아서요.
혜민: 맞아요. 항상 ‘이게 또 다른 정답처럼 여겨지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이 많아요. 특히 유튜브는 프로젝트의 전체 맥락이 보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저희 의도와는 다르게 읽히는 경우도 있어요. 퇴사하고 직업 실험을 한 사람의 인터뷰 콘텐츠를 보신 분께서 ‘퇴사만이 정답’이라고 오해하고 댓글을 단 적도 있죠. 인터뷰는 그런 맥락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었고, 소속 없이 직접 돈을 벌어보며 진정한 일과 돈의 의미를 발견했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였어요. 하물며 그 인터뷰이는 훗날 다른 회사에 다시 취직하기까지 했어요. 다만, 퇴사 후 직업 실험을 한 덕분에 새로운 관점으로 했던 취업이었기에 더욱 의미 있던 사례죠. 유튜브 콘텐츠 하나에 저희가 의도한 맥락을 전부 담지 못한다는 게 자주 아쉬워요. 저희는 퇴사하고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기 위해 고민하고 있지만 퇴사만이 방법이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현우: 그래서 유튜브에서는 메시지를 좀더 강조하게 돼요. 꼭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우리는 이 영상을 통해 여러 삶의 레퍼런스를 보여주는 거라고요.
그런 맥락을 다 이해하는 독자들 반응을 만나면 기쁠 것 같아요.
혜민: 한 독자분이 이런 후기를 남겨 주신 적이 있어요. “책을 다 읽고 났더니 이 문장 하나가 남는다. ‘살아가는 방식은 다양하고, 모두 다르다. 그래도 된다.’” 결국 저희가 하려는 말도 이거라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걸로 먹고살려면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먼저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아직 나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는 걸 어떻게 찾아볼 수 있을까요?
현우: 뭐든 여러 가지를 경험해 보세요. 직접 해보는 것도 좋고, 책이나 유튜브 콘텐츠로 간접 경험하는 것도 좋고요. 콘텐츠를 모두 수용하기보다는 ‘나라면 이걸 어떻게 해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내가 추구하는 거, 좋아하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혜민: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을 한번 살펴보세요. ‘저 사람처럼 되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을 샅샅이 살펴보면 결국 자기가 원하는 점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계속 경험해 가면서 새로운 고민과 기쁨을 만나게 되겠죠. 지금 잘 모른다고 해서 문제는 아닐 거고요.
혜민: 그럼요. 저희도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무작정 해본 경험이 쌓여서 좋아하는 거, 잘하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우리랑 어울리지 않는 것도 알게 됐고요. 그렇다고 지금 저희가 나다운 걸 완전히 찾았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인터뷰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알아가는 과정 안에 있는 거죠. 그걸 찾아가는 게 인생 아닐까요? 저는 할머니가 돼서도 계속 찾고 있을 것 같은데요(웃음).
900KM의 콘텐츠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역할도 큰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해온 활동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세요?
혜민: 전보다는 영향력이 생겼다고 생각하지만, 그 영향력을 키우고 싶다는 게 지금의 바람이에요. 자신이 살아온 길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소외되고 고립되는 것 같아요. 외로워지기도 쉽고요. 근데 ‘나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또 있구나.’, 혹은 ‘나랑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걸 깨달으면 희망을 느낄 수 있어요. 덜 외로워질 수도 있겠죠. 저희는 그런 틈을 벌려주고 싶어요. 지금껏 걸어온 좁은 길의 끝까지 가야만 정답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 벽에 균열을 낼 수 있다는 걸 알리는 거죠. 그렇게 생긴 틈에서 빛이 새어드는 걸 보면 벽을 부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요.
지금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시는군요.
혜민: 사실 이런 보람이 우리 하는 일의 전부인 것 같아요. 유튜브는 몇십만, 몇백만 명이 구독하지 않는 이상 수익이랄 게 없어요. 오히려 쓰는 돈이 더 많죠. 우리가 만들고 전하는 가치가 영향력이 되고 도움이 된다는 거, 그게 동력인 것 같아요.
이야기 나온 김에 900KM를 해나갈 수 있게 하는 동력 세 가지를 꼽아 볼까요?
혜민: 음, 외주 일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이야기해 볼게요. 900KM가 자체적으로 하는 일들은 저희 삶에서 파생된 것이고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에 따로 동력이랄 게 없는데요. 외부에서 들어오는 일은 ‘돈’, ‘영향력’, ‘재미’ 세 가지를 기준으로 결정해요.
현우: 물론 세 항목 모두를 충족시킬 순 없어요. 재미가 없고 영향력이 크지 않다면 돈을 많이 받아야 하죠. 만일 어느 정도 재미가 있고 일정 수준의 돈을 받는다면 나머지를 채울 정도의 영향력이 있어야겠죠.
혜민: 여기서 말하는 영향력은 이 일을 해서 900KM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의 영향력이 커지는 데 도움이 되느냐는 거예요. 이 인터뷰 역시 영향력이 있는 일이겠죠. 900KM를 모르던 사람들이 《AROUND》를 통해 우리를 알게 되고, 우리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줄 테니까요.
현우: 여기서 중요한 건 돈만 충족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돈을 아무리 많이 주어도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맞지 않으면 할 수 없거든요. 아무래도 유튜브를 하다 보니까 협찬이나 광고 의뢰가 많은데요. 한번은 한의원에서 녹용 광고가 들어온 적이 있어요.
혜민: 저는 채식을 지향하는데(웃음). 우리 콘텐츠를 이해하지 못한 광고인 거죠. 그런 건 돈을 아무리 많이 준대도 하지 않아요.
재미, 영향력, 돈을 합쳐서 100에 도달해야 하지만, 돈만 100이어서는 안 된다는 거네요.
혜민: 그래서 돈이 정말 급할 때 더 고민이 많아져요. 돈이 필요하니까 눈 딱 감고 해볼까 싶다가도 이걸 하는 동안 진짜 재미있는 일이 들어왔을 때 기회를 놓치면 안 되잖아요.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겠군요. 요즘사와 MZ세대라는 단어는 떼려야 뗄 수 없을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 두 분도 중년, 노년에 접어들 텐데, 그땐 어떤 활동을 하고 싶어요?
현우: 그땐 제가 하는 것들을 해줄 사람과 함께 일하겠죠. 저는 디렉터가 되고요. 그럼 자연스럽게 일자리 창출도 되지 않을까요?
혜민: 최종적으로 저희가 바라는 것도 그런 방향이에요. 저희가 생산자로 뭔가를 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당장은 둘이 힘을 합쳐서 하는 수밖에 없으니 계속해 나가고 있는데요, 꾸준히 이 판을 잘 키워서 나중엔 더 많은 사람을 이 안으로 끌어들이고 싶어요. 그게 고용의 방식이 될 수도 있겠지만 좀 다른 방식을 취해보고 싶어요. 900KM의 활동은 우리의 생애주기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언제나 그 시대의 청년 세대를 위한 활동이면 좋겠어요. 그 시대의 요즘 것들에게 이 판을 물려주고 싶은 거죠.
다양한 삶의 레퍼런스를 모아 정원을 꾸미고, 그곳으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거군요. 정원은 계속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거고요.
혜민: ‘다양한 삶의 레퍼런스로 정원을 꾸미고 사람들을 초대하는 일’이라는 말 너무 마음에 들어요. 지금은 저희가 초대장을 보내는 쪽이고,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이 이제야 정원으로 조금씩 모여들고 있어요. 앞으로는 그 인원을 더 늘리면서 초대하는 방식도 달리해 보고 싶어요. 책이나 유튜브 말고 또 다른 방식이 있지 않을까요? 계속 고민하면서 다양한 삶의 레퍼런스를 보여드릴게요.
좋아요. 900KM 덕분에 저도 노마드 워커가 될 수 있겠단 희망이 생겼어요(웃음). 마지막으로 이다음을 이끌어갈 친구들에게 한마디 남겨볼까요?
혜민: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이 모든 것이 너희가 사는 시대엔 당연한 것, 이상하지 않은 것이기를 바라. 하지만 우리가 지금 하는 고민이 너희 세대에도 계속될 수 있겠지? 우리가 해온 게 정답은 아니니까 참고만 해주면 좋겠어. 너희 시대에 할 수 있는 것들을 너희 방식으로 해줘. 그리고 그다음 세대에게 계속해서 이 정원을 물려줘!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