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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광선
책이 사람을 고르는 방법
녹색광선
버스가 어두운 터널에 들어섬과 동시에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바야흐로 내 인생 최악의 시절이 도래하고 있음을 난 예감하고 있었다.
실패와 좌절 등 단어만으로도 골이 지끈거리는 불행에서부터 치약 뚜껑이 바닥에 튕겨 변기에 빠져버리는 사소한 불행에 이르기까지, 이런 모든 불행이 동시에 찾아오는 최악의 시절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광주로 내려가는 출장길에서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놓은 모든 불행이 조만간 내 머리 위로 한번에 쏟아질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러한 시기를 겪어본 사람은 모두 알 것이다. 최악의 시기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무언가를 해야만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나 같은 경우엔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데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여유롭게 서점에 서서 독서를 즐긴 것은 아니었고,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몰라 서가에 놓인 책을 들었다 놓았다 반복하는 시간을 꽤 길게 가졌던 것이다.
불길한 예감을 가득 안은 채로 내려온 광주에서도 서점에 들러 책을 골랐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지식이 많이 부족한 나로서는 책을 판단할 마땅한 기준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저 표지 디자인과 작가의 외모 정도로만 책을 판단할 뿐인데, 당연히 좋은 판단 기준은 아니었다. 표지가 너무 깔끔하면 내용이 괜히 부실할 것 같고, 표지가 예쁘지 않으면 그 자체로 싫었다. 그래서 나는 크지도 않은 서점에서 몇 시간 째 책을 들었다 놨다만 반복하고 있었다. 반면, 함께 출장길에 오른 동료는 별 어려움 없이 책을 두 권이나 골라 잡는 데 성공하였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책을 고르는지 물어보는 내게 그는 별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이 책은 표지가 굉장히 깨끗하잖아? 반면, 이 책은 약간 정갈한 맛이 있지.” 내가 듣기엔 두 권의 책을 고른 두 가지 이유가 전혀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나보다 더 바보 같은 기준으로 책을 고르는 사람도 있구나.’
나와 동료가 고른 서로 다른 책은 우리를 다른 길로 갈라놓았다. 동료가 고른 책은 광주 민주화 항쟁을 겪은 아이들의 증언이 담긴 책이었고, 그는 책을 읽으며 광주에 하루 더 머무를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는 다음 날 어느 벽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는 시간까지도 보냈다고 한다. 내가 그곳에서 힘겹게 고른 책은 《녹색광선》이라는 제목의 초록색 소설책이었다. 작자나 책의 내용에 대해 아는 바 없이, 순전히 패브릭 재질의 양장본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질감 때문에 이 책을 골랐다. 처음엔 광주에 내려온 것을 기념하는 기념품 정도로 생각하고 골랐는데 나중에 보니 그것은 ‘최악의 시절’의 개막을 기념하는 기념품이 되어있었다. 아쉽게도 그 책은 나에게 아무런 변화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아주 우스운 이유로 서로 다른 책을 고르고, 그것이 두 사람의 행로를 바꾸는 것을 보면서 나는 책 한 권이 사람의 인생도 바꿀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책이 나를 구해줄 수도 있을 거란 기대를 하게 되었다. 물론 사람의 인생을 바꿀 정도의 선택은 사람이 할 수 없다. 그토록 책을 고르기가 힘이 들었던 난, 사람이 책을 고르는 것이 아닌, 책이 사람을 고르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울에 도착한 후, 예상했던대로 폭포수 같은 불행을 온몸으로 맞이하기 시작했다. 어그러지고 사라져버리는 건 한순간이었고 그 후부터는 주체할 수 없이 긴 시간만이 남아있었다. 난 역시 서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무엇도 원하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원하는 게 있는 것처럼 책을 들춰보기를 반복했다. 여전히 책을 고르는 것은 힘이 드는 작업이었다. 책이 나를 고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책을 고르지만, 그것은 결국 깊은 물속의 물고기가 이런저런 미끼를 고르는 것과 다르지 않은 모양이라는 것을 난 알고 있었다. 책을 무는 것은 사람이지만, 어디로 끌고 갈지는 책이 정하는 일이다.
몇 달에 걸친 기다림 끝에 내가 책에서 얻은 것은 고작 몇 줄의 깨달음이 전부였다. “권태… 그것은 생각 없이 생각하는데 생각하는 일의 피곤함이 따르는 것이다. 느낌 없이 느끼는데 느끼는 일의 괴로움이 따르는 것이다. 원하지 않으면서 원하는 것인데 원하게 만드는 일에 수반되는 구역질이 같이 오는 것이다.” 포루투갈의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의 이 짤막하고도 괴팍한 문장을 통해 나는 내가 이토록 열심히 책을 고르는 이유 정도를 겨우 알 수 있게 되었다.
물에 빠진 소시지처럼 권태로운 삶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난 후에야 조금씩 주변의 사물들이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마치 깊은 물속에서 올라올 때 수면 위의 태양이 점점 또렷해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사람은 스스로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고, 정말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이 괜찮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최악의 시절이 끝나갈 무렵의 난, 권태로움을 즐기는 단계에까지 성장해 있었다. 이름도 잘 모르는 프랑스 감독의 어느 권태로운 영화를 감상하며, 최악의 시절이 모두 지나갔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 확신은 특히 영화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짧고도 황홀한 장면에서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다. 해변가의 하늘을 붉게 물들이던 새빨간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넘어가면서 아주 짧은 순간 눈부신 녹색광선을 찬란하게 흩뿌리는 장면이었다. 신비롭고도 희망적인 장면을 보고 주인공은 숨이 멎을 듯,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그 영화의 제목 <녹색광선>이 어딘가 낯이 익은 제목이라는 생각은 영화가 모두 끝난 후에야 하게 되었다. 난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가서 내가 광주에서 골랐던 그 책의 이름을 다시 확인해보았다.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초록색 책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지!’ 하는 표정으로 책꽂이에 건방지게 기대어 서 있었다. 최악의 시절, 그 장엄한 개막을 알리던 이 책이 나에게 새로운 시작이 되어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터널의 입구에서 삼킨 낚시바늘이 나를 터널의 출구까지 끌고 왔을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난 배고픈 사람이 음식을 먹어치우듯 몇 개월 만에 비닐포장을 뜯고 책을 읽어내려갔다. 몇 페이지 지나지 않아 주인공이 처음으로 녹색광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내가 설렘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 건 몇 개월만에 처음이었다.
글·그림 한승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