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우붓에서 보낸 한철
채식의 성지, 우붓에서 보낸 한철
소설 《채식주의자》에서, 주인공이 채식을 선언하자 아버지는 그녀의 입에 억지로 고기를 밀어 넣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한국 사회에서 소신껏 먹고 산다는 건 대단히 힘든 일이다. 까다로운 채식주의자들로 넘쳐나는 우붓에 가서야 비로소 나는 내 몸을 위해 불편을 감내할 용기를 얻었다.
“너도 채식주의자니?”
피터는 목소리를 낮추고 은밀하게 물었다. 만일 당신이 1·4후퇴 때 서울에 남은 민간인인데, 사복 차림의 군인이 집에 들이닥쳐 국군과 인민군 중 어느 쪽을 응원하느냐고 물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고심 끝에 나는 회색지대를 선택한다.
“잠재적 채식주의자라 해두지. 사흘에 한 번씩 채식주의자가 되겠다고 결심하지만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까맣게 잊어버려.”
그는 내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는 대신 악수를 청한다.
“뭐 하러 고기를 끊어? 멍청한 소리 마. 환경보호? 풀들도 고통을 느껴. 소를 기르는 게 얼마나 환경파괴적인 일인지는 알아? 인간은 단백질이 필요해. 채식이 건강에 나쁘다는 건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야. 나는 요가니 채식이니 하는 것들이 지긋지긋해.”
피터는 요가 수행자처럼 양손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인다. 그리고는 살포시 가운뎃손가락을 올린다.
“하지만 너는 요가 센터와 비건 레스토랑을 운영하잖아.”
“돈이 되니까. 우붓의 관광객 중 80퍼센트는 채식주의자일걸. 그 인간들이 얼마나 재수 없는지 너도 겪어보면 알 거야. 아무튼 반갑다. 나랑 오리고기 먹으러 갈래?”
무슬림 국가 인도네시아에 속한 힌두 섬 발리에서 미국식 가명을 쓰며 사업을 하는 아랍계 유대인 피터와 육식 천국 대한민국에서 온 금음체질 잡식가인 나는 그렇게 ‘고기를 사랑하는 소수자 동맹’을 결성했다.
아무거나 잘 먹는 게 칭찬인
이상한 나라
‘금음체질’이라는 것에 대해 한마디 해두자. 그것은 죄 많은 식도락가에게 내려지는 사형선고 같은 것이다. 몇 해 전 나는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솔깃해서 사람의 체질을 여덟 가지로 분류해 각각 금할 음식을 알려준다는 한의원을 찾았다. 그리고 밀가루, 고기, 뿌리 음식, 유제품, 견과류, 기름, 커피, 조미료, 마늘, 소금, 설탕, 고추, 콩, 두부, 현미, 일부 해산물, 과일과 버섯, 비타민 A·D·E, 모든 약물, 술과 담배를 끊으라는 말을 들었다. 의사 선생, 나 보고 굶어 죽으라는 거요?
대한민국 직장에선 점심과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다. 이른바 ‘밥심’의 나라에서 남들과 다른 음식을 먹겠다는 선언은 스스로 정을 맞겠다고 모난 대가리를 굴 밖으로 내미는 짓이다. 한국 음식은 밥, 국, 찬이 기본인데 국은 대개 고기를 우려서 만든다. 통닭, 한우, 삼겹살, 족발 없이 이 나라에 우정이라는 게 존재할 수는 있을까? 나는 한동안 체질식을 해보려다가 음식 가린다고 타박받아, 깨작거린다고 걱정 들어, 같이 안 먹어준다고 원망 들어… 이래저래 피곤해져서 포기하고 말았다. 체질이니 뭐니 하는 건 잊어버리고 아무거나 잘 먹으면 보약이라는 옛말을 되새겼다.
그렇게 육식 국가의 모범시민으로 살아온 내가 어쩌다 보니 발리 우붓에 다섯 달을 머물게 되고, 알고 보니 그곳은 요가와 채식에 심취한 전세계 히피들의 성지였고, 그러다 보니 한국에선 크나큰 미덕이던 ‘아무거나 잘 먹는’ 태도가 오히려 미개해 보이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나는 육식 천국 대한민국에서 그랬듯 우붓의 룰에도 조용히 순응했다.
“나는 베지테리언이에요. 환경을 위해서죠. 한국에 초대해줘요. 그런데 거기 내가 먹을 게 있나요?”
“나는 비건이에요. 3년 전 몸이 아파서 시작했어요. 그 꿀 들어간 과자 좀 치워줄래요?”
“나, 나도 채식주의자가 되려고 노력해요(내가 간 식당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채식 요리인 경우에요)!”
반면 피터는 채식 독재 정당에 점령당한 우붓의 마지막 잡식주의 저항군처럼 치열하게 그들과 싸워댔다. 모든 손님들의 음식 취향을 심문하고 채식주의자들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우리는 함께 즐거이 고기를 먹었고,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이가 되었다. 가장 좋아하는 식당이 맥도날드라고 용감하게 고백하는 그에게 나는 무엇도 감출 필요가 없었다.
까다로움은
죄가 아니다
어느 날, 피터는 굶주리고 피곤한 상태에서 내 집을 방문했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닭고기 맛 라면과 달걀뿐이었다. 그는 석연찮은 표정이지만 좋다고 했다. 나는 라면을 끓였다. 봉지에 든 두 가지 스프와 한 가지 오일, 달걀, 그리고 정성을 담았다. 마침 면발도 쫄깃쫄깃 잘 삶아졌고 물 양도 적당했다. 하지만 피터는 실망한 눈치였다.
“난 오일 안 먹어. 오일 냄새 싫어해.”
배가 고파서 꼼짝도 못 하겠다던 그는 주섬주섬 비옷을 꿰어 입고 편의점으로 떠났다. 나는 모처럼 완벽하게 끓여진 라면을 개수대에 버리며 무안하고 착잡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깨달았다. 우붓의 룰은 ‘채식주의’가 아니라 ‘까다로움’이라는 사실을. 여기에 ‘아무거나 잘 먹는’ 진정한 잡식가는 없다. 갑자기 억울한 기분이 들고 오기가 샘솟았다. 이 사람들아, 까다롭기로 따지면 내가 일등이야. 감히 금음체질 앞에서 예민한 척을 해?
“미안합니다만, 저는 콩과 감자를 안 먹습니다. 견과류와 아보카도는 많이 먹으면 토하고, 복숭아를 만지면 두드러기가 나요. 베지테리언이라니 좋겠군요. 나는 치즈도 못 먹고 음식에 간도 못 하는데 말이죠. 내가 취할 수 있는 단백질원은 생선뿐인데 우붓은 해산물이 비싸군요. 우울하냐고 그만 물어봐요. 닷새 전 밀가루와 고기를 먹었더니 여태 똥이 안 나와서 몸이 무거운 것뿐이에요. 난 그냥 물만 마실게요. 자주 이러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이런 게 내가 음식에 대해 진정 하고 싶고, 해야 하는데, 참고 살아온 말들이다. 경쟁적으로 까다로운 우붓의 이방인들 사이에서, 나는 비로소 이런 말들을 꺼낼 수 있게 되었다. 살이 빠졌고, 몸이 가벼워졌으며, 절제 없이 먹는 잡식가들에게 위화감을 느끼게 되었다.
먹지 않을
자유
따져보면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함께 밥을 먹는 행위의 사회적 의미를 고려한다 해도, 내 입에 들어가는 것은 내 건강에 직결된 문제인데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은 폭력이며, 다 함께 메뉴를 정할 때 당연하다는 듯 채식을 배제하는 환경은 불행하다.
아무런 의무도 없는 여행자로 지내는 동안 나는 음식에 관한 중요한 사실을 또 한 가지 깨달았다. 사회생활이라는 명목으로 파블로프의 개처럼 공이 울리면 점심을 먹고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면서 우리가 불필요하게 많이 먹고 있다는 점이다.
우붓에서 5개월을 보내고 돌아왔을 때, 친구들은 내가 살이 너무 많이 빠졌다고, 얼굴이 볼품없다고 걱정했다. 그리고 뭘 자꾸 먹이려고 했다. 맵고, 푸짐하고, 펄펄 끓는 음식들을. 나는 여전히 호의를 거절하는 데 서툰 사람이지만 이따금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한다.
“배불러. 나는 그냥 풀만 조금 먹으면 돼. 나에게 안 먹을 자유를 줘.”
글·사진 이숙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