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바깥의 집

OUTSIDE OF WINDOW

똑똑하게 집을 고르려면 세입자가 챙겨야 할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낮과 밤에도 한 번씩 들러봐야 하고 수압은 괜찮은지, 녹물이 나오지는 않는지, 겨울에 난방비는 어느 정도 나오는지. 그런데 집을 보러 다니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른 곳에 있다. 사람에게도 그러하듯 집에도 첫인상이 있다. 문을 열면 펼쳐지는 창문 밖 풍경, 그것이 내게는 집의 인상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창문이 있는 집에 산다는 것은 계절에 따라 매일 조금씩 변하는 그림 액자를 갖는 것이니까.

마지막 세입자가
본 것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 | 이현아

이곳은 이제는 없는 장소이다. 재개발 사업 시행 인가를 받은 30년이 넘은 낡은 아파트는 집 소유주의 바람에 따르면 ‘드디어’ 허물어졌다. 나는 이 아파트의 마지막 세입자였다. 오래되어 삶의 흔적이 역력한, 너무나 역력해서 가끔은 외면하고 싶은 건물과 그보다 훨씬 큰 나무들이 있는 동네. 동네를 안다는 것은 굉장히 사소한 일에서 시작한다. 앞동에 사는 강아지 이름이 무엇인지, 근처 도서관에서는 한번에 몇 권의 책을 빌릴 수 있는지, 세탁소의 드라이크리닝 가격은 얼마인지, 상가 슈퍼에서는 카드 계산을 해주는지, 그리고 시시각각 바뀌는 창밖 계절의 풍경은 어떠한지. 단지를 둘러싼 5층 건물보다 큰 나무들은 건물과 하나인 듯 살아갔다. 은행나무에서 손톱 크기의 은행잎이 자라면 봄이었고, 그 나뭇잎들이 건물을 감싸서 건물과 한몸처럼 보이면 여름이었다. 나무 아래서 동네 할머니들이 은행을 주우면 가을이었고, 나무 그늘서 낮잠 자던 고양이들이 보이지 않으면 겨울이었다. 창밖의 풍경과 함께 모든 계절을 살아내서 그런 건지, 건방지게도 나는 그 동네를 안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은 없는 장소의 계절은 어떻게 흘러갈까. 새로운 건물이 지어지고 집값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아파트가 되면, 이 풍경도 거기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바다가
보이는 집

강원도 속초시 교동 | 하지민

도시에 살던 우리 부부는 아이가 태어나면서 남편의 고향에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남편과 오래도록 함께 살고 싶은 집은 산과 들 혹은 바다를 마당으로 품은 작은 집. 그렇지만 게으른 내게는 용기가 나지 않는 일이라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창밖 너머 풍경은 살 곳을 정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다. 아파트에 살더라도 아이가 계절의 변화를 보면서 함께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지금 우리 집은 빨래를 너는 베란다 밖으로 멀리 산과 바다가 보인다.
아침이면 아이와 함께 베란다로 나가 바깥구경을 한다. 창문을 열고 반짝반짝 빛나는 바다와 구름이 예쁜 하늘을 보며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신다. 다닥다닥 모여 있는 주택들, 짓다 말아 폐허가 된 못생긴 건물이 우뚝 솟아있어 영화 속 풍경처럼 아름답진 않지만 매일 다른 하늘과 바다와 산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는 건 소중한 일상의 한 장면이다(구름이 어찌나 예쁜지 바다보다 산보다도 더 아름답다.). 그러고 나선 같이 빨래를 넌다. 엄마 옆을 기어 다니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빨래를 건네줄 때면 정말 귀엽고 흐뭇하다.
바다 근처에 사는 우리 가족이 바다를 보는 일은 특별하진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바다를 보며 보내는 매일 아침이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창밖을 보며 아이가 “와~바다다!”하고 외칠 날을 기다린다.

하루를
시작하는 곳

독일 헤센 프랑크푸르트 | 소니아

하루의 시작은 늘 창문이다. 머리 위로 손을 뻗어 커튼을 여는 것으로 그 날의 첫 바깥 풍경을 확인한다. 봄, 가을처럼 볕이 좋은 날엔 작은 상자 텃밭에 빛을 양껏 쬐어줄 수 있어 좋고, 테라스에 앉아 느린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어 좋다. 하루 중 서너 시간은 재택근무로 시간을 보내는데 사무실과 주거 공간 사이 중간으로 삼는 공간이 바로 이 테라스다. 근처 숲으로 나갈 여유가 없을 때는 일 하다 지끈해진 머리를 식힐 수 있는 휴식처가 되기도 하고 초보 가드너의 생태 체험관이 되어주기도 한다. 봄에 뿌려둔 씨앗으로 얼마 전까지 잎채소와 허브를 심심찮게 수확했는데 여세를 몰아 내년 봄엔 토마토와 호박을 심어볼까 한다.
담요 없이 테라스에 앉아 있기 힘든 요즘엔 유리창 너머 짧은 겨울 볕을 안으로 들이는 데 만족하고 있다. 집으로 오르는 계단에서는 꼭 잠시 멈춰서는 습관이 있다. 둥근 창 밖으로 건너편 집의 다락과 정원수가 보이는 이 자리는 내게 계절의 지표다. 가지 끝에 싹을 틔워 한껏 푸르다 붉게 물이 든 지 보름께 남긴 사진이다. 하얗게 눈이 내려앉은 지붕을 볼 날도 머지 않았다.

30년 동안의
창문

충남 연기군 남면 | 전하나

30년째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 ‘조치원이랑 가까워’라고 말해주면 알아듣는 조그만 동네. 어느 날부터 사람들이 세종시라고 낯설게 부르는 동네. 몇 킬로미터 근처에는 새 건물들이 빽빽하고 예전에 다니던 중고등학교가 있던 곳에는 학교 대신 새 아파트가 들어섰다. 주변은 몇 년째 공사 중이다. 그 와중에 우리 집이 있는 동네는 개발에서 소외된 평범한 시골마을이다.
나는 2년 4개월째 서울에 있는 직장에서 155.58킬로미터 떨어진 이 작고 아득한 동네를 오가고 있다. 어두워지면 가게들이 문을 닫고 거리에 사람들도 드문 고요한 동네, 왜 이곳을 떠나지 못하나.
2층으로 지어진 집은 1층에는 마당이 없지만 대신 2층의 반쯤이 마당과 연결된 이상한 구조를 갖고 있다. 내방은 2층 귀퉁이 자리이다. 작은 나무들의 정수리를 훔쳐볼 수 있고, 큰 감나무들과 마주하는 높이이다. 원래는 할아버지가 쓰시던 방이었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방을 옮겼다. 원래 방에서는 몇 안 되는 이웃집 지붕들이 보이는 게 다였는데 지금의 방에서는 집 앞의 감나무, 은행나무, 논, 밭, 멀리 산까지도 보인다. 방안에는 커다란 창문 두 개가 있다. 어디에서였는지 세일할 때 산 흰색 커튼은 제 용도를 잊었는지 창문을 타고 햇볕이 그대로 쏟아진다. 회사에 다니지 않던 때는 그 창문 아래에서 잠들고 방안으로 햇볕이 쏟아지면 느지막이 깼다.

그렇게 일어나면 라디오를 켜는 일이 첫 번째였다. 김창완 아저씨의 나긋한 목소리를 듣다가, 다시 누워 껌뻑거리다가, 흥겨운 노래가 나오면 들썩거리다가, 그렇게 맞이하는 아침 시간이 좋았다. 부족함이 없었다.
방에는 조그만 화장실이 딸려 있다. 환풍기가 없어 겨울에도 창문을 조금 열어 놓아야 하고, 따듯한 물을 쓰려면 세면대 아래로 물이 새는, 분명 낡고 불편한 화장실인데 나는 여태 그 화장실만큼 아늑한 곳에 가본 적이 없다. 화장실 창문 밖 풍경은 똑같은 날이 없었다.
서울의 창밖 계절이 흐릿하다면 동네의 창밖 계절은 또렷하다. 서울의 거리에서는 내 것을 찾기가 어렵지만 동네에서는 남의 밭의 풀과 흙도 내 것같이 반갑고 익숙하다. 서울의 나는 자주 바쁘지만 동네에서의 나는 아주 느려도 괜찮다. 이런 사소한 몇 가지 이유들이 내가 떠나지 못하는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몇 달 후면 이곳을 떠나 낯선 동네로 이사하게 된다. 그곳에서 함께 살게 될 남자와 오늘은 눈이 많이 온다고 창밖의 계절이 지나가는 이야기를 하며 보낼 그곳에서의 겨울이 궁금해진다. 가끔 퇴근해서 들어올 때 군고구마와 귤을 사다주면 좋겠다. 그런 밤은 분명 따듯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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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현아

글·사진 이현아, 하지민, 전하나, 소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