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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평 — 티 마스터
무이산의 거친 바위틈에서 자라는 차나무처럼, 진평 역시 치열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신만의 향을 빚어냈다. 홀로 차 세계에 몰두하던 외로운 탐구의 시간을 지나, 이제는 일상의 풍경을 차의 재료로 삼아 사람들에게 건네며 함께 발걸음을 맞춘다. 그가 정성껏 일궈온 찻상 위에는 비로소 정직한 결실이 맺히기 시작했다.
선반에 놓인 술 종류가 꽤 다양하네요. 평소 술도 즐기시는 편인가요?
원래 술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차 개발하는 일을 하다 보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카페인을 너무 많이 섭취하게 되더라고요. 퇴근하고 집에 가서도 ‘입을 갖고 장난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차는 더 마실 수가 없으니 대체할 게 없을까 고민했죠. 그러다 위스키와 꼬냑에 빠지게 됐어요. 요즘은 퇴근 후에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한 잔씩 마시고 있어요.
처음엔 차보다 와인을 먼저 공부하셨다면서요. 와인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셨어요?
대학에서 관광경영을 전공하다 보니 자연스레 음료를 연구하는 대학원 연구실까지 가게 됐어요. 그곳에는 와인, 커피, 바텐더 등 정말 다양한 음료 직군의 분들이 계셨는데 저도 처음엔 와인을 공부하고 싶더라고요. 평범한 영화 장면이어도 와인잔이나 와인병만 있으면 왠지 근사해 보이는, 그런 모습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약간의 허세가 섞인 장면들이 멋져 보여서 와인을 선택했죠. 다른 술보다 고급스럽고 깊은 문화를 품고 있는 것 같아 더 공부하고 싶었거든요.
동경하던 길이었는데, 차로 방향을 돌리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당시에는 제 입이 엄청 예민한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와인을 공부해보니 알코올이 들어가는 순간 혀가 너무 무뎌져서, 남들만큼 테이스팅을 못하더라고요. ‘나는 왜 안될까’ 하는 좌절감이 오면서 이 길이 아닌가 고민하던 찰나였죠. 그때 지도 교수님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너는 알코올이 잘 안 맞는 것 같으니 차나 물을 공부해 봐라.”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문화생활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 결국 커피에서 차 쪽으로 시장이 옮겨갈 거라고 하시면서요. 거기서 더 발전하면 프리미엄 워터를 마시는 시대가 올 테니, 너무 좌절하지 말고 차 공부를 한번 해보라고 권유하셨어요. 사실 차가 갑자기 너무 맛있어서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일단 대학원 졸업은 해야 하니까 시작했는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맛은 물론이고 그 주변에 파생된 문화가 굉장히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됐죠. 몸도 건강해지는 기분이었고요.
차의 세계에 첫발을 내디딘 후, 깊이를 더하기 위해 선택한 첫 공부는 무엇이었나요?
어떻게 시작할까 고민하다가 인사동에 있는 ‘한국차인연합회’를 찾아갔어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차인들의 모임인데, 그 안에서 ‘차 품평반’이라는 과정을 듣게 됐어요. 연합회 소속도 아니었지만 일단 연락해 공부하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그렇게 물어물어 들어가 3년 정도를 그곳에서 공부했죠. 저는 연합회에서 차의 정의나 종류, 제다 과정(차를 만드는 과정) 같은 기본기부터 등급을 매기는 품평 기준까지, 본질적인 부분부터 차근차근 다시 배웠어요. 수강생 중에 저 빼고는 전부 아버지, 어머니뻘 되는 어른들이라 공부하는 내내 찻잔 설거지도 참 많이 했어요(웃음).
유일한 청년이었으니 고생 좀 하셨겠네요(웃음). 기억에 남는 산지 여행도 있었는지 궁금해요.
제가 교수님과 우롱차와 홍차의 발원지인 중국 무이산, 그리고 대만과 스리랑카까지 차 답사를 다녀왔는데요. 그중에서도 무이산이 저에게는 워낙 강력한 기억으로 남아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다시 그곳으로 공부를 하러 떠나게 되었죠.
무이산의 어떤 풍경이 그토록 마음을 흔들었나요?
산에 들어서는 순간 그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어요. 중국 10대 명산 중 유일한 바위산인데, 골짜기마다 펼쳐지는 장관이 마치 무협 영화의 한 장면 같거든요. 그런 거친 바위틈에서 차나무들이 자라는 모습이 그저 신기했고, 그곳에서 난 차를 마셔보니 맛 또한 무척 신비로웠죠. 당시에는 꽤 시골이었는데 사람들도 참 순수했어요. 이런 곳에서 공부하면 정말 재밌겠다 싶었죠. 원래는 석사를 마치고 차 학과가 있는 절강대학교 박사 과정에 가려던 참이었어요. 입학 전 1년의 예비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저는 그 시간을 가고 싶었던 무이산에서 보내기로 마음먹었어요. 어차피 박사 생활은 절강성(절강대학교가 있는 중국의 도시)에서 할 테니, 예비 과정만큼은 차의 산지인 무이산에서 겪어보고 싶었거든요. 다행히 좋은 기회가 닿아 그곳에서 현지 학생들과 교류하며 차에 대해 더 빠르게 배울 수 있었어요.
한국에서 이론으로 차를 배웠을 때와 현장에서 마주한 차는 또 달랐을 것 같아요.
네, 달랐죠. 이전에는 주로 차에 대한 설명을 듣고, 마셔보고, 어떤 차가 좋은 차인지 품평하는 수업이 대부분이었어요. 제다를 이론으로 배우긴 했지만, 실제로 보고 만지지 않는 이상 피부에 와닿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현지에 가니 찻잎을 따는 것부터 차를 만드는 전 과정을 직접 볼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제가 한국에서 ‘좋은 차’라고 믿었던 기준이 현지와는 다르더라고요. 세상이 바라보는 기준과 실제 차를 만드는 사람들의 기준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죠.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이 다르던가요?
흔히 무이산에서 나는 차를 ‘무이암차’라고 통칭하는데, 한국에 들어오는 차들은 대부분 맛이 구수해요. 유통 과정이 길다 보니 변질을 막기 위해 불을 강하게 대는 ‘다크 로스팅’ 방식을 택하거든요. 한 번 들여오면 두고두고 팔아야 하는 한국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현지에 가서 보니 과일 향이나 꽃 향이 나는 차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내가 알던 무이암차가 아닌데?’ 싶을 정도로요. 이런 차들을 한국에 꼭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올 결심을 굳혔어요. 사실 귀국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어요. 찻집을 열고 싶었고, 마침 지도 교수님이 한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라고 제안해 주시기도 했고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건 다 핑계고, 너무 외롭고 힘들었던 것 같아요. 스물아홉이라는 나이에 떠난 유학이었고, 그때 제 친구들은 이미 취업해서 진급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며 빠르게 앞서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저만 중국의 아주 깊은 시골에서 차나 마시고 있으니 ‘나만 멈춰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성장에 대한 욕구가 큰 저로서는, 그 정체된 기분을 버티기가 힘들었던 것 같아요. 물론 지금은 그때의 선택이 옳았다고 확신하지만요.
귀국 후 연남동에 ‘하심’이라는 첫 공간을 꾸렸죠. 당시 어떤 마음으로 찻집을 열었나요?
당시의 저는 세상 물정을 하나도 모르는 상태였어요. 대학원 조교 생활 외엔 제대로 된 사회 경험이 없었거든요.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철이 덜 든 채 부모님께 도움을 받아 무작정 연남동에 찻집을 열었어요. 아무런 준비도, 조사도 없이 시작한 거예요. 그때 제가 선보였던 건 요즘의 ‘티 오마카세’와 비슷한 형태였어요. 그런 개념이 생소하던 시절이었지만, 인당 1만 5천 원에서 2만 원 정도를 받고 여러 종류의 차를 코스처럼 내어드렸죠. 신기하게도 장사는 잘 됐어요. 예약이 늘 꽉 차 있었고 사람들도 많이 찾아왔거든요. 그런데 사업성 있는 운영을 해본 적이 없다 보니 실속이 없었어요. 몸은 바쁜데 공간을 유지할 최소한의 비용도 안 남는 구조였던 거죠.
심리적인 압박감도 상당했을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로부터 ‘거봐, 내 그럴 줄 알았어’라는 식의 말을 듣는 것만큼은 무엇보다 싫었어요. 부모님께 더는 기댈 수 없어서 2천만 원을 대출받았어요. 돈을 빌리고 나니 고민이 되더라고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찻집을 운영하면 결과는 잘 안 될 것이 뻔했으니까요. ‘차는 포기할 수 없는데, 대체 어떤 식으로 보여줘야 할까?’ 그때 제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좋은 차를 친구들에게 우려주면 친구들은 제가 주니까 예의상 맛있다고 한 거지, 사실 마음으로 즐기지는 못했을 수도 있거든요. 비유하자면 믹스커피에 익숙한 사람에게 최고급 스페셜티 커피를 내밀며 “이거 진짜 맛있지?”라고 강요해온 셈인 거예요. 그제야 제 기준의 좋은 차만 고집했다는 걸 깨달았고, 대중의 입맛에 한 발짝 마중 나가는 비즈니스를 해보자고 결심했어요.
그 ‘마중 나가는 차’의 해답은 어떻게 찾으셨어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즐기는 아메리카노를 관찰하며 그 흐름을 되짚어봤어요. 커피가 대중화된 과정을 살펴보니 분명한 순서가 있더라고요. 처음엔 프라푸치노나 카라멜 마키아토 같은 달콤한 음료로 시작해 달지 않은 라테로 옮겨갔고, 라테를 즐기다가 입안이 텁텁해질 때쯤 비로소 깔끔한 아메리카노를 찾기 시작했죠. 거기서 취향이 더 깊어지면 핸드드립으로 넘어가고요. 차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요. 대중에게 차를 더 친숙하게 전하기 위해, 차의 세계에서 카라멜 마키아토 같은 역할을 해줄 ‘밀크티’라는 키워드를 정립했어요. 그렇게 기존 찻집 하심을 리뉴얼해 ‘오렌지 리프’라는 새로운 밀크티 브랜드를 다시 세상에 내놓게 되었어요.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선택한 메뉴가 밀크티였군요. 시장의 반응은 어땠어요?
처음부터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연남동이라는 위치 덕분에 주말 데이트 손님이나 동네 단골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정도였죠. 그러다 사업을 잘하는 친구와 의기투합해 연희동에 두 번째 매장을 냈는데, 결과는 안 좋았어요. 큰 비용을 들였지만 거의 망하다시피 했거든요. 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고민하다 당시 유행하던 크라우드 펀딩을 떠올렸어요. 유통이 까다로운 밀크티 대신, 우유에 타 먹을 수 있는 ‘밀크티 베이스’를 연구해 선보였는데 그게 예상치 못한 큰 호응을 얻었어요. 결국 매장 운영과 리뉴얼, 펀딩까지 거치며 배운 것은 내가 진심이라고 해서 대중이 다 알아주는 건 아니라는 것이었어요. 지금은 티 오마카세도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지만, 10년 전에는 너무 이른 시도였던 거예요. 대중의 흐름을 예측하더라도 반 발짝 정도 앞서가야 하는데, 당시의 저는 두세 발짝은 앞서가 있었던 것 같아요.
과거의 여러 시도를 지나온 지금은 어떤 일에 몰두하고 계세요?
지금은 한 회사에서 차를 개발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마치 향수를 만들 듯, 어떤 대상에서 영감을 받으면 그에 맞는 원료를 잡고 향을 찾아 블렌딩하거나 가향하는 작업을 하죠. 제가 받은 영감을 차라는 매개체로 온전히 표현해내는 일, 그리고 그와 어울리는 디저트를 기획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어요.
차를 만드는 영감의 조각들은 주로 어디서 찾아내시나요?
정말 다양해요.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떠오르기도 하고, 운동을 하거나 시장에 갔을 때 찾아오기도 하죠. 얼마 전에는 러닝을 하다가 우연히 호박 넝쿨을 보게 됐어요. 마침 개발 중인 차가 있었는데, 무언가 향 하나가 부족해서 한참을 고민하던 중이었거든요. 그 넝쿨을 보는 순간 ‘아, 호박 향을 넣으면 정말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스쳤고, 결국 그 차에는 호박의 향이 입혀졌죠.
일상의 아주 사소한 풍경조차 차의 재료가 되는 셈이네요.
멋진 음악을 듣다가 영감을 받는다고 하면 근사해 보일 텐데, 저는 주로 일상에서 얻는 편이에요(웃음). 머릿속이 늘 차 생각뿐이라 제 시야에 일종의 필터가 씌워져 있는 것 같아요. 무엇을 보든 ‘이걸 차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건 차와 함께 먹는 디저트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질문이 항상 따라다니거든요.
최근에는 제과도 배우기 시작하셨다고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현재 회사에서 차 개발 팀장을 맡다가, 최근 디저트와 생산 관리팀까지 함께 총괄하게 됐어요. 사실 기술적인 부분을 속속들이 몰라도 관리자 역할을 할 수는 있겠지만 제 성격상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현장 팀원들과 깊이 있게 소통하려면, 적어도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고충만큼은 제가 직접 겪어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팀원들이 주로 프랑스 제과를 공부한 친구들이라 저는 조금 다른 시각을 더하고 싶어 일본의 나카무라 아카데미에서 과정을 마쳤어요. 제가 직접 배우는 모습을 보며 팀원들도 ‘이 사람이 정말 우리와 소통하려고 노력하는구나’라고 느껴준 것 같아요. 덕분에 훨씬 빠르게 서로 마음을 열 수 있었죠.
요즘 즐겨 찾는 차와 음식의 조합이 있다면요?
요즘은 딤섬이나 김밥 같은 음식에 차를 곁들이는 걸 즐겨요. 특히 향이 강한 딤섬이나 김밥에는 그 맛을 뚫고 나올 만큼 힘이 있는 우롱차가 아주 잘 어울립니다. 입안에 남은 기름기를 깔끔하게 씻어내 주는 보이차와의 조합도 훌륭하고요.
낡은 구옥을 월세로 계약하고, 직접 사비를 들여 수리까지 하며 방 한 칸에 차실 ‘성수 티룸’을 만드셨어요. 이 집의 어떤 면이 마음에 들었나요?
지금 다니는 회사가 성수로 이전하게 되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이사를 준비하게 됐어요. 집을 보러 왔을 때 무엇보다 옛스러운 천장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사실 집 상태는 정말 좋지 않았어요. 천장은 다 헐어서 무너져 내리고 있었죠. 재개발 지역이라 언제든 나가야 할 수도 있는 곳이고, 아마 제가 이 40년 된 다세대 주택의 마지막 세입자가 될 거예요.
거실과 차실의 분위기를 일부러 다르게 꾸미신 거죠?
맞아요. 거실에 있는 가구들은 새로 산 게 하나도 없어요. 원래 제가 오랫동안 써오며 가지고 있던 것들이죠. 반면 안쪽 차실은 현재의 제 모습을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요즘 회사에서 일하면서 새로운 미감들을 배우고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깊게 고민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거실을 비롯한 나머지 공간은 과거의 제가 좋아했던 것들로 두고, 차실은 현재 제가 관심 있는 디자인과 미감이 잘 드러나도록 꾸며서 두 공간을 분리해 두었어요.
차실은 혼자만의 몰입을 넘어 누군가와 마주 앉기 위해 꾸린 공간일 텐데요. 이토록 정성을 다해 사람들에게 차를 내어주고, 또 나누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취미로서 차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해요. 예쁜 다구가 주는 미학적인 즐거움부터 그 안에 담긴 깊은 문화까지, 차 한 잔이 담고 있는 게 워낙 많으니까요. 특히 제 삶에서 좋았던 건 가족과의 변화예요. 아들만 둘인 저희 집은 분위기가 꽤 무뚝뚝한 편이거든요. 제 동생은 저보다 더하고요. 아들만 있는 집이 으레 그렇듯 어릴 땐 말썽을 피우고, 커서는 말수가 급격히 줄어들잖아요. 그런데 제가 차 공부를 하면서 다구를 하나둘 모으고, 부모님께 자랑도 하고 싶은 마음에 차를 우려드리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저녁 식사 후 같이 모여 차 마시는 습관으로 이어졌어요. 차를 마시면 자연스럽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게 돼요. 밤늦게 술이나 커피를 마시는 건 부담스럽지만 차는 얼마든지 가능하니까요. 각자 방으로 흩어지는 대신 거실에 모여 앉는 그 시간이 참 좋더라고요. 그래서 젊은 친구들을 만나면 꼭 이야기해요. 자식이 차 마시자는데 거절할 부모님은 없으니, 그런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고요.
말씀처럼 차 한 잔을 두고 관계를 맺는 게 커피나 술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더라고요.
요즘 차를 마시며 느끼는 건, 차 안에 커피와 소주, 와인의 문화가 다 섞여 있다는 점이에요. 기품 있고 우아한 면은 와인을 닮았고, 작은 잔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나누는 모습은 소주를 마시는 기분도 들게 하죠. 그러면서 커피처럼 맛도 있고 카페인 덕분에 정신을 깨워주는 기호 음료의 역할도 충실히 해내거든요. 이 세 가지 매력이 다 들어 있으니 좋아하지 않을 수 없죠. 또 차를 마시려면 물을 끓이고, 찻잎을 넣고, 물을 붓는 반복적인 과정을 거쳐야 하잖아요. 그 행위에 집중하다 보면 머릿속에 엉켜 있던 생각들이 자연스레 정리되곤 해요. 수행도 결국 이런 반복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라는데, 저는 차를 내리는 그 일련의 시간 자체가 참 매력적이에요.
보통 차라고 하면 정적인 시간을 떠올리잖아요. 진평 씨는 오히려 차가 더 활동적이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차는 어렵거나 꼭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들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전통적인 이미지 때문에 조금은 고리타분하게 느끼는 분들도 계시고요. 요가나 명상을 통해 차가 조금 더 친숙해지긴 했지만, 저는 차가 지금보다 훨씬 더 활동적인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러닝 후에 차를 마시거나 캠핑을 가서 즐길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날씨가 좋을 땐 차실 대신 옥탑에 올라가 편하게 마시곤 해요. 차는 결코 거창한 게 아니에요. 일상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속에서 누구나 쉽고 편하게 즐기는 문화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차가 일상에 자리 잡기 위해, 스스로 부여한 역할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두 가지 측면에서 역할을 고민해요. 우선 소비자분들께는 차를 라이프스타일로 확장해 드리고 싶은데, 가장 빠른 방법은 역시 음식이나 디저트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티 페어링을 꾸준히 연구하고 있고, 지금 맡은 브랜드에서도 커피 없이 티와 디저트만으로 구성한 메뉴를 선보이며 저변을 넓히려고 노력 중이에요. 또 하나는 차를 업으로 삼는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역할이에요. 제가 첫 회사에 입사할 때도 ‘차 전문가’로 제안을 받았는데, ‘티 소믈리에’라는 직군을 만들어달라고 직접 요청했거든요. 사실 차를 공부해도 결국 일자리가 찻집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아요. 차를 전공해 성공하고, 대기업 수준의 연봉을 받는 사례가 나와야 후배들도 꿈을 가질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 분야의 직장인으로서 정말 높은 연봉을 받아보고 싶어요. 그래야 제 발자취를 보고 조금 더 확신을 갖고 이 길을 선택할 수 있을 테니까요.
구옥이 품고 있던 옛 흔적을 발견하고,
그 결에 맞춰 자신의 철학을 하나씩 채워 넣은 진평의 성수 티룸.
다세대 주택 특유의 옛날 천장은 어릴 적 큰아버지 댁을 떠올리게 합니다. 아파트에서만 자란 제게 낡은 집의 쿰쿰한 공기는 오히려 친근한 기억이었죠. 빈티지와 앤티크를 좋아하는 저는, 이 천장을 보는 순간 ‘무조건 여기다’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중국 운남성에서 어렵게 공수해 온 마차 바퀴는 본래 주인의 소장품이었어요. 찻자리로 쓰고 싶어 간곡히 청한 끝에 비행기 승무원이 만류할 정도의 무게를 견디며 직접 들고 왔죠. 그 위 무쇠 주전자는 인사동에서 발견한 것이에요. 차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물인데, 이 주전자에 물을 끓이면 물맛이 한결 달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저에겐 ‘나와 차를 마시면 누구나 차를 좋아하게 된다’라는 믿음이 있어요. 테이블 위 다섯 개의 붉은 점은 차를 통해 맺고 싶은 열매를 시각화한 것이에요. 차가 낯선 분들에게 그 매력을 오롯이 전해, 각자의 일상에 작은 변화가 시작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어요.
에디터 황진아
포토그래퍼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