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A Journey through Someone’s Place
사람들은 자신에게 맞는 여행의 방식을 찾기 위해 때론 시간을 낭비하고, 돈을 쓴다. 여행에도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연습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여행지의 숙소를 선택하는 법이다. 여행지에서 구경할 곳보다 머무는 곳이 중요해진 것도 그 후의 일이다. 몇 번의 긴 여행 뒤 나는 현지인의 집을 빌릴 수 있는 비앤비B&B를 주로 찾게 됐다. 방이 아닌 집 전체를 빌릴 경우, 주인은 보통 다른 집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직접 만나지 못할 때도 있었다. 사실 나는 불편하긴 해도 그런 경우를 좋아하는데, 알지 못하는 이의 집에서 그 사람을 상상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기 때문이다. 숙소를 예약하는 곳에 주인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적혀 있긴 하지만, 집에서 찾는 흔적은 글보다 솔직했다.
여름 휴가 동안 파리에서 머문 곳은 오래된 물건을 좋아하는 패션 디자이 너의 집이었다. 처음엔 그렇게 알고 갔지만, 나중에는 ‘물건을 못 버리는 사람의 집’이라고 혼자 이름 붙였다. 선반과 책장에는 성냥, 미니 피규어, 해변에서 주운 듯한 돌 등 이국의 정취를 담고 있는 자잘한 소품이 수북했고, 침실 벽에는 빈티지 가방이 액자처럼 걸려있었다. 책장에 있는 여행 서적과 갖가지 전단을 모아 만들어놓은 스크랩북을 미루어보면 모두 여행지에서산 물건인 듯했다. 그 물건들 사이에는 고양이를 위한 장난감과 잡동사니도 쌓여있었다.
흐린 날이 이어지다가 잠깐 날이 갠 오후가 기억난다. 창문을 열러 갔는데, 빛이 드는 자리마다 비슷한 물건이 보였다. 고양이 사료 그릇과 스크래처(고양이가 발톱을 긁기 위해 사용하는 장난감)였다. 자연스레 그곳에서 볕을 즐길 그녀의 고양이가 떠올랐고 그를 위해 물건들을 이곳에 놓았을 집주인을 생각했다. 자세를 낮춰 사진을 찍던 내 눈에 멋진 앤틱 소파의 뒷모습이 보였다. 고양이가 다 뜯어놓아 여기저기 솜이 튀어나온 의자는 흉하지 않고 사랑스러웠다.
아마도 그녀는 여행을 사랑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빠른 걸음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잡아두는 곳에서 오랫동안 서 있기도 했을 것이다. 자신이 가져온 물건들이 놓일 집을, 혼자 있을 고양이를 생각하며 깊은 그리움에 빠지기도 했을 것이다. 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해도, 그 집에 있는 동안 상상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나는 마음껏 그들을 읽었다. 몇 달 전 동료가 휴가를 가서 일주일 정도 사무실을 비운 적이 있었다. 떠나기 전 나는 그녀에게 한 가지 부탁을 받았다. 사무실의 식물들에 물을 챙겨달라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꽤 많은 식물이 있었는데 그들의 존재를 눈치챈 적은 별로 없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내게 식물은 그림에 가까웠다. 창문 밖으로는 멋없는 유리 건물만 보이는 이 동네의 풍경에 활기를 넣어주는 초록색 그림. 그녀가 자리를 비운 동안, 일하다가도 번뜩 ‘물주기’ 미션이 생각나서 선인장과 화분을 찾아다니며 물을 줬다.
몇 번 까먹은 적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어쩐지 죄책감이 들었다. 금방이라도 시든 얼굴을 내밀까 두렵기도 했다. 어쨌든 그녀가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나는 책임져서 물을 주지 않아도 됐지만 우리가 이 공간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는 것, 여기서 함께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종종 생각하게 됐다. 우연이었을까. 이번 여행의 숙소에서도 나는 집주인들에게 같은 미션을 받았다. 머무는 동안 숙소의 식물을 부탁한 것이다. 온전히 그곳에서 생활을 꾸리지 않는 집들은 군데군데 생기를 잃는다. 주로 부엌이나 욕실을 보면 드러나는데, 집 안에 있는 식물도 마찬가지였다.
리옹에서 머물던 곳의 주인은 물을 줄 날짜와 물의 양까지 꼼꼼하게 적어 화분에 붙여놓았다. 나는 그녀가 건네준 화분용 물컵을 들고 아침마다 화분의 메모를 찾아다녔다. 물을 주면서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기도 했고 그날의 계획을 천천히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아침을 맞을 때면, 가끔 기분이 이상해졌다. 나의 진짜 일상과 생활은 서울에 있는 우리 집에 있는데, 겉모습만 본 채 지나치는 낯선 도시의 낯선 건물, 그 안의 삶 안에 내가 있는 듯한 착각이 자꾸만 들었다.
여행은 일상성을 잃어버리는 일이어서 그랬을까. 일정이 막바지에 이르면 언제나 내게 여행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건 여행의 만족도와는 상관없는 얘기다. 떠나올수록 남겨진 것들은 짙어졌고, 짙어지는 것들이 그리웠다. 그건 대부분 나의 진짜 생활을 둘러싼 것이었다. 좋아하는 세제 향이 밴 침구, 익숙한 얼굴들, 고양이에게 한쪽을 내줘야 하는 책상처럼. 여행이 끝나면 늘 바뀐 일상의 균형을 찾느라 여독에 시달리던 나는 그리 힘들지 않게 생활 속으로 돌아왔다. 여정이 집에서 집으로 이어져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곳과 이곳의 삶이 다르지 않게 느껴졌고, 더 소중한 것을 찾기보다 그저 곁에 있는 것들을 돌보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어떤 곳에 있을 때, 그 주변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파리의 집에서 발견한 음반
Bishop Allen <The Broken String>
파리의 집에 있던 CD. 비숍 앨런Bishop Allen은 브루클린과 뉴욕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인디 록 밴드다. <The Broken String>은 2007년에 발매된 앨범. 무겁지 않고 밝게 이어지는 노래의 활기가 파리의 집과 어울렸다. 아침에는 마지막 트랙인 ‘The News From Your Bed’를, 밤에는 7번 트랙인 ‘Butterfly Nets’를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다.
리옹의 집에서 발견한 책
Christian Chaize 《Time And Tide, Photographs from Praia Piquinia》
리옹에서 머문 집에는 해변을 담은 큰 사진 액자가 걸려있었다. 그 사진을 담은 사진집이 있었는데 집주인이 사진을 찍은 사람이 포토그래퍼인 자신의 아버지라 소개했다. 크리스티앙 셰즈는 8년에 걸쳐 남쪽의 포르투갈 해안을 같은 곳에서 찍었다. 그의 사진에는 밀물과 썰물, 빛, 날씨, 사람들이 담겨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휴가지에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생각을 가다듬게 하는 책이다.
글 사진 이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