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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자유롭기 위해 떠나는 것, 몸만 아니라 생각도 자유롭게 풀어둔다. 아주 오래전 첫 전주 여행을 추억하며, 철학자들을 만나는 기차 여행, 그리고 인도 뭄바이의 빛과 어둠을 따라갔다.
스물네 살에 처음 전주에 갔다. 나는 막 한 잡지사에 입사한 참이었는데, 다음 달에 회사가 망해 버렸다. 하지만 크게 충격받지는 않았던 것 같다. 좀 막막하긴 했지만 아직 젊으니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간이 난 김에 친구와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전라도를 향해서.
우리의 첫 목적지는 전주였다. 전주는 작고 단정하고 고풍스러운 도시였다. 한옥마을을 걷고 전동성당을 구경하고 비빔밥을 먹었다. 우리는 감탄했다. 이런 곳이 있었구나. 우리나라에도 이런 데가 있었어. 뒤이어 우리는 담양에 가고 광주에 가고 목포에 가고 구례에 가고 변산에 갔다. 잠은 찜질방이나 싸구려 모텔에서 잤다.
7월 말, 숨 막히게 더운 때였다. 딱히 가야 할 곳도, 가고 싶은 곳도 없었기에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여기 어때? 저긴 어떨까?’ 하고 다음 목적지를 정했다. 그 자유로운 여행은 고작 며칠이었지만 기억은 여전히 색이 바래지 않는다. 전주의 객사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던 젊은 사람들, 타 죽을 것 같던 담양의 메타세쿼이아길, 대나무 숲 평상에 누워 즐긴 낮잠, 끝내주게 맛있던 목포의 백반, 유달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보이던 해 질 무렵의 바다, 낡은 극장에서 맥주를 홀짝이며 본 《그놈은 멋있었다》, 구례 민박집 근처의 고요한 저수지 풍경, 생각지도 못했던 광주의 화려함, 변산 바다에서 잃어버린 친구의 선글라스. 돌아오는 버스에서 회사 선배의 전화를 받았다. 잡지를 다시 발간하기로 했으니 돌아오라고 했다. 또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지 않아도 좋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여행의 가장 좋은 점은 몸이 자유로워지는 만큼 생각도 자유로워진다는 거다. 에릭 와이너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라는 책에서 바로 그런 여행을 한다. 기차에 몸을 싣고 전 세계 철학자들과 사상가들, 작가들의 여정을 좇는 동시에, 그곳에서 그들의 책을 읽으며 생각이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경험을 하는 여행. 나는 이 책을 무척 좋아해서 여러 번 다시 읽었다. 소크라테스, 니체, 간디, 루소, 소로, 쇼펜하우어, 공자, 몽테뉴 등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이들의 철학과 사상을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맛보기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벽돌 같은 저서를 읽지 않고도 아는 체할 수 있다),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글귀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에릭 와이너는 루소의 박물관이 있는 스위스의 작은 마을 크레페리에 앉아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읽다가, 책에 등장한 섬 생피에르를 향해 충동적으로 떠난다. 소로가 사랑한 콩코드에서 월든 숲을 산책하고 스타벅스에 앉아 소로의 일기를 읽기도 한다. 에피쿠로스의 정원을 찾아간 그리스의 한 카페에서는 맥주를 마시며 에피쿠로스가 말한 쾌락에 대해 생각한다. 이 얼마나 멋진 여행인가.
책에 등장하는 이들의 철학과 사상은 그들이 태어난 장소와 시대, 환경만큼이나 다르다. 에릭 와이너는 이렇게 다른 색과 크기로 빛나는 구슬들을 하나의 목걸이로 솜씨 좋게 꿰어낸다. 나는 니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에피쿠로스의 글귀에 밑줄을 긋고, 세이 쇼나곤에 가슴 설레며, 소로의 주장에 감명받는다. 뒤죽박죽인 것 같지만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명제가 있다. 바로 철학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라는 것. 그것도 좋은 질문이라는 것.
얼마 전 마음에 드는 인도 영화 한 편을 봤다.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2024)은 인도 영화에 대한 나의 선입견을 무너뜨린다. 이 영화에는 발리우드 영화를 상상할 때 떠올림 직한 갑작스러운 노래와 춤도, 허황된 줄거리도, 과장된 연기도 없다. 아니, 인도도 이런 영화 만들 수 있었잖아!
영화의 주인공은 뭄바이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30대 여성 프라바. 얼굴도 보지 않고 중매결혼을 했으나 독일로 일하러 떠난 남편은 오랜 세월 소식이 없다. 함께 일하는 의사는 프라바를 짝사랑하고 그 역시 마음이 없지는 않지만, 결혼한 여자라는 처지에 구애를 거절한다. 어느 날 독일에서 발신인이 찍히지 않은 소포가 도착한다. 열어보니 전기밥솥이다. 어쩌면 남편이 보낸 것인지도 모른다. 외로운 밤, 프라바는 밥솥을 끌어안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영화는 우기인 뭄바이의 밤거리 풍경을 시처럼, 음악처럼 비춘다. 전철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 낡은 건물들, 어딜 가나 조명은 충분히 밝지 않고, 포장되지 않은 길은 진흙탕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잠들지 않은 채 도시를 타오르게 하고 있다. 그 모습은 생명력이 넘쳐 보이기도 하지만, 또 반대로 견디기 버거워 보이기도 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 너무 뜨겁고 너무 습한 공기, 너무 밝고 너무 시끄러운 장소.
프라바와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젊은 아누는 이교도 남자친구와 몰래 사랑을 나눌 곳을 찾아 늦게까지 그 혼란스러운 거리를 헤맨다. 또 다른 동료인 나이 든 파르바티는 유일한 재산인 낡은 집을 빼앗길 처지에 놓인다. 집을 잃고, 외로움에 몸부림치고, 사랑을 허락받지 못한 각기 다른 나이대의 세 여자에게 뭄바이는 삶의 터전이면서도 그들이 가진 빛을 잃게 만드는 도시인 것 같다.
나는 20년쯤 전에 뭄바이에 간 적이 있다. 뭄바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고 어떤 기대도 없었다. 뭄바이에 대한 내 인상은 카오스 그 자체였다. 21세기에도 이런 곳이 다 있나 싶었다. 90세가 다 된 미국 참전 군인들이 여전히 노르망디에 상륙하던 순간의 냄새까지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처럼, 나 역시 뭄바이의 모든 것을 잊지 못한다. 그때도 우기였다. 거리는 차와 오토바이와 사람들과 가지가 마구 뻗친 커다란 나무들로 가득했다. 여자들은 대개 전통 의상을 입고 있었고, 어디서나 짙은 어둠 속에서 하얀 눈동자들만 반짝거렸다. 저녁 무렵 갑자기 비가 미친 듯이 쏟아졌다. 숙소가 있는 건물 입구에는 노숙인들이 그득했다. 아침에 일어나자 흐린 창밖에서 까마귀가 깍깍 울었다. 거리는 더러웠고 노숙인들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었다. 밤 기차를 타러 간 뭄바이 기차역 바닥에는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깔고 앉거나 눕거나 밥을 먹고 있었다. 전쟁이라도 난 건가 싶었다. 영화 속 뭄바이는 20여 년 전 그 뭄바이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나는 문득 그 도시가 그리워지기도 했고, 여전히 진저리가 나기도 했다.
집을 잃은 파르바티는 체념하고 고향에 있는 옛집으로 돌아간다. 얼마 후 프라바와 아누가 파르바티를 만나러 갔을 때, 파르바티는 새로운 직장을 구해 씩씩하게 살고 있다. 혼란스럽고 화려한, 그러나 어쩐지 어둠이 가득한 뭄바이와는 다른 이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프라바와 아누는 자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프라바는 해변에 떠내려온 이름 모를 남자를 구해준 뒤, 그가 자신의 남편이 되는 환상적인 체험을 한다. 아누는 숲속에서 이교도 남자친구와 자유롭게 껴안을 수 있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여자들은 희미한 전구로 불을 밝힌 해변의 술집에 나란히 앉아 웃는다. 그들은 아주 오랜만에 느긋함을 되찾은 것 같다.
오래전처럼 그렇게 자유로운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저 이름 하나와 설레는 마음만 들고 떠나는 여행. 철학이라고도 몽상이라고도 할 수 없는 생각들을 하며 느긋하게 걷고 움직이는 여행. 무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보고 느끼기 위해 떠나는 여행. 그곳에서 나는 무엇을 발견하고, 누구를 만나게 될까? 그곳에서 돌아온 후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아마 그 여행에서 돌아온 후 프라바와 아누 역시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프라바는 소식 없는 남편 기다리는 일을 드디어 그만두지 않을까? 아누는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지 않을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뭄바이라는 도시에서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삶을 꿋꿋이 헤쳐나가지 않을까?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이 아름답고도 모호한 제목은 무엇을 의미할까? 프라바와 아누는 무엇을 빛이라 상상했을까? 그들은 그 빛을 찾았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들이, 그들 자신이 빛이 아닐까?
글 한수희
일러스트 점선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