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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라 — 금속공예가, 미호미두 · 김정민 — 혜자
그림 같은 한옥이 옹기종기 모인 마을, 북촌. 아파트 숲을 지나 이곳에 닿으면 자연스레 이 동네에 사는 이들의 얼굴이 궁금해진다. 그렇게 만난 사람은 금속공예가이자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미호미두MIHOMIDU’를 운영하는 아미라, 그리고 스킨케어 브랜드 ‘혜자Hyeja’를 이끄는 정민. 이국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한옥은 두 사람과 꼭 닮았다. 다양한 문화권을 오가며 자신의 근원을 묻고 또 물었던 존재들. 이곳은 이들이 비로소 나답다 여기는 안전한 세계다.
살구나무 곁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네요. 집 중앙에 살아 있는 나무가 있다니 신기해요.
아미라 우리가 앉아 있는 거실은 원래 마당이었대요. 확장 공사를 하면서 거실이 생긴 건데, 마당에 있는 살구나무를 없애지 않고 집 천장을 뚫어 그대로 키운 거예요. 테라스에 올라가면 이 나무에서 이어진 가지를 볼 수 있어요.
정민 공사하면서 나무를 자를 수도 있었을 텐데 이렇게 집 안에 들이고 키운다는 게 너무 아름답게 느껴져요. 주변 환경을 해치지 않고도 건축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죠. 저는 가끔 이 나무를 껴안아요. 그러면 좋은 에너지를 받을 수 있다고 장인어른이 말씀해 주셨거든요(웃음).
(웃음) 물도 직접 주시는 거예요?
아미라 네. 일주일에 한두 번 생각날 때요. 나무 윗부분은 바깥과 닿아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비바람도 맞으며 크는 것 같아요. 신기하게 집 안에 있는 아래쪽 가지에는 잎이 자라지 않아요. 나무도 위쪽이 바깥과 연결된 걸 알고 있나 봐요.
똑똑한 나무네요. 두 분이 이곳에서 함께 산 지는 얼마나 되었어요?
아미라 저는 서울 연희동에서, 정민 씨는 제주도에서 지내다 함께 살 집을 찾았고 작년 가을에 입주했어요. 각자의 집을 정리하다 보니 입주 이후로도 두 달 넘게 이사 여정이 계속됐고, 이제야 생활이 조금 안정됐네요. 여긴 우리가 첫 번째로 본 집이었는데 마음에 들어서 바로 계약하게 됐어요. 이탈리아 건축가가 한국인 아내랑 아이들과 거주할 목적으로 지은 현대식 한옥인데요, 여러 나라 문화가 섞인 느낌이 꼭 저희 같았죠.
처음부터 북촌의 한옥을 찾았던 건가요?
정민 집을 찾다 보니 북촌에 오게 된 건데요. 사실 북촌은 언덕도 많고 주차도 어려워서 살기 편한 곳은 아니에요. 오래전부터 한옥에 살고 싶던 차에, 마침 동서양의 조화가 이뤄진 이 집을 발견하게 된 거예요. 저는 이 집에 살며 북촌을 경험해 보면서 제 나름의 방식으로 사라지는 우리의 전통을 지키고 싶어요.
아미라 북촌에 오니까 시간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서 좋아요. 가까운 광화문만 가도 빌딩 숲에,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가는데 한적한 이곳은 완전히 다른 세계 같아요.
느림과 여유로움이 있는 동네죠. 정민 씨는 왜 오래전부터 한옥에 살아보고 싶었나요?
정민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열세 살부터 9년간 뉴질랜드에서 유학 생활을 했어요. 어릴 때 한국에 들어온 미라와는 완전히 반대인 거죠. 고향과 멀어져 있다 보니 내가 누군지 찾고 싶고, 한국이 궁금했어요. 가끔 뉴질랜드에서 한국에 들어오면 전통이 살아 있는 종로나 을지로, 한옥 주변에서 매력을 느꼈고요. 그리고 저는 무엇이든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하는데, 한옥은 숨을 쉬는 목재로 지은 집이라는 점도 좋았어요.
이탈리아 건축가의 손에서 탄생해서인지 집이 일반적인 한옥과는 사뭇 달라요. 내부를 가볍게 소개해 주실래요?
아미라 한옥은 보통 가운데 마당을 두고 디귿자, 미음자로 지어져요. 그런데 이 집은 특이하게 가운데 금속 구조물이 있어요. 금속공예 작가인 저와 연관된 지점이 집 안에 있다는 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구조물 위로는 다락방이 있고, 아래로는 지하가 있어요. 지하는 작은 거실로 사용 중인데 앞으로 정민 씨가 작업하는 공간으로 꾸밀 거예요. 옥상에는 테라스가 있는데요. 날씨가 따뜻하면 여기서 브런치를 먹거나 노트북 작업을 해요. 한옥 지붕으로 둘러싸인 풍경 속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문화권을 경험한 두 분이 한옥을 선택했다는 게 특별하게 다가와요. 아미라 씨가 한국에서 보낸 시간에 관해 들어볼 수 있을까요?
아미라 저희 아빠는 말레이시아에서 오랫동안 공부를 하셨고, 박사 과정을 위해 한국을 택하셨어요. 저는 국적은 리비아지만,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 부모님을 따라 어릴 때 한국으로 오게 된 건데요. 원래 아빠의 박사 과정이 마무리되면 다시 어딘가로 떠나야 했는데, 제가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이제는 한 나라에 정착하고 싶다고 선언했어요. 결국 한국에서 26년째 살고 있죠.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한국에서 보냈지만 이방인의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프랑스나 미국 같은 다인종 국가와 다르게 아직 한국은 구분의 시선이 존재해요. 입을 열기 전까지는 관광객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고, 말을 하면 한국어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곤 하니까 이곳에 완벽히 스며들 수는 없을 것 같죠. 어릴 때는 ʻ나는 영원히 한국과 함께할 수 없는 건가?’, ʻ평범한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이 제 작업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고, 사람들의 관심을 일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해 보고 싶어요. 어쩌면 특별하기 때문에 관심을 받는 건 아닐까도 싶고요.
정민 씨도 뉴질랜드에서 머물면서 이방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껴보았나요?
정민 그럼요. 저도 그곳에서 이방인이었으니까요. 처음에는 언어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고, 뉴질랜드 사람처럼 생활하면서도 항상 ʻ나는 여기 사람이 아닌데.’ 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고향에 돌아왔을 때조차 나는 한국 사람들과 다르다는 느낌도 받았고요.
아미라 저도 마찬가지예요. 리비아에 가도 저는 여전히 이방인이에요. 왜, 한국 사람도 외국에 오래 살면 생김새도 조금 달라지고, 그 나라 분위기로 바뀌잖아요. 리비아에 가면 제가 그렇다고들 하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도 이방인, 한국에서도 이방인이니까 저는 어디에도 완벽히 소속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한테는 가족이 나라처럼 느껴져요.
정민 저는 친구를 사귈 때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국적은 그 사람을 정의하지 않거든요.한국은 세계에서도 점점 주목받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곳에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많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을 환영하고 차별하지 않도록 애써야겠죠.
두 분의 작업과 브랜드에 관해 이야기 나누어볼게요. 아미라 씨는 금속공예 작가로 활동 중이죠.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아미라 예술고등학교에 다니며 미술대학을 준비하던 시절, 액세서리 모델 제안을 받았어요. 주말마다 교복을 입고 쇼룸에 가서 촬영을 했죠. 지금 생각해 보니 거기도 북촌이었네요(웃음). 브랜드 운영자가 한옥을 닮은 쇼룸에서 금속을 다루는 모습이 멋지게 느껴졌고, 그때 처음 금속공예라는 분야를 알게 됐어요.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였던 터라, 금속공예를 배우면 가구부터 액세서리까지 폭넓게 다룰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으로 느껴졌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진로를 정해 석사 과정까지 금속공예를 전공하게 됐어요.
10년 넘게 금속공예를 다루고 있는데, 작업에서 어떤 기쁨을 얻고 있는지 궁금해요.
아미라 제가 상상하는 물건의 대부분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금속공예를 선택하길 잘했다고 느끼게 해주죠. 저기 부엌의 금속 선반 보이세요? 원래 있던 상부장을 떼고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새 제품을 아무리 찾아봐도 마음에 드는 게 없길래 ʻ그냥 내가 만들지.’라는 마음으로 제작했는데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아요(웃음). 부엌 쪽 수납장에 부착된 금속 손잡이들도 제가 만들었어요. 작업을 이 집에 녹일 수 있다는 점이 무척 행복해요. 구상한 것들을 실현해 낼 수 있다는 건 공예가로서 가장 뿌듯한 일이에요.
정민 최근에 미라한테 제가 지하에서 쓸 테이블 좀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어요(웃음). 저는 원래 공구 다루는 법을 잘 몰랐는데, 미라가 조금씩 알려주기도 해요.
아미라 이제는 정민 씨가 저한테 드릴 사용법도 배워서 제가 정민 씨를 드릴맨이라고 불러요(웃음). 저와 다르게 정민 씨는 뷰티 브랜드 대표로서 섬세한 스킨케어 제품을 다룬다는 점도 재밌게 느껴지고요.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르네요. 말씀하신 드릴처럼 금속공예를 위한 집기들은 범상치 않을 것 같아요.
아미라 아무래도 금속을 다뤄야 하니 망치나 집게, 모루, 톱 같은 도구를 쓰죠. 뭔가를 뚫는 기계도 사용하고요.
그래서인지 금속 하면 단단하고 강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요. 아미라 씨에게 금속이라는 재료는 어떻게 와닿나요?
아미라 차갑거나 날카롭고 둔탁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저는 금속이 무엇보다 예민하고 따뜻한 재료라고 생각해요. 온도에 솔직하거든요. 금속으로 된 무언가에 손을 대면 아주 빠르게 체온을 흡수하죠. 그래서 저는 금속이 가장 따뜻한 재료로 느껴져요.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작업은 ‘쿠션 거울’로 알고 있어요. 소개를 부탁해요.
아미라 금속은 종종 날카롭고 위험한 재료로 인식되는데 거울도 비슷해요. 깨진 거울은 부정적인 상징을 담고 있고, 영화 속에서도 불길한 징조를 암시하는 소품으로 등장하곤 하죠. 저는 그런 거울을 어떻게 하면 보다 안정적이고 부드럽게 보일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잠들었는데, 꿈속에서 가장자리에 쿠션을 덧댄 거울을 보게 됐어요. 그 꿈을 계기로 생각해 보니 저는 한국에 살면서도 늘 나라가 없다는 감각 속에서 안정감을 갈구하며 살아왔더라고요. 그런 제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은 쿠션과 베개에 몸을 맡기고 있을 때였고요. 쿠션이라는 소재가 제게 주는 안정감을 깨닫고, 꿈을 꾼 다음 날 바로 쿠션 거울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공유했는데, 사고 싶다는 반응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판매로까지 이어졌죠. 코로나 시기부터 선보인 작품이고 요즘에는 아기 방 거울로 특히 많이 쓰이고 있어요. 제가 느꼈던 쿠션의 안정감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어진 작업에서도 거울이 주요한 소재로 자주 등장해요. 거울을 계속 다루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아미라 거울은 설치 방식에 따라 장식이 되기도, 분명한 기능을 지닌 물건이 되기도 해요. 방에 거울을 높게 달면 공간이 거울 안으로 흡수되듯 담기면서, 반사된 풍경이 하나의 장면처럼 보이죠. 그것 자체로 창문 같은 장식이 돼요. 반대로 눈높이에 설치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기능이 생기고요. 이렇게 높이에 따라 전혀 다른 역할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이 거울이라는 소재의 흥미로운 부분이에요. 저는 테두리처럼 조형적인 요소는 금속으로 만든 다음, 그 구조 안에 기능이나 장식성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 꾸준히 연구하고 있어요.
‘기능과 장식 사이’는 아미라 씨의 오랜 관심 주제죠. 좀 더 자세히 들려주실래요?
아미라 제 정체성에서 출발한 주제예요. 저는 한국 비자를 얻기 위해서 직업과 활동을 정기적으로 서류를 통해 증명해야 하는 삶을 살아왔어요. 그래서 휴학을 하거나 마냥 쉴 수가 없었죠. 한국 사람들과 똑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생활하다가도 비자 준비 기간이 되면 ʻ맞다, 나는 여기서 나의 기능을 증명해야만 살아갈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서 사라지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어느 날은 의자를 보는데, 의자는 오로지 의자로 기능하기 위해 태어났고, 의자로 기능하지 못하면 버려지는 게 꼭 저 같아서 슬펐어요. 그때부터 어떤 오브제에서 기능이 사라지고 완전한 장식이 되거나, 아니면 그 사이가 될 수 있는지를 탐구 중이에요. 우리 집에 있는 수납장 손잡이들도 어떤 것들은 아주 위쪽이나 아래쪽에 달았어요. 어떤 수납장은 손잡이가 아예 없고요. 이것도 기능과 장식 사이를 보여주는 작업이에요. 저는 ʻ기능과 장식 사이’라는 말이 꼭 저였으면 좋겠나 봐요.
기능과 장식 사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은 ‘Dot to Presence’가 아닐까 싶어요.
아미라 가구 브랜드 ʻ무제움’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작업이에요. 서랍장이라는 실용적인 가구에 어떻게 장식성을 더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죠. 서랍은 겉으로 보았을 때 각 칸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손잡이가 다르면 그 안의 내용물을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또 손잡이를 구매자가 원하는 대로 커스텀할 수 있다면, 서랍이 그 사람만의 장식이 될 수 있겠다고 느꼈고요. 원형 손잡이는 평면이 입체로 전환되는 과정을 담아낸 형태로, 기능을 위한 부속품이던 손잡이가 하나의 장식 요소로 확장되도록 했어요.
이제 정민 씨의 스킨케어 브랜드 혜자에 대해서 들어볼게요. 시작이 궁금해요.
정민 화장품 유통·제조 사업을 하시는 아버지를 도우면서 자연스럽게 저만의 브랜드를 꿈꾸게 됐어요. 한국 뷰티 시장은 합리적인 가격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해 온 면도 있는데요. 저는 그 흐름과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오랜 시간 신뢰를 쌓아가며 사랑받는 브랜드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가치와 품질 그리고 개인의 취향을 천천히 고민하며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브랜드요. 해외 럭셔리 뷰티 시장에서 한국 브랜드의 존재감이 아직 크지 않다는 점도 도전해 볼 만한 지점으로 느껴졌고요.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그만큼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하며 시작했죠.
한국적인 브랜드 이름이 인상적이에요. 어떤 의미가 담겼나요?
정민 혜자는 한국 전통 미학과 현대 피부 과학이 결합된 미니멀리스트 스킨케어 브랜드예요. 은혜 혜惠, 사랑 자慈를 합친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뜻을 담았어요. 한국에서는 다소 특수한 의미로 받아들여져 처음엔 놀라워하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하지만 이 이름이 지닌 예스러운 결이 오히려 저희 브랜드가 지향하는 전통의 가치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부모가 아이 이름을 짓듯 애정을 담아 브랜드 이름을 정했고요. 스킨케어 브랜드인 만큼 품질에서는 타협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충분한 시간과 연구를 거쳐 제품을 만들고 있어요.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존중한다”라는 슬로건은 혜자의 뜻인 ‘사랑’과 어떻게 맞닿아 있나요?
정민 달항아리를 보면 작은 티가 있고 표면도 고르지 않아요. 그럼에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 불완전함 때문이죠. 한옥 또한 화려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에서 고유한 아름다움이 드러나고요. 그런 점들이 한국적인 미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느껴요. 저는 사람들이 불완전한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 주었으면 해요. 사람의 얼굴 역시 완벽하지 않기에 더 아름답잖아요.
한국 전통 미학을 지향하는 만큼 브랜드 이미지나 제품에서 한국의 정서가 물씬 느껴져요.
정민 연꽃, 유자, 쌀, 인삼처럼 한국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원료로 제품을 만들어요. 또 하루아침에 빠른 변화를 일으키기보다 기존의 상태를 유지하고 발전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죠.
작년에는 두 분이 힘을 합쳐 파리에서 팝업을 준비했다고요.
아미라 파리 도버스트리트마켓 팝업에서 혜자를 소개했어요. 한국 전통을 미니멀하게 보여주기 위해, 제품이 놓일 기둥을 미색 한지로 감싸는 작업을 제가 맡았죠. 파리 팝업에 앞서 네덜란드의 화장품 매장 스킨스 코스메틱스에 입점된 혜자를 함께 보고 왔고요. 화려한 마케팅이 없었음에도 해외의 까다로운 마켓들이 혜자를 주목해 줘서 행복했어요.
정민 제주도에 머물 때부터 기획과 생산 모든 과정을 제가 혼자 담당했는데요. 외국에서 소비자들을 만나고 저희 제품을 좋아해 주시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되어서 이번 출장이 정말 의미 있었어요. 미라와 함께라 더 좋았죠.
다시 집 이야기로 돌아와 볼게요. 아미라 씨가 SNS에 이렇게 썼어요. “금속과 유리처럼 차가운 재료를 다루는 일을 해서인지, 나는 늘 집만큼은 따뜻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의 따뜻함은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요?
아미라 저는 대체할 수 없는 나다움이 곧 따뜻함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쇼룸이나 카페처럼 인테리어가 잘 갖춰진 멋진 공간이 많잖아요. 그래서일수록 집은 나를 닮고, 내 이야기가 담긴 공간이어야 한다고 느껴요. 유행하는 인테리어를 멋지다 여기며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자기만의 색이 옅어질 거예요. 저는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이 참 따뜻하게 느껴지는데요. 그 이유는 이곳이 쉽게 대체할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에요. 제가 만든 손잡이와 선반, 우리가 직접 고른 소파 커버까지 이 모든 것이 오직 이곳에만 존재해요. 집은 저마다의 이유와 이야기가 담겨 있을 때 비로소 따뜻해질 수 있어요.
정민 씨는 집의 따뜻함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요?
정민 저는 이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따뜻함을 느꼈어요. 집 안의 디자인 요소 하나하나가 건축가 부부가 아이들을 생각하며 설계한 결과였거든요. 내부의 금속 구조물 위에 마련된 다락방도 아이들이 집 안에서 재미있게 놀도록 만든 공간이었고, 마당을 확장해 거실로 바꾼 이유 역시 아이들이 자라면서 더 넓은 생활 공간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라고 해요. 거실 천장에 원형 창을 낸 것도 지붕 위를 지나가는 고양이를 함께 보고 싶어서였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작은 요소들까지 분명한 이유를 품고 있는 집이어서, 제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느꼈던 따뜻함도 아마 그런 데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어요.
문득 두 분이 진정으로 내가 속한 곳은 어디라고 느끼는지 궁금해요.
아미라 이 시대에는 저처럼 다양한 인종이 다양한 나라에서 살고 있어요. 많은 어린이들이 제 유년 시절처럼 그 안에서 어려움을 겪고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 하고 있겠죠. 그래서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는 곳은 특정한 나라가 아니라 나의 집 혹은 가족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위로를 받고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정민 조금 오글거리지만(웃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곳이요. 그곳에서 저는 행복해요.
이곳에서 두 분은 편안하고 행복할 수밖에 없겠네요. 작업과 브랜드에 있어서 이 집은 어떤 좋은 영향을 남기게 될까요?
아미라 제 작품은 중동과 동양 사이 어디쯤인 것 같아요. 제가 그런 사람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작품에도 저 자신이 반영되는 거겠죠. 운 좋게 살게 된 이곳에서 경험한 것들 역시 제 작품에 담기길 기대하고 있어요.
정민 저는 이 집에 와서 더 차분해졌어요. 제가 제주도에 내려가 살았던 이유도 환경과 주변 사람들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었거든요. 이 집은 느리고 편안해서 제가 지향하는 가치를 우선시하면서 브랜드를 이끌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했네요. 거실로 들어오는 빛이 아름다워요.
아미라 서향이라 해 질 때 집이 온통 노을로 물들어요. 보이세요? 바깥에 걸린 커다란 거울에 빛이 반사되어 집으로 들어오고 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에요..
에디터차의진
포토그래퍼 임정현